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이에 피나코텍 개요
- 정식명칭 : Neue Pinakothek(새로운 회화관)
1) 주요 전시정책
- 모토 : "터너에서 반 고흐까지".
- 유럽 최초의 현대 미술 박물관의 컬렉션에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아르누보, 인상주의, 나사렛 파의 주요 작품과 모더니즘의 위대한 선구자 마네, 세잔, 반 고흐가 포함.
2) 건축
- 1981년, Friedrich Gärtner und August Voit(프리드리히 가르트너와 아우구스트 포이트)
3) 입장료
- 일반 9유로
- 할인 6유로
- 일요일 1유로
4) 개관일
- 화요일~일요일 : 오전 10시~오후 6시
- 수/목요일 : 오전 10시~오후 8시
5) 휴관일
- 월요일
2.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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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알테와 모던, 그리고 노이에가 어깨동무하듯 자리 잡고 있는 뮌헨 미술관 클러스터에는 넓고 반반한 잔디광장이 초록초록하게 펼쳐져 있다. 히타이트는 그 잔디밭 사이를 걷다가 독일 젊은이들처럼 잔디에 누워 뮌헨의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도 가졌다. 어떤 책 한 권으로 폭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한국 승려 혜민 씨.. 가 말하였듯이 멈추면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걷다가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고 더 나아가 누워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도시에도 잔디가 있어야 한다.
갤러리가 있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얘기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그래도 다음 세대에는 이런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감에 따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왜 미술관이 있어야 하고, 미술관이 있으면 어떤 merit가 생기는가?
그런 물음을 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지.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상을 살아가다가 머리가 복잡해질 때, 마음이 답답할 때, 뭔가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할 때 미술관으로 가서 세상일과 인간사의 시름을 내려놓고 색과 형상과 또 그것들의 강약이 조합되어 보여주는 미학에 마음의 위안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고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오는 인간들에게 새 힘을 주고, 그 인간이 거주하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히타이트가 생각하는 미학이다.
작품감상
Marino Marini作, Miracolo, 1960..
작품제목은 기적(Miracolo)이고 말과 기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글쎄 내가 보기엔 안 그런데..
히타이트는 노이에 피나코텍 입구의 조각작품을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갔는데(회화감상이 우선이므로), 귀국한 다음 인터넷 검색으로 작품확인을 하니 오른쪽에 말의 머리가 있는데 거의 땅바닥에 고꾸라진 형태다. 기수는 등을 뒤로 젖힌 채 간신히 낙마를 모면한 상황인 듯-그래서 <기적>이라는 제목이 추출된 듯하다.
작품 해석이 안 되면 제목을 보고 다시 이해를 도모하도록 하자!
노이에 피나코텍에서 작품감상 스타트 지점은 피카소다.
유럽 미술관을 돌아다니면 무슨 형태로든 피카소를 만나게 된다. 회화든, 스케치든, 조각이든.
히타이트는 점점 인정하여야 되지 않겠나 하는 심리가 된다. 백인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피할 수 없는 존재가 피카소다.
그렇게 피카소를 만나고 나오니 히타이트를 반기는 인물이 있다.
"어서 와, 한나의 애비 히타이트야."
클로드 모네가 한나를 앞세워 히타이트를 반기는 게 아닌가.
'아, 한나가 애정하는 화가가 모네 씨랬지.."
'수련 하나로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화가라고 해야 하나?'
히타이트가 아는 아티스트 클로드 모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파화가이다.
그는 '인상파'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인물일 뿐 아니라 인상파 화가들이 온 동네를 주름잡던 시절, 그림친구 르누아르와 함께 프랑스의 미술적 위상을 한껏 고양시킨 존재가 아니던가.
물론 히타이트도 인정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세잔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할 수도 있고, 점묘화가 조르주 쉬라나 종합주의 화가 폴 고갱을 더 애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 히타이트의 딸 한나가 모네 그림을 애정한다는데..
다른 말이 무슨 필요가 있나?
히타이트는 동행한 딸의 사진 찍는데만 열중인, 데리고 온 '찍사'처럼 처신하지만 은근히 그림감상에 진심인 남자였다. 딸과 소통을 하지 않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자신만의 감상나래를 펼친다.
'이 매끈한 조각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관능미? 혹은 지성미?
작품의 모델인 엘사 아제니예프(Elsa Asenijeff)는 화가 Max Klinger(막스 클링거)의 파트너이자 오스트리아의 저술가라고 한다. 오, 화가와 작가의 러브스토리?'
화가이자 조각가인 Max Klinger(막스 클링거)를 만난 엘사는 클링거의 모델이자 뮤즈이자 연인이 되었다. '뭐, 유럽 여인들이 화가와 사랑에 빠지는 기본 공식이지. 하지만 클링거는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다네. 비겁한 놈이었군.'
그렇지만 클링거는 유명한 음악 지구에 있는 그녀의 값비싼 아파트를 사줬고 그녀와 수많은 여행을 다녔으며 사교행사에서 엘사는 안주인으로 일했다.
'미스터리 한 커플 아닌가, 얘네들은...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더 파헤쳐봐야겠어...'
"어딘지 알프스 냄새가 나는 그림인데?"
처음 보는 작가의 그림 앞에서 히타이트가 특유의 설레발을 친다.
"이태리 화가네요,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활약한.."
"맞군, 이태리 북부이자 알프스 남부지역. 어쩐지 풍경이 멋지다 했어..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해서 그런가?"
"이 작가의 작품이 탄생하기 전인 1880년대에 롬바르디아는 분할주의 또는 점묘주의 그림의 발원지로 이탈리아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대요. 그렇게 하여 1890년대에 이르러 성취되었다는 분할주의라는 게 뭘까요?"
히타이트는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분할주의?
"아.. 점묘화와 비슷한 얘기로구나. 점묘화는 알지? 점으로 찍어 사람과 풍경을 묘사하는 기법.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거 누구냐,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린 조르주 쇠라가 대표화가잖니."
"알아요. 어렵게 해석할 거 없이 점묘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어요. 그런데 위의 풍경화를 보아서 점묘화라고 생각하기 힘든데.."
"글쎄다. 저 그림과 분할주의를 등치 시켜야 하나? 암튼, 분할주의자인 세간티니는 1886년부터 보색 값을 위해 별도의 붓질을 사용하여 색상을 분할하는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했다고 하네. 해설판을 더 읽어볼까? '그의 예술은 산의 빛에 집중했고, 이는 그에게 선호하는 주제를 제공했으며 그는 이를 강력한 상징주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드러내었다..' 이런, 해설을 읽으니 더 헷갈리네.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자."
"페르디난드 호들러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째서 피곤에 찌든 5명의 노인을 그렸을까?"
"뭐, 관심 기울일 없이 그냥 보고 지나가면 되죠.."
"그렇긴 한데.. 다섯 노인 중에서 가운데 앉은 노인이 가장 피곤에 쩔어 있네. 떡실신 일보직전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왜일까? 가장 나이가 많아서?"
"..."
딸이 무반응이자 히타이트는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지나간다.
'어쩌면 혼자 겉옷을 입지 않은 모습의 노인은 작가가 생각하는 '인생 자체가 고해이고 괴로움의 연속'이라는 명제을 은유하는 것일 수도. 그렇다면 페르디난드 호들러는 서양인 답지 않게 동양문화 친화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걸?'
딸이 뭔가를 열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드러났다.
뭐지?
클림트의 작품을 보고 있었나?
히타이트의 동행인 둘째 딸이 한참이나 자리에 서서 감상하던 전시실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그렇다면 둘째가 마냥 죽대리며 그림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걸 이해해 줄 수 있는 거지. 클림트의 작품 <Music>에도 예의의 그 금색 잔치가 흐드러지게 펼쳐지고 있었다. 히타이트는 클림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기 전, 그의 작품이라 하면 그저 캔버스에 금색을 처발라 왼통 번쩍거리게 만든 괴짜화가로만 생각했었다.
딸이 그림감상 삼매경에 빠져있는 동안, 히타이트는 궁리질을 이어갔다.
어쩌면 클림트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라면 '금빛의 재발견'이라 할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금색을 회화 작품에 도입할 수 있었는지. 당시 유럽 사람들은 상상도 못 했던 시도를 클림트는 해낸 것이다. 그런데 사실 금색칠은 클림트의 독창성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보고 체험해 왔던 삶의 일부분이었으니까. 그는 단지 일상의 노동을 그림으로 치환했던 것뿐이지. 암튼,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금빛은총을 누리는 복 받은 자들이 된 것이고..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칠하는 하드웨어적 성과 이외에 작품 <음악(Music)>에서 사실적인 묘사를 은유적인 이미지로 대체하는 상징주의 스타일을 펼쳐 보였다. 와우~ 음악이라는 추상명사를 그림으로 그리다니. 그리고 정식으로 작품 제목으로 뽑아내다니. 대단한 자신감이야, 이건.
캔버스 <뮤직>에는 음악에 대한 우화적 표현이 가득하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여성과 작은 U자형 하프가 등장하고, 오른쪽으로는 예술적 자유를 상징하는 '스핑크스'가 그려져 있다. 왼쪽, 여인 뒤에는 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 술의 신으로 등장하는 디오니소스(Dionysus)의 동반자 실레노스(Silenus)의 가면이다. 이 모든 것이 클림트가 해석한 'Music'이다.
클림트는 거의 난봉꾼 수준으로 여자관계가 많았다던데. 복잡(양다리, 문어다리) 한 것까지는 모르겠고 모델이 된 여성 대부분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다니니까.
그런데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여인, 마가렛 "그레틀" 스톤버러-비트겐슈타인(Margaret "Gretl" Stonborough-Wittgenstein, 1882~1958)! 그녀는 비엔나의 부유한 비트겐슈타인 가문 출신으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의 자매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클림트와 쉽게 관계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해 보는 히타이트. 뭐, 그게 중요한 건가?
이 초상화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자신의 중요한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Stonborough-Wittgenstein의 결혼식을 위해 그렸던 작품이었다. 1960년 그녀의 아들 토마스가 작품을 팔았고, 그로 인해 오늘날 뮌헨의 Neue Pinakothek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클림트의 원본 작품을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아닌 지역에서 감상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므로 이런 내력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주요 작품을 한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와우~(일론 머스크식 감탄사)
히타이트는 기억한다.
몇 년 전 빈센트 반 고흐 작품전시회 주관차 한국을 방문했던 고흐의 손녀가 했던 말.
"우리 할아버지 그림은 다른 화가들과 확연히 달라요.."
그녀의 자부심에 찬 평가에 100% 동감했던 히타이트, 또 하나의 확실히 다른 그림을 남긴 화가를 소개한다.
"바로 에곤 실레지."
1912년 에곤 쉴레가 제작한 <고통>은 표현주의의 정수를 담은 유화작품이다.
히타이트가 애정하는 화파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다. 미술에 눈을 뜨는 걸음마 단계라서..
암튼, 이 작품은 표현주의 운동의 특징인 정서적 강렬함, 그리고 문체적 요소를 생생하게 포착해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히타이트도 인정!
<Agony>는 포옹으로 얽힌 두 인물을 묘사한 작품인데, 실레의 미술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다.
실레의 스타일이란, 왜곡된 팔다리로 묘사되는 인체!
실레가 창작해 낸 작품 속 인물의 몸은 거의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렌더링 되어 조각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색상의 사용은 강렬하고 극적이다. 작품 <Agony>에서는 빨간색, 주황색, 갈색, 녹색의 배열이 전체적인 감정 표현에 기여하고 있다. 얼굴과 손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렌더링 되어 그림 제목과 같이 '고통스러움'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고통과 취약성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초대받는 것이다.
청동 조각품, Aimé-Jules Dalou(에메 쥘 달루)의 The Great Peasant, 1897/1902.
농사를 위해 돌을 깨는 농민을 묘사한 청동 조각품이다. 발 사이에 곡괭이를 들고 돌이 깔린 땅 위에 서 있는 농부의 머리는 구부러져 있다. 농민 복장과 나막신을 착용하였는데 히타이트가 보기엔 신사처럼 보였다. 이런 생뚱맞음이라니!
이 작품은 원래 Dalou의 미완성작인 Monument aux Ouvriers(노동자 기념비, 길이 32m) 중에서 왕관을 장식할 농민의 모형이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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