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 보기

The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Vincent Van Gogh

hittite22 2025. 2. 24. 07:14
728x90

 

 

 

 

 

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73.7 × 92.1 cm, Museum of Modern Art, NY

 


이건 나 혼자의 생각인데, 그림은 전시된 장소에 직접 가서 육안으로 감상하는 것이 최고로 좋은 방법이다. 그런 이유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파리에서 전시되었을 때 수십만의 유럽인들이 기꺼이 미술관을 찾았던 것이겠지. 오늘날 세계인의 가장 사랑을 받는 그림이 무엇이니, 혹은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린 그림이 무엇이니 하는 비교와 그 결과가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실제의 그림을 보며 행복해하거나 그때 받은 강렬한 인상을 자기 내면에 비추어 샘솟는 에너지를 공급받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그림 감상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계 여행을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미국... 세계인들은 고흐를 너무나 사랑하여 이곳저곳의 사람들이 그의 그림 한 점이라도 자기네 삶의 공간에 가져다 놓구서 보고 즐기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마 세계여행 꿈꾸는 것만 반복하다가 인생을 끝마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감출 수가 없다. 조그마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것이다.

 

The Starry Night, 1889 [detail-달]

 

내가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을 처음 보았을 때, 아 실물을 현장에서 직접 본 건 아니고, 하늘 오른쪽의 귀퉁이에 크게 그려진 천체를 태양이라고 짐작했었다. 분명 그림의 제목이 '별이 빛나는 밤'이었으니 그것은 <달>이 되어야 마땅한 일인데 너무 밝게 그려졌음에 그리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는 가장자리만 남아 있는(초승달 혹은 그믐달?) 달을 그리면서도 숨겨진 부분까지 밝은 색으로 드러내 보였다. 아마 나는 이러한 고흐의 의도에 경도되어 달을 태양으로 착각했었던 것 같다.

 

나머지 별들도 매우 밝게 빛나고 있고 각 별은 어떤 무리를 지으며 이동하는 궤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하늘이 고고하게 운행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가시화시켜 놓은 듯하다. 혹자는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압생트라고 하는 납이 일부 포함된 술을 즐긴 탓에 환시 현상을 일으켜 하늘의 움직임을 과도하게 표현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게 사실일까?

천문학자들이 저 그림 속 별자리가 실제 나타났던 시기가 있었고 그게 고흐가 살았던 시간 그가 잉여의 몸이 되다시피했던 생 레미 지역에서 볼 수 있었을 거라고 발표한 게 있다던데..

 

각설하고,

내 나이 17~18세인 사춘기 시절, 나는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는 고딩 친구의 송별파티를 하면서 어떤 건물의 계단에서 친구들과 병술을 나눠 마신적이 있었다. 당시 이미 술에 취해 있었던 나는 겁 없이 또 병에 든 술을 빨아들이자마자 놀라운 변환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가만히 있던 계단 녀석들이 빙그르르 회전하면서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닌가. 아마.. 모르긴 해도 질 나쁜 애들이 시도한다는 마약은 더한 경험을 가져다주겠지. 그런 지나간 청춘시절, 술꾼의 추억을 떠올리면 고흐의 명작 탄생에 압생트의 영향이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이 일면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그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술에 취한 화가는 모두 독창성이 넘쳐흐르는 명작을 탄생시켜야 하고, 마약을 하는 모든 예술인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을 차고 넘치도록 만들어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에서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그림을 그리려 하였는지 내면의 세계도 살펴볼 수 있다.

 

빈센트는 고갱과 다툰 뒤 그의 귓불을 자른 사건으로 말미암아 생레미의 정신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당량의 명작들이 이 생레미 요양원 시절에 그려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 제작된 대부분의 그림은 요양원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이거나 요양원 내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The Starry Night, 1889 [detail-샛별]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무렵 빈센트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창문을 통해 아무것도 없고 아주 커 보이는 샛별만이 있는 시골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편지 내용으로 유추해 볼 때 위의 그림 가운데 박혀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옆의 커다란 흰 별은 <샛별>일 것으로 판단된다. 빈센트는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밤의 카페테라스>를 그릴 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모습을 표현해 내려고 고심했던 흔적을 동생 테오에게 생생하게 기술한 바 있다.

 

검은 밤,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루지 못한 일들을 소망하는 것처럼, 빈센트 역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런 감정을 품지 않았을까? 아니, 그는 단지 그런 꿈을 꾸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밤하늘의 별을 새롭게 재창조했다. 평범한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별에 대한 환상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였다. 어떤 측면에서 나는 그가 그린 별들이 재창조된 것이라기보다는 가장 실물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별이란, 하늘의 모든 별이란 지구별 인간들이 그려낸 오각형의 왜곡된 형상이 아닌, 둥그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별들은 또 다른 태양이며, 모든 태양은 여지없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천문학의 기초 상식이다. 그가 그린 밤하늘은 어쩌면 그의 내면의 모습이며 빛나는 별은 그가 꿈꾸는 희망의 표상이다. 빈센트가 밤하늘을 요동치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은 밤하늘을 끈기 있고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잡아낸 천체의 본 모습이기도 하며, 그의 염원하는 열망이 반영된 천체이기도 하다. 시골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는 도회지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별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으며 때론 강물처럼 밤하늘을 흐르는 별 무리까지 관찰할 수 있다. 가까운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의 무리는 밤이 끝나가는 새벽 무렵부터 저 너머 숨겨진 빛의 잔영으로 은은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형상이겠지.

 

고흐의 그림은 철저하게 사실을 바탕으로 재창조해낸 것으로, 피카소나 달리의 왜곡이 없어서 좋다.

그러므로 나는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실제적 사실에 접근하려고 애쓴다. 나와 너를 포함하여 우리는 모두 밤하늘의 별, 그중에서 더욱 빛나는 별과 더욱 밝은 달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 그 천체로부터 전송되어오는 빛의 궤적이 폭발할 듯 일렁거리는 현상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 사실의 세계와 재해석된 세계. 그러므로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재해석된 세계를 감상하려면 고흐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이해와 공감이 뒷받침되기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숱한 사람들-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기타 인종 구분 없이- 마음속에 아름답게 스며들었다고 믿는다.

 

이 그림의 아래에 위치한 마을 풍경은 생레미 요양원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교회 첨탑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산 아래 마을은 그의 고향 네덜란드를 닮아 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왔던 그였지만 아를에서 미술가 공동체를 통하여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 했던 희망은 고갱과의 다툼으로 참혹한 결별만 초래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런 일련의 시련 속에서 그는 심리적으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런 작용 기제가 무의식으로 숨어들어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때 산 아랫마을을 고향 네덜란드의 마을로 대체시키게 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론해 본다.

 

별과 마을은 영원과 현실을 대비시키는 상징적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하다.

지상의 작은 마을은 인간이 처한 <현실>의 보잘것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밝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은 인간이 당도하기 어려운 <영원>을 표상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문학작품에 버금가는 그의 편지 속에도 별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아래의 인용은 1888년 6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나와 있는 문구들이다.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왜 하늘의 빛나는 점들은 프랑스 지도의 검은 점처럼 닿을 수없을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닿기 위해 죽는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 위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중략)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가는 것이지."

 

 

보통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사이프러스는 무덤이나 애도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죽음 친화적인 나무로 무덤가에 많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아버지가 묻힌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 가보면 비록 사이프러스 나무는 아니지만 비슷한 풍광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 이건 완전, 고흐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야..'

나는 아버지 묘소를 둘러보고 나서 건너편 산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주시하며 그렇게 속삭이곤 했다.

 

사이프러스는 남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그다지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 묘한 상징성이 돋보이는 나무다. 나는 빈센트의 그림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빈센트가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에 지상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있는 듯 교회의 첨탑보다도 매우 높게 솟구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집어넣은 것을 골똘하게 들여다보면서 별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을 상상으로 떠올려 보았다.

 

'아마 그랬을 거야. 빈센트의 내면에 숨 쉬고 있는 무의식이 사이프러스 나무에 감정이입하였던 것이 틀림없어. 사이프러스 나무는 거의 하늘 꼭대기까지 다다랐어.'

나는 그냥 나도 모르게 그림을 통하여 마음이 진정됨을 느꼈다. 즉, 나는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서

1) 소용돌이치듯 비범하게 운행하는 화려한 밤하늘의 별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가

2)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산 아랫마을의 고요함에 마음이 쏠렸다가

3) 마지막에 이르러 검고 흉측한 외양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우뚝 솟아 오른 이유에 이르기까지 빈센트가 그림을 통하여 전달하려던 메시지를 130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수신할 수 있었다.

 

빈센트 형, 내가 본 것이 맞는 거쥬?

그럼.. 나에게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가서 형의 그림 감상할 기회를 선물해 줘요..

 

형.. 루브르의 <모나리자>, 바티칸 박물관의 <최후의 심판>, 프라도의 <시녀들>은 봤는데.. 모마의 <별이 빛나는 밤>은 쉽게 손에 잡히질 않네.. 나의 아쉬움이 아무리 크다 한들, 형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사망할 당시 부치지 못한 편지 속에 담았던 고백만 하것시유?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