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술관 순례

국립 서양미술관[NMWA] (3) / 인상파화가 모네에 물들다

hittite22 2025. 1. 1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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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히타이트는 이제 중세회화 감상을 마무리하고 인상파 화가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본인들이 중세회화에서는 그리스도 테마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한듯 싶어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여 기독교 수입에 열을 내지 않았던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 내부에 뿌리깊게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은 잡다한 신을 섬기는 국민성에 기원을 둔 것은 아닐까?

 

히타이트가 직장생활에 한창일 때 일본 출장을 가면 동네 어귀마다 잡신을 모신 사당이 예쁘장하게 모셔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인은 불교와 유교로 이어져왔는데 이처럼 특정 종교가 전체를 지배하는 환경이 오히려 기독교 유입을 용이하게 하지 않았는가 추정되는 것이었다. 메인 종교 하나만 자리바꿈시키면 전체가 새로운 종교로 대체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런 방법으로 한반도를 주름잡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내력도 없는 일본미술애호가들은 왜 서양 중세 종교화 수집에 열심이었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친근감이나 애정은 충분히 익스큐즈해 줄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이 득세하던 19세기, 일본은 조선도공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도자기를 유럽으로 수출을 할 때 우키요에가 그려진 종이로 도자기를 포장했었다. 그 포장지에 담긴 그림이 당시 새로운 화풍을 선점하려 용을 쓰던 인상파 화가들에게 어필하였고 결국 그들이 회화작업에 일본문화를 베끼는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다시 일본으로 유입되어 일본인들로 하여금 인상파화가들에 대한 애정과 우호적 감정을 폭발하게 만들었으니..

 

그러니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인상파화가들 작품에 열광하게 된거지. 그건 거의 당연시하게 받아들여진 일들이었다. 히타이트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우키요에 작품이 새로운 프론티어로 콩깍지 씌워진 서유럽 화가들도 그들을 무지막지하게 애정하는 일본인들도 모두모두 너그럽게 보아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들이 편린처럼 떠다녔다.  

 

Henri Fantin-Latour(앙리 팡탱 라투르)作, Still Life with a Carafe, Flowers and Fruit(와인 카라페, 꽃, 과일이 있는 정물), 1865, oil on canvas, 59.1 x 51.5cm - 1997년 구입

 

팡탱 라투르의 작품은 크게 초상화, 정물화, 우화적 구성이라는 세 가지 장르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정물화는 Fantin-Latour가 일생 동안 특히 열광했던 장르다. 이 그림은 초여름의 과일과 꽃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팡탱 라투르 정물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Henri Fantin-Latour作, Still Life with a Carafe, Flowers and Fruit(와인 카라페, 꽃, 과일이 있는 정물), 1865 [detail]

 

Édouard Manet作, Portrait of Monsieur Brun(브룅씨의 초상), c.1879, oil on canvas, 194.3 x 126cm - 마츠카타 컬렉션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동시대 파리 사람들의 "지금"을 묘사한 작품으로 근대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인물이다. 위대한 화가 마네의 작품인데 히타이트는 현장에서 사진 찍을 때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이라 여겨 성의없이 촬영하는 바람에 정중앙에 반듯하게 담아내지 못했다. 사실, 미술관에서 만난 사이즈 큰 작품을 정확하게 화면으로 담아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서양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마네의 위상, 그런 사적인 존재가치는 히타이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야 명작이요, 위대한 화가라 칭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히타이트는 마네의 작품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다.

 

Édouard Manet作, Portrait of Monsieur Brun(브룅씨의 초상), c.1879 [detail]

 

회색 실크 모자에 청보라색 예복(헤더 직물 코트)을 멋지게 차려입고 포즈를 취한 브룅씨. 마네답게 모더니티에 넘친 그림으로 만년의 인상파 화가들이 영향을 받은 밝은 자연광의 표현이 눈에 띈다. 마네가 죽은 후 이 초상화는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손에 들어갔으며, 모델이었던 브룅 무슈(Monsieur Brun)가 자신의 초상화를 소유한 적은 없다고 한다.

 

John Everett Millais(존 에버렛 밀레이)作, Ducklings(오리 새끼들), 1889, oil on canvas, 121.7 x 76cm - 마츠카타 컬렉션

 

이 그림은 특정 아이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경의 새끼 오리와 중앙의 어린 소녀의 조합이 알레고리적 장르의 장면으로 차용된 것이었다. Hans Christian Andersen의 The Ugly Duckling(미운 오리새끼)은 영어로 번역되어 1869년 영국에서 출판되었으며, 그림 속의 어린 소녀는 안데르센의 이야기에서 말한 것과 같은 종류의 미래 변화를 공유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Pierre-Auguste Renoir(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作, Parisiennes in Algerian Costume or Harem(알제리풍의 파리여인들), 1872, oil on canvas, 156 x 128.8cm -마츠카타 컬렉션

 

이것은 평소 히타이트가 알고 있는 르누아르의 작품 스타일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 캔버스였다. 그러나 할렘(무슬림 가정의 여성 숙소, 혹은 이슬람 문화권의 후궁)을 보여주는 르누아르 초기 대표작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당시 르누아르는 유럽인들이 가장 잘 접할 수 있는 이슬람문화권이었던 북아프리카에 가본 적은 없지만 들라크루와의 <알제리의 여인들>을 바탕으로, 화려한 의상을 입은 파리의 여인들 주위에 장식적인 양탄자와 가구를 배치해 오리엔탈리즘을 표현했다. 아, 이건 미술평론가들이 말하는 내용이고 히타이트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아니다. 초기작품인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 특유의 풍요로운 색채와 붓놀림을 찾아낸다면 눈썰미가 있다고 봐야겠지.. 히타이트는 그만한 눈을 가지지 못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을 그린 배경에는 들라크루아의 1834년 걸작 〈알제리 여인들〉이 존재한다. 드라크루아의 〈알제리 여인들〉이 1870년 살롱전에 입선되자 르누아르는 자기도 살롱전 출품을 목표로 1872년 이 작품을 그렸다. 당시 르누아르는 살롱전에서 낙선하고 마는데 그때문인지 7년간 연인관계에 있었던 작품 속 중앙에 앉은 여인과 쫑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여인의 풍만한 스타일이 르누아르가 선호하는 유형의 인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여인들의 묘사가 섬세하다.

 

이 그림을 제작할 당시 르누아르는 31살이었고 인상파에 경도되던 시기였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마츠카타 컬렉션 반환 시 이 작품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고집하다가 결국 돌려주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어쩌면 그것은 고흐 작품 2점을 끝내 내놓지 않으려던 프랑스 정부의 전략적 테크닉의 일환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안그런가? 히타이트만 그리 생각하는건가? 

 

John Everett Millais(존 에버렛 밀레이)作, The Wolf’s Den(늑대의 소굴), 1863, oil on canvas, 83.8 x 114.3cm - 마츠카타 컬렉션

 

존 에버렛 밀레이 경은 유명한 <오필리아>를 제작한 화가로, 라파엘 전(前)파를 창립한 영국의 화가이자 삽화가였다. <오필리아> 작품 이름만 알고 있던 히타이트는 이런 겪음을 통하여 특정 화가를 기억의 창고에 확실하게 안주시키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여기서 라파엘 전파(PRB: Pre-Raphaelite Brotherhood)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인 1848년 영국에서 탄생한 젊은 화가와 시인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이들이 내건 모토는 왕립미술원의 아카데미즘(academism)에 반대하여 라파엘로(Raphaello)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파인 ‘나사렛파(Nazarenes)’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하는데 나사렛파 역시 중세 후반 및 초기 르네상스 예술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 바 있다.

 

음.. 라파엘 전파랑 나사렛파는 서로 형제 혹은 어깨동무한 친구같은 존재였군. 히타이트는 또 하나의 지식을 습득했다. 아, 그러나 후레시 메모리처럼 이 지식이 언제 휘발될지 모른다...

 

Eugène Boudin(외젠 부댕)作, Beach of Trouville(도빌해안), 1867, oil on canvas, 63 x 89cm - 1985년 구입

 

'외젠 부댕이라..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인데?'

히타이트는 저혼자 중얼거리며 도빌해안을 묘사한 풍경화를 들여다 본다. 부댕이 야외 스케치를 위하여 쉴 새 없이 방문했던 뚜르빌(도빌)은 여름 더위를 피하는 파리지앵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였었다.

 

Eugène Boudin(외젠 부댕)作, Beach of Trouville(도빌해안), 1867 [close up]

 

'아.. 도빌이란 프랑스 북부, 영국와 마주하는 해안인 모양이네..'

시인 보들레르가 언급한 '모던 라이프'를 이 해안 휴양지에서 구경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1860년에 시작한 부댕의 야외 풍경 실험 중 하나였다. 예를들어 붓의 뉘앙스가 빚어내는 폭넓은 깊이감의 하늘은 보들레르가 묘사한 '기상미의 세계'에 딱 들어맞는다. Boudin은 이 하늘 아래 해변 휴양지 생활의 활기차고 밝은 감각을 그렸고, 그것을 다시 캔버스를 가로질러 프리즈 같은 띠로 배열했다. 그림의 전체적인 회색 톤은 그림 속 군데군데 배치한 강렬한 붉은색 악센트를 더욱 강조한다.

 

Pierre-Auguste Renoir(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作, In the Woods(숲에서), c.1880, oil on canvas - 마츠카타 컬렉션

 

'이 작품도 멋지다. 일반적인 르누아르 작품과 결을 약간 달리하지만..

암튼, 마츠카타 씨도 안목이 있었네..'

 

Alfred Sisley(알프레드 시슬레)作, Landscape at Louveciennes(루브시엔느 풍경), 1873, oil on canvas, 54 x 73cm - 1981년 구입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Walk (Road of the Farm Saint-Siméon)/생 시메옹 농장의 길, 1864, oil on cancas, 81.6 x 46.4cm - 마츠카타 컬렉션

 

모네는 186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노르망디의 옹플뢰르에서 Boudin, Jongkind, Bazille와 함께 머무는 동안 이 작품을 만들었다. '아, 보댕도 모네와 같이 놀았구나..'

 

이 작품은 옹플뢰르와 트루빌을 연결하는 길가에 위치한 생 시메옹 농장을 그린 것으로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모네 초기작 중의 하나이다. 어둡고 차분한 색조와 농밀한 마티에르에서 바르비종파나 쿠르베(Courbet) 등 선배 화가로부터 받은 강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길 위에 어른거리는 빛의 묘사에서 새롭게 싹트는 모네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 그런가? 빛그림자 어른거리는 풍광은 르누아르가 가장 잘 표현해냈는데..'

 

Camille Pissarro(카미유 피사로)作, Conversation(대화), c. 1881, oil on canvas, 65.3 x 54cm - 마츠카타 컬렉션

 

1870년대 후반에서 1880년대는 피사로와 다른 인상파 화가들 모두 그들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하였었다. 이러한 변화는 1881년에 열린 제6회 인상파 전시회에 모네, 르누아르, 시슬리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때부터 인상파 화가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Pissarro는 1870년대 후반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난국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꾀하였다. 그것은 바로 판화 작업,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실험, Gauguin, Seurat 및 Signac과 같은 젊은 예술가와 협력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연구였다. 작품 <대화>가 이러한 변화의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1880년대 후반에 쇠라(Seurat)의 점묘법을 사용하였던 Pissarro의 실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Camille Pissarro(카미유 피사로)作, Conversation(대화), c. 1881 [detail]
Camille Pissarro(카미유 피사로)作, Conversation(대화), c. 1881 [close up]

 

이 작품은 1882년 제7회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피사로가 전시한 36개 작품 중 27점은 위와 같이 퐁투아즈 주변 농부들의 모습을 담은 것인데, Pissarro는 밀레식의 농부에 대한 극적으로 이상화된 이미지로부터 탈피하여 일상 속 농부를 그리고자 하였다.

 

 

Édouard Manet(에두아르 마네)作, Boy in Flowers (Jacques Hoschedé)/꽃 속의 소년, 1876, oil on canvas, 60 x 97cm - 1982년 구입

[detail]

 

마네는 19세기 후반의 당대 생활 모습을 혁신적인 조형감각으로 표현해 근대회화의 전개를 선도했던 화가이다. 이 작품은 1876년 여름, 인상파 화가들의 후원자인 사업가 에르네스트 오슈데(Hoschedé)의 초청에 응하여 센에와즈 주의 몽제롱이라는 마을에서 그린 것이다. (Hoschedé의 아내 Alice는 나중에 Monet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장소는 오슈데 집의 화원이고 소년은 오슈데의 여섯 자녀 중 장남 자크였다. 야외에 서 있는 인물을 밝은 색채와 스케치풍으로 그린 것은 인상파의 영향을 드러내 보이는 면이다.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Yellow Irises(노란 아이리스), c.1914-17, oil on canvas, 200 x 101cm - 1986년 구입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Yellow Irises(노란 아이리스) [detail]

 

모네의 테마는 지베르니로 이사한 후 점차 그의 정원으로 좁혀졌는데 이 작품은 그곳에서 그렸던 정물화의 극히 장식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일본의 벽면을 연상케 하는 키가 큰 캔버스에 일본 감성을 물씬 풍기는 그림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기복이 있는 오름차순 선의 공간적 모호성은 단호한 장식 효과를 낳는다.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Poplars in the Sun(햇빛 속의 포플러 나무), 1891, oil on canvas, 93 x 73.5cm - 마츠카타 컬렉션

 

'오, 모네의 작품이 이어지는군'

히타이트는 흡족한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클로드 모네는 빛, 안료 또는 구성의 변화로 동일한 주제를 묘사하는 여러 시리즈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지베르니(Giverny) 근교 엡테강(Epte River) 좌안을 따라 서 있는 포플러 나무에게 매료되었는지 1891년 봄에서 여름에 걸쳐 여러 차례 포플러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의 특징은 전경에 보이는 세 개의 큰 포플러이다.

 

Snow in Argenteuil(아르장퇴유의 설경), Claude Monet(클로드 모네), 1875, oil on canvas, 55.5 x 65cm - 마츠카타 컬렉션

 

Argenteuil(아르장퇴유)는 센 강을 따라 위치하여 보트 타기를 즐기는 파리의 주말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휴양지였다. 모네는 1871년부터 1878년까지 이 지역에서 아내 카미유와 갓 태어난 장남 장과 함께 살았다. 이 7년의 아르장퇴유 시대는 인상파로서의 모네의 형성기에 해당한다.

 

모네를 매료시킨 모티브는 센강의 요트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마을 풍경이었다. 센강에서 요트타는 모습은 동료화가 마네가 그려준 작품이 유명한데, 1875년 겨울에 그린 이 작품은 완공 직전의 새로운 Saint-Denis 대로와 기차역을 묘사하고 있다.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Morning on the Seine(세느강의 아침), 1898, oil on canvas, 73 x 91.5cm - 1965년 구입

 

모네는 1896-97년에 걸쳐 <아침의 센 강>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아.. 센강이 지르베니를 거쳐서 흘러가는 모양이네. 시리즈의 하나로 그려진 이 작품은 여름 아침에 지베르니 근처의 안개 낀 센 강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어쩐지 지르베니 연못의 수련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했더니...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Morning on the Seine(세느강의 아침), 1898 [detail]

 

센 강변의 특정 지점에서 오전, 정해진 시간에 강 표면을 따라 버드나무가 떠다니고 풀 덩어리 위로 물결이 밀려오는 풍경이 모네의 시야에 포착되었고 그는 수련의 화가답게 생생한 붓놀림으로 그 풍경을 되살려낸 것이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물결 사이로 부는 바람을 형상화하려고 애써 노력한 것일까? 모네 붓의 움직임은 자연의 한순간에 포착하려는 그의 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츠카타 씨의 컬렉션인줄 알았는데 후대 일본인들이 구입한 작품이군..'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On the Boat(보트놀이), 1887, oil on canvas, 145.5 x 133.5cm - 마츠카타 컬렉션

 

계속되는 모네 퍼레이드!

인상파의 시작점이자 태두겪에 해당하는 인물 클로드 모네는 일생동안 빛의 표현으로 근대 풍경화에 혁신을 가져온 화가였다. 지베르니에 정착하기 직전, 그는 엡테 강을 따라 보트를 타는 가족의 이미지를 여러 개 그렸다. 이 작품은 뱃놀이라는 제목의 일련의 그림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이었다.

 

Claude Monet(클로드 모네)作, On the Boat(보트놀이), 1887 [detail]

 

화면을 채우는 블루와 로즈 컬러는 그린, 주홍의 상큼함과 대비되어 풍부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나중에 모네의 아내가 되는 Hoschedé(오슈데) 부인의 두 자녀, Suzanne과 Blanche이다. 작은 배를 반으로 쪼개는 대담한 구도는 일본 우키요에 판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네의 관심은 수면에 비친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의 색채 표현으로 여겨진다.

전시실 내부 풍경

 

여기까지가 히타이트의 2층 관람 결과이다.

 

히타이트가 선호하는 인상파 화가 작품들 중 단연코 클로드 모네의 것이 많았는데 일부 미술관 측에서 구입한 것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마츠카타 씨가 수집한 것이었다. 그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많이 애정하였던 모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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