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As usual : 늘 마시던 걸로
‘회한의 옆통수’에는 후회의 감정을 담았다. 이전에 그렸던 이미지들을 겹치고, 칠한 물감을 닦아내고, 뒤섞으며 장면을 연출했다. 짧은 문장처럼 시작된 이미지들이 여러 감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했던 생각과 가장 겹친다. 작업 활동을 해오는 동안 의도에서 벗어난 상황이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지난 몇 년간 여성의 신체를 많이 그렸다. 당시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름 전복적인 태도로 만든 이미지였지만 시간이 지나 이런 작업이 유통되는 과정,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떠다니는 모습을 봤다. 죄책감 없이 소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런 이미지를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나 역시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린 것은 아닌지, 복기하며 되묻기도 했다.'
-이은새
질문:영감이 되는 존재는?
답변:고양이 '살구'(이은새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인 듯). 이번 전시에 살구가 연출한 장면을 그린 작품도 있다. 살구는 그냥 좀 시무룩한데 놀고 싶은 고양이다. 내게 언제나 많은 영감을 선사한다.-이은새
COLD RUB, February 3 - March 11, 2023
우라늄 유리 물체는 저준위 방사능 때문에 사용하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잘못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주로 소품이나 수집용 유물로 취급됩니다. 이러한 접근성과 재료의 매력에 흥미를 느낀 이는 인터넷의 스톡 이미지와 자신이 직접 찍은 물체 사진을 포함하여 다양한 간접 출처에서 간접적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사진에서 차원, 색상, 빛, 시간의 불일치를 발견한 이는 변수를 캔버스에 축소하고 주관적인 현실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전치를 통해 시청자와 물체 사이의 거리가 늘어나고 원래 이미지는 사라집니다. 이는 만지고 싶은 욕구가 남는다고 말합니다.
캔버스의 다른 곳에서는 디지털 화면의 환영이 소셜 미디어 앱과 리테일 웹사이트에 내장된 배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떠다닙니다. "지금 구매하세요" 또는 "단 1개만 판매 중"과 같은 행동 촉구 문구는 판매되는 제품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긴박함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온라인 참여의 상징은 물질적 욕망에 뿌리를 둔 불안을 나타냅니다. 표면을 아무리 세게 쓸어 넘기거나, 문지르거나, 문지르더라도 화면이나 캔버스를 통해 대상 자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그림에서 이는 유형적이고 실제적인 것을 만나는 데 실패했으며, 우리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피하는 이미지를 응시하면서 좌절과 욕망의 흔적만 남깁니다.
Charcas, 17 March - 24 May, 2023
물을 담거나 담지 않는 다양한 방법은 이은새(1987년 서울 출생)가 마요르카의 L21에서 레지던시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녀는 섬에 있는 동안 항아리, 꽃병, 분수의 사진을 수집하고, 동굴을 방문했으며, 한국과 마요르카의 스토리텔링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요소를 스튜디오로 가져와서 "Charcas"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팔마로의 여행을 앞두고 한국 전통 설화,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불교 철학자 원효(617~686)의 역사를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이 저명한 불교 사상가에 관한 탐구는 이은새의 프로젝트를 강조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내포했습니다. 그것은 불발로 끝난 원효의 당나라 여행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 원효의 이여기는 무얼 말하는가요?
여행 중 악천후로 인해 원효는 밤새 어느 동굴을 피난처 삼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그것이 매장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나라 여행을 뒤흔들 만큼 큰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야기의 가장 유명한 버전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스님은 동굴 속에 있을 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갈증해소를 위해 보이지 않는 물체에서 물을 마셨고 평정심을 되찾게 됩니다. 그런데 오마이갓, 그 물체가 두개골이고 물은 살아 있으며 속에 구더기가 가득한 것을 알고 나서 원효는 속이 메스꺼워지고 더러워진 느낌을 겪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사물의 더러움이나 청결함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의 분별력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는 차원으로 그를 고양시켰습니다. 이제 원효는 더 이상 여행을 위해 해외(당나라)로 여행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의 모토는 '진실이란 자신의 외부에서 찾을 수 없는 내면의 요소'라는 생각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은새는 작품활동을 위해 마요르카에 거주하는 동안 원효와 마요르카의 철학자, 신학자, 작가인 라몬 율(1232-1316) 사이의 유사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7세기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지만 두 인본주의가 보여 주었던 지식 생산 과정은 비슷했던 것입니다.
오, 그럼 라몬 율에 대해 잠깐 스캔해 볼까요?
라몬 율이 신성한 깨달음을 얻은 장소 중 하나인 마요르카의 란다 봉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스페인에서 신성한 장소이며 명상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율은 룰리안 사고와 그의 근본적인 글의 기초를 구성한 미래의 철학적 교리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리고 많은 여행을 하기 전에 그는 몇 달 동안 동굴에서 살았고, 완벽함을 위한 수단으로써 은둔적 삶에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그럼 동굴이란?
결론적으로 동굴이란 자의식과 잠재된 생각으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집니다. 동굴에서 태어난 지식은 상징적인 동굴이든 Llull과 Wonhyo의 경우처럼 더 문자적인 동굴이든 물, 단어, 종교를 통해 바위 은신처를 넘어 여행합니다. 두개골의 물에서 스튜디오에서 붓을 닦는 데 사용되는 물까지, 액체 형태는 아이디어의 전파와 교잡을 이해하는 요소로 존재합니다.
전시회의 명칭 "Charca"(스페인어로 연못)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단지 물을 담은 일시적인 용기일 뿐입니다. 꽃병, 떨어지는 종유석, 플라스틱 병 또는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지식과 삶, 포털입니다. 아이디어, 개념, 형태가 넘쳐나는 빈 캔버스의 표면이기도 합니다.
Mite Life, 24 August - 23 September 2023
이은새 개인전 <mite life>에서 ‘mite’는 ‘진드기’라는 뜻도 있지만, ‘어린 것(가엽게 여겨지는 아이, 동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개인적인 경험과 역사적 기록을 ‘물’이라는 공통된 사물로 접점을 만들거나(정확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함) 전시회 제목에 박아 넣은 단어인 진드기(mite)에 대한 사소한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과 진드기.
이처럼 다소 거리감이 있는 두 대상은 우리가 일상에서 그다지 주목하지도 않고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는 일종의 ‘사물’에 가까운 객체라 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이라고 묶어서 이해하려면 억지로 꿰어 맞추듯 그렇게 '공통점'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넣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mite’는 진드기가 아니라 ‘가련하고 작은’ 대상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이번 전시의 기본 테마는 작가의 사사로운 경험에서 출발한 것들입니다. 전시 작품 중에 드러나는 물은 2023년 이은새가 계속 탐구해온 연구 소재의 한 부분으로, 이전의 마요르카 창작물과 연결된 면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의 명칭으로 사용된 <mite life>에는 또 다른 개념이 내재된듯, 정물화를 의미하는 ‘Still life(정물화)’를 비틀어 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의 일화를 떠올리게하는 작품입니다.
해골에 담은 물을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부어 마시게 하는 장면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견일 뿐이고, 이은새적인 마인드로 감상한다면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은새가 아니니까...
작가는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 날, 목이 말랐지만 물을 마시러 나가기 귀찮았던 순간에 언제 따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페트병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든 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때 갈증은 해소됐지만 뭔가 찝찝한 마음에 마치 체한 것처럼 밤을 지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녀는 원효대사의 해골설화를 떠올렸습니다. 원효의 이야기는 송대의 문헌인 『임간록(林間錄)』에 남아있습니다. 내용인즉슨, 원효는 동료인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에 나섰는데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이은새 작가는 원효의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더 흥미로운 설화를 발견했습니다. 의상으로부터 낙산사에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원효가 그곳으로 향하던 중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였답니다. 당시 서답(생리대)을 빨고 있던 여인이 불그스름하게 더러운 듯이 보이는 물을 떠 주자 원효는 마시지 않고 물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그 물을 떠준 평범한 여인이 관음의 진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암튼, 이은새 작가는 그런 설화에 등장하는 물로부터 작품 제작의 모티브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특별할 것 없는 사사로운 사물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경험과 원효설화가 접점을 가진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물'은 그녀의 톡톡 튀는 상상력의 옷을 입고 캔버스에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물을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는 정물(靜物) 그 자체를 그리되 뭔가 미묘한 생각을 담아보려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에 그려진 해골은요?
해설에 따르면 17세기 네덜란드 정물인 바니타(Vanitas)처럼 해골이 놓여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 쓰인 라틴어 바니타스는 '허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재물의 덧없음, 시간의 무상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정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종교개혁이나 흑사병으로 인해 자신들이 이룩한 문화와 문명이 순식간에 황폐해지고 파괴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이 예술도 영향을 미치면서 물질세계에 대한 반성 및 죽음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정물화가 대두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바니타스 정물화'였던 것입니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의 바니타스와 다르게 이은새는 역사적 기록과 개인의 경험, 과거와 현재, 구상과 비구상이 뒤엉켜 낯설고 모호한 화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게 제작된 작품을 통해서 그녀는 정지된 사물이 발산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정물화는 바니타스의 형식보다는 그 의미와 접점을 이룬다 하겠습니다.
한 여성이 파인애플과 해골을 합쳐놓은 것같은 물건을 들고 있습니다.
이 해골은 바니타스 해골과 원효대사의 해골과 다른 그 무슨 의도하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뭘까요?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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