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우피치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있는 히타이트 부녀,
이제 조각상 관람을 마치고 디귿자 형 건물 속에 벌집처럼 뚫려있는 중세 회화 전시실로 들어간다.
꼭 보아야 할 작품이 안주하는 처소도 확인했다.
그림감상을 하다 보면 발길과 심장이 제 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간혹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만,
일단 사전에 위치확인 해놓는 것이 효율적이다.
금으로 처바른 제단화가 히타이트 부녀를 맞이한다.
트리뷴 옆에 위치한 15세기 시에나 회화관(19번 전시실)에 영구 설치될(방문당시에는 확정되지 않은 모양)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일 베키에타(Il Vecchietta)로 알려진 로렌초 디 피에트로(Lorenzo di Pietro)였다. 베키에타는 시에나 르네상스 회화의 대표자 중 한 명으로,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Santa Maria della Scala) 병원의 프레스코화로도 유명했다.
음.. 피렌체 우피치에서 시에나 대표화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군.
하긴 시에나에는 독자적인 미술관이 세워져있지 않고 푸블리코 궁전이나 시에나 대성당에 소장한 것 뿐이니..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가 그린(혹은 그리다가 중단한) 유화로 히타이트는 2층 21번 전시실(Venetian painters or The Bellini and Giorgione Room)에서 마주하였다.
히타이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가가 그림을 들여다본다.
가장 먼저 그리스도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에 십자가에서 내려진 직후 그리스도의 몸을 지탱시키려 바닥에 앉아 있는 마돈나(좌측)와 사도 요한(우측)의 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중앙 테마 주위에는 다양한 인물이 배열되어 있다.
왼쪽 가장자리에 막달라 마리아와 아리마대의 요셉이 있고, 그 위에 있는 세 명의 인물은 더 희미하게 그려져 있어 미완성 상태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뒷줄은 소녀, 대머리에 수염을 기른 남자, 그리고 긴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측의 수염이 긴 노인이 니고데모로 간주되고 있다.
그림의 단색화 기법도 완성작이 아닌 예비 연구로 판단되는 근거가 된다. 즉 미완성인 이 그림은 벨리니의 작업장을 위한 참고 이미지 또는 완전한 그림을 위한 밑그림으로 의도되었을 것이다. 도제였던 알비세 조반니 모체니고(Alvise Giovanni Mocenigo)가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피에트라 두라 스너프박스(a pietra dura snuffbox)의 대가로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트 3세(Ferdinand III)에게 주었으며, 대공은 1798년 10월 22일에 템페라 그림을 우피치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아, 그럼 템페라 그림이 따로 있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이게 템페라 그림이란 말인가?
ㅎㅎㅎ 아트잡배다운 의문이었다.
템페라화라면 채색하였을 텐데 설마 이 작품이 템페라화일까..
21번 전시실(Venetian painters or The Bellini and Giorgione Room)에서 본 또 다른 작품 하나.
이 그림은 벨리니(Bellini)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15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는데 히타이트는 그러한 평가가 과연 개관적인 정당성을 확보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혼란스러운 구도 속에서 마돈나는 왼쪽 왕좌에 앉아 있다. 바위 앞에 반사되는 물 웅덩이 앞, 큰 테라스 위에는 일단의 성인 그룹이 서성거린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난간 뒤의 성 요한과 순교의 검을 든 성 바오로, 오른쪽의 반나체 성인 2인은 흉악한 외모와 검게 그을린 피부가 특징인 은둔자 오누프리우스(Onuphrius)와 순교자 성 세바스티안(Sebastian)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 무슨 정신 사나운 구성인가. '우화'라는 제목만 갖다 붙이면 그냥 마음대로 그려도 되는 건지..
일단, 이 그림에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는데
당신은 어디에서 그런 묘사를 찾았는가?
히타이트는 불경스럽게도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는 인물이 묘사된 장면은 위의 부분도이다.
뜨악스럽게도 아기 중 하나가 예수란다.
그림 중앙의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유일하게 옷을 걸친 아기가 아마도 예수일 거란다. 그 이외의 아기들은? 모두 천사란다. 아기 천사들은 생명과 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거나 주워서 그에게 바치고 있다.
아, 다만 히타이트에게는 머리 아픈 그림으로만 보였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시빌>은 베니스에서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학생으로, 이탈리아 북동부의 행정 구역인 에밀리아로마냐(Emilia Romagna)에서 활동했던 니콜로 론디넬리가 그린 것이다. 역시 2층 전시실 21번 방(Venetian painters or The Bellini and Giorgione Room)에 걸려있었다.
히타이트의 관점에서는 전시실 21번(Venetian painters or The Bellini and Giorgione Room)에 걸려있는 작품 중 제일 예쁜 유화였다. 그런데 딸은 이 그림을 놓쳤나? 왜 인증샷을 안 찍었을까.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시마(Giovanni Battista Cima)가 그린 것인데, 그는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의 스타일에 가깝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때때로 '가난한 사람의 벨리니'라고 불렸다.
이제 21번 방에서 나온 히타이트는 23번 전시실(Lombard painters or The Correggio Room)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이 작품 속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지는 고통으로 몹시 지쳐 보이며, 눈썹을 지나 흘러내리는 피는 그가 충분히 고문을 겪었다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다.
보통 다른 화가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린 반면, 마이네리는 예수의 삶의 마지막 순간, 지치고 배신당한 순간을 재현했다. '죄 없는 예수는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지셨다'라는 사실을 작품에서 완벽하게 묘사한 것이다. 현재 작가에 대한 기록정보는 거의 없으며 다만 페라레즈 회화 학교와 관련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중세 회화 작가를 계속해서 알현하는 히타이트,
'이 화가도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네.'
중얼거린다.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로 구성된 성가족과
아기 세례 요한 사이의 애정 어린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한나야, 아기예수 가족에 종종 아기 세례요한이 등장하는 이유를 아니?"
"아니요, 몰라요."
"그건 세례요한이 예수의 친척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감정적 유대감은 표정과 신체 언어를 통해 포착된다. 이를 통해 그들의 심리적 행동을 엿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이 강조하려는 포인트는 기독교에서 가족의 중요성이다. 종교적으로 어린 성 요한의 존재는 순수함과 결백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의 삶 후반에 드러나는 세례자 요한으로서의 역할을 예고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음, 이 작품의 모델은 뜻밖인데?"
"왜요?"
"보통 중세 회화라고 하면 성서인물이나 신화 속의 등장인물을 그린 것이지. 일반인을 그리는 경우는 거의, 아니 99.9% 없다고 보면 돼. 근데 이 그림은 공증인을 그린 초상화잖니"
"아-"
전시실 19번 방(Sienese painters or The Signorelli and Perugino Room)에서 히타이트는 프란체스코 프란시아가 그린 볼로냐 출신의 공증인 에반젤리스타 스카피의 초상화를 만난 것이다.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난 프란시아는 화가, 금세공인, 조각가였다.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에 따르면, 프란치아는 라파엘로의 걸작 산타 체칠리아(St. Cecilia)를 보고 열등감을 느낀 뒤 우울증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오마이갓뜨. 이건 또 무슨 얘기람..
전시실 21번 방(Venetian painters or The Bellini and Giorgione Room)에서 만난 작품이다.
Giovanni Bentivoglio(지오반니 벤티볼리오)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코스타는 위에 소개한 화가 프란시아(1450~1517)와 친구이기도 했다.
"오, 이 작품은 지면을 통해 많이 보아왔던 거네."
8번 방(Filippo and Filippino Lippi Room)에 전시 중인 우르비노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공작부인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양면 초상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회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이자 양면화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가 1473~1475년에 그린 두 점의 유화이다.
모델은 우르비노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1422-1482)와 그의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1446-1472)인데
두 인물은 모두 특이하게도 옆모습을 묘사하였다.
"그 이유를 아니?"
히타이트가 딸에게 묻는다.
"몰라요."
딸은 중세 회화에 관심이 없어 당연한 반응을 보인다.
"초상화를 그릴 당시 우르비노 공작(통치자)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가 마상시합 중 오른쪽 얼굴과 코를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래. 이를 가리기 위해 왼쪽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알려져 있어. 그래서 아내 바티스타 스포차르의 초상은 오른쪽 모습을 그려 서로 마주 보는 한쌍의 초상화를 완성시킨 거지."
"그림보다 스토리가 더 재미있네요."
"나도 사실 이 그림에 대한 호감은 없어. 암튼 화가는 8명의 딸 다음으로 아들을 낳은 후 6개월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주문에 응하여 양면 초상화를 그린 거야. 그러니 또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데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초상은 데드 마스크를 보고 그렸다는 거야. 오마이갓뜨!"
"아, 그랬군요. 그런데 아무리 데드마스크를 보고 그렸다고 해도 너무 창백해 보여요."
패널 뒷면에는 공작과 공작부인이 기독교적 미덕을 동반한 고대 마차에 승전의 기쁨에 찬 모습이 묘사하여 양면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림 속 라틴어 비문은 부부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역시 8번 방(Filippo and Filippino Lippi Room)에 전시 중인 필리포 리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여기서 필리포 리피의 특징은 놀라운 자연스러움이다.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는 왕좌에 앉아 있는데, 부드럽게 수놓은 쿠션과 조각된 팔걸이만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아들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듯 손을 모아 향하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부드럽고 관대하며, 우울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는 마치 아들을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운명을 예견하는 듯하다. 아기 예수의 시선은 마리아를 향하는 것으로 묘사하였으나 초점을 잘 못잡은 느낌이 든다. 전경의 천사는 미소를 지으며 바깥을 바라보는데, 마치 구경꾼을 끌어들이는 듯한 표정이다.
이 작품 속 성모 마리아의 모델이 프라토 출신의 젊은 수녀이며, 나중에 화가 리피의 아내가 된 루크레치아 부티(Lucrezia Buti)라는 견해가 있지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구성은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화가의 제자였던 젊은 보티첼리를 포함한 많은 후배가 모델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 그렇게까지?
아주 흔하게 보아왔던 주제를 표현한 이 작품은 네덜란드 화가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이 1460~1463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애도>라는 패널 유화이다. 성모 마리아, 니고데모(Nicodemus), 아리마대의 요셉(Joseph of Arimathea), 그리고 성 요한복음사가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다. 전경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St.Mary Magdalen)이다.
우악~ 또 나타났다!
히타이트로서는 적응이 잘 안 되는데 유럽인들은 머리 자른 그림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일까?
일반적으로 유럽 회화사에 등장하는 머리 자른 그림의 사례는 3가지가 있다.
유디트와 살로메, 그리고 다윗이다.
위에 소개한 작품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Salome with the Head of John the Baptist)>는 베르나르디노 루이니(Bernardino Luini)가 1527년경에 그린 유화이다. 살로메는 헤롯대왕의 딸이다.
수태고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룸 천장 아래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수태고지는 무슨 고지냐구?
히타이트는 머나먼 옛날, 수태고지가 이스라엘 어느 지역에 위치한 높은 땅덩어리인 줄 알았다.
실제로 수태고지가 가리키는 의미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수태고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자씨가 청년일 때 그린 작품으로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백합을 바치며 성령잉태를 알려드리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독서대 뒤의 품위 있는 자리에 앉아서 대천사의 고지를 듣고 응답하고 있다. 천사의 등급이 매우 높기 때문에 맹금류의 날개를 기반으로 묘사한 듯하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수태고지 그림을 유행시킨 요인이 되었다. 그와 아울러 이 그림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성에 대한 송사라고 볼 수도 있는 이야기다.
소개하자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는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몇 가지가 드러나는데 그 이면에 다빈치의 천재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1) 마리아의 오른손은 식탁에 닿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 때문에 왼손보다 훨씬 길게 그려졌다.
2) 르네상스시대의 가장 중요한 회화의 원리였던 선원근법을 어긴 탓으로 마리아 뒤에 있는 벽돌들의 각도가 하나의 소실점에 수렴되지 않는다.
3) 히타이트는 못 느꼈는데 미술 평론가들에 따르면 대천사 가브리엘이 너무 살찌고 자세도 어색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사람들은 이 작품에 드러나는 젊은 다 빈치의 '실수'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그건 다 빈치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한 작법이었다. 다 빈치가 그처럼 이상하게 그려댄 것은 그림이 걸린 위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래 <수태고지>는 큰 성당의 오른쪽, 앞쪽 벽에 높이 걸려 있었다. 따라서 아무도 그림을 정면에서 볼 수 없었고, 그림을 밑에서 오른쪽 벽을 향해 올려다보아야 했는데 다 빈치는 그 시선을 고려하여 위에 언급한 상식적이지 않은 작법을 적용하였다는 것이다.
오 마이갓!
진짜 천재라서 그런 거라고? 똘아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 거 아님? 히타이트는 속으로 그런 불경스러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아, 중세회화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너무 디스 하는 것 같다.
'당연하지.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보았으니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봐줘야지.'
히타이트는 혼자 중얼거리기를 계속한다.
'이건 인상파 시대에 고흐가 등장하면 고갱도 출연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상인 아뇰로 도니(Agnolo Doni)가 1507년 딸 마리아의 탄생을 위해 주문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 등장하는 되아뇰로 도니는 1504년에 마달레나 스트로치(Maddalena Strozzi)와 결혼한 인물이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16세기 초는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함께 도시에 머물면서 피렌체 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던 시기였다. 아,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가 16세기 인물이었구나. 막연히 르네상스 인물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후대의 인물이었다. 암튼 그리하여 아뇰로는 이 특별한 시기의 가장 뛰어난 표현으로 결혼과 첫 아이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었다. 라파엘로가 그린 남편과 아내의 초상화와 미켈란젤로가 그린 '톤도'는 그가 그린 패널 그림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작품이다.
작품은 묘한 구석이 있다. 즉, "도니 톤도"는 마치 조각품처럼 구상되었으며, 그룹의 피라미드 구성이 패널의 거의 전체를 차지한다. 그룹의 밀집도는 돔의 구조와 유사하지만, 꼬인 몸과 아기 예수가 성 요셉의 손에서 마리아의 손에게 부드럽게 전달되는 연결동작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성모 마리아의 구도는 미켈란젤로가 라오콘 상을 보고 참조한 것이라고 한다. 식별이 복잡한 젊은 누드는 이교도 인류를 나타내는 듯하며, 원죄를 나타내는 짧은 벽을 삽입함으로써 성가족과 분리시켰다. 그 너머에 유아기의 성 요한이 있는데, 이는 그림이 세례를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우피치는 명작으로 가득 채워진 미술관이다. 일르 테면 조각상이 열병식 하듯 늘어서 있는 회랑 1,2, 3번을 돌아보고 이번에는 각 Room에 전시 중인 회화작품을 돌아보며 집중하면 히타이트가 아닌 그 누구라도 육체적(신체적 또는 시각적)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미 딸은 휴식신공에 빠졌다.
우피치에서 히타이트는 수많은 작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유럽의 대표 미술관을 돌아볼 때는 미리 각오를 가지고 도전하지 않으면 낭패스러운 일을 당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일단 히타이트 부녀는 그러한 위험을 인정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베키오 궁전의 우뚝 솟은 시계탑이 시에나 캄포 광장의 탑과 매우 비슷한 듯하다.
거의 쌍둥이처럼 여겨질 정도?
ㅎ 조금 과장되었다..
이번에 히타이트는 마사초를 만난다.
마사초(1401~1428)는 히타이트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만난 바 있는 화가였다.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화가!
마사초는 토마소 디 세르 조반니 디 시모네(Tommaso di Ser Giovanni di Simone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콰트로첸토(Quattrocento, 1400년에서 1499년 사이의 이탈리아의 문화 및 예술 행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시대의 위대한 피렌체 예술가였다. 바사리에 따르면, 마사초는 자연을 모방하고, 생생한 인물과 움직임을 재현하며, 설득력 있는 3차원 감각을 보여줌으로써 당대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았다.
마사초라는 이름은 마소(Tommaso의 줄임말)의 유머러스한 버전으로, "서투른" 또는 "엉성한" 톰을 의미한다.
그 이름답게 이 작품에서 화가는 아기 예수에게 간지럼을 태우는 성모를 묘사했다.
아, 그렇군. 그럼 마초는?
히타이트는 느닷없는 궁금증을 터트린다.
아, 그건 넘어가고.. 이것 한 가지라도 기억해 두자. 마사초 하면?
회화에서 선형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으로, 소실점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지.
유감스럽게도 마사초는 26세의 나이에 사망했는데, 그의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크라나흐는 독일에서 태어나 빈에서 공부한 독일 화가이자 판화가였다. 그는 비텐베르크에서 활동했으며, 그곳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작센 선거 후의 궁정 화가로 보냈다. 그의 작품에는 마틴 루터의 초상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피치 미술관에는 작품 <마틴 루터와 그의 아내>, <마틴 루터와 필립 멜란히톤>이 있다.
1525년, 배교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Augustinian monk)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전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와 결혼했으며 이 조치의 정치적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을 선포하기 위해 공격적인 그림 선전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에 천주교에서 뛰쳐나가서 수녀였던 여인과 결혼을 하였구나. 중고딩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없는데 미술관에서 미처 모르고 살았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어보는 느낌이었다!
"오~ 이 그림을 보니 뒤러의 아버지가 미남이었네?"
한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히타이트 혼자 감상에 열중이다.
뒤러가 그의 아버지 초상을 묵주를 들고 있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는데 실제 그의 아버지는 장로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의 인상이 매우 선한 모습으로 보였다. 뒤러는 이 작품을 그의 어머니 Barbara Holper(바르바라 홀퍼) 초상화와 함께 세트를 이루는 쌍화작품으로 제작하였다.
뒤러의 작품은 20번 전시실(Durer and German Painting)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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