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우울'이라고 번역되는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 <Melancholy>에서 전면에 앉아 있는 남자는 뭉크의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인 오스카르 칼센(Oscar Kielsen)이다. 아니, 올센을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이다.
당시 오스카르 칼센은 뭉크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칼센은 실연을 당한 상태였다. 그럼 실연당한 친구를 해변에 앉혀놓고 그림을? 설마..
뭉크는 친구인 칼센의 감정과 고통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본질적으로 뭉크는 멜랑콜리한 감정에 친화적(?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인 인물이었으므로 칼센이 실연당했을 때 누구보다 그의 감정을 잘 파악했을 것이다. 파악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감정이입했을 수도 있다. 위의 그림을 보면 실연당해 우울한 감정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놓았다.
삼각관계에 빠진 남자의 내면이 캔버스 중간부터 하단까지 독차지 하고 있다. 저 멀리 떨어져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는 가까운 해변에 앉아 시름에 잠긴 남자와 아는 사이로 보인다. 어쩌면 이편의 남자는 데이트 중인 커플을 쫓아온, 스토커짓거리를 감행한 상태일는지도 모른다.
화면 전체에 보라색이 강조되어 있는데 커플이 서 있는 선착장 언저리에서 이쪽 남자에게 이르는 검은 보라색의 흐름이 이들의 관계(인연)를 일러주는 듯하다. 남자가 입고 있는 옷조차 검은 보라색이다.(남자의 두뇌 속엔 온통 보라색으로 채워져 있는 느낌이다.) 검은 보라의 근원은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로부터 발원된 것이 틀림없다.
남자는 시름이 깊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의 쓸쓸한 모습과 상심한 표정에서 그런 징조가 보이지 않는가?
왜 하늘과 바다와 땅이 보라색으로 칠해졌을까? 한참 들여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보라색을 칠해낸 그림이라 여겨진다. 분명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알슐러'와 '해트윅'이 이르기를 '보라색은 침체된(우울한) 기분이나 체험을 가진 불행한 아이'라 했고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로르샤흐'는 '보라색은 정서 불안을 가져오는 몸의 기능 저하를 상징한다'라고 갈파했으며, 일본의 색채 심리학자 '스에나가 티미오'는 '보라는 치유의 색이며, 숭고함과 신비스러움의 색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출처:나무위키>
삼각관계의 본질.
삼각을 치는 것은 나쁘다. 사람들은 그걸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제일 경험하기 싫은 것 중 하나는 삼각관계에 빠지는 것이다. 남자 2 대 여자 1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되는 삼각관계의 유형일 것이다. 그리고 제2 유형으로 남자 1 대 여자 2도 존재한다. 그림은 남자 2 대 여자 1의 삼각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1) 한 여자가 두 남자에게 마음을 주며 저울질할 때 만들어진다. (제1유형, 1녀 and 2남)
2) 여자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남자가 끼어들 때 만들어진다. (제2유형, 2녀 and 1남)
경우에 따라서 여자가 삼각관계를 조장하기도 하고
남자가 삼각을 둘러치는 때도 있다.
(어떤 게 더 많을까?)
어느 경우든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남자를 두고 마음이 왔다리갔다리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애인이 있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도 나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장난이 아니라 나쁜 것이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머리로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삼각관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 내가 자꾸 반복해서 주절거린다. 그런데 이것이 삼각관계의 본질이다.
어쩌면 사랑이란 이성적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어떤 인식의 수준을 뛰어넘는, 마치 바닷가에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처럼 감정의 움직임은 이성적인 인식의 방파제를 삼켜버릴 때가 많다. 사랑이란 그렇게 치명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랑에 빠지면 사람은 대체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때론 5년이 걸리기도 하고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처럼 평생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 중 일부는 진실을 알지 못해서이거나 진실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늪과 같은 사랑에 인생을 저당 잡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악하거나 철저하지 못하여 시간의 묘약에 치료받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며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는 인생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런 평범한 남녀는 감정의 날카로운 클리바스에 빠지지 않고 일평생을 순항할 수 있다. 즉, 퇴짜 맞는 것도 쉽게 극복해 낸다면 일종의 순항하는 삶이다.
혹시 실연당했다면,
꼭 이곳으로 들어와서 뭉크의 작품 <멜랑꼴리>를 보도록 하자. 하염없이 보고 또 보는 거다.
그러면 마음이 케어될 수 있다.
그림은 잘 그리는데 너무 평범하여 진부한 느낌을 주는 화가는 내가 외면하는 그림쟁이들이다.
그들은 그림을 기능으로 삼는,
그리하여 수준을 평할 수 없는, 그냥 그림 그리는 기술자일 뿐이다.
대부분의 한국 화가들 그림이 그렇다. 진짜 멋진 그림은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면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해 내는 그림이다. 그런 그림을 찾아서 오래 들여다보면 힐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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