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히타이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보랴, 벽체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조각상을 감상하랴 또 조각상 위에 걸려있는 회화작품 살펴보랴 정신이 없는 듯했다. 아무리 작품 수준이 높다 해도 작품이 너무 많이 전시되어 있고 게다가 천장까지 회화로 뒤덮여있다면 집중력을 가지고 감상하는 것은 한계를 벗어나는 과업이 되고 만다. 그들 중 상당 부분을 놓치거나 나중에는 스스로 선별해서 작품 감상을 하기 마련이다.
"이 여성은 왜 백조를 쥐고 있는 걸까?"
"글쎄요, 작품 제목이 Leda(레다)라고 하는데 여성 이름인가보죠."
"음, 한번 찾아보자. Leda라.. 스파르타 신화 속의 여왕이로군. 백조는 제우스가 변신하여 여왕 레다를 유혹하는 것이라 하네."
"제우스신이요?"
"그래, 레다는 결국 제우스의 씨를 출산했다네. 카스터(Caster)와 폴룩스(Pollux),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 헬렌(Helen)을.."
아폭시오메노스(Apoxyomenos, 또는 스트리길을 든 운동선수)는 나체의 운동선수를 묘사한 동상이다. 조각상의 작가는 기원전 4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Policleto)의 제자로 추정된다. 아, 제자.
히타이트가 보기에 운동선수는 스트리길(strigil)을 닦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왼손등에 스트리길을 넘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약간 부은 귀에서 알 수 있듯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권투선수였을 것이다.
"오.. 로마의 신 머큐리로군..."
"머큐리요? 들어본 이름인데 뭘 하는 신이었죠?"
딸이 말한다.
"머큐리(Mercury)는 로마의 주요 신으로, 고대 로마 판테온의 신들 중 하나였어. 그가 담당한 분야는 재정적 이득, 상업, 웅변(따라서 시), 메시지/통신(점술 포함), 여행자, 경계, 행운, 속임수 및 도둑의 수호신이었단다. 한편 머큐리는 영혼을 지하 세계로 인도하는 일도 담당하였군."
휴식신공을 발휘한 후 히타이트는 딸과 함께 트리뷴으로 들어갔다.
"우피치 미술관 내의 팔각형 전시장 트리뷴(Tribune, Tribuna)이라네."
"무슨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걸까요?"
"1584년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를 위해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가 설계한 것인데 여기에는 메디치 컬렉션(메디치 가문의 개인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고대 유물과 르네상스 및 볼로냐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네."
"트리뷴이란 말은 무슨 뜻이죠?
"아, 로마 호민관이라는 직책을 말하는데.. 이곳 전시실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군."
트리뷰나는 1770년대에 피렌체를 방문하는 그랜드 투어리스트의 중심지가 되었다.
방 안에는 놓인 저 테이블은 1589년부터 보전해 온 것으로 팔각형이다. 이 방의 평면도 팔각형인데 이는 건축 양식과 기독교 수비학 전통의 르네상스적 연관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기서 8은 천국에 다가가는 숫자를 의미한다.
"잠든 아리아드네라.. 한나야, 너 아리아드네가 누군지 아니?"
"당연히 모르죠."
"그럼 이참에 아리아드네에 대해 스터디해 봐야겠군."
히타이트는 조각상을 앞에다 두고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멘트가 이어진다.
"아, 이 관능적인 인물은 헬레니즘 조각을 본떠 만든 기원전 2세기 로마 시대의 작품이구나. 로마인들이 그리스 헬레니즘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모방해 낸 것인데 그런 모방의 대상으로 그리스조각상을 찍은 것은 로마인들이 보기에 이상적이고 완벽한 미를 표현해 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네. 음, 그렇게 제작된 조각상들은 로마의 거리나 관공서, 고관들의 저택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하였고.."
조각상은 부드럽고 고혹적인 몸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섬세한 옷 주름 표현은 보는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히타이트 생각으로는 아마도 미켈란젤로 작품을 보러 35번 방에 들어갔다가 이 조각상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수의 관람객이 미켈란젤로 작품에 눈이 팔려 있을 때 나 홀로 이 조각상 감상에 빠져드는 호사를 누릴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 자신이 그리하는 것처럼..
아리아드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공주였다. 그녀의 아버지 미노스 왕은 자기 부인이 황소와 관계하며 낳은(와우, 신화는 괴기스러워..) 자식이자 황소 인간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로에 감금해 버린다. 그리고 해마다 아테네 남녀 각각 7명의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쳤다.
이런 미친놈이 있나. 이렇게 분노한 아테나의 왕자 테세우스가 인질을 구하고 괴물을 죽이러 크레타 섬에 들어갔다. 그런데 왕자는 그곳에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진다. 왕자와 사랑에 빠진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는 붉은 실타래와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다. 왕자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괴물을 죽이고 인질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마침내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빠져나와 낙소스 섬에 도착한다. 근데 이 왕자도 사이코였나? 그는 그곳에서 잠이 든 아리아드네를 놔두고 떠나버린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술의 신 박카스로 알려진 디오니소스! 이 자가 버려진 채 잠이 든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맞이한다.
음.. 스터디 완료!
히타이트는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부모형제와 고향을 뒤로한 채 선택한 남자한테까지 버림받아 잠이 든 아리아드네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해 낸 것이었군.
'가디 토르소란 제목은 어떻게 작명된걸까?'
히타이트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켄타우로스라는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 조각상은 기원전 2세기의 원형에서 파생된 것으로 현재 몸통만 남아있지만(그래서 토르소)
원래는 손을 등 뒤로 묶은 켄타우로스였다고 한다.
자유롭고 활기찬 청년 켄타우로스, 그리고 채찍으로 때리는 큐피드에게 탄 늙은 켄타우로스로 구성된 그룹의 일부였다.
이 설명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모습과 늙은 모습을 동시에 묘사해놓았다고?
암튼, 이 청년 켄타우로스 몸통의 잔해는 근육질의 몸이고, 뒤틀린 몸통의 긴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야생 켄타우로스를 통제할 수 있는 에로스의 무적의 힘에 대한 은유로 해석된다.
이 힘과 권력의 상징은 회화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 형식의 모델로 치환되어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유럽에 널리 유포되었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다른 조각품과 달리 이 작품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는 감정적 효과가 매우 강력한 고품질 예술 작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란다.
부연하자면, 과거의 놀라운 연상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히타이트는 한 조각상 앞에서 생각한다.
'이런 작품은 고대사회에서 표현하였던 유머 코드인 걸까?'
히타이트가 보기에 이 조각상은 바위에 앉아 발에 박힌 가시를 제거하려는 소년을 표현한 것인데, 가시는 아마도 수확기에 포도를 밟다가 발에 박히게 된 것일 게다. 이 주제는 고대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조각상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곳에서 로마로 옮겨진 후, 아이네아스(Aeneas)의 아들이자 율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왕조의 창시자인 아스카니우스(Ascanius)를 묘사하기 위해 복제되었다.
히타이트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Spinario라고도 하는 이 조각상은 12세기말 로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것은 청동 복제품(또는 현재 로마의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원본)이었는데, 영국인 여행자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디서?
히타이트의 궁금증은 별개로, 그 이후 이 조각상의 복제품이 계속 만들어졌고 현대 조각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중한 우아함으로 묘사된 장면의 신선함, 이런 테마가 복제의 모티브로 작용한 듯하다.
"아, 여기도 아리아드네를 조각한 작품이 있네."
히타이트는 자신이 모르고 있던 인물이 지구상의 한 지역에서는 반복적으로 조명되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는 듯했다.
작품 <Head of Sleeping Ariadne>는 목, 머리를 가리는 망토, 오른팔과 어깨를 포함한 단일 블록에서 조각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6세기에 조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품질적인 측면에서는 바티칸 사본에 놀라울 정도로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머리가 언제 떨어져 나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프로디테를 조각한 것이라 하니 히타이트 씨 열심히 들여다본다.
"과연 아름다운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조각상 <Crouching Aphrodite(웅크리고 있는 아프로디테)>는 1세기 로마 사본인데, 조각가 도이달사스(Doidalsas)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목욕을 하려고 준비 중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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