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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드워드 호퍼를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어느 인터넷 카페를 눈팅하던 때였다. 싱글 중년 남녀가 드나들며 수다를 떨거나 작업을 걸고 받는, 그렇고 그런 그곳의 한 카테고리(방)가 유난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 메모>라고 하는, 짤막한 단문을 실시간으로 올리며 사귐을 갖는 그 방에서, 어떤 남자가 매우 인상 깊은 말빨을 휘날리고 있었고, 그에 동조하는 여성들과 일군의 동참 남성들이 제각기 속내를 감춘 채 서로를 탐하는 모습이 그냥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나의 관찰)
주인공 격인 그 남자는 중견기업체를 운영하는 장인을 두었던, 엑스(ex) 아내를 가졌었던 사람으로 해외 생활을 통해 겪은 실감 나는 경험담을 풀어내며 자랑질을 노골적으로 해대는, 나랑 스타일이 아주 다른 인물이었다. 나의 시각으로 볼 때, 그는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던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일종의 '달인'처럼 보여졌다. 그런 탓인지 몇몇 여성들이 그 주변에서 바글거리며 매일 메모를 올리며 재미있게 소통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눈팅만 하던 족속이었는데 어느 날 마초 기질의 그 남자가 한 미술가를 언급하는 게 아닌가? 이건 뭐지? 마초가? 하는 물고기 물음표가 머리에 동동 떠다니는 걸 느끼며 나는 거의 무조건 반사 반응을 보이듯 그가 언급한 미술가의 그림을 검색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체이탈의 신공을 발휘하여 그때 내 모습을 살펴보니 그런 모습이 보이는 거다. 근데 그때 그가 언급했던 미술가가 바로 20세기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였고, 그가 언급했던 그림이 오늘 소개하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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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드워드 호퍼를 알고 난 이후 세 가지 시사점을 가지게 되었다.
왜 한국에는 국민적 사랑을 받는 화가가 없을까? 이중섭 화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요절한 그는 오로지 황소 그림 하나만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하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집무실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걸어두었던 것처럼 한국인이 이중섭을 대중적으로 열렬하게 사랑하였다고 할 정도로 저변을 넓히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럼, 천경자 화가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뚜렷하고 어쩐지 한국인을 대표하기엔 2% 부족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가꼬..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암튼, 나는 한국의 화가 중에서 진정으로 마음에 우러나와 아무런 사심 없이 그냥 좋아하는 작가가 없어 유감이었다.
미국의 현대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미술 강대국 프랑스인들이 거의 유일하게 인정하고 껌뻑하는 신대륙 화가인 것처럼 보인다. 그가 프랑스인들로부터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그림실력, 스킬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대우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만이 가지는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그림 세계를 창작해 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그는 현대 미국인의 <소외감>을 폐부 찌르듯 선명하게 그려내었던 작가이다. 물론 그와 유사한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통하여 현대인의 소외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나는 그런 점이 부러웠다.
에드워드 호퍼가 네덜란드 이민자였다는 사실은 네덜란드인이 미술계에 끼친 위대한 업적을 상기하게 만든다. 유럽의 조그마한 나라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어찌하여 그리 커다란 문화강국이 되었던 것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들-빈센트 반 고흐, 요하네스 페르메르이, 에드워드 호퍼-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사물의 겉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감추어진 마음 혹은 사물에 투영된 인간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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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에서 우리가 강렬한 '자기 세계'를 느끼는 것은 거기에 묘사되어 있는 것이 단순한 개인만의 고독이 아닌 '시대적인 고독'이기 때문일 겁니다. '외로운 도시의 고독'이라는 주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영어 제목인 '나이트호크'는 올빼미족, 즉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이토 다카시,『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나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사이토 다카시가 에드워드 호퍼를 언급하면서 왜 <시대적인 고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 궁금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이 제작된 시기에 주목하고 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1942년 1월 21일에 완성되었는데 그 전해인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에 의해 진주만이 공습당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1942년 느닷없는 미일 전쟁이 일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 참전하게 된 미국인들에게 일본은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의 국민들이 북한의 호전적 태도에 경끼를 일으키는 것처럼...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전쟁 앞에 인간은 왜소해진다.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미국인들.. 그림은 그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일상의 고독과 소외감을 뛰어넘는, 시대적 우울과 가라앉은 감정을 묘사해 내었다는 평가(미술가 임이섭, 최영달)가 일견 어느 면에서는 공감할 수도 있을 듯싶었다.
다른 한편으로, 고흐의 편지가 고흐 그림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처럼, 호퍼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의 아내 '조'가 남긴 메모(기록)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 그림이 진주만 공습 발발한 불과 한 달 보름 후에 제작되었다 사실은 그녀가 남긴 기록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다. 즉, 그의 아내는 씨줄과 날줄의 하나인 듯 호퍼의 명작과 불가분 하게 얽혀있다. 그런 사실,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그림에 더 친근스럽게 다가가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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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1882~1967)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미국 뉴욕의 미술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세 차례 유럽 여행(프랑스, 네덜란드)으로 최신 미술 동향을 배웠지만,
당시 추상적인 입체파 그림에 매혹되기보다는 사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현대 도시인과 그들 삶의 공간 속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아
자신의 독특한 화법을 발전시켜 나갔는데
여기에는 쓸쓸하고 공허한 인간 내면의 풍경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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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일반 지식
(나의 소견으로, 감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1) 그림이 그려진 장소는 맨해튼 근처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Avenue)에 있는 어느 간이식당(Diner)이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동성 결혼, 마리화나 자유화 등 미국 리버럴 운동의 발상지이자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가난한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여기 등장하는 업소 '다이너'는 맥도널드나 KFC가 유행하기 전 인기를 끌던 원조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라고 보믄 된다. 뉴욕에는 그리스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24시간 영업하는 다이너가 현재도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뉴욕은 아직 안 가봤음. 가게 되면 '다이너' 사진 한 장 찍어와야 겠다..)
2) 그림의 주인공은 중절모를 쓴 채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중년 남자이다. 호퍼에 의해서 소외의 화신으로 등극한 신사다. 정면 얼굴을 드러낸 남녀 중 여자는 호퍼의 아내를 모델로 하였다는 소문이 있다.
3) 인물 묘사에 대한 두 가지 견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자, 정면의 커플, 서비스맨 등 4명의 등장인물은 모두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으며 서로 소통하는 모습도 아니다.(유민호)
-서비스맨은 정면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남자를 향하여 무언가 전하는 말을 듣는 표정이고, 남자도 무언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다.(최영달 : 고객과 업자 간에만 간단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는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옮겨 놓고 보니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가 아니고 "불통"에 대한 동의하는 견해로군.
4) 길 건너 옆 가게는 벌써 문을 닫았고 길에는 다니는 사람도 자동차도 없다. 적막한 밤이다. 창 안으로 보이는 실내엔 둥근 의자가 6개 그려져 있는데 모두 비어 있다. 그래서 더 적막하다.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그림을 분석할 때 종종 드는 의문이 바로 이런 거다.)
5) 다이너의 입구는 그림 속에 나타나 있지 않고, 통유리가 다이너와 외부를 구분 짓듯 나누어져 있다. 어둠 속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형광등 불빛은 시리도록 눈이 부신데, 그래서 이 공간은 더욱 이질적으로 비친다.
그럼, 이제
각자 감상 포지션을 잡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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