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나라-아시아

김환기(金煥基) / 2 - 뉴욕 시대

hittite22 2025. 4. 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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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서울시대(1960~1962)

 

새, 1960
섬, 1960년대

 

여인들과 항아리를 감상하는 관람객들

 

여인들과 항아리, 1960, oil on canvas, 281.5 x 567 cm

 

<여인들과 항아리>는 개인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그림으로 

김환기가 당시 즐겨 다루던 소재인 여인, 항아리(도자기), 사슴, 새(학)를 망라한 대작입니다.

인물과 소재가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어 장식적인 느낌이 납니다. 비엔나의 클림트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한 것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은 유화로 제작된 것이지만 파스텔톤을 띄고 있어 밝은 느낌이 강합니다. 이건희 컬렉션에 들어가 있다가 국가에 기증된 작품입니다.

 

여인들과 항아리, 1960 [detail-사슴주변]
여인들과 항아리, 1960 [detail-새장주변]
여인들과 항아리, 1960 [detail-새장]
여인들과 항아리, 1960 [detail-사슴]
여인들과 항아리, 1960 [detail-학과 여인]
여인들과 항아리, 1960 [detail-학]
여인들과 항아리, 1960

 

 

 

 

 

뉴욕시대(1963~1974)

 

 

새벽별 / 1964, 143.3 x 143.3 cm. 한국의 산과 강, 나무 등 토속적인 풍경이 작품에 녹아 있다.

 

이 작품은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첫 작품으로

이전의 서울에서 타구했던 반추상과 70년대 뉴욕시대의 특징인 점화 사이를 이어주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작품 중에 점화의 point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나름 의미있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Ⅳ-70 #166), 1970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63년 도미 이후 작가의 변모를 실감케 하는 작품입니다. 화면 가득 수많은 점들이 찍힌 이 작품은 당시의 한국 화단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세계적이려면 한국적이어야 해”라고 하던 그는 자신이 즐겨 다루던 새, 달, 항아리, 산 등의 소재가 보이지 않는 완전 추상을 구현해 냈는데, 그러나 그 추상성 안에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작가 특유의 그리움이 하나하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후에 점으로 가득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리즈는 비로소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그를 한국 최고의 작가로 도약하게 만들었습니다.

197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회고전 당시 한 관중이 “육시랄 점도 많이 찍었군. 지겹지도 않았을까?”하는 소리를 듣고 분노를 느꼈다는 전 이경성 관장의 회고를 소개합니다.

“…사실 그 ‘육시랄 관람객’은 그 자신 무수한(무진장의) 점 하나임을 몰랐던 것이었으며 ‘당신이 바로 이 점이오’ 해봤자 그것이 통할 리 없다는, 대화가 끊기는 느낌을 필자는 실감했을 뿐이었다.”(이경성, ‘내가 그린 점 하늘 끝에 갔을까’, P. 151)

한국인을 포함한 현대인들은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환기의 작품 ‘우주’가 130억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된 것도 그 반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70년 쓴 김환기의 일기에서는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김환기가 시인 김광섭에게 보낸 편지, 1966

 

김환기는 평소 시인 김광섭을 존경했었고 서신으로 교류를 했었습니다. 위 육필 편지를 보면서 저는 매우 균형 있게 줄을 삐뚤거리지 않고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점묘화를 그릴 기본기였다고나 할까..

1970년 어느 날, 김환기는 김광섭이 죽었다는 비보를 뉴욕에서 접하게 됩니다. 그는 너무나도 큰 실의에 빠져, 김마태(‘우주’를 소장했던 김환기의 후원자 겸 의사)의 집으로 가서,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메모하듯 드로잉 했습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리고 점화 한 점을 그려 김광섭에게 헌정하듯,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검푸른 점들이 빼곡히 가득 찬 이 작품은 서울로 보내져 그해 한국일보 주최 한국미술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김광섭은 1970년에 세상을 뜨지 않았고, 김환기가 접한 소식은 오보였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 제작 4년 후인 1974년, 김환기가 뉴욕에서 먼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나이 61세였다. 그보다 8살이 많았던 김광섭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77년, 오랜 투병 끝에 서울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무제, 1970
노란색 전면점화 ‘12-V-70 #172’ / 1970 , 2016년 63억에 낙찰.

 

높이가 2m가 넘는 대작 <12-V-70 #172>는 '뉴욕 시대'인 1970년 그려진 것으로 전체 색상이 노란색인 점이 특징입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푸른색을 상징(대부분 파란색)으로 그렸기 때문에 위의 사례처럼 노란색의 작품은 아주 소수만 남아있습니다.

 

붉은색 전면점화 '1-Ⅶ-71 #207' / 1971 , 91.5 x 170 cm

 

붉은색 점묘화도 많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큰 반원이 회전하듯 화면을 구성하고 있어 전면점화 중에서도 리듬감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환기가 뉴욕시기 말년에 제작한 작품들은 예술성이 뛰어나 출품될 때마다 큰 가격에 낙찰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기 정점을 찍은 김환기의 전면 점화는 한국적 심상을 그린 순수 추상의 결정체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주(Universe 5-IV-71 #200), 1971, 254 x 254 cm

 

<우주(Universe 5-IV-71 #200)>은 2019년 11월 한국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2억원에 낙찰된 작품입니다. 김환기 화백의 주치의였던 김정순(김환기 화백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준 인물)씨가 그의 유작 중 가장 크고 유일한 두 폭 화인 <우주>를 고가에 구입하여 40년 넘게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티 경매의 아시아 태평양 총괄 사장 프란시스 벨린이 2014년부터 이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김정순 씨 가족을 설득하기 시작하여 5년 만에 크리스티경매에 출품(김환기 화백의 작품 중 '최초')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캔버스 전면이 푸른 점화(點畵)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김환기의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로 희소성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독립된 그림 두 점으로 구성돼 전체 크기는 254 x 254㎝에 달하며 그의 작품 중에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말년의 뉴욕 시대에 완성했습니다. 두 폭의 점묘화 중에서 왼쪽과 오른쪽의 중심 별 색상에 차이를 둔 것 같은데, 혹시 김환기 화백이 무슨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요? 음양이라든가 암수라든가 플러스 마이너스 같은..

 

19-Ⅵ-71#206’, 1971, oil on canvas, 254 × 203cm
3-Ⅱ-72 #220 / 1972, oil on canvas, 254 × 202 ㎝, 85억에 낙찰(2018.5, 홍콩)

 

붉은 점화 <3-II-72 #220>은 김환기 작품 세계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미국 뉴욕 시절에 제작된 전면점화 중 하나입니다. 상단에 푸른색 점들이 작은 삼각형을 이루며 가미된 것이 특징입니다.

 

담, 1972
무제 27-Ⅶ-72 #228, 1972
나는 새 두 마리, 1972
산울림 19-II-73 #307, 1973, oil on canvas, 264 x 213 cm

 

<산울림>(1973년)을이라고 드물게 작품 명칭을 붙인 그림입니다. 직사각형 대형 캔버스는 10만 개의 푸른 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게 무수한 점들을 찍고 또 찍어서 전면 회화 형식으로 무한대를 상징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사선(斜線)으로 바탕을 이룬 점들, 그 점들이 이룩한 또 다른 선들은 거대한 율동미 마저 느끼게 합니다. 사각형 안 또 다른 하얀 사각형의 띠는 무엇을 나타내려 한 것일까? 인간의 내면처럼 사각형 점묘 구성내부에 방향을 달리 한 또 다른 점들이 그런 다름을 혹은 차별성을 나타내면서 충만함으로 채워져 있음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절규하는 것일까요?

 

작품의 제목에 '산울림'이라 명명했지만 정식 제목은 ‘19-Ⅱ-73 #307’입니다. 1973년 2월 19일 제작한 작품으로 일련번호 307번째라는 의미입니다. 뉴욕에서 서울을 떠올리며 오만 가지 생각에 하나하나 점을 찍어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해 3월 11일에 완료했으니 20여일간 걸렸는데 김환기는 후기에서 '이번 작품처럼 고된 적이 없다'라고 토로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탓이었을까요? 작업을 완결지은 지 한 달 후, 1973년 4월 8일 김환기가 숭배한 피카소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피카소는 쓸데없이 오래 살았군요. 91세에 타계했고 그 사실을 접한 김환기 나이는 61세였습니다.

 

김환기는 이듬해인 1974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17-Ⅷ-73 #317, 1973, 코튼에 유채, 164 x 209 ㎝
푸른색 전면점화 ‘고요 5-IV-73 #310’, 1973, 65억에 낙찰(2017.4)
듀엣 22-Ⅳ-74-#331, 1974, 코튼에 유채, 178 x 127 ㎝

 

짙푸른 회색빛의 깊은 점들이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서서 하늘을 향해 두팔 벌려 기도를 올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추상화이면서도 색감이 아름답고 세련된 조화미가 모던함을 뿜어냅니다. 두 그루의 나무 옆에 직선으로 서 있는 두 선분은 남녀 연인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작품 20-V-74, 1974, 264.5 × 167.8 cm

 

한국처럼 동양적인 감성과 서구모더니즘을 수준높이 융합시켜 독자적인 추상회화를 낳은 지역은 아시아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현상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한국미술의 저력이라고 할만합니다.) 그중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화가 김환기는 1930년대에 기하학적 추상을 그린 바 있고, 1970년대까지 일관되게 순화된 추상을 추구해 온 작가입니다. 그는 일본 유학에서 유럽의 모더니즘을 배운 후 매화나 항아리등을 전통회화의 모티프로 삼아 서정적이고 조형적 긴장감이 높은 화풍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꾸준하게 신경지의 미술세계를 개척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 점이 한국 일반 화가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근본이 된다고 할 것입니다.

'전면점화'라고 불리는 기법을 사용한 말년의 작품을 보면, 일정하지 않은 색의 점이 화면에 편안한 리듬을 생성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점의 여백에 생긴 직선이 나타나고, 이 직선은 화면의 가장자리를 넘어 확장되어 가는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김환기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우주적인 공간, 풍요로운 공간이 생겨납니다.

 

New York 16-2-70#147 (경매가:13억/2008년 현재 국내9위)
Air and Sound Ⅱ 10-Ⅹ-73 322

 

푸른 색에 필이 꽂힌 아티스트로 프랑스의 이브 클레인이 유명하지요. 김환기 역시 점화 제작의 대부분을 푸른색으로 점을 찍어 대작들을 완성해 낸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랑, 빨간색 점화는 희귀성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암튼 '김환기의 색채'라 불리는 '푸른빛'은 자신의 조형 세계를 구축함에 있어 일관되게 펼쳐 나갔던 표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다양하고 미묘한 푸른색의 변화를 통해 개성적인 표현과 명상적인 분위기의 전면점화를 완성했습니다. <Air and Sound Ⅱ 10-Ⅹ-73 #322>에서 우리는 점들의 방향성과 더 짙어진 깊이감을 확인할수록, 김환기 작가가 느꼈던 ‘공간’을 더욱 잘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유난히 채도가 높아 더욱 푸르게 느껴지는 <Air and Sound Ⅱ 10-Ⅹ-73 #322> 작품에서는 선의 형태적인 요소가 돋보입니다. 작품을 가로지르는 3줄의 선에는 공기 중에 움직이는 소리들이 담겨있는 둣합니다. 그리하여 김환기의 고고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담긴 이 작품은 공간에 에너지를 더합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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