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이어)
작품감상
"야,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현대 미술도 감상해 줄 만한 거 같아."
다음 전시실에 들어간 히타이트가 한나에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한다.
현대미술관에 입장하자마자 추상화가 융단포격하듯 쏟아져 들어왔으니 얼굴밝아진 히타이트의 반응은 충분히 고개 끄덕여질 법한 일이었다. 장르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극사실화일 것 같긴 한데..
"사진이에요?"
딸이 묻는다.
그러고 나서 딸은 작품 <Betty> 옆으로 가더니 포즈를 취한다.
따라쟁이.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이 아닐까?
독일 드레스덴 출신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라고 한다. 사진과 회화를 넘나들고, 구상과 추상이나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회화를 재해석하고 영역을 확장시킨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뭐, 어쨌거나 저 사진은 멋지네. 앗차. 진짜 사진인가? 확인도 안했다.
"앗, 데이비드 호크니다!"
다음 전시실로 들어간 히타이트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곳에 현대미술의 거장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 중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 생존작가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영국 화가 맞죠?"
"그래, 맞아. 너도 알고 있었구나."
"에이, 데이비드 호크니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가?
히타이트는 딸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삼킨 생각이 있었다.
'그럼, 데이비드 호크니는 동성애자인 것도 알고 있니? 그리고 저 작품의 남자 모델이 그의 파트너였다는 사실은?'
애비된 사람이 차마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으니 생각만 하고 말았다.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이번 전시실의 분위기는 히타이트 부녀가 앞서서 거쳐온 전시실의 추상화 시리즈나 이해하기 어려운 설치미술과 확연히 달랐다. 색감과 밝기 측면에서 마음을 화안~하게 비춰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안도감은 만화적 요소를 차용한 팝아트까지 수용할 수 있을 듯한 형국이었다. 갑자기 그가 '포용력'의 은사를 받기라도 한 것일까? 히타이트는 비로소 현대 미술관에 오기를 잘했네 하는 표정인 듯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추상적이거나 실험적 인간이 아닌, 구상적이며 감상적인 인물인 것이 틀림없었다.
"앗! 깜짝이야."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을 살펴보며 옆으로 걸어 가던 딸이 소리쳤다.
"왜? 무슨 일인데?"
히타이트 역시 딸에게 다가가다가 흠칫거린다. 웬 아줌마가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옆 벽면에 기대어 서서 히타이트 부녀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냐, 한나야. 저건 작품이네.. 작품."
히타이트가 분위기를 파악하며 수습을 했다.
"아, 씨. 깜놀했어요."
"ㅋㅋ"
예술이란 무엇인가?
히타이트는, 듀안 핸슨의 작품이 이런 주제로 토론 대상을 삼기에 적합한 조각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양사람들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사소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저런 작품을 전시했을까? 하지만 그건 추측일 뿐. 왜냐하면, 저것도 엄연히 작가가 있고 미술관 측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아티스트로부터 구매한 것일 테니 말이다.
생뚱맞은 아줌마를 지나가니 그 옆에 설치미술로 보이는 민망한 작품이 등장한다. 딸과 함께하는 미술관 나들이는 이런 장면에 부닥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히타이트의 딸 한나는 20살을 훌쩍 넘어선 탓인지 이런 작품 앞에서 쑥스러움을 표하지 않는다. 그건 히타이트로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종의 설치미술인 작품인데 작가 톰 웨슬만은 욕조 안에서 거웃을 드러낸 채 타올로 몸을 닦고 있는 젊은 여성을 등장시켰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생뚱맞게도 여성의 거웃이 하이델베르크 고성의 벽돌담 언저리에 자라나 있던 아담한 나무들을 연상시켜서 자꾸 눈길을 보내었다. 이런.. 어처구니를 가능케 한 것은 역시 딸의 쿨한 처신 덕분이었다.
히타이트로서는 제대로 된 감상인지 모르지만, 현대인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는 개인의 밀실 풍경을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해 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참나, 딸이 능청맞은 건지, 쿨한 건지'
히타이트는 사진을 찍어주면서도 스스럼 없는 제스처를 취하는 딸이 자신으로하여금 두서없이 명멸하는 이중적인 생각에 노출시키는 것을 감내했다.
잠시 민망한 장면을 극복하고 나니 히타이트 앞에 팝아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팝아트 하면, 앤디 워홀인가?
하지만 히타이트에게는 앤디 워홀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더 편했다. 유년의 만화방 추억이 잔설처럼 기억저장고에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앤디 워홀이든,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든 모두가 정통 미술의 가지에서 경로 이탈한 곁가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히타이트로서는 그런 의구심이 떨구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런 만화적 요소를 차용한 그림을 보면 직관적으로 의미가 전달되어 오니 그의 마음은 편했다.
"근데 말이야, 이 그림은 마치 페이스 페인팅한 사람을 그린 거 같은데?"
히타이트의 말에 딸이 동조했다.
"어? 맞아요, 맞아."
월드컵 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페이스 페인팅이 어쩌면 이런 미술작품을 통해 일반 시민들 사이로 직수입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직관처럼 떠올랐다.
"이 작품은 색감이 좋은데?"
원래 녹색을 좋아하고 5월 초 신록이 움터 나는 풍경을 천국의 모습이라 우겨왔던 히타이트가 사적인 감상평을 남발한다. 어느덧 현대 미술에 적응하지 못해 당황하던 모습을 떨쳐 버리고 현대 미술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느낌이 바로 전달되네. 야성미가 넘쳐나!"
히타이트의 자의적 해석과 감상이 계속되었다. 뭐, 야성미 넘치는 여인들이란 코멘트가 틀린 말은 아니다.
"키르히너 작품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딸이 말한 것처럼 두 작품이 어딘가 닮아 보이긴 했다.
"어? 중세그림이 왜 현대 미술관에 걸려있지?"
히타이트가 의아하게 여겼던 이 작품, 테마는 종교에서 가져왔지만 제작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독일화가 막스 에른스트는 근육질의 성모 마리아가 세 사람의 증인(에른스트 자신과 그의 친구인 브레튼과 에류아드)이 창문밖에서 들여다보는 가운데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무릎 위에 아기예수를 눕히고 엉덩이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마리아... 오 마이 갓뜨. 이 장면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에게는 우아하고, 겸손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마리아는 성모가 아니라 단순히 엄마로서 아기를 체벌하는 모습이다. 신실한 가톨릭 신도였던 그의 아버지와 당시 쾰른 대주교는 이 작품의 전시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랬던 그림이었는데 지금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아이콘으로 대접받고 있다.
"피카소 컬렉션으로 유명하다고 하더니 정작 볼만한 작품은 없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딸을 보며 심드렁하게 히타이트가 말한다.
"왜요? 피카소 원본작품을 보는 것만도 어딘데.."
"나는 피카소가 비호감이거든."
뭐, 그냥 싫으면 싫은거지. 안 그런가?
그러자 딸이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었다.
"피카소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런 비호감 정서를 함부로 발설해서 '미술관 순례기'를 읽으려 들어왔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면 어떡하시려구요?"
히타이트는 아무 소리 안 하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아마도 피카소의 작품일 것이다.
히타이트는 여전히 피카소 작품은 건성으로 보듯 건들거리며 지나갔다.
딸은 피카소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히타이트 씨는 피카소가 왜 싫은 걸까?
'현대미술은 층도 넓고 깊이도 있는 것같고..
21세기엔 19세기 미술로부터 참 많이 떠나와 있는 형국이로구나.'
히타이트가 딸과 함께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루드비히 뮤지엄을 나서니
블랙 콘돌은 여전히 날개를 한껏 펼치고 하늘을 나르는 모습이다.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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