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히타이트 부녀, 우피치 미술관의 마지막 미션 수행을 준비 중이다.
그것은 바로, 보티첼리의 작품을 알현하는 일!
미술작품 중에서 인상파 스타일을 애정하는 히타이트는 중세회화도, 현대미술도 인상파 화가들 유형에 빗대어 분석하고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방법은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한 사람이 미술에 친해지는 효과적인 스킬이었다. 그의 방법론으로 비추어 보면 중세회화에서 보티첼리는 인상파 화가 그룹의 르누아르에 필척하는 화가였다.
무슨 말이냐구?
히타이트가 보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인상파 화가 중에서 인물화를 가장 예쁘게 그리는 아트스트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였다. 그렇게 보는 시각을 그대로 옮겨와서 중세 회화를 볼 때 그림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화가로 산드로 보티첼리를 꼽았던 것이다. 혹자는 라파엘로가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 그런 견해를 가진 분 의견은 존중해 드리겠다. 어쨌든 우피치에서 히타이트는 스스로 중세회화의 르누아르라 평하는 보티첼리 작품을 만나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다.
히타이트 부녀, 드디어 보티첼리 전시실로 입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우피치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곳 보티첼리 전시실이다. 2층 10번부터 14번 전시실에 보티첼리 작품들이 할당되어 있었다.
보라!
보티첼리의 이 아름다운 작품 속에서 성모 마리아는 두 천사가 씌워주는 관을 받으며 왕좌에 앉아 있다. 그녀는 아기예수의 인도를 받아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이라는 찬송가를 쓰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림의 제목이 되었다.
예수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석류를 만지고 있는데, 석류의 붉은 씨앗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흘린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이 장면은 밝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내다 보이는 창문 앞에서 전개되고 있고, 그 위에는 세레나 돌 프레임(Serena stone frame)이 천국과 지상을 구분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등장인물 중에서 천사들은 보티첼리의 다른 작품처럼 날개가 없다. 천사에 대한 보티첼리의 해석일까? 암튼 성모의 밝은 금발 머리카락은 화려하게 장식된 마포리온 아래 투명한 베일로 덮여 있고, 천사들의 헤어스타일과 옷은 15세기 후반 피렌체의 부자 가문의 후예들 사이에 인기 있던 유행을 따르고 있다. 보티첼리가 표현해 낸 이 작품의 독창성과 세련된 옷과 머리카락의 곡선미,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우아한 표정은 수년에 걸쳐 보티첼리표 작품에 명성을 안겨 주었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를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내(內) 가스파레 디 자노비 델 라마 예배당(Gaspare di Zanobi del Lama's chapel)의 제단을 위해 그렸다. 작품은 다윗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갓 탄생한 아기 예수를 찾아온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묘사하였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성 요셉을 캔버스 중심에 배치하고, 그들 앞에서 세 명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리는 장면을 담았다.
한편, 성가족은 신의 아들을 보러 온 다양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무리 중 오른쪽 끝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자, 노란색(이 사진에선 주황색으로 보인다) 가운을 걸친 사람이 바로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이다. 아니, 보티첼리가 예수 탄생할 때 살았던 인물이라는 말인가! 히타이트는 그의 엉뚱함에 아연실색하였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성경에는 양치기와 동방박사 이야기 외에 이처럼 많은 성인남자들이 찾아왔다는 기록은 없는데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보티첼리 작품의 알현이 이어진다. 동방박사의 경배 장면을 만나고 옆으로 나아가니 <비너스의 탄생>이 히타이트 부녀를 맞이한다. 오, 비너스의 탄생! 이것은 우피치 미술관의 대표선수가 아니던가.
작품 속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은 바다의 물보라에서 태어나 키프로스 섬에 막 도착하고 있었다.
이 무슨 사단인가.
이야기인즉슨,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자 부인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아들 크로노스에게 복수를 명한다. 어머니의 명을 받자와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져 버리는데, 그 주위에 물거품이 일어났고 그 속에서 미의 여신 비너스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참나, 신화의 창작자 하고는..
생식기를 버리니 그곳에서 여성이 태어나?
히타이트는 작품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왼쪽에서 그리스로마 신화 속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Zephyr)가 산들바람의 의인화된 존재 아우라(Aura)에 안긴 채 비너스를 해변으로 밀어 밀어 키프로스까지 보내고 있다. 미의 여신은 진주처럼 순수하고 완벽한 거대 조개껍질 위에서 바람의 밀어줌에 힘입어 키프로스에 당도한 것이지.
자, 비너스의 오른편에서는 그레이스(Graces) 중 한 명(또는 봄의 호라(Hora)로 식별되는 여신)이 막 당도한 비너스를 위해 옷(꽃 망토)을 펼치고 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를 찬양하는 이 그림의 주제는 시인 아뇰로 폴리치아노(Agnolo Poliziano)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이 작품은 어떤 연유로 제작된 것일까?
히타이트가 생각하기로는 메디치 가문의 일원이 의뢰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림 속 오렌지나무를 보면 답이 나온다. 가문 이름 메디치와 작품 속 '말라 메디카' 오렌지나무 이름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당시 오렌지 나무는 메디치 가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한편, 보티첼리의 <봄의 우화>가 나무에 그려진 것에 비하여 <비너스의 탄생>은 캔버스에 그려졌는데, 이는 15세기 내내 캔버스가 귀족 가문에 납품할 장식 작품에 널리 사용되었던 전례에 기인한 것이다.
'햐~기막힌 발상이다'
히타이트는 비너스가 긴 금발 머리카락으로 은밀한 곳을 가린 포즈를 보면서 그리 중얼거렸다.
히타이트는 때때로 전시실에 걸려있는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는 관람객을 쳐다본다. 그것은 작품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태도에서 진정한 가치입증의 증거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히타이트 역시 우피치에서 관람객들과 마찬가지로 작품 <비너스의 탄생>을 사진으로 담았다. 하지만 작품이 걸려있는 커다란 액자 앞으로 유리케이스가 쳐져 있어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유리 칸막이 때문에 빛의 간섭이 일어나 촬영된 사진에 빛얼룩이나 빛 번짐이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아, 젠장.
저 사람들은 제대로 사진을 찍어 갔을까?
"이 작품은 Alessandro Filipepi이 그렸다는데 누구죠?"
중세회화에 약한 한나가 히타이트에게 물었다.
"아~ 이건 말이지 사실 같은 사람이야. Alessandro Filipepi가 본명이고 Sandro Botticelli는 21세기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닉네임이지. 당시에는 화가들이 그런 별명을 사용하는 게 유행이었나 봐."
"그렇군요. 어쩐지 보티첼리가 그린 것과 너무 똑같아서 이상하게 생각되었는데, 의문이 풀렸어요."
작품 <석류의 성모>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7년에 제작한 템페라 그림이다. 음, 보티첼리는 대부분 템페라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모양이다. 이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원형 형식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런 원형 바탕을 가리켜 '톤도(tondo)'라 칭하였다.
자, 다시 작품 자체를 들여다보자.
감상을 해야지.
히타이트가 살펴보니 양쪽에 배치된 천사들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를 둘러싸고 있고, 마리아는 왼손에 석류를 든 채 아기 예수를 부드럽게 품고 있는 형국이다.
이 톤도(tondo)에게 부여된 'Madonna of the Pomegranate'라는 명칭은 성모 마리아가 아들에게 주는 과일, 열정을 상징하는 석류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계속 보티첼리가 베푸는 잔치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메달을 들고 있는 청년 초상화가 히타이트 부녀를 반긴다.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디 반니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di Vanni Filipepi)로도 알려진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메달을 든 청년의 초상화>. 이 청년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며, 시선은 작품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향하고 있다. 그가 쓰고 있는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모자나 무릎 위에 섬세하게 접혀 있는 손.. 그러나 이 초상화에서 가장 큰 특징은 그의 목에 걸려 있는 메달이다. 메달 속에 새겨진 인물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강력한 통치자이자 피렌체 예술의 위대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작품은 좀 복잡하다. 어수선하다고 해야 하나?
기원전 4세기 인물 아펠레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다. 대왕 곁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특히 대왕의 사촌이자 부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의 견제가 심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길에 급작스런 사망에 이르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 왕위에 오르고 둘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다. 그러던 중 아펠레스의 경쟁자인 다른 화가가 “아펠레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라는 모함을 퍼뜨렸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아펠레스는 역모 혐의로 법정에 끌려갔지만 다행스럽게도 증인 한 사람이 “아펠레스는 결백하다”며 거듭 증언해 주어, 오히려 그를 모함한 경쟁자가 무고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펠레스는 자신의 억울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후 그림은 잃어버렸지만, 기원전 2세기 시인 루키아노스에 의해 상세한 기록으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아펠레스 사후 1700여 년 뒤(15세기 중엽), 르네상스의 거장인 보티첼리도 여러 차례 중상모략을 당했다. 동성애 의혹(아, 화가들의 세계는 이 컨셉이 뿌리 깊은 내력을 가지는 모양이네)으로 조리돌림을 당했고, 격변기 정치 상황에 휘둘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때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구원의 비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아펠레스 사례였었다. 보티첼리는 루키아노스가 남긴 책의 묘사를 따라 그림을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대변하였던 것이다.
햐~ 그것 참. 인간사 복잡 미묘하네..
히타이트 부녀는 점차 우피치 미술관 미션수행의 절정을 향해 치달린다.
<비너의 탄생>을 알현했고 <봄>이 온다.
이 그림은 프리마베라(Primavera 또는 '봄')로 알려져 있는데, 오렌지와 월계수 숲 속으로 이어지는 꽃이 만발한 잔디밭 위, 그곳 지나가는 고전 신화 속 인물 9명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전경에서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Zephyrus)가 클로리스(Chloris)라는 님프를 껴안은 후 그녀를 데려간다. 그런 다음 그녀는 봄의 여신 플로라(Flora)로 변신한다. 그림의 중앙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가 정숙한 차림으로 다른 여신들과 약간 거리를 두고 서 있고, 머리 위에서는 눈가리개를 한 큐피드가 사랑의 화살을 쏘고 있다.
왼쪽에는 비너스와 같은 속성을 가진 하급 여신 세명의 그레이스(Graces)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이 구성은 신들의 사자인 머큐리가 헬멧과 날개 달린 샌들을 착용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지팡이로 구름을 만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복잡한 구성에서 색소의 노화 현상으로 식물이 모두 어두운 색상을 띠고 있지만 원래는 밝은 모습이었다. 세월이 무섭구나. 인류의 위대한 미술작품은 그럼 언제까지 유지가능할까? 암튼, 연구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작품 속에서 무려 138종이상의 다양한 식물이 확인되었다는데, 이 모두는 보티첼리가 허벌리아(herbaria, 식물표본집)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보티첼리와 작별하니 참 묘한 인상을 풍기는 그림이 나타났다.
빨간색 천을 배경으로 누드차림을 한 2명의 여인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정체가 뭘까?
동일한 주제로 그려진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해서 히타이트가 찾아봤다. 16세기 후반에 그려진 이 퐁텐블로 학교의 그림은 아직도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반지를 주었는데, 그 반지의 흔적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일부 학자들은 이 여성들을 앙리 4세(Henri Ⅳ)의 연인 가브리엘 데스트리(Gabrielle d'Estrees)와 그녀의 자매 중 한 명으로 특정하였고, 또 다른 학자들은 이 그림이 16세기의 서정적인 미적 기준에서 영감을 받은 이상화된 초상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퐁텐블로 출신의 익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 2장에서 공동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손가락의 모양이다. 우피치 소장품에는 반지를 쥔 듯한 형상으로 서로 제스처를 취하는 장면이 담겨있고,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에서는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젖꼭지를 쥐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히타이트가 생각하기에도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도 독특하고 동작도 특이한 작품이었다.
다시 전시실로 시선을 돌려서 감상을 이어간다.
이 작품을 그린 피에트로 디 크리스토포로 반누치(Pietro di Cristoforo Vannucci)는 페루지노(Perugino) 또는 신성한 화가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8~1523)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15세기 움브리아 회화의 위대한 대표자로 간주되고 있는 그는 산드로 보티첼리와 함께 시스티나 성당 장식에도 협력했었다.
미션수행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히타이트는 다시 수행의 길을 나선다. 어디로? 우피치 미술관 내부 전시실로..
벽에 걸려있는 저 작은 그림이 인상적이었는지 딸이 그림 앞으로 조르르 달려간다. 먼발치에서 얼핏 보니 무슨 악기를 들고 주를 찬양하는 천사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살펴보니, 큰 날개와 큰 악기가 쬐그만 아기천사의 얼굴을 거의 가릴 정도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impact가 큰 작품으로 여겨졌다.
이 작품은 류트의 줄을 튕기는 어린 천사를 묘사한 것으로, 분실된 제단화의 일부라고 한다. 비교적 큰 류트를 다루는 데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어린 천사의 매우 부드러운 모습이 담겨있다. 이 그림은 전통적인 주제를 화가 로소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가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눈에 띄게 현대적인 붓놀림이 작품에 생생한 효과를 주고 있다.
"이 아기는 복스럽게 생겼네요.."
주인공 조반니 디 코시모 1세 데 메디치가 들으면 경기 일으킬 멘트였다.
그는 자라나서 후일 이탈리아 추기경으로서 이탈리아 역사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히타이트가 보기에 딸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중세미술에 그닥 호감을 표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아기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에는 반응을 보였다.
히타이트 부녀가 우피치 미술관에 입장해서 처음 관람루트였던 복도에 도열해 있는 조각상들을 둘러볼 때만 하더라도 틈만 나면 의자에 앉아 쉬려 했는데 어느새 후반부 회화관을 돌면서 아기예수 그림들을 보면 달려가서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닌가. 내재된 모성애가 발현된 건지... 히타이트는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살비아티(Salviati)로 알려진 프란체스코 데 로시(Francesco de Rossi)라고 한다. 히타이트가 우피치 미술관을 돌면서 여러 번 접하였던 일이다. 이태리 화가들 이름을 표기할 때 '누구누구라고 알려진 아무개' 식으로 기록된 사례가 자주 등장하였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각설하고,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세 명의 아이에게 둘러싸인 젊은 여성이 한쪽 가슴을 드러낸 가운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아기들을 살펴보니 한 아이는 그녀의 가운을 가지고 놀고 있는 듯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에 매달려 애정 어린 시선을 교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살비아티는 네 명의 인물을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구성하여, 각 동작을 조화롭게 연결한 듯하다. 거기까지 살펴나가던 히타이트는 순간 깜놀하고 말았다.
아니?
아기들 표정, 특히 눈꺼풀 처진 모습을 보니 코레아 대본소 만화방의 강자 고행석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 이름도 유명한 불청객 구영탄!
수준 낮은 히타이트라서 이런 상상력만 발휘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새겨볼 사항은 바사리가 명명한 '벨라 마니에라(Bella Maniera)'의 가장 효과적인 사례라는 건데... 여기서 바사리가 사용한 용어 ‘마니에라 maniera’란 말은 예술적 특성, 즉 역사적·개인적 혹은 기술적으로 규정된 표현방식을 뜻하며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양식(style)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마니에라’는 유사한 예술작품의 바람직한 성격을 뜻하는 ‘우아함’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라시가 칭한 ‘아름다운 마니에라(bella maniera)’, 또는 ‘현대적인 마니에라(la maniera moderna)’는 라파엘로의 <성 미하엘>과 미켈란젤로의 <스무 명의 누드> 등에서 표현된 것처럼 그 시대의 가장 높은 수준의 미술 표현을 의미한다.
오~ 이 그림은 멀리서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는걸...
히타이트도 인정한 작품이다.
젊은 엄마가 사랑스러운 아기를 어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니, 성모께서 아기예수를 저렇게 키웠단 말인가? 이거 실화냐?
작가인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는 출생지에서 이름을 따온 코레지오(Correggio)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16세기 초 에밀리아 회화(Emilian painting)의 부활을 이끈 주요 인물이었다. 여기서 에밀리아는 볼로냐가 주도인 이태리 북부지역을 가리킨다.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코레지오는 만투아(Mantuan) 지역에서 시작하여 원근법에 기반한 환상주의와 만테냐(Mantegna)의 고전주의 회복을 연구하였으며, 다빈치의 스푸마토(sfumato)와 베네치아의 토날리스모(tonalismo) 기법을 배우면서 전문성을 강화했다. 그 결과 관계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회화 스타일이 탄생시켰다. 위 작품처럼 호감 가는 자연스러운 캐릭터와 소중하고 섬세한 색상으로 보는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적용한 스푸마토란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를 테면 물체의 색을 자연스럽게 번지게 하여 대상이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윤곽선을 불분명하게 보이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런데 히타이트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 이 작품이 표현해 낸 주제는 15세기 필리포와 필리피노 리피의 작품을 통해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코레지오는 1372년 베들레헴에서 스웨덴의 성녀 브리짓이 경험한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그림의 구조를 창안했다고 밝혔다.
아, 그럼 성녀 브리짓(Brigitta)은 누군데?
히타이트는 결국 그녀의 계시록에서 아래와 같은 기록을 찾아 읽어내고야 만다.
"그러자 성모 마리아가 신발을 벗고 […] 기도하듯이 큰 경의를 표하며 무릎을 꿇고 손을 앞으로 뻗었고, 그 순간 눈 깜짝할 새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갑자기 땅에 나타나 형언할 수 없는 빛을 발산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자신이 출산했다는 것을 깨닫고 아기에게 "환영합니다, 나의 신, 나의 주님, 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이거 무슨 생뚱맞은 표현이란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작품 속, 맑고 난해한 새벽 분위기 속에서 아름답고 상냥한 성모 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기예수는 작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옷을 잡으려고 한다. 아기가 어머니의 옷 조각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로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친밀한 유대감이 강조된다.
이건 미완성작품이다. 작가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촐라(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는 피렌체, 로마, 볼로냐, 그리고 고향인 파르마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가이자 판화가였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그림에서, 아기 예수는 난간에 앉아 강렬한 표정으로 관찰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왼손에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를 들고 있다.
오옷~ 티치아노의 누드화.
이게 우피치 미술관 미션수행의 피날레를 장식하려는 걸까?
티치아노는 베니스에서 "il toccamano"로 알려진 의식을 축하하기 위해 차려입을 젊은 신부의 상징적인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는 이 작품을 매혹적인 비너스의 영감으로 삼았으며, 초기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도상학을 사용하여 "Venus pudica"의 고대 묘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하였다. 구겨진 시트가 있는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소녀는 왼손으로 음모를 숨기고 오른손에는 사랑의 변함없는 상징인 장미 한 다발을 든 채, 유혹적이고 은유적인 시선으로 구경꾼을 마주하고 있다. 침대 발치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개는 결혼 생활에서의 충실함을 의미한다.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르네상스 시대 귀족사회의 결혼의 의미와 연관된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사랑과 관능의 여신 비너스를 그린 에로틱한 그림은 부부의 성생활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고 침실 장식용으로 종종 주문하였었다. 배경에는 16세기 베니스의 부유한 귀족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한 방이 보인다. 배경에서 옷장을 뒤지는 소녀를 내려다보는 하녀는 모성을 상징한다. 여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미는 비너스의 상징으로서, 육체적 사랑뿐만 아니라 부부의 영원한 유대를 의미한다. 요염한 자세로 기대 누운 비너스는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을 분 아니라 다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아내상과 관련되어 있다.
이 캔버스에서 티치아노는 주제에 강렬함과 개성을 부여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아울러 여성 피부의 부드러움을 묘사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히타이트는 생각했다. 과연 그것이 다 일까?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이 르네상스 걸작에는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관한 흥미로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사실, 그림 속 여인은 비너스가 아니고 로렌초 데 메디치의 손자 이폴리토 데 메디치와 교제했던 베네치아의 유명한 매춘부이자 티치아노의 모델로 활동했던 안젤라 델 모로(Angela del Moro)였다. 오ㅡ그래?
히타이트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림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이번에는 여인의 눈빛에서 교태스러움이 뚝뚝 묻어 나온다. 오, 이런.. 심지어 티치아노의 친구이자 작가인 피에트로 아레티노는 그녀를 베네치아 최고의 창부이며, ‘자신의 얼굴에 예의의 가면을 쓰고 음탕함을 숨길 줄 아는 여자’라고 언급했다. 작품의 제목도 원래는 그저 ‘나체의 여인’이었다. 알고 보니 티치아노는 이폴리토 데 메디치를 위해 순전히 쾌락적 목적으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원래 소유주가 요절하자 이 그림은 우르비노 공작에게 팔렸는데, 이로 인하여 16세기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여인의 정체성을 '우르비노의 비너스'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 오 마이갓!
그럼..
히타이트는 생각했다.
대중에게 각인된 이 작품의 이미지는 티치아노와 조르조 바사리의 합작품이라고 해야겠군.
히타이트는 미술사가의 시선으로 작품을 더듬어본다. 용의주도한 티치아노는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오랜 미술사의 규범을 교묘하게 비켜 갔다. 그는 누드의 비너스가 수줍은 듯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왼손으로는 국부를 가려 행실이 바르다는 정체성을 입증시키려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외설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의 실체는 그게 아니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걸까?
티치아노는 흉내내기만 했을 뿐 여인의 가슴을 가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마스터베이션을 시도하는 듯 비너스의 손가락을 구부려서 음부에 갖다 놓았다. 표정은 어떤가. 대담하게도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 관람자를 빤히 쳐다보는 여인의 노골적인 눈빛에는 음탕한 유혹과 에로티시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걸 간파했던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세상이 소장한 가장 역겹고 비도덕적이며 외설적인 그림”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아무리 여신의 모습으로 가장했더라도, 그 본질은 ‘유혹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꼬집었던 것이다.
히타이트는 궁리질을 이어간다. 21세기에 와서 르네상스 미술을 돌아보니, 당시에 이미 여성의 관능적인 몸을 그린 누드화의 전통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고 보였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창작 동기가 어찌하였든지 티치아노가 작품으로서 에로티시즘을 표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히타이트는 엷은 신음을 내며 뇌를 굴렸다. 그러므로 르네상스는 그 바닥에 흐르는 맥락으로 보아 그리스 로마 문명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고대문명으로의 복귀라는 구실을 내세워 인류 역사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본능을 표출하는 판도라의 상자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크! 놀래라..
중세의 풍운아,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두 가지 버전의 메두사를 만들었다. 하나는 1596년에, 다른 하나는 1597년경에 출시했다. 두 작품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고르곤 메두사(Gorgon Medusa)가 데미갓 페르세우스(the demigod Perseus)에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에게 있어서 메두사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괴하고 복잡한 디자인으로 치장된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폭력과 사실주의에 대한 독특한 매혹을 복합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이것도 <수태고지>가 테마인 작품이군.
마티아스 스토머(Matthias Stomer)는 게라르도 델레 노티(Gherardo delle Notti)의 지도를 받고 카라바조(Caravaggio)의 스타일을 열렬히 사랑했던 인물이었다.
히타이트는 연기처럼 스르르르
우피치 미술관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미션수행을 끝마친다.
다음 순례지는 어디일까..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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