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미술관 순례

서유럽 여행 -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2) / 르누아르와 드가

hittite22 2025. 1. 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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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작품감상

 

 

작품 <책 읽는 소녀> 앞에 서봄

 

로마 여행 중인 젊은 괴테의 '위대한' 작품을 보면서 미학에 심취한 다음,

히타이트는 인상파 화가 그룹의 전시실로 이동하여 르누아르의 그림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도 그의 딸 한나가 방향을 이끌었다. 히타이트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속도가 한 스텝 빠른 한나가 먼저 르누아르의 그림을 발견했던 것이다. 딸은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 그림을 보자마자 작품 앞으로 달려가서는 사진 찍어주기를 요청한다. 그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쳐다보던 히타이트는 딸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르누아르 그림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作, Girl Reading, 1880, oil on canvas, 57 x 47.5 cm

 

히타이트는 그의 둘째 딸이 싸인을 보내오지 않았더라면 명작 중의 명작 <책 읽는 소녀>를 건성으로 쳐다보고 지나가는 무례를 범할 뻔했다.

 

"야.. 이 작품을 보니, 르누아르가 그림을 참 예쁘게 그리네.."

익히 명성을 듣고 있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원본 그림을 보니 남다른 감흥이 샘솟았다.

"이쁘게 찍어 주세요"

딸의 요청을 받들은 히타이트는 삼가 한치의 부족함이 없도록 실행하면서

속으로 르누아르 작품 알현하는 감상을 정리하였다.

 

이른바 '현장 직감'의 은사를 피부로 진하게 느낀 것이다.

'현장 직감'이라는 감상 장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트잡배 히타이트는 모름지기 그림이란 미술관 현장에 가서 실물을 눈앞에 두고 감상해야 작품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그것은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 갤러리와 뮤지엄 순례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노하우'였다.

 

히타이트는 처음에 제목만 보고 <책 읽는 소녀>의 그림을 주시하였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화병의 꽃이 보이고, 모자에 꽂은 꽃이 보였다. 이어서 벽체에도 꽃의 색깔이 비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뿐이랴, 심지어 소녀가 읽고 있는 책 속에도 꽃이 피어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타이트가 알아차린 팩트는 소녀의 발그레한 얼굴 자체도 꽃의 옆모습을 묘사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참나, 히타이트씨는 책 읽는 소녀를 본 게 아니라 <꽃 그림>을 보았단 말인가?

아니겠지.

책 읽는 소녀의 미학도 섭렵하고 그 속에 담긴 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한 것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

암튼, 딸 아이처럼 르누아르의 그림은 젊은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하였다.

 

Edgar Degas(에드가 드가)作, Orchestra Musicians, 1872, oil on canvas, 63.6 x 49 cm

 

슈테델은 의외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명작 감상을 쏠쏠하게 할 수 있는 미술관이었다. 

"오, 이 작품, 내가 애정하는 캔버스 중 하나야."

히타이트가 감탄사를 발산하며 소리쳤던 작품은 에드가 드가의 <오케스트라 뮤지션>이었다. 르누아르를 만난 다음, 히타이트는 에드가 드가 선생을 만났던 것이다.

"에드가 드가는 발레리나 전문화가인데.."

딸이 옆에서 중얼거린다. 

 

Vincent Van Gogh, Farmhouse in Nuenen,1885

 

히타이트가 서유럽 갤러리 순례여행을 떠날 무렵 애정하였던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였다. 슈테델에도 반 고흐가 누에넨 시대에 그린 작품 한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히타이트가 그의 딸과 작품 감상평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암튼, 빈센트는 살아생전 영혼이 내재된 그림을 그리려 매진했던 화가이며 실제로도 자신의 병과 무능(?)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펼쳤던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붓의 텃취방법과 색감을 살려내는 안목을 키우려고 애써 노력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내면의 성찰도 간단없이 계속했음은 그가 남긴 동생 테오와의 편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히타이트가 보는 관점에서, 반 고흐의 내면 성찰은 캔버스 위에서 서로 대비되는 색감이 어우러지도록 칠하는 방법론으로 이어졌다. 

 

Edgar Degas(에드가 드가)作, Orchestra Musicians [Wikipedia]

 

히타이트는 다시 에드가 드가의 그림 앞으로 다가선다. 

"그래, 네가 말했듯이 에드가 드가는 발레리나 전문화가라 할 수 있지. 저 오케스트라 뮤지션 그림도 발레리나들이 공연하는 장소에서 그린 것이고."

한나가 히타이트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간다.

"아, 그러네요. 맞아요. 같은 장소에서 모티프를 찾은 작품인 거 같아요." 

히타이트가 덧붙이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가 발레리나 그림을 선호한 것에는 단순한 의미 이상이 내포되어 있어. 내가 보기엔 인상파화가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술'자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아티스트들이었다. 에드가 드가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거죠?"

"그가 발레리나에 초점을 맞춘 건 당시 사회에서 발레리나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종이 아니라 거의 노동자 수준의 직업인이었어. 드가는 그런 점에 포커스를 맞춘 거고. 그런데 내가 이 작품에 특별한 감상을 하게 된 이유는 다른데 있었어."

"어떤 건데요?"

" 내가 저 작품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드가가 작품 속에 기막히게 잘 구현해 낸 대비의 미학에 있어. 잘 봐봐.. 이 작품은 '젊음(사춘기의 발레리나)'과 '나이먹음(중년의 뮤지션)'이 대비를 이루고 있지 않니? 그리고 그들은 각기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지어지고.. 그리고 '율동'과 '비율동'으로 구분되고, '밝음(무대 위 발레리나)'과 '어둠(오케스트라석의 뮤지션)'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거야.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근경(뮤지션)'과 '원경(무대)'로 구분할 수 있고..."

"음, 일리있는 관점이네요. 또 하나 있어요. '미소(발레리나)'와 '진지함(뮤지션)'이 대비돼요."  

"그래, 맞았어.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암튼, 자꾸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는 거야. 감상은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구"

 

히타이트는 적어도 이 작품에서 에드가 드가는 고흐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대비미학을 추구했다고 여겼다.

실제로 드가가 그런 생각을 품고 의도적으로 이 작품을 그린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히타이트로서는 그런 관점에서 에드가 드가의 저 작품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심지어 히타이트는 대비되는 요소를 결합하여 영원히 빛나는 명작을 창조해낸 화가와 그 작품을 꼽으라면 두말 안 하고 에드가 드가의 <오케스트라 뮤지션>을 지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uguste Renoir作, After the Luncheon(오찬을 마친 후), 1879, oil on canvas, 100.5 x 81.3 cm [출처 : Wikipedia]

 

사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남들이 그렇게 가고싶어하는 유명 미술관에 갔으면서도 어이없는 사고(?)를 칠 수 있다. 명작들의 숲을 거닐다 보면 산책을 한다기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지. 사람도 자세히 보아야 이쁘고, 오래 들여다보아야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게 된다고. 그런데 아름다운 그림들이 빼곡히 들어선 전시실에 들어가면, 마치 방목된 망아지처럼 정작 이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히타이트는 그런 이유로 슈테델 미술관에서 꼭 알현하고 와야할 르누아르의 작품 하나를 놓쳐버렸다. 바로 위에 소개한 작품 <After the Luncheon>이 그것이었다. 동아시아 끝자락에 사는 젊은 여성들 중에는 슈테델 미술관에 가서 정말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눈과 가슴과 마음에 담고 싶어 하는 그림들의 List를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그런 명작을 겁 없이 스쳐 지나가버리는 불상사를 노정시킨 것이다. 아아, 만약 당신이 그런 불손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였다면 그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자복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먼 후일, 다시 그 미술관을 찾아가서 순례자로서의 예를 다하여야 한다. 그것 말고는 죄 사함 받을 방법이 없다.

 

Otto Mueller(오토 뮬러, 1874~1930)作, Adam and Eve(아담과 이브), ca.1913~1922

 

표현주의 작가 오토 뮬러의 불량기 있어 보이는 작품은 히타이트가 먼저 알아보았다.

일반적인 고정관념 속에 안주하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박살 내버리는 것 같아서 충격적인 그림, 바로 그런 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런 작품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신선음식을 먹는 즐거움같은 게 움터 나는 것 같거든."

히타이트는 딸이 리액션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그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이 작품은 결코 명작의 반열에 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잡화라고 치부해버려도 될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독일 화가 밀러(Mueller)는 표현주의 화가 중에서도 서정적인 작풍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한다. 서정적이라고는 하지만 히타이트의 눈에 그의 그림은 형태나 색상 측면에서 '조화로운 단순화'가 더 눈에 들어왔다. 완전 그런 측면으로 집약된 것처럼 느껴졌다.

 

딸은 유명 뮤지엄에서도 쉰다.

 

서양 관람객들이 무리를 지어 작품 앞에서 감상 삼매경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배경처럼 잔시야로 들어오고 있는데 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나홀로 휴식에 열중이다. 오, 유명 뮤지엄에서 이리 당당해도 되는 거냐?

괜히 있어보이기까지 한다. 

 

쉬어가며 감상하는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다언할 수 있는 사실은

분명하게 말해서 나의 DNA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쉬고 있는 딸 뒷편으로 반성하는 남자 조각상이 보인다.

 

히타이트는 MZ세대에 속하는 딸을 잘 몰랐다.

공대를 졸업하여 평생 지방 항구 도시를 전전하며 철강회사에 근무하였다 보니 서울에 사는 딸과 일상을 함께 하며 생활하는 시간을 공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히타이트에게 처음 딸과 여행하는 서유럽의 유명 미술관 순례 중, 많은 것을 새로 보고 느끼고 깨닫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서양 여행지뿐 아니라 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관점에서 슈테델 미술관에 들어왔는데 소파에 앉아서 쉬는 여유를 발휘하는 딸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딸 한나가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는 동안, 히타이트는 눈에 들어오는 조각상을 하나 발견한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작품이었다. 그 조각상 앞으로 다가서니 반성하는 자세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Wilhelm Lehmbruck(빌헬름 렘브루크)作, Seated Youth, 1916/1917

 

이 작품, 빌헬름 렘브루크의 <앉아 있는 청년>은

1차 대전 직전 슈테델 미술관이 직접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조각품은 회화 전시관 한가운데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히타이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조각 작품은 확실히 다른 조각과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히타이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자석이 공간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어서 조그마한 쇳가루 같은 존재인 자신을 사정없이 끌어 다니는 형국 같았다. 대리석 조각상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자장이 뿜어 나오는 듯했다..

 

'인간의 내면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내지 않았는가?'

히타이트는 렘브루크의 조각상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로댕의 조각처럼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로댕에 못지않게 인간의 마음을 표현해 내는 멋진 창작물이었다.(이 작품의 작가는 로댕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함)

 

'저 녀석을 안아주며 쓰담하고 왔어야 했는데..'

히타이트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예기치 못한 사고를 방지하려 사주경계에 열중인 미술관 가드(?) 땜에 '쓰담'을 시도하지 못했다. 딸은 계속해서 소파에 앉아서 쉬는 중이다. 전시실 내 가드가 작품보호 하는데 위험요소라 여겨지지 않을 법한 딸을 주시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히타이트는 미술관 내에 그들이 발호하고 있는 게 유감이었다.

 

슈테델 미술관의 해설 :
날씬하면서도 어두운 모습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인다. 극적인 몸짓 대신에 내면의 묵상과 침묵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기다란 사지 사이의 공극은 '내부 공간'을 상징한다.

 

 

작품명, 작가 수배 중

 

"오, 한나야, 이 조각상을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니?"

"?"

어느 채색 조각상 앞에서 히타이트가 물어보는데 한나는 무슨 뜬금포냐라는 표정을 짓는다.

히타이트는 작품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한 인물을 떠올렸다.

"아, 너는 외국인 출연 TV 프로그램 잘 안 보는 모양이구나. 왜, 있잖니 방송인 사유리!"

 

진짜 딱 일본출신 방송인 사유리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히타이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즉흥적인 호기심의 발로로 찍은 사진이라 작품의 명세서까지 챙기지 못했다. 귀국해서 인터넷 서핑하면 작자와 작품명을 찾아낼 수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 수배 중으로 놔둘 수밖에...

 

한쪽 벽면을 독차지하고 있는 작품, 오베론(Oberon).

 

슈테델 미술관 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지하 1층 전시관의 한쪽 벽면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대작(大作)이었다. 작품 <오베론>이 걸려 있는 전시실을 찾아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 히타이트는 아주 멀리서부터 가슴을 강타해 오는 강렬한 임팩트에 순간적으로 어질 거림을 느꼈다. 마치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빛의 눈부심으로 쓰러지는 순간처럼..

 

"와, 이건 무슨 그림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작품을 만나네.."

"사람을 그린 거예요?"

한나도 처음 보는 작품인 모양이다.

히타이트는 대머리 남성그룹을 그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Georg Baselitz(게오르그 바젤리츠), Oberon, 1963~1964, oil on canvas, 250 x 200 cm

 

컨템프러리 작품이려니 여겼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오베론>은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에 등장하는 요정의 왕이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출몰하는 인물이라고도 한다.

'오, 그랬군. 어쩐지 보통남자보다 목이 엄청나게 길다 했었어'

1963년 작품인데 히타이트는 21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지레짐작하였던 것이다. 

 

슈테델 미술관의 해설에 의하면, 2010 년 슈테델 뮤지엄(Städel Museum)은 Dorette Hildebrand-Staab(도레트 힐데브란트-슈타브)의 기부 덕분에 현대 독일 미술의 네 가지 주요 작품을 인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작품 <오베론>이 슈테델 미술관에 걸리게 된 모양이다. 다시 슈테델 미술관의 해설을 읽으니, 당시 기증자는 Georg Baselitz 작품의 가치를 일찍부터 인식하고 수년 동안 아티스트를 격려하고 지원했다고 한다. 오, 서양 미술관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의 산물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히타이트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서구 유럽의 역사적 산물이 오늘날 세계 각국의 여행자를 서유럽 뮤지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 여겼다. 단순무식한 판단력이었는데 실제로는 그 후로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목도한 셈이었다. 히타이트도 한나도 미술관의 명성은 한순간의 파워풀한 결과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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