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대통령관저
청와대 본관에서 관저로 가기 위해서 약간 언덕진 땅을 오르면 돌아가는 길목에서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본관 원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조금더 꺽어 걸어가면 넓직한 평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간이 휴게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이 휴게실에 들러 생수로 목을 축일 수 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니 냉수를 마셔도 닝닝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 휴게실 앞쪽에는 돌덩이에 부착된 팻말 하나와 또 다른 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청와대 구본관이라 씌어있는 팻말은 이곳이 노태우 정부 이전에 청와대 본관건물이 있었던 장소임을 알려줍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본관이 새로 건립되었고 그 신축건물의 본관 1층은 대통령 집무실, 본관 2층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외빈 접견 등 여러 행사를 치루는데 공간부족이 대두되자 대통령 관저를 새로 건축하며 본관과 관저를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구본관 즉 경무대가 있던 자리에서 <천하제일복지>라는 비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석은 청와대 본관의 위치가 길지이니 흉지이니 하는 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를 타지로 이전하겠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을 실천하려 들자 현 청와대 위치가 흉지라는 도사님(무슨 도사?) 말씀 땜에 서둘러 청와대 이전을 감행하는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나돌았습니다. 윤대텅이 절대로 청와대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공언하자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속내가 있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떠돌았습니다. 정말 저곳이 풍수지리상으로 문제가 되는 터였다면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에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없었다는 근거 불분명한 논리도 들이내밀어졌습니다. 아, 골 때리는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나라라니..
세상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로 날을 세워 싸우더라도 길지든 흉지든 별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사실, 위 팻말이나 비석도 그다지 흥미를 끄는 유물은 아니었습니다.
관저로 가기 위해서는 내리막길을 내려가 다시 좌측으로 꺽어 올라가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관저가 세워진 공간으로 진입하는 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관저의 정문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 문의 이름은 '인수문'이라 했습니다.
관저는 대통령과 그 가족의 거주공간으로 사용된 본채, 생활공간인 별채,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 등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관저의 정문인 인수문은 삼문(三門)형식의 건물로 민흘림 기둥에 굴도리를 얹고 지붕 위엔 청기와를 깔아 지어졌습니다. 청와대 본관과 같은 형식으로 건립되었으되 본관이 석조건물이라면 관저는 목조건물이라는 점이 달랐습니다. 청기와의 내림새에는 용, 막새에는 봉황을 배치하였습니다. 화강암을 둥글게 다듬어 주춧돌을 삼았으며 바닥에는 판석을 우물마루 형식으로 깔았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아 수수한 외관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수문 현액의 글씨는 권창현이 썼고, 인간문화재 한흥수가 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갑니다. 유명 서예가라면 평소 알고 있어야 정상인데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러려하며 색깔을 보아하니 먹으로 쓴 글씨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한 색감을 주지 않고 물이 스며들어 흐릿한 듯한 느낌이 드는 정도로 쓰여진 이유는 뭘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 양측의 나무기둥은 단청을 하지 않은 탓인지 낡은 빛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 안쪽으로는 작가를 알 수없는 무슨 나무그림이 걸려있는데 막아놔서 가까이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접근금지 테이핑쳐진 걸 좀 보세요.
이럴거면 뭐하러 공개했나? 하는 불평이 터져나오는 듯했습니다. 저만요..
멀리 단아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녀석은 사랑채일까요? 아니면 휴식을 하는 정자일까요.
암튼, 잔디며 정자며 멋진풍광었습니다..
본채 뒤편으로 좁은 길을 통과하여 돌아나가는 길목,
오른쪽 본채 창문으로 내부 광경을 훔쳐보듯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오픈할 것이지 참나..
의자를 보니 엄청 딱딱해 보입니다.
대텅자리에 오를 정도의 인물이면 연로한 나이인테 어찌 저런 의자를..
금방 한바퀴 돌았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담장 너머로 혹은 창문너머 내부를 훔쳐보며 지나가는 견학통로라서요.. 근데 별채 처마에 달려있는 쇠붙이는 뭘까요? 들창 들어올리개라는 건가?
관저를 퀭하니 둘러보고 인수문을 나서니 문 앞에 소나무가 서 있고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뭔가, 하며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엔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노통이 부부명의로 식수한 나무였습니다.
상춘재
이곳은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에게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던 장소입니다. TV 로만 보아왔던 한옥입니다.
현재 상춘재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관사 별관인 매화실(梅花室)이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 시절 상춘실(常春室)로 그 이름을 개칭해 사용해 왔으며, 박통이 서거하기 1년 전인 1978년 3월 천연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로 개축했습니다.
이후 상춘재(常春齋)로 이름을 명명하고 살인마 전두환 시대인 1983년 4월 연면적 417.96㎡의 전통적인 한옥식 가옥으로 신축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작품이었군요.
상춘재는 청와대 경내에 건립된 최초의 전통 한옥이었습니다. 200년이 넘은 춘양목(春陽木)을 활용하여 건축되었으며 내부는 대청마루로 된 거실과 온돌방 2개가 있습니다.
아마도 뒷문으로 나가 산책이라도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밖에 서 있는 대나무군과 묘하게 구부러진 나무의 위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녹지원
산책로 길목에서 만나는 이 하얀 조각상은 1966년 대한민국 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처에서 바다를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파도의 움직임에서 인간의 율동감을 포착하여 형상화한 조각입니다.
녹지원은 대통령이 어린이날 낙도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기념행사를 열던 공간입니다. 초록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어 기분을 상큼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녹지원 안쪽에는 커다란 반송형 소나무가 서 있는데 수령 500년을 족히 넘는 귀하신 분이십니다. 저 소나무는 녹지원의 백미라고 불리우고 있답니다.
현 상춘재와 녹지원 지근에는 식년문무화 전시, 정시, 알성시 등 과거를 보는 시험장이었던 융문당과 군대를 시험하고 무예, 활쏘기, 시험 장소로 활용되었던 융무당이 있었습니다. 녹지원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청와대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으며, 무려 120여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의 기념 식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경복궁을 방문할 때마다 신무문 밖으로 보이는 언덕위의 청와대를 멀리서 쳐다만 보고 지나던 곳이었는데,
이제 이곳 청와대 안쪽에서 경복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정치색을 떠나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진 청와대 개방이든
국민들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화문을 나와서 춘추관을 못보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길래 청와대 앞길을 따라 정문으로 걸어갔습니다.
춘추관을 보고 가려는 생각에서..
청와대 정문을 지나 꽤 걸어갔는데(실제로는 발바닥이 아파왔던 탓일수도) 천추관은 보이지 않고, 혹은 청와대 안쪽으로 통하는 길이 나타나지 않고 연풍문 표지만 보게 되었습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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