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나라-유럽

Gustave Caillebotte(구스타프 카유보트) / 1 - 인상파의 숨은 실력자

hittite22 2025. 4. 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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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e Caillebotte(1848~1894)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등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인이었으며 그들의 후원자였던 인물,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화가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이지만 살아생전에는 화가라기보다 후원자요 수집가로 일(?)했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호구지책으로 그림에 매달려야 했던 반면 카유보트는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행적의 일단을 살펴볼까요?

카유보트는 재능 있는 작가였던 클로드 모네에게 비싼 작업실을 저렴하게 임대해 줬고,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구매해 작가들의 생활고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카유보트는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 총 64점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귀스타브 카유보트 역시 화가라고 소개해드렸는데요, 어느날 그의 작품을 본 한 비평가가

“카유보트는 이름만 인상파일 뿐”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했지만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상주의와 달랐던 겁니다. 인상주의 작품은 찰나의 순간이나 인상을 캔버스 화폭에 표현하려고 용썼던 것에 비하여 그의 작품은 관찰에 기반하여 미세한 옷의 주름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에 가까운 표현법을 사용하였으므로 비평가가 이름만 인상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에게서 인상파와의 연결끈을 찾는다면 그가 소재 연구를 하면서 사진 기술을 사용할 때 강렬한 시간을 포착해 내는 것과 같이 작품을 그렸다는 측면을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감상

 

Woman at a Dressing Table, 1873, oil on canvas, 65 x 81cm, Private Collection
The Yerres, Rain, 1875, oil on canvas, 81 × 59 cm

 

카유보트의 대표작 중 한 작품입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강둑과 빗물이 그려내는 크고 작은 동심원의 파장이 시야를 가득 채운 수면을 지나가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 물가를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우산을 들어 내다본 것 같은 이 그림 속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1848~1894)가 특히 좋아했던 비, 강물, 배, 그리고 예르가 있습니다.

 

예르는 파리 남동쪽 외곽의 소도시입니다.

카유보트는 어린 시절부터 예르의 대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가 파리에서 그린 도시 정경이 회색 건물 일색이었다면, 예르에서 그린 그림들은 온통 신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우거진 정원에서 산책하거나 눈부시게 빛나는 물결을 가르며 카누를 타고 수영을 즐기는 여가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르누아르나 모네 같은 동료 인상 주의자들의 작품 주제와 비슷하기는 하나, 카유보트의 차이점은 그 모든 풍경이 다 자기 소유였다는 것입니다. 정원을 관통해 강이 흘렀다는 사실에서 카유보트가(家)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통적 회화 구도에서 벗어나 마치 사진기로 스냅샷을 찍듯 비대칭적 공간을 조성했던 파격적이고 신선한 그의 작품이 뒤늦게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던 건 어쩌면 부잣집 도련님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이 그림은 1875년, 카유보트의 부친이 세상을 뜬 바로 다음 해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강 저편의 빈 배가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The Floor Scrapers/마루를 대패질하는 인부들, 1875, 102 x 146.5 cm, Musée d’Orsay, Paris

 

이 작품도 카유보트하면 떠오르는 것이죠.

빛이 들어오는 실내 마루바닥에서 근육질의 상체를 벗어제낀 남성인부 3명이 대패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첫 인상으로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럼요, 카유보트가 꽤 실력있는 화가였다니까요. 그런데 작품을 찬찬히 더 들여다 보면 추가적으로 드러나는 게 있더라구요. 이를 테면 사실적인 묘사에다 인상파적 표현기법이 묘하게 결합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Young Man at His Window, 1875, 117 × 82 cm, Private Collection

 

<창가의 청년>은 비공식적인 옷을 입고 발코니에 서 있는 예술가의 형제 René Caillebotte를 묘사합니다. 그는 파리의 Rue de Miromesnil에 있는 집 창가에 서서 Boulevard de Malesherbes(뒤에 있는 크고 비스듬한 교차로)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Caillebotte의 비교적 초기의 작품으로, 도시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남자가 바라다보는 풍경 역시 자연이 아니라 도시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카유보트는 이 작품에서 바라보는 남자를 중심보다  약간 높은 관점에서 묘사함으로써 지배적인 전경 인물, 강조된 원근 대각선 그리고 그 너머의 상세한 거리 풍경 사이에 긴장된 관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Le pont de l'Europe(The Bridge of Europe), 1876, 125 × 181 cm, 제네바의 Petit Palais 컬렉션

 

<유럽의 다리(Le Pont de l'Europe)>는 Gustave Caillebotte가 1877년 Durand-Ruel(뒤랑-뤼엘)에서 열린 세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서 발표한 도시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Caillebotte는 이듬해인 1878년 이 그림을 Eugène Lami(유진 라미)에게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956년 손녀 Blanche Lami(블랑쉬 라미)가 경매에 내놨을 때, 수집가 Oscar Ghez(오스카 게즈)가 제네바 컬렉션을 위해 이 그림을 샀습니다. 이 그림은 1876년 버전이며 개가 없는 이 그림의 또 다른 더 작은 버전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렌의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제네바 캔버스의 스케치입니다.

 

Le Pont de l'Europe, esquisse(The Bridge of Europe, sketch), 1876, oil on canvas, 64.7 x 81.3 cm
Young Man Playing the Piano, 1876, 81.3 x 116.8 cm, Artizon Museum, Tokyo
Luncheon, 1876, oil on canvas, 52 x 75 cm [Privaye Collection]

 

<Luncheon>은 여러 사람이 친밀한 점심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관계는 아마도 노부부와 그의 아들이 아닐까 싶군요. 분위기로 보아서는 카유보트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삼은 그림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구성은 빛을 포착하고 반사함으로써 광채를 발하는 크리스털 잔, 은식기, 장식용 식기로 세팅된 테이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유리의 반투명성과 금속 표면의 반사 특성을 렌더링하는 데 있어 세부 사항에 대한 주의를 매우 많이 기울인 작품입니다.

 

절제와 미묘함으로 표현되어 있는 인물은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 모자관계의 인물과 그들의 가장으로 보이는 서 있는 마자가 전부입니다. 당시 한 가정의 구성은 이렇게 단촐하였을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장성한 아들이 아직 솔로라서 그리된 것이 아닐까 싶군요. 암튼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세련되고 부르주아적인 삶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Portraits in the Countryside, 1876, 95 x 111 cm, Baron Gérard Museum
The House Painters, 1877, oil on canvas, 89.3 x 113 cm, Private Collection
The Nap, 1877, Pastel, 36 x 53 cm, Wadsworth Atheneum, Hartford, CT, US
Portrait of a Young Woman in an Interior, 1877
Perissoires on the Yerres (detail), 1877, oil on canvas, 88.9 x 116.2 cm, Washington, National Gallery of Art
Boaters on the Yerres, 1877, oil on canvas, 103.5 × 155.9 cm, Milwaukee Art Museum
Boaters Rowing on the Yerres, 1879, Oil On Canvas, 81 x 116 cm
Paris a Rainy Day/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1877, 212 x 276 cm, Art Institute of Chicago

 

이 그림은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표작으로, 근대화되는 비 오는 날의 파리 거리의 정취를 그린 작품입니다. 대형 사이즈의 작품이라 미술관 전시실에서 감상하기에 딱 좋은 크기입니다. 우산을 받쳐 든 파리지앵들이 바쁜 듯, 한가로운 듯 오가는 어느 비 오는 날 오후의 파리 거리의 모습이 마치 사진 한 장에 포착된 순간처럼 독특한 구도로 그려져 있습니다.

 

빗물에 말갛게 씻긴 보도 위로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잔잔하게 울리고, 그 사이에 섞여 있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합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남녀 한 쌍이 우산을 나눠 쓴 채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 오른쪽 구석으로부터 검은 옷을 입은 신사가 무척 바쁜 걸음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비 내리는 거리를 바삐 걷는 이의 눈에 비친 순간적인 장면을 그대로 담은 듯한 이 작품에는 비 오는 날의 촉촉하고도 상쾌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하고 조르주 오스망 남작이 감독했던 대대적 재개발을 통해 획기적으로 변모했습니다. 오스망 남작은 중세부터 이어져 온 비좁은 골목길과 낡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널찍한 대로를 따라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밤에는 가로등이 휘황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재정비 사업 과정에서 보여준 오스망의 ‘미친 존재감’은 ‘오스망화(Haussmannization)’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였습니다. 과거의 파리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었다면, ‘오스망화’한 파리는 그 자체로 볼거리이자 여유 있는 이들을 위한 레저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카유보트의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바로 아름다운 신도시, 파리인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서울 도심도 ‘오스망화’했습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디자인 블록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광화문 광장을 걸어보면서 파리의 비 오는 날을 상상으로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Boater Pulling on His Perissoire, 1878, oil on canvas, 73 x 91 cm,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USA
Vue de toits (Effet de neige), 1878, 64 x 82 cm, Musée d’Orsay, Paris
Les Périssoires, 1878, oil on canvas, 155 x 108 cm, Museum of Fine Arts of Rennes

 

작품 <카누>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부르주아 계층에서 만연했던 여가 활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두 대의 카누가 고요한 물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주변에는 무성한 나무와 잎사귀가 수면에 반사되는 풍경입니다. 두 남자가 카누를 조종하고 손에 노를 든 것처럼 보입니다. 관객과 가장 가까운 남자는 등을 돌리고 있으며, 위쪽 캐노피를 통해 비치는 얼룩덜룩한 햇빛을 가리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자세가 느긋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격렬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여유로운 여행을 나선 듯합니다. 더 멀리 떨어진 두 번째 남자도 모자를 쓰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노를 젓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인상입니다. 카예보트가 물의 질감을 묘사하는 것과 더불어 빛과 그림자를 사용한 것은 빛의 자연스러운 상호 작용과 그 특성에 매혹된 인상파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Pêcheur au bord de l'Yerres(예르 강변의 어부), 1878
Bather Preparing to Dive, c.1878, oil on canvas, 117 x 89 cm

 

이 작품은 물가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친밀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으며, 중앙에 있는 인물이 다이빙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목욕하는 사람은 나무 플랫폼 가장자리에 서서 곧 물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기세를 모으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등을 시청자 쪽으로 돌리고 있어 작품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느껴집니다.

 

Swimmer (bather) preparing to dive, 1878, 157 x 117 cm, Private Collection
The Orange Tree, 1878, oil on canvas, 155 x 117 cm, 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카예보트는 당시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원예에 관심이 있었고 열렬한 정원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카예보트는 잘 손질되고 정형화된 배열을 선호했습니다. 그는 과일나무를 조심스럽게 가지치기하여 콤팩트한 성장을 촉진했습니다. 

카예보트는 1878년 예르에 있는 가족의 시골 저택에서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시간적으로 한낮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Caillebotte의 동생 Martial은 오렌지 나무 그늘에 앉아 등을 돌린채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는 르누아르의 Chatou의 노 젓는 사람에서 Gustave와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촌 Zoé Caillebotte는 당시 정원 화분으로 유행했던 베르사유 욕조 중 하나에 서 있는데, 그 안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작품 속 Martial과 Zoé의 포즈는 각자 조용히 오후를 보내며 개인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전경에 있는 페인트칠된 스프링 강철 정원 의자는 Yerres에서 그린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며, 당시 영지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배경에서 밝은 햇빛이 곡선 자갈길로 둘러싸인 원형 화단을 비추고 있으며, 그 가장자리에는 개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Portrait of Paul Hugot, 1878, oil on canvas, 204 x 92 cm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1880년 제5회 인상파 전시회에 절친 폴 위고의 초상화를 전시했습니다. 이 키 큰 남자 폴 위고는 구스타브 카예보트의 친구로, 작가의 가족 외에는 누구보다 그의 그림을 많이 소유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하고는 관련없는 인물인 모양입니다. 풀바디 의상을 입고, 챙 넓은 모자, 금색 포켓 워치, 지팡이로 장식한 이 남자는 지금 도시를 거닐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합니다.

 

In a Cafe, 1880, oil on canvas, 155 x 115 cm

 

카예보트는 제5회 인상파 전시회에서 현대 생활의 전형인 이 카페 풍경화를 선보였습니다.

작품은 실물 크기의 남성이 캔버스를 지배합니다. 헐렁한 옷을 입고 약간 흐트러진 모습, 얼굴에는 환멸에 빠진 단골 손님의 희미한 표정을 지은 모습의 남성은 주변 환경과 단절된 듯 보이며, 유행에 뒤떨어진 보울러 모자를 여전히 생각 없이 머리 뒤에 올려놓은 채 서 있습니다. 배경에는 큰 거울이 그의 앞 풍경을 비춥니다. 두 개의 모자가 선반에 걸려 있는 아래편에서 두 남자가 카드 혹은 도미노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풍경은 정오 무렵, 파리의 큰 대로에 있는 호화로운 건물에서 그려진 것으로 남자 옆 테이블에 있는 세라믹 접시 4개와 압생트 한 잔이 눈에 들어옵니다. 1880년 7월 17일, 압생트의 폐해가 절정에 달했던 당시에 음주 시설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In a Café>를 이러한 자유화에 대한 선언문으로 여겼습니다.

 

Interior, Woman at the Window, 1880
Man on a Balcony, Boulevard Haussmann, 1880
Interior, Woman Reading, 1880, 65 x 81 cm, Private Collection
The Bezique Game, 1880, 121 x 161 cm

 

 

 

 

인상파 화가들이 파리를 휘어잡든 시절,

바로 그때 미술은 비로소 빅뱅의 순간을 통과하였던 것으로 인식됩니다.

 

인상파 화가들 틈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격조 높은 작품을 유산으로 남긴 화가, 구스파트 카유보트는 사후에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은 화가였습니다. 저는 보면 볼수록 그의 작품에서 움터 나오는 향기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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