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양미술관 일반
1. 국립 서양 미술관 개요
- 정식명칭 : 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1)주요 전시정책
- 상설전과 기획전으로 운영.
- 프랑스로부터 반환된 마츠카타 컬렉션(인상파 회화, 로댕의 조각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미술 컬렉션) 등 서양 미술품을 소개
2)건축
- 1959년, Le Corbusier(르 코르뷔지에, 본관)
- 1979년, Maekawa Kunio(마에카와 구니오, 신관)
3)입장료(상설전 기준)
- 성인 500엔
- 대학생 250엔
- 고등학생 이하 및 18세 미만, 65세 이상, 심신에 장애가 있는 분 및 보호자 1명 무료
- 기획전은 별도 요금. 단, 기획전 관람권으로 상설전도 관람하실 수 있음.
- 무료 관람일 : Kawasaki Free Sunday(매월 두 번째 일요일), 국제박물관의 날(5월 18일), 문화의 날(11월 3일)
4)개관일
- 화요일~일요일 :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 금/토요일 : 오전 9시 30분~오후 8시
5)휴관일
- 월요일
2.위치
...................................
(들어가며)
히타이트는 2022년 일본 동경으로 혼여를 다녀왔다. 큰 딸은 직장땜에 동행이 불가능했고, 둘째는 또 개인사정으로 갈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나홀로 여행, 이른바 줄임말이 유행하면서 생겨난 축약어로 말하자면 '혼여'를 다녀온 것이다.
하지만 여행 도중에 히타이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또 다른 자아인 '람시스'가 튀어나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건, 유명한 영화감독으로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와 동침하는 기행(?)을 일삼아 대중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해외로 도피하였던 사람의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였던 시츄에이션이다. 라트비아인가 에스토니아인가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서 코로나19로 죽은 김 감독은 영화에서 자기와 또 다른 자기가 서로 대화나누는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근데 그런 기이한 현상은 사실 히타이트가 먼저 겪었던 거였다. 단지 그 낯선나리에서 뒈진 김감독이 유명인이라서 대중에게는 그게 처음인 것처럼 알려졌을 뿐이다. 히타이트는 항상 그렇게 우겼다.
국립 서양미술관은 동경 우에노 공원 입구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우에노 공원이 매우 넓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 자리잡았는지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찾아가면 헤맬 수 있다. 히타이트는 동경문화회관 건물이 국립서양미술관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메트로 무제한 사용권을 이용하는데, 이 경우 여행자는 국철(JR)이 아닌 메트로 역에서 내린 후 고가도로 밑 신호등에서 길을 건너가야 한다. 그 다음 우에노역을 끼고 이어지는 좁은 오르막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좌측으로 꼬부라지는 곳에서 국립서양미술관에 닿을 수 있다.
상설전 티켓이 500엔인데 피카소 특별전 티켓은 무려(?) 2100엔을 받고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차이나 나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내 깨달았다. 특별전 관람자에게 상설전을 동시 관람하도록 해주는 요금체계였으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알아서 익스큐즈해준 것이다. 하지만 히타이트는 피카소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므로 상설전만 관람하기로 한다. 람시스 양반이 나타나지 않아 그대로 일사천리 진행하였다.
.............................
미술관 로비
유리문을 통해 상설전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로비가 나온다. 그리고 로비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현대조각의 아버지 로댕신사가 보낸 3D미술의 초병들이었다.
하지만 히타이트는 모습을 드러내며 아는 체 하는 초병들을 묵살하고 2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왜? 눈인사라도 해주고 가지.."
불현듯 람시스가 히타이트 내면에서 튀어나왔다. 서대경 시인은 술에 떡이 되었을 때나 몸속에서 자신의 분신 원숭이가 튀어 나오던데 히타이트의 내면에서 기거하는 람시스는 그런 절차도 없이 시도떄도 없이 제맘대로다.
"먼저 인사드려야 할 작품들이 위에서 기다리고 있잖아. 그게 우선이지.."
히타이트의 말대꾸에 람시스가 재차 투덜거린다.
"그래, 예의차리는 거란 말이지.. 하참.."
계단은 여느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건축물은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유명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한 특별한 곳이 아닌가.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은 이름값을 하는 건물이며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오늘날 현대건축의 선구자로 추앙(?) 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시아 뿐 아니라 전세계의 건축학도라면 이 건물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일단 히타이트는 예의상 그런 기본지식을 두뇌에 탑재하고 건물 안으로 입장했는데도 불구하고 건축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했다.
프랑스 정부가 마츠카타 코지로(1866-1950) 컬렉션을 일본에 반환할 때 그의 미술 수집품을 담을 그릇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미술관 건립을 단서조항에 넣을 정도였으니 참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나는 모르고 있었던 사실인데 르 코르뷔지에는 많은 건축 작품에 경사로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이곳에도 경사로 타입의 계단을 설치한 모양인데, 국립 서양미술관의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점차 경치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기둥 한쪽으로 나타났다 멀어지는 회화 작품과 함께 삼각모양의 천창 등 변화하는 공간을 즐기며 이동할 수 있게 배치한 것이라고 한다. 아니, 그런 심오한 의미가??
로비에는 약간 가늘다싶은 키 큰 기둥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데 그 위에는 삼각형 천창이 모습을 드러낸다. 북쪽으로 난 이 채광창은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도록 설계된 것이다. 한편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들보는 섬잣나무라는 나무형틀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탓인지 아름다운 나뭇결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마츠카타 컬렉션이란?
히타이트가 2층에서 작품감상을 개시하려는 찰나, 다시 람시스가 등장한다.
"이봐, 히타이트! 여기 인간들이 마츠카타 컬렉션, 마츠카타 컬렉션 하는데 도대체 무슨 스토리가 담겨 있는 거니?"
"오, 알겠어. 마츠카타에 궁금증이 꽂혔구나. 먼저 국립서양박물관측에서 게시한 설명자료를 한번 읽어보도록 해. 한국어판으로 번역한 내용이 함께 게시되어 있으니 금방 읽을 수 있을거야."
"그렇군. 알았어. 읽어보도록 할께.."
국립서양미술관과 마츠카타컬렉션
국립서양미술관의 원점인 '마츠카타 컬렉션'을 만든 인물, 마츠카타 코지로(1866~1950)는 메이지시대 총리대신을 역임한 마츠카타 마사요시의 세째 아들로, 미국 유학을 거쳐 아버지의 비서관을 지낸 후, 1896년 코베의 가와사키조선소 초대사장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조선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마츠카타는 런던에 체재하고 있던 1916년부터 미술품수집을 시작해 10년 동안 3천 점이 넘는 서양미술작품을 사 모았습니다.
마츠카타가 미술품수집에 열정을 기울인 것은 자신의 취미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재를 들여 만든 '쿄라쿠 미술관'을 통해 많은 일본인들에게 서양미술작품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서양미술전문미술관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1927년에 닥친 경제공황으로 가와사키조선소 역시 경영위기를 맞아, 마츠카타는 회사를 재건하기 위해 재산을 내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술관 계획은 무산되었으며, 일본으로 가져왔던 마술품은 경매에 부쳐서 모두 흩어졌습니다. 런던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1,000여점의 작품은 1939년에 일어난 화재로 전부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파리에 남겨진 작품들은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적대국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프랑스정부에 접수됩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 이후 양국의 우호관계의 증표로서 일본에 반환되었습니다. '마츠카타컬렉션' 370점을 보관해 공개하기 위한 시설로서 국립서양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개관초기의 '마츠카타 컬렉션'은 프랑스 근대미술작품이 중심이었으나, 그후 자체구입과 독지가들의 기증으로 성장을 거듭해 서양미술 전반으로 소장범위를 넓혀갔습니다. 마츠카타 코지로가 구상했던 '쿄라쿠 미술관'의 이념을 계승하여 서양미술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컬렉션을 널리 공개하고 후세들을 위하여 보존하는 것은 국립서양미술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으음.. 이런 역사가 있었군."
람시스가 부러운듯 신음소리를 내면서 리액션한다.
"그런데 람시스, 프랑스인들이 마츠카타 컬렉션을 반환할 때 리스트에서 빼먹은 작품이 있었어."
"아니, 프랑스애들이 그랬어? 걔네들 좀 쫀쫀하게 처신했네."
"뭐, 아시아인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인 작품들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구심에서 출발했던 거겠지."
"그럼 그때 빠졌던 작품이 뭐였어? 궁금하네."
중세 종교화 1
"람시스, 일단 작품감상부터 시작하자. 그 얘긴 천천히 하고.."
"좋아, 알겠어. 기억해두지, 히타이트. 근데 처음 만나는 이 작품, 마츠카타 컬렉션이 아니네?"
"21세기에 들어와서 구입한 거야. 이점을 우리가 새겨보아야 할 사안인데, 국립 서양미술관은 마츠카타 컬렉션만으로 운영해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지. 한국 사람들은 마츠카타 컬렉션 같은 명작을 떠안겨 주더라도 이렇게 지속적인 투자를 하지 못할껄, 아마."
"지속적인 애정과 노력이 경주된다는 걸 기억하라는 거냐?"
"그럼, 미술품 사랑에 진심인거지."
"그래? 그런데 21세기에 중세 종교화를 구입한 사유가 뭘까?"
"잘은 모르지만 미술시장에서 중세미술품도 거래가 되는 모양이지. 작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는 16세기 내내 피렌체 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화가이자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하니 그의 작품을 구입할 만하네."
"..."
"안드레아는 이 작품을 그릴 때 미래의 아내를 모델로 삼았어. 뿐만 아니라 아기 예수의 얼굴도 당시 생존 아기를 모델로 그렸고. 단지 몸의 탄력 있는 표현은 당시의 조각 스타일을 따른 것이라고 하는군..."
빵에 축복을 하며 한 사람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그리스도의 등장장면이다.
충분히 짐작하였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서 금화주머니를 손에 준채 앉아있는 오른쪽 하단 인물이 바로 가롯 유다이다.
이 작품의 화가 마르텐 데 보스(Marten de Vos)는 브뤼헐(Brueghel)과 루벤스(Rubens)를 연결하는 플랑드르 화가였다. 그의 작품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탁자 반대편 중앙에 앉아 있다.
"작품이 묘사한 장면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배반할 사람 하나가 너희 가운데서 나온다라고 예언할 때, 그의 제자들이 보인 반응을 그려낸 것이야."
"음, 예수는 내가 통치하던 시대에서 2000년이 지나서 태어난 인물인데 어찌 그리 전세계를 단 칼에 삼켜 먹었을꼬."
"람시스, 그 얘긴 왜 하나. 분위기 안 어울리게. 그리고 단칼에 삼킨게 아니라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바탕에 깔려있는 이야기야. 함부로 얘기하지 말고, 자자, 이 그림를 봐봐. 배신자는 어디에 자리잡고 있으며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
"음.. 돈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인간이군, 안그래?"
"그래. 서양인들에게 최후의 만찬 장면은 수십번 확대재생산된 것이지. 정신적 아킬레스건인 것처럼.."
다른 모든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오직 그리스도 앞에 앉은 가롯 유다만이 전략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옆 왼쪽에서 관람객을 내다보고 있는 인물은 예외적인 구성 장치라고 한다. 이건 무슨 말뼉다귀같은 얘긴지.. 그냥 무시할 대상이라는 얘기잖은가. 암튼, 우측 상단의 창문 너머로는 최후의 만찬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왼쪽 상단 끝머리에는 최후의 만찬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는 소년이 그려져 있다. 다 그리는 화가 맘이겠지 뭐... 그 옛날 조선의 저잣거리에서 엿장수가 엿가락 끊어주는 걸 자기 맘대로 하였듯이.
"히타이트, 이건 무슨 장면을 그린 거지?"
"아주 유명한 스토리인데, 모르고 있구나. 이건 예수 그리스도가 세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홀로 기도드리는 장면이야."
"오, 기도하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라.. 근데 제자들은 왜 퍼질러 자고 있어?"
"인간의 연약함,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이기주의적 본성을 보여주는 거지."
"아니, 저 세 노무 자식들 이름이 뭔데?"
"베드로, 그리고 세베대의 야고보와 요한이야.."
"어이쿠, 베드로는 안 끼는 데가 없군. 그래도 초대 교황까지 해먹었으니 대단한 은총이야."
"람시스.. 성경은 인간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면 안돼."
히타이트는 자신의 속사람이 품는 의문과 분기탱천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작품은 감람산 아래, 일종의 언덕배기에 해당하는 겟세마네에 아기 천사가 나타나 그리스도를 응원하는 모습을 그려넣었고, 그때 몰래 그리스도를 체포하려고 군병에 이끌려 다가오는 가롯 유다 모습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삽입시키고 있었다.
'초기 영화감독들은 중세 성화를 보고 작품 제작 스킬의 아이디어 상당부분를 얻었겠어.'
히타이트는 람시스를 물리고 홀로 생뚱맞은 궁리질을 한다..
이탈리아 화가 바르톨로메오 만프레디(Bartolomeo Manfredi)는 1610년대 로마의 젊은 세대 예술가들에게 카라바조의 그림을 전파하였던 지도자였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를 배반한 유다가 그리스도를 알려주기 위해 입맞춤하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현재 더블린에 소장되어 있는 Caravaggio의 작품을 반전시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드러나는 멜랑꼴리하고 우수를 머금은 인물 표정은 화가 만프레디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 만의 특징이었다.
히타이트가 바라본 전시실 풍경에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흔적이 드러난다. 그는 국립 서양미술관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작품 전시를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인지 내부 기둥의 처리에 고심한 듯하였다. 그래서 기둥을 가장자리에 배치하여 관람객들의 그림감상에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미술관측에서 구입한 작품들이 계속 나타났는데 일관성이 보인다.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묘사한 중세종교화들이다. 물론 중세 서양화가 다 기독교 교화용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하나 국립 서양미술관의 일본인들이 작품을 구매할 때 어떤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아킴 베케라트의 작품 <Christ carrying the Cross(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보면서 히타이트는 두 사람에 주목했다.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십자가를 들어주려는 흰 수염 난 노인네, 구레네 사람 시몬이 하나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은 오른쪽 하단의 비탄에 빠진 성모 마리아를 부축해주는 성요한 사도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히타이트의 눈에는 성모 마리아 옆에 여성들만 보일뿐 남자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론상으로 해석하면 새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성요한이어야 하는데...
Jacopo del Sellaio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로 고향 피렌체에서 활동했다. 그의 본명은 야코포 디 아르칸젤로(Jacopo di Arcangelo)로 Botticelli, Filippino Lippi, Domenico Ghirlandaio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절충주의 스타일로 작업했다. Sellaio라는 별명은 안장 장인인 아버지의 직업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제단화는 한 남자가 죽은 아내와 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교회에 헌정한 것이다. 십자가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 죽은 아내와 딸의 시체이다. 제단을 만들고 그 제단에 세워둘 그림이라는 얘긴데, 죽은 아내와 딸을 보아서 남자의 나이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제단을 만들어주다니. 돈 많은 남자였나 보다.
왼쪽에서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슬퍼하는 성화 기증자인 대머리 남자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성 요한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기증자의 아들이 묘사되어 있다. 배경에는 플로렌스(Florence)가 등장하며 중간에는 성경의 다양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이 작품은 15세기 후반 피렌체파의 양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독일 태생의 Joos van Cleve는 1511년경 앤트워프에 도착하여 1540년 또는 1541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한 화가였다. 네덜란드 및 플랑드르 르네상스 회화 내에서 초기 네덜란드 회화의 전통적인 기법과 보다 현대적인 르네상스 회화 스타일의 영향을 결합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중앙에 <십자가형을 당하는 그리스도>를, 양 날개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성화 기증자 부부의 모습을 담은 것인데, 이처럼 중앙 패널과 개폐가 가능한 좌우의 날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세 폭 제단화(Triptych)>라고 한다. 넓은 파노라마 화면에 기괴한 암석을 세밀하게 그려 넣은 이 작품은 16세기 플랑드르 풍경화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제단화와 같은 형식·동 주제의 클레베 작품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이봐, 히타이트. 내가 공간 위로 올라가 전시실 내부를 한번 휘둘러 봤는데 특이한 점이 하나 보여."
"람시스, 갑자기 왠 뜬금포야?"
"코리아 미술관에 가면 십중팔구는 여성관객이잖니?"
"그렇지."
"근데 동경에는 왜케 남자들이 많은 거야?"
"어? 정말 그러네?"
"일본 남자애들이 여성화된 거라서 그런건희, 아니면 이 남자애들 문화적 레벨이 코레안보다 한단계 위라서 그런건희?"
"음..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두 가지 다 일수도 있어."
"그으래?"
람시스가 조용히 사라진다.
(계속)
'아시아 미술관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 (4) | 2025.02.05 |
---|---|
국립 서양미술관[NMWA] (5) / 로댕 조각작품 (0) | 2025.01.18 |
국립 서양미술관[NMWA] (4) / 크로아조니즘의 잔상을 담다 (0) | 2025.01.18 |
국립 서양미술관[NMWA] (3) / 인상파화가 모네에 물들다 (1) | 2025.01.18 |
국립 서양미술관[NMWA] (2) / 일본에서 중세 회화를 만나다 (1) | 2025.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