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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 33

Edgar Degas(에드가 드가) / 2 - 파스텔화의 장인

(전회에 이어서)     1871년경에 완성된 Edgar Degas의 이 작품은 Ludovic-Napoléon Lepic(레픽 자작)과 그의 어린 딸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Degas는 1875년 작품 에서 Ludovic Lepic과 두 딸들을 그렸습니다.2008년 2월 10일, 그림은 Foundation E.G.(Bührle, 취리히)에서 도난당했으며 경미한 손상을 입은 그림은 2012년 4월에 복구되었습니다.  1870년에 발생하였던 프랑스-독일 간의 전쟁이 끝났을 때 드가는 형과 함께 친척이 거주하는 미국 뉴올리언스로 잠시 건너갑니다. 이때 그린 는 라고 알려진 작품이기도 한데 그의 생전 유일하게 미술관으로 팔려나갔던 작품입니다. 친척집안의 초상화인 처럼 이 작품도 평범하고 전형적인 포즈를 거부하고 ..

Edgar Degas(에드가 드가) / 1 - 자화상과 인물화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드가는 인상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는 사실주의자라고 불리기를 선호했으며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드가는 뛰어난 데생 화가였으며 특히 무용수들의 무대나 목욕하는 여성 누드화에서 볼 수 있듯이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능숙했다. 드가는 발레 무용수들이나 목욕하는 여성들 외에도 경주마와 기수들, 초상화도 그렸다. 그의 초상화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외로움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from 위키백과]  ....................................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Marianne von Werefkin(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 2 - 알프스를 품은 작품

(전회에 이어서)        노파가 목발에 기대어 넓은 대로를 걷고 있습니다. 대로 왼편에는 바람에 흔들려서 구부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두 명의 여성이 빨간 출입구의 안쪽에 나와 있는 노면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는 베레프킨이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인 1913년에 그려졌습니다. 이때 베레프킨은 Wassily Kandinsky와 Franz Marc가 설립한 NKVM가 붕괴되자 1909년에 등장한 그룹인 Der Blaue Reiter (The Blue Rider, 청기사파)에 합류한 상태였습니다. Paul Klee 또한 그룹의 일원이 되었던 Der Blaue Reiter는 드레스덴의 Die Brücke(다리파)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의 하나로 간주됩니다. ​..

Marianne von Werefkin(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 1 - 여류 표현주의화가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은 누구인가?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은 1860년 8월 29일 러시아의 툴라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러시아 연대 사령관이었고 어머니는 화가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예술적 재능을 일찍 인정받은 그녀는 14세에 개인 아카데미 그림 수업을 받았습니다. 1886년 가족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을 때 베레프킨은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Repin) 밑에서 개인 교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888년 사냥을 하던 중 실수로 오른손에 총을 맞았고 오랜 회복 기간 후에도 불구가 되었습니다. 끈질긴 연습을 통해 마침내 오른손으로 그림과 그림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이후 "러시아의 렘브란트"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사실주의 회화의..

Paul Gauguin(폴 고갱) / 9 - 타히티 시대 (2차: 1895~1903) 자연으로 복귀

(전회에 이어서)      1898년, 고갱은 파리 전시를 위해 타히티에서 한 그룹의 작품을 보냈습니다. 중앙에 배치할 "우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보스턴 미술관)를 비롯하여 이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 8개의 작은 작품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그림은 이러한 작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여기에 등장하는 푸른 여신은 고대 폴리네시아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히나입니다. Gauguin이 묘사한 그녀의 외모는 힌두교와 남아시아 예술과 문화의 다양한 출처를 기반으로 합니다.   는 고갱의 타히티 유화 중 드물게 목가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시골을 돌아다니며 내륙의 산과 숲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외딴곳은 그를 매혹시키는 모든 종류의 야생 동물과 식물로 ..

Paul Gauguin(폴 고갱) / 8 - 타히티 시대 (2차: 1895~1903) 원시 종교로

(전회에 이어서)       고갱은 휴식을 위해 이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이국적인 과일이 그려진 정물화는 그가 1891~93년 타히티에 처음 머물렀을 때나 혹은 1896년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제작되었습니다.    고갱은 1896년 타히티로 마지막 이사를 한 후 이 그림을 타히티에서 그렸습니다. 1898년 이 그림은 고갱의 예술을 존경했던 드가에게 팔렸습니다.    Gauguin은 두 번째 폴리네시아 여행에서 동물의 신과 천사(?)를 조합한 작품 Barbarian Poems(야만의 시)>을 그렸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 시인 Leconte de Lisle(르콩트 드 릴)의 시 모음집에서 빌렸습니다.  이 작품은 타히티에 대한 고갱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생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Gauguin의 작품은 ..

Paul Gauguin(폴 고갱) / 7 - 타히티 시대 (1차: 1891~1893) 원시 미인들

(전회에 이어서)       는 젊은 타히티 여인이 보로부두르 사원 부조에서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고갱은 보로부두르 사원의 모형을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보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타히티의 이브는 사과가 아닌 공작 깃털을 닮은 꽃을 들고 있으며, 뱀(타히티는 뱀이 없다고 함) 대신 진홍색 날개를 가진 전설의 도마뱀이 나무 위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갱 생전에 개최된 타히티 작품전은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타히티어로 된 작품제목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위 작품 도 원주민 신화에 조명을 비춘 탓에 화단의 반응이 떨떠름했습니다.​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작품에서 여인이 등을 보이고 돌아누운 채 검은 두건을 쓴 인물(투파파우, 저승사자)과 같은 공간에 ..

Paul Gauguin(폴 고갱) / 6 - 타히티 시대 (1차: 1891~1893) 원색의 잔치

(전회에 이어서)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빈센트 반 고흐와의 갈등, 그리고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1874~1965)의 소설 입니다.​고갱은 파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치열하게 자신의 입지와 싸웠고, 결국 지상의 낙원이라고 생각한 문명의 오지 타히티를 선택하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식민지 지역 관리 차원에서 자국 화가를 파견, 섬사람들과 주변 환경을 그리게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언제나 인위적인 도시 문명을 벗어나 원초적 생명력이 가득한 이국적인 지역으로의 여행을 꿈꿨던 그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지만 막상 섬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프랑스인이 넘쳐나고 있었고 ..

Paul Gauguin(폴 고갱) / 5 - 풍경화(2)

(전회에 이어서)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산등성이와 같은 배경이 보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그린 걸까요? 아래 그림은 생 마르그리트 산 아래의 아벤 강을 그린 것인데.. 위의 것도 아벤강변에서 그린 것이고.. 아마도 같은 장소에서 그렸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이 작품은 동경 아티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군요.일본 동경 긴자선의 교바시역과 니혼바시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은 프랑스 퐁타방 지역의 목가적인 풍경과 소박한 생활상을 담은 작품입니다.작품의 중심인물은 돼지 치는 사람인듯한데 그는 돼지 치는 사람답지 않게(?) 생각에 잠긴 표정입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아니면 개인의 애정전선에 이상이라도 발생한 건지.. 암튼, 이 캐릭터는 황금색 톤으로 표현된 돼..

Paul Gauguin(폴 고갱) / 4 - 풍경화(1)

(전회에 이어서)   고갱의 풍경화를 감상하다 보면 고흐와 결이 다르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타히티 시대는 타히티 시대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브르타뉴 지방의 풍경화들은 또 그것대로 다른 매력을 풍깁니다. 그리하여 도시생활에 지친 내 마음을 잔잔하게 힐링시켜 주었습니다. 고흐가 강하고 삐죽삐죽 덧칠한 듯한 붓터치로 영혼을 울리는 마력을 발산한다면 고갱은 부드럽고 평평하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을 미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듯합니다.   풍경화 - 파리시대   Paul Gauguin의 이 초기 인상파 그림 은 1870년대 후반 고갱이 가족과 함께 살았던 파리 좌안 지구인 Vaugirard의 정원과 건축물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1880년 다섯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하여 인상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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