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미술관 순례

서유럽 여행 -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 (5) / 에곤 실레의 풍경화

hittite22 2025. 2. 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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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Anton Josef Trcka가 찍은 에곤 실레 사진, 1914

 

위에 소개한 것은 안톤 요셉 트레카(Anton Josef Trčka)가 찍은 유명한 에곤 실레 사진이다.

히타이트는 이 사진을 찍은 안톤작가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오 그는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친구가 아닌가. 그는 당시 비엔나 예술계에 잘 알려진 아티스트로 사진작가, 화가, 시인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에곤 실레와는 비엔나 미술학교(Academy of Fine Arts Vienna)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였기 때문에 실레의 독특한 포즈를 포착한 사진을 남겼던 것으로 여겨진다. 

 

Poster for Egon Schiele's solo exhibition at the Viennese gallery Arnot, 1915

 

에곤 실레는 1915년 비엔나의 아르노트 갤러리(Arnot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주홍색 옷을 입은 자화상이 담긴 포스터를 뿌렸다. 개인전에 출품된 실레의 작품은 매우 도발적이고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어 많은 비판적 반응을 야기시켰지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측면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 개인전을 통해 에곤 실레는 비엔나 미술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The Artist's Room in Neulengbach, 1911

 

에곤 실레의 1911년 작품 <The Artist's Room in Neulengbach>는 그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누렌바흐에 거주하며 작업하던 시절의 개인 공간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이 작품의 구도가 고흐의 아를 방을 모방한 것이 아닐까 여겼다. 히타이트의 눈에는 유사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히타이트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에곤 실레의 이 작품이 고흐의 영향을 받아 그렸다는 기록은 없었다. 독자적인 작업이 많았던 에곤 실레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이고 그중에서도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클림트였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참 많이 비슷한 그림인데..

히타이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증명할 날이 올 수도 있으므로 기억창고에 잘 저장해 두기로 했다.

 

House and Wall in a Hilly Landscape, 1911, oil on canvas

 

이제 에곤 실레의 풍경화 감상이 시작된다.

히타이트가 서유럽 미술관 순례를 통하여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섭렵하면서 발견하게 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예술적 재능과 테크닉을 장착하고 나온 인물은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초기의 어설프고 설익은 작품을 그리던 시기가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부은 과정이 있으며, 그 이후에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예술성이 만개하여 각기 예술인생의 정점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히타이트는 화가에 대한 이러한 정의가 사실에 부합된다고 확신했다.

어느 누구라도 인정하리라 믿는 바, 에곤 실레는 인물화나 누드화와 별개로 자연 및 도시 풍경화 부분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는 화가였다. 그런 관점에서 히타이트는 1911년에 제작한 풍경화 작품들은 이후 만개한 체스키 크롬루프 풍경화의 기초를 닦은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Dead CityⅢ(City on the Blue River Ⅲ), 1911, oil, opaque color on wood [Formerly Collection Fritz Grunbaum]

 

1910년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체스키 크룸로프(크루마우)에서 장기 체류하였으며, 그때 실레는 표현주의 화가였던 친구 Erwin Osen(에르빈 오센, 1891~1970) 및 Anton Peschka(안톤 페슈카, 1885~1940)와 함께 여름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태어난 이 도시는 중세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실레가 그 풍경을 즐겨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지붕의 어두운 흙빛 톤은 이끼처럼 창백한 흰색 집 벽을 덮고 있으며, 주택가를 둘러싸고 있는 시원하고 검푸른 물 표면에 의해서만 깨어나는 듯이 묘사되어 있다. 모티프를 캔버스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Schiele는 높은 성이 세워져 있는 곳을 선택하여 블타바 강변에 밀집되어 있는 집들의 구조를 묘사해 낸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의 빨래를 비롯한 몇 가지 흔적은 인간의 부재를 더욱 날카롭게 대비시키고 있으며, 모티프인 죽은 도시는 외로움과 고립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Stein on the DanubeⅡ, 1913, oil on canvas, 91.5 × 91.5 cm

 

1911년 풍경화는 어딘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1913년에 제작된 풍경화에서는 에곤 실레만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미학이 피어난 인상을 준다. 히타이트가 느낀 그런 세련된 풍경화는 다뉴브 강의 중세 도시 슈타인(Stein)을 모티프로 그린 작품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레는 반대편 강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나 이 경우처럼 그 뒤에 솟아오른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선호하였다. 하지만 실레는 슈타인의 특징적인 건물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고 재배열함으로써 실물을 필사하듯 재현하는 기존의 풍경화와 거리를 멀리 하였다. 바꿔 말해서 그는 특징적인 건축 요소를 구성함으로써 도시의 초상화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이 콜라주 같은 모티브에서 강조되는 것은 전경에 있는 Minorite Monastery의 정사각형 구조인데 실제로는 Frauenberg 교회 바로 옆이 아니라 동쪽으로 300m 떨어져 있다고 한다.

 

The Small Town Ⅱ, 1913, oil, pencil on canvas

 

하지만 에곤 쉴레가 풍경화 작업 품질을 만개시킨 곳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체코 크루마우였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오스트리아 다른 어떤 도시보다 그의 어머니의 출생지인 체코 남부 보헤미안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크루마우)에서 큰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크룸로프를 휘감아 돌아가는 강이 블타바인데 그 강이 프라하 성아래 평지를 가로지르는 사실도 히타이트에겐 놀라운 깨달음(인식)이었다. 그가 다녀왔던 프라하가 크룸로프와 그렇게 연결되고 또 크롬루프는 에곤 실레를 매개로 하여 비엔나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은 현장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아니 크룸로프 골방이었나? 암튼 에곤 실레가 실내에서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실레는 부분적으로 식별 가능한 개별 건물을 수평으로 어두운 수면 기슭에 줄지어 세워놓았다. 1912년 하반기, 실레는 위태로운 재정 상황에 봉착해 있었는데 그 여파로 두 조각의 캔버스를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실레는 작품을 제작할 때 이음매 부분에 블타바 강둑을 배치하고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House Wall on The River, 1915, Oil on canvas, 109.5 × 140 cm

 

히타이트가 들여다보는 각각의 풍경화는 모두 동일한 크루마우 마을을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든다. <강 위의 집 벽(House Wall on The River)>도 체스키 크룸로프(크루마우)의 모티프를 반복사용한 작품이었다.

 

그림은 블타바 강 왼쪽 기슭에 있는 옛 성 유도크 교회(Saint Judoc)의 정면을 보여준다. 갈색 색조의 정면과 물의 표면은  극도로 평평한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빛을 반사하는 닫힌 창문과 소박하게 칠해진 세탁물 조각은 크루마우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주고 있다.

 

House with Shingle Roof, 1915, Oil on canvas, 110 × 140 cm

 

1915년 작품 <널빤지 지붕이 있는 집(오래된 집 II)>은 오늘날까지 체스키 크룸로프(크루마우)에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작품에도 등장하는 빨래조각들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색깔로 번쩍이는 빨래 아래쪽 가장자리에 늘어선 나무들은 삶과 쇠퇴의 상징으로 변하는 집의 초상을 위한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다. 

 

스케치들

 

Crescent of HousesⅡ(Island Town), 1915, oil on canvas

 

이 작품은 "섬 마을"을 주제로 한 풍경화로, 반원 모양으로 나열된 집군락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서 실레는 섬의 건물들이 서로 반원 형태로 배열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집 군락 그 자체로 이루어내는 기하학적이고 규칙적인 구조가 돋보인다. 건물들은 섬의 중심을 감싸는 듯한 구도를 보여주는데 그 때문인지 전체적인 형태에 균형과 리듬감을 부여해주고 있다.

 

Crescent of HousesⅡ(Island Town), 1915 [detail]
Crescent of HousesⅡ(Island Town), 1915 [detail]

 

구조뿐만 아니라 집과 도로와 나무들을 표현해 낸 색감의 아름다운 조화가 인상적이어서 히타이트는 여러 장의 세부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Krumau on the Vltava(The Small TownⅢ), 1914, oil, black chalk on canvas
Krumau on the Vltava(The Small TownⅢ) [detailed]
Krumau on The Vltava (The Small Town IV), 1914, Oil, black chalk on canvas, 99.5 × 120.5 cm

 

현장에서 찍은 설명 딱지와 레오폴트 뮤지엄 online 전시관의 넘버링에서 차이가 있다. <블타바의 크루마우(작은 마을 IV)>과 < Krumau on the Vltava(The Small TownⅢ)>은 같은 작품일까 아니면 다른 작품인 것일까? 히타이트는 그 차이점을 찾아내려는 듯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이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라는 생각에서 중단해 버렸다.

 

암튼,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평면적 구성 스타일의 주택 풍경은 크루마우(Krumau)의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 언덕 맞은편을 그린 것이다. 

 

Round Table, Poster for the 49th Vienna Secession Exhibition, 1918, Lithograph on paper, 68.5 × 53 cm

 

이 포스터는 지금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 걸려있다.

3월 초순까지는 순회전시 차 한국에 있을 예정이다.

 

에곤 실레는 1918년 3월 1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된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를 위해 이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포스터의 제일 위에 있는 인물이 에곤 실레 자신이다. 이 그룹 쇼에서 Schiele는 게오르크 메르켈(1881~1976), 안톤 파이스타우어(1887~1930), 알베르트 파리 귀터슬로(1887~1973), 알프레드 쿠빈(1877-1959) 및 펠릭스 알브레히트 하르타(1884-1967) 등 동료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포스터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있는 자신을 그렸다.

 

그림의 아래쪽 가장자리 중앙에 인물이 누락된 자리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앉았을 장소다. 하지만 그는 1918년 2월 6일 뇌졸중으로 사망했고 실레는 전시 포스터의 빈 의자를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비롯한 그의 세대 많은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클림트에 대한 존중과 함께 그가 남긴 공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전시실 옆방.. 미술관련 행사를 준비 중인 듯한 장면이다.

 

위 스크린에 띄운 오른쪽 사진은 에곤 실레와 빌리 노이칠이 연인사이였을 당시 찍은 사진이다.

저 사진도 친구가 찍은 것일까?

MQ지구 벤치에서..

 

 

히타이트, 딸의 모습을 보니 감상에 진이 빠진 듯해서

쉬어가기로 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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