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미술관 순례

서유럽 여행 -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 (4) / 에곤 실레에 빠지다

hittite22 2025. 1. 26. 10:45
728x90

 

 

 

(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The Hermits, 1912, oil on canvas, 181 × 181 cm

 

"이 그림은 앉아있는 자세이네.. 뒤에 있는 남자가 누구로 보여?"

"앞의 남자가 에곤 실레란 말이죠? 그럼 뒤에 서 있는 남자의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는 인물이거나 아니면 생김새로 보아 그의 스승 구스타프 클림트 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 잘 봤군. 작가가 스스로 밝힌 게 없어서 평론가들도 추론할 뿐인데. 대개 3 사람이 후보로 거론되지."

딸은 더욱 그림에 집중하는 듯했다.

"그게 누군데요?"

"네가 두 사람은 맞췄어. 1)실레 자신, 2) 스승 클림트, 그리고 3) 그의 아버지 아돌프 실레."

"아. 그 매독으로 죽었다는.."

"그래.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맞을 것 같아."

"어째서요?"

"그가 그린 다른 그림에서도 스승을 저렇게 묘사하였거든. 사실 클림트를 닮았지 않니?"

"음.. 곱슬머리에 털북숭이는 클림트와 비슷하게 보이긴 해요." 

 

<은둔자(Hermits)>라는 제목의 이 그림도 이중초상화라 할 수 있나?

히타이트가 보기에 갈색과 검은색 로브를 입은 실물 크기의 두 남자는 마치 연인처럼 느껴졌다.

둘은 마치 하나의 옷으로 융합된 듯한 모습이다.

 

Nude Self-Portrait. Study for the "Sema" portfolio, 1912, india ink on paper

 

"누드 자화상인데, 멍한 표정이군.."

"그래요?"

"아닌가? 똘끼가 있어보이는 인상인가?"

"이해해요. 사람들은 에곤 실레의 작품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 나는 어떤 한국 젊은이가 실레의 작품을 보고 작가인 그를 가리켜 미친놈이라는 걸 듣기도 했어."

 

Mourning Woman, 1912, oil on wood, 34 x 42.5 cm

 

"이것도 이중초상화이네.."

"어디요? 또 한 사람은 어디 있어요?"

"못 보았구나. 왼쪽 꼭대기에 비스듬히 쳐다보는 남자 얼굴이 있잖니.."
"아~" 

 

보이니? 관객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남자 머리..

 

"남녀 모델은 누구일까요?"

"제작된 해(1912)로 보아서 여자는 빌리 노이칠로 여겨지고, 남자는 에곤 실레 자신이겠지."

"그러고 보니 빌리를 닮은 인상이네요."

 

앞선 이중 초상화가 에곤 실레와 스승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그린 것이라면 이번 그림은 연인관계였던 두 사람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레의 표현력이 풍부하게 드러나 있는 이 그림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여성 모델인 빌리 노이칠의 머리 위로 비스듬히 시선을 던지는 남자. 그의 얼굴의 표정으로 보아 두 사람(에곤 실레-빌리 노이칠)간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하는 설정일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그러하듯 에곤 실레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 가장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히타이트는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화가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에곤 실레를 보면 그런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창피스러울 정도라고 여겨지는 사적인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캔버스에 표현해 놓았던 화가였다. 

 

Caress(Cardinal and Nun), 1912, oil on canvas, 80.5 x 70 cm

 

"음, 이것도 이중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요.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닌듯 하기도 하네요."

"그래, 네 말이 맞을듯. 두 사람이 등장하는 실레의 그림들을 가리켜 이중초상화라 부르는 경우는 드물었어.."

 

매우 위험한 설정

 

히타이트가 생각해도 초상화라고 하기엔 억지스러움이 있었다.

작품 속의 남녀는 추기경과 수녀다. 헉~ 이거 매우 위험한 설정(상황묘사)이 아닌가?

 

두 남녀(수녀와 추기경)의 다리가 가톨릭 복장에서 튀어나와 있는데 이는 뭔가를 암시하는 장치다. 이를 테면, 관습이나 금기사항(가톨릭 사제에게 가해지는)으로도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지 못한다는 팩트묘사... 그런데 충격을 받은 듯한 수녀의 얼굴 표정이 실레의 1912년 <자화상-어깨를 높이 올린->과 유사해 보였다.

 

"이 작품은 무슨 의도에서 그려진 거죠? 실레가 카톨릭에 반감이 있었나?"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레가 자신과 노이칠의 정체성을 추기경과 수녀 그림으로 표현해 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 실레는 노이칠과의 관계를 복잡 미묘하게 생각했던 모양.."

 

Mother and Child, 1912, oil on wood

 

"엄마와 아기를 그린 그림인데 표정이 묘하다. 실레다운 해석이랄까?"

"아, 이건 실레가 엄마에 대해서 가진 감정이 투영된 작품같아요."

"그래?"

"아기는 세상의 본질을 파악해 버린 듯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죠? 근데 엄마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어요. 실레가 엄마에게 가졌던 감정의 일단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네요.."

 

실레의 대표자화상이다.
꽈리꽃 배경 앞의 자화상 - 2025.3월초까지는 한국에 있다.

 

"이 작품을 살려주는 건 뒤에 배경으로 그린 Chinese Lantern Plant, 일명 꽈리꽃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주황색 열매가 달린 식물인 듯해. 중국에서는 "등불"을 의미한다네."

히타이트의 감상평이다.

"그건 순전히 색채적인 느낌에서 하는 말 같은데요?"

한나가 교정을 유도한다.

"그러니? 꽈리꽃을 그려놓은 것에는 다른 의미도 있는 모양이지?"

"실레가 꽈리꽃을 자화상의 배경이나 옆에 배치한 것은 자신의 상반된 감정과 삶의 복잡성을 나타내고자 상징적인 의미로 채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요."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oil and opaque color on wood

 

"그렇군, 나는 이 작품을 보면 빌리 노이칠의 초상화와 한쌍으로 받아들여져."

"아마도 1912년까지는요.."

"그래, 그 후 에곤 실레는 빌리를 버리고 에디트를 선택했으니까."

"빌리는 순진했던 여자였나 봐요."

 

Portrait of Wally Neuzil, 1912, oil on wood

 

"순진했던 여자?"

히타이트는 한나가 한 말을 되뇌며 빌리 초상화를 쳐다본다. 유럽의 백인 여성 중에도 순진한 여자가 있었나? 평소 절대 생각해보지 않았던 면을 딸이 일깨워준 것이다.

"에곤 실레와의 관계를 보면 그리 느껴져요. 심지어 빌리 노이칠은 에곤 실레의 편지 심부름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업무 편지가 아닌 에디트와의 연애편지 심부름요.."

"음.. 빌리는 착한 여자였나 보군."

 

히타이트 생각으로 꽈리꽃 앞의 자화상과 세트를 이루는 작품.

 

히타이트는 두 작품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성 간의 관계는 인간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기 마련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 그런데 실레의 자화사은 오일과 불투명 수채로 그려진 것으로 명기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오일만으로 그렸다고 되어 있다. 맞는 건가?

 

암튼, 히타이트가 실레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보기 전까지 이 노이칠과 실레의 자화상이 그의 대표작이고 당연히 두 커플이 좋은 관계로 맺어졌을 것으로 추정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그릴 때 실레의 심정은 어떤 편이었을까? 두 자화상을 마치 한 세트처럼 그린 듯한데... 그 사람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지. 빌리 노이칠은 에곤 실레와 헤어진 후 1차 세계대전에 간호사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Woman in Black Stockings(Wally Neuzil), 1913 [private collection]
Edith Schiele with Striped Dress, Sitting, 1915, pencil and gouache on paper, 50.8 × 40.2 cm

 

"에곤 실레의 아내가 된 여성이군. 참하게 생겼는데?"

"그럼 뭐 야하게 생긴 여잔 줄 알았어요?"

"에곤 실레가 워낙 튀는 녀석이라서 감을 잡지 못했지."

 

Edith Schiele with Striped Dress, Sitting [detailed]

 

"에디트 하름스는 어떤 여자였을까?"

히타이트가 궁금증을 표하니 그의 딸 한나가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Edith Harms(1893~1918)는 Egon Schiele(1890~1918) 스튜디오의 길 건너편에 있는 Hietzinger Hauptstraße(히칭거 하우프트슈트라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대요. 에곤 실레가 1912년 한쌍의 초상화를 그린 2년 후인 1914년에 실레와 그의 이웃 Edith Harms 사이에 낭만적인 관계가 태동되었고 1915년 6월 군 입대 직전 실레는 중산층의 딸인 에디트와 결혼에 골인해요."

"그럼, 빌리 노이칠은?"

"에곤 실레가 퇴짜 놓은 거죠.."

"유감이군."

히타이트가 진심을 담아 말한다.

"하지만 에곤의 결혼생활은 불과 3년 만에 끝나요. 두 사람 모두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이 아닌 스페인 독감에 희생되는데, 에디트 실레는 에곤 실레보다 3일 앞선 1918년 10월 28일, 임신 6개월 만에 사망하고 말죠."

"오 이런~ 스페인 독감이 무서운 유행병이었구나.."

 

Mother and Child, 1914, pencil and gouache on paper
Mother and Child-detailed

 

"그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적어도 빌리 노이칠은 아니겠네."

"아마도요.. 빌리라기 보단 에곤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오, 그럴 수 있겠군."

 

하지만 해설서를 보니 히타이트의 판단이 틀린듯하다. 빌리 노이칠을 모델로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연필과 구아슈의 혼합 기법을 사용하여 그렸는데 그 순서는 먼저 연필로 기본적인 형태를 그린 다음 그 위에 구아슈로 색을 추가하여 감정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날카로운 선과 인물의 왜곡된 형태는 에곤 실레의 전매특허에 다름 아니다.

주황색은 감정의 깊이와 내면의 에너지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선택된 것으로,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복잡한 감정전달에 효과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Blind Mother, 1914, oil on canvas, 99 × 120 cm
Blind Mother, 1914, oil on canvas

 

"실레는 1914년도에 어머니 그림을 많이 그렸던 모양이군."

"또 어머니와 아들 그림이네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특이한 자세는 Auguste Rodin의 조각품 <Crouching Woman>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에곤 실레의 신체왜곡 특이성에 의해 채택된 자세인 줄로 알았는데 로댕의 작법을 차용한 것이었군."

"지구별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니까요."

 

Rear View of a Female Half-Nude with Cloth(Fragment of Conversion II), 1913, Oil on canvas, 192 × 52.5 cm

 

1913년, 에곤 실레는 그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long size의 그림인 만남(Encounter)과 전환(Conversion II) 두 장을 그렸다. 저 신체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긴 여성 누드 작품은 현재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Still Life with Books(The Artist’s Desk), 1916

 

Self-Portrait, 1915, pencil on paper
Russian Prisoner of War, 1916, recto: Pencil, gouache on paper, verso: Pencil on paper, 46.5 × 30.5 cm

 

에곤 실레는 군 복무를 어떻게 하였는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대상이었고, 실레도 군복무를 하였다. 그는 군 입대를 하였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처음 에곤 쉴레는 선천적 심장 질환으로 인해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 그러나 1915년 봄, 복무 적합 판정을 받고나서, 이땐 이미 Edith Harms(1893~1918)와 결혼한 상태였는데 보헤미아의 노이하우스(현재 Jindřichův Hradec)에서 기본 훈련을 받고 전장에 투입되었다. 전쟁 당시 그는 도시 방어를 구축하고 겐세른도르프와 비엔나 사이에서 러시아 전쟁 포로 수송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위의 작품은 1915년 후반과 이듬해에 오스트리아 남부의 뮐링(Mühling) 마을에 있는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복무하는 동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레는 이반 이브티노비치 타라신코(Ivan Ivtinovitch Tarasinko)라는 남자의 초상화처럼 잊혀지지 않는 죄수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그렸다. 실레의 이 작품에는 도움과 절망감으로 얼룩진 수감자의 초상이 드러나 있다.

 

One-Year Volunteer, 1916, Pencil, gouache on paper, 48.2 × 31.4 cm
꿋꿋하게 서서 인증샷을 찍는 딸의 모습

 

딸이 인증샷을 찍으려 포즈를 취한 대형 작품.

폭방향 길이가 171cm이니 거의 사람 키와 맞먹는 사이즈이다. 즉 실물 크기의 누드화이다.

 

Recling Woman, 1917, oil on canvas, 96 × 171 cm

 

은밀한 부분을 덮은 천 조각은 아무리 보아도 작위적인 느낌이 묻어 나온다. 가린 게 나은 선택이었을까 오픈시켜 버리는 게 더 인상적으로 보였을까? 히타이트 조차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듯싶었다. 그녀의 넓게 펼쳐진 다리 자세로 상기시켜 주는 관능미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투영시키는 듯하다.

 

작품 <누워 있는 여인>은 제작된 시기로 보아 분명 그의 아내 에디트 실레를 모델로 삼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러한 전제에 일치하지 않는 한 가지는 머리형태이다. 이 그림은 1918년 봄 제49회 비엔나 탈퇴 전시회에서 공개되었다.

 

Two Squatting Men(Double Self-Portrait), 1918(unfinished),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ree Standing Women(fragment), 1918(unfinished), oil on canvas, 101.5 × 108.7 cm

 

Portrait of the Klimt, 1918

 

그의 스승 클림트가 사망한 모습을 에곤 실레가 스케치한 것이다.

미술에 대한 광기를 느끼게 하는 듯..

 

Edith Schiele, Dying, 1918

 

그보다 3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인데, 죽어가는 상태의 모습을 에곤 실레가 스케치로 남긴 작품이다. 

어떤가, 예술에 대한 광기가 느껴지지 않나?

 

 

 

 

(계속)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