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미술관 순례

서유럽 여행 -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3) / 구스타프 쿠르베

hittite22 2025. 1.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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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Max Liebermann (1847-1935), Dutch Landscape of 1912, 1912, oil on canvas, 66.5 x 81.3 cm

 

"인상파 화가의 정점에 해당하는 작품을 보고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네. 미션 완수한 느낌이랄까.. 근데 막스 리버만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화가인데?"

히타이트는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탁 하고 무릎을 친다. 

"아, 슈테델에서 이 화가의 작품을 본 기억이 나"

 

Break Time in the Amsterdam Orphanage, 1881/82, oil on canvas, 79 x 108 cm [출처 : PutHist]

 

"바로, 이 작품..

슈테델에서 놓치지 말고 봐줘야할 작품 list에 올라갈 정도이지.."

"그런 목록표가 있었어요?"

한나가 묻는다.

"으응,, 공식적인 건 아니고 내가 자의적으로 만든 list.."

 

Adolph von Menzel, Living Room with the Artist’s Sister(Menzel의 여동생이 있는 거실), 1847, oil on canvas, 18" x 12.5"

 

"아돌프 폰 멘젤(1815-1905).. 처음 듣는 화가이름이군.."

"독일화가네요."

"그래, 독일화가들이 유럽에서 국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족적을 많이 남기지 못했지. 중세회화라면 뒤러 정도, 그리고 근대에 와선 아우구스트 마케 정도.. 아, 내가 알고 있는 기준으로 볼때 그렇다는 거지."

"그런데 이 멘젤이라는 화가, 독일 내에서는 꽤 인정받는가 봐요."

"어디 볼까? 음,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와 함께 19세기 독일 미술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고? 나는 프리드리히도 모르고 멘젤도 모르니.. 암튼 좀 더 보자. 프리드리히는 자연의 낭만적 힘을 믿었고 반면에 멘젤은 사실주의를 신봉하여 세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네..."

"그래요? 일반적으로 독일 국민성이라 하며 낭만주의 보다는 사실주의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아,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네.. 독일은 에술보다 과학이 발달한 나라니까..암튼 이렇게 해외 미술관을 순레하다보면 평소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화가들 작품을 보며 시야를 확장하는 기회를 얻게 되지.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

히타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나가 덧붙인다.

"멘젤의 이 작품은 조용한 저녁시간의 분위기를 잘 포착한 듯해요. 외부에서 눈에 띄지 않는 부위는 톤다운된 색상을 칠했고, 그에 더하여 선택적으로 빛나는 조명을 입혔네요. 그게 포인트 인듯." 

 

멋진 감상평을 남긴 딸이 전시실을 옮겨간다..
작품명 수배 중
Reinhold Begas作, Venus and Amor, 1864, bronze, 55.8 x 41 x 33.5 cm
오~ 비너스가 꼬맹이 큐피트를 희롱하는겨?

 

"아녜요. 위로하는 것처럼 보여요.."

 

멋진 풍경화..
휴식 time..

 

딸은 주요작품 감상을 마쳤다고 생각하는지 소파에서 휴식 중이다.

히타이트는 혼자 감상신공을 발휘한다.

 

조각 한 점 보고..
딸의 동태 한 번 살피고..

 

사진으로 보며 다시 확인하는 건데

노이에 피나코텍, 전시실 색상 세팅이 깔끔 세련되었다.

 

Hans von Marées (한스 폰 마레즈, 1837-1887)作, Self-portrait, around 1870, oil on canvas, 72 x 54.8 cm
Hans von Marées(한스 폰 마레즈)作, Adolf Hildebrand, um 1868, Oil and tempera on canvas, 49 x 37.6 cm
Hans von Marées(한스 폰 마레스, 1837-1887)作, Marées와 Lenbach의 이중 초상화, 1863, oil on canvas, 54.3 x 62 cm

 

딸의 휴식 중 히타이트는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처음 접하는 화가의 초상화 3점을 감상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만난 초상화 한 점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스 폰 마레스의 이중 초상화를 보니 떠오르는 화가 한 사람이 있네.."

"누구요? 혹시 데이비드 호크니?"

"그래. 호크니가 이중 초상화를 시리즈처럼 연달아 그렸었잖니. 물론 동성애자를 주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러고 보면 호크니가 이전 화가들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은 모양이에요.'
"내말이.."

 

그것은 미술관 순례를 하면 자연스럽게 깨치는 지식이요 진실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 영향을 받고 그렇게 화가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받아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화가는 또 다시 후대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Robert Macaulay Stevenson(로버트 맥컬리 스티븐슨)作, Mondaufgang, um 1893
Rudolf Hirth du Frênes (1846-1916), The Painter Carl Schuch, 1878 (?), oil on canvas, 69.4 x 50.3 cm

 

"이 남자는..."

"왜요?"

"배우 한석규를 닮았구나.."

 

Franz von Lenbach(프란츠 폰 렌바흐)作, Ignaz von Döllinger, 1874

 

요한 요제프 이그나츠 폰 될링거(1799~1890).

그는 독일의 신학자, 가톨릭 사제, 교회 역사가로 교황의 무오성 교리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여기서 무오성이란 '오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성서는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이므로 문자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신학적 주장이 바로 무오성 교리인데 그걸 담대하게 거부했었군. 체코의 후스같은 존재인 모양이다..'

 

 

아기가 등장하는 그림 앞에 섰다.
August Riedel(아우구스트 리델, 1799~1883)作, A Mother from Alvito(알비토의 어머니), 1848, oil on canvas, 76 x 60 cm
앞선 아기 그림을 그린 화가의 또 다른 작품
August Riedel (1799-1883), Felice Berardi from Albano, 1842, oil on canvas, 75.2 x 61.2 cm

 

여성스러운 그림으로 딸의 관심을 끌었던 화가 요한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리델(Johann Friedrich Ludwig Heinrich August Riedel)은 경력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낸 독일 화가였다고 한다.

 

Bertel Thorvaldsen(1770~1844), Venus, Mars and Vulcan, c.1810

 

해설.

(해설을 덧붙일만큼 중요작품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미술관 한쪽 구석에서 삼각관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의 애정행각은 박제된 콘돌처럼 화살이 난무하는 부조의 표면에 붙박혀 있다. 큐피드의 화살은 양쪽에서 부조 중앙에 자리한 주인공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향하고 있다. 왼쪽에서 오는 것은 그녀의 남편인 대장장이 신 불칸이 만든 것인데 마치 대장장이가 다루는 불처럼 뜨거운 사랑을 상징한다. 그러나 비너스는 ​​불에 달구어진 쇠를 식히는 냉각수처럼 차갑게 그의 접근을 막아버린다. 화살촉은 물그릇에 식어서 굳어지고 있다.

반면 비너스는 전쟁의 신 마르스(오른쪽 남자)가 자신을 향해 겨누는 화살에 관심을 보인다. 금성(비너스)과 화성(마르스) 사이에는 작은 큐피드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큐피드는 비너스와 마르스 사이에 생겨나는 사랑의 창조자이자 결과라는 이중 역할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비너스와 마르스는 그의 부모이기 때문이다.(오~ 그랬던가?)

 

음.. 삼각관계를 묘사한 부조 앞에서 포즈를..
Ferdinand Georg Waldmüller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발트뮐러, 1793-1865)作, Young Farmer's Wife with Three Children in the Window, 1840, oil on canvas, 84.6 x 67.5 cm

 

그리고 또 아기들이 등장하는 그림이 나타났다. 성향상으로 보아서 분명 딸이 관심을 기울였을 법 한데.. 하지만 딸은 이 그림을 못봤는지 그냥 지나쳤다. 히타이트는 딸이 포즈를 취하지 않은 그림을 혼자 사진에 담았다. 잘한 일이쥐?

 

Gustave Courbet(1819~1877), Landscape near Maizieres, 1865, oil on canvas, 50 x 65cm

 

구스타프 쿠르베의 풍경화이다.

그는 자신의 출생지인 오르낭(Ornans) 주변을 자주 방문했고, 위 작품에서 표현하였듯이 푸른 초원에서 튀어나온 특징적인 석회암 바위가 있는 모티프를 반복해서 그렸다. 푸른 하늘 아래 강한 빛 그림자 효과를 드러내는 지형 구조와 웅장함이 잘 드러나 보인다. 

 

Gustave Courbet (1819-1877), Running Horse, 1861, oil on canvas, 193 x 228 cm

 

쿠르베의 또 다른 작품이다.

한 마리 말이 숲속을 거칠게 내달리는 모습이다.

 

Honore Daumier(오노레 도미에,1808~1879)作, The Drama, c.1860, Oil on canvas. 98 x 90 cm

 

"오, 이건 또 무슨 그림이란 말인가!"

 

캔버스를 살펴보니, 관객이 질투의 장면이 펼쳐지는 무대 위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펼쳐지는 순간인듯 관객 모두가 숨죽인 모습이다. 무대 위에서는 라이벌로 추정되는 배우 중 한 명이 이미 땅바닥에서 죽어 있고, 남자 가해자는 피해자를 제압하는 동시에 공포에 빠진 여자 배우를 위협하고 있다. 조선의 장삼이사들처럼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있네.. 아, 잘못봤군. 머리 정수리쪽으로 칼을 겨누는 것인가? 암튼, 청중은 넋을 잃고 비슷한 레벨로 흥분지수를 경험하는 것 같다. 작가 도미에는 무대 위의 배우들과 무대를 향한 관객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상황의 드라마틱함을 증대시킨다.

 

Honore Daumier(1808~1879), The Drama, c.1860 [detail]

 

Honoré-Victorin Daumier는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였다. 그는 신문과 정기 간행물에 캐리커처와 만화를 제작하며 생계를 꾸렸으며, 이 작품으로 유명해져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그는 풍자에 능했던 공화주의 민주주의자(노동계급 자유주의자)였으며 또한 현실주의와 느슨하게 연관되어 때로는 캐리커처와 미술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진지한 화가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당시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무시당했지만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그를 주목했다. 그 덕분인지 이후 세대는 도미에를 19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식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떠오르던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Karl Friedrich Schinkel(1781~1841), Cathedral Towering over a Town, c.1813, oil on canvas, 94 x 125.6cm

 

이 그림은 칼 프리드리히 싱켈의 원본을 바탕으로 베를린 화가 Karl Eduard Biermann이 그린 사본이다. 싱켈의 작품은 고딕 대성당에 대한 19세기의 열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격동하는 하늘을 배경으로 대성당의 실루엣이 강과 도시 위로 힘차게 솟아 있고, 우뚝 솟은 두 개의 탑에 있는 첨탑, 속눈썹, 게의 세공 모양이 밝은 배경과 풍부한 대조를 이룬다. 싱켈의 작품에서 건축물의 묘사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Joseph Stieler(1781~1858), Johann Wolfgang von Gaethe, 1828

 

요셉 카를 스틸러(Joseph Karl Stieler)의 작품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aethe)의 초상화>를 본다. 히타이트 부녀는 슈테델 미술관에서 젊은 시절의 괴테를 만나고 왔는데

이곳 노이에에서 전성기의 괴테를 마주하는 셈이다.

독일 문학에서 낭만주의 태두로 군림하는 괴테는 우상향 시선처리로 자신의 위상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오디오 서비스를 받으며 작품감상에 진심인 꼬맹이..
Ludwig Richter(루드비히 리히터, 1803~1884)作, Mount Watzmann(바츠만 산), 1824, oil on canvas, 121 x 94 cm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아드리안 루드비히 리히터(Adrian Ludwig Richter)는 독일의 후기 낭만파 풍경화이다. 

바츠만은 베르히테스가덴 마을 남쪽의 베르히테스가덴 알프스에 있는 독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독일 영토에 위치한 것으로는 가장 높다. 세 개의 봉우리 높이는 각각 Hocheck(2,651m), Mittelspitze(중간 봉우리 2,713m), Südspitze(남쪽 봉우리 2,712m)이다.

 

Heinrich Maria von Hess (1798-1863), Marchesa Marianna Florenzi, 1824, oil on canvas, 194.8 x 140.4 cm

 

이 우아한 여인은 뉘신가?

Marchesa Marianna Florenzi (후작부인 마리아나 플로렌치, 1802~1870)는 이탈리아의 귀족, 철학자이자 번역가였다. 백작가문의 딸인 그녀는 19세기 전반 이태리 페루자(안정환이 뛰었던 프로축구팀이 있는 도시) 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한 최초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이탈리아의 민족 운동을 지지했으며 1850년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몇 가지 고찰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그녀의 다른 많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금서 목록에 포함되었다. 그녀는 40년 동안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Ludwig I of Bavaria)의 연인이자 절친한 친구였으며 그녀는 루트비히 1세를 30번 이상 방문했다. 생김새와 다르게 풍운아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이로군...

 

Johann Martin von Rohden (요한 마틴 폰 로덴, 1778-1868)作, Forest Interior (Study), around 1823/24, oil on paper, glued to cardboard, 53.5 x 69.6 cm

 

고만고만한 작품들이 히타이트부녀의 발걸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술사가들은 말하지. 풍경화가 그림의 종속적인 처지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해나가기 시작한 것은 1800년경부터라고.."

느닷없이 히타이트가 나레이터로 변신한다.

"이 시기에 새롭고 사실적인 모티프가 발견되었고 표현을 회화적으로 처리하는 새로운 방법이 시도되었는데, 예를 들면 대자연에 비치는 빛의 효과가 유화 스케치에서 직접적으로 연구되었다는거야. 이 작품은 빌라 치기(Villa Chigi) 공원을 그린 것으로, 빌라 치기는 괴테가 그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 공원의 풍광에 대해 글을 쓴 이후 유명 인사와 풍경화가들의 순례지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곳이야."

히타이트가 장황하게 설명을 마무리짓자 딸이 리액션한다.  

"오, 마치 큐레이터같은 설명이에요. 큐레이터로 전업해도 되겠어요.."

 

Rudolph(Ridolfo) Schadow(1786~1822), Woman Tying Her Sandal, 1817
피나코텍 시리즈 관람을 일사천리로 마무리하는 단계..

 

둘째는 갤러리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히타이트는 슈테델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지만 노이에에서 또 느낀다.

독일인은 갤러리 벽체의 색감을 참 잘 뽑아낸다는 사실을.

 

이제 돌아가는 시간이다.

 

Carl Frederik Holbeck(Holbech)(1811~1880), The Rape of Proserpina, 1843

 

히타이트는 딸을 따라

미술관에 붙어있는 기념품샵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기념품 샵은 들러줘야쥐...
피나코텍 순례가 만족스러웠나요? 미소를 짓는 딸..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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