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해드리는 곳은 동경 메이지 신궁입니다.
메이지 신궁이란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국가기념물인데요, 굳이 비교하자면 단군사당과 등치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살아있던 인간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장소이기 때문에(음, 단군도 실존인물 아닌가? 암튼요..)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공간이라 한 번쯤 돌아보며 우리와 다른 길을 걸었던 그들의 내밀한 속내에 대해서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가시는 길
동경 시내에서 JR을 이용하신다면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에서 하차하시면 바로 뒷편이 신궁입구로 연결됩니다. 지하철을 탑승하신다면 치요다선을 이용하여 메이지진구마에역에서 하차하시면 신궁으로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입장료 : 무료(메이지신궁 정원은 유료 500엔)
개관일 : 연중무휴 05시~18시
진구바시(神宮橋)
하라주쿠 역(메이지진구 마에 역)에서 하차하여 우측으로 꺾어진 곳에 위치한 저 다리를 건너면 메이지진구가 나옵니다. 여기서 메이지진구로 들어가는 다리를 '진구바시라'하는데 저곳은 주말에 일본 청소년들이 코스프레하는 장소로 유명합니다. 진구바시도 명칭은 다리라고 하지만 그냥 도로에서 이어지는 길처럼 기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래쪽으로 철도가 지나기 때문에 일종의 육교다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신궁(神宮)으로
이곳에서는 일본의 122대 왕 메이지(明治)(1852∼1912)과 소헌(昭憲) 왕후를 모시기 때문에 메이지 신궁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메이지는 산업화와 해외 진출을 이룩한 위인으로서 신성시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는 메이지 유신(1868년)으로 자신이 중심인 왕정복고를 이루고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긴 인물입니다. 현대일본, 아니죠 제국주의 일본의 토대를 세운 작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시대에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 대만, 사할린 반도의 남반부를 식민지로 만들어 일본 제국주의의 기틀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메이지 일왕이 다스리던 시대를 '영광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존경심이 보통이 아니죠. 하늘을 찌를 정도라고나 할까? 인상은 아주 더러운 인물이던데...
암튼, 주말이면 이곳 메이지 신궁에서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의 결혼식도 자주 열리는 등,
자기들에게 여러 가지로 친숙하고 살가운 장소로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신궁 안으로는 남, 북, 서참도 그리고 본전으로 가는 정참도의 총 4개의 참배길이 있으며 그 길마다 커다란 도리이가 한 개씩 4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본전의 담장 밖으로 나가는 길목인 동, 남, 서방향으로 소규모의 도리이가 3개, 전부 합쳐서 총 7개의 도리이가 세워져 있습니다.
신궁 단지는 본전과 어원 및 유품 박물관이 있는 나이엔(內殿)과 천황의 삶을 그린 80여 개의 벽화를 소장한 메이지 기념 미술관이 위치한 가이엔(外殿)으로 구분됩니다. 외국인들이라면 기념미술관을 pass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반적으로는 메이지 신궁을 관람한다라고 말하면 신궁 단지 나이엔에 해당되는 구역을 언급한다고 보면 됩니다. 가이엔은 입구부터가 다른데 역시 역시 하라주쿠 주변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기 전까지 저 도리이가 가장 큰 것인 줄 알았습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가장 큰 도리이는 시멘트로 제작한 것인데 야스쿠니 입구에 서 있습니다. 그곳도 가 보았는데 그걸 본 다음 메이지진구 입구의 도리이를 보니 친근감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두 번째 방문하여 보는 입장이니 그리 보이는 것이고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커도 너므 크다는 인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럼 도리이(鳥居)란 무엇일까요?
일본에는 새가 영혼을 하늘까지 전달한다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 배경하에 하늘 천(天) 자 형태의 기둥 문을 만들어 새가 그 위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도리이입니다. 한자어는 그런 뜻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일설에는 엔(円) 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지만 근거는 약합니다.
일반적으로 도리이는 속세와 신계를 구분 짓는 경계, 신성한 곳이 시작됨을 알리는 관문으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그럼 종교 시설물의 하나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메이지신궁 입구에 서있는 저 거대한 도리이는 신궁 내에 있는 또 다른 도리이와 함께 식민지 시대의 대만에서 헌납받은 통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벼락을 맞아 쓰러지자 다시 대만에서 헌납을 받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만은 같은 식민지 조선에 비해 삼림 황폐화가 덜 이루어져 원시림이 비교적 많았다고 하는군요.
산도와 인도와 자갈길
메이지진구 입구의 도리이를 지나면 바로 울창한 삼림 속으로 뚫려있는 산도(參道)가 나옵니다. 너비가 꽤 넓은 편인데 사람들은 가장자리로만 걷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좌측통행의 나라라서 그런지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죄측편길 가장자리로 걸었다.
그럼 산도(參道)는요?
산도의 중앙을 걷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산도의 중앙은 신의 길이므로 사람들은 중앙을 피해서 걷는다는 것입니다. 뭐 외국인은 괜찮지 않나? 그렇긴 한테 일본인들에게 눈총 받으면서 위화감 조성할 필요까진 없으니 서로 평화로운 처신을 하는 게 현명? 아니 합리적일 듯싶습니다.
암튼, 신궁 내에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신궁을 건립할 당시(1920년경)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공수해 와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허걱. 개느므시키들. 지들 나라의 것이 아니라 식민지에서 실어와서 신궁을 꾸몄다고라? 그렇게 소요된 나무가 대략 10만 그루가 넘는다고 합니다. 제국주의 놈들, 장기적으로 100년이면 숲을 이루리라 예상하고 심었다는데 50년 만에 지금과 같은 숲이 이루어졌습니다.
길 가장자리에는 사람들이 통행하는 데 사용하라는 뜻으로 보도블록이 깔려있습니다. 즉, 중앙의 넓은 길은 산도로 내어주고 사람들(일반 참배객, 관람객)은 그 옆으로 나 있는 좁은 길로 통행하는 것입니다. 말 잘 듣는 국민이라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보도블록과 가장자리 사이에는
자갈을 심어놓은 또 다른 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 왼쪽(석등 뒤편)으로 띠처럼 이어지는 자갈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보이시나요?
정식 명칭은 '다마쟈리(玉砂利)'라고 하며, 신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용도는 참배객들이 그 위를 걸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제가 방문했을 땐 그런 목적으로 자갈길을 걷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지방 여행을 가면 산사 입구나 공원 등지에서 건강을 위해 지압하는 용도로 맨발 걷기를 하도록 해놓을 걸 볼 수 있는데 저런 것을 보고 온 공뭔이나 시의원들이 도입(좋게 표현) 또는 모방해서 설치한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좀 기분이 안 좋기는 하지만 대개 일본이 먼저 유행시키면 한국에서 따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그건 지나간 과거(90년대 이전) 이야기인가요?
K컬처를 쏘아 올린 후에 태어난 MZ세대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세상의 주도세력도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아마도 메이지진구에서 행사에 사용하라고 공납한 술통인듯합니다. 다양한 상표로 주조된 일본 술(청주)을 담았던 술통들이 무슨 기념품처럼 길 한쪽으로 도열해 있으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새끼줄로 감싼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에도시대에 술통을 운반할 때(배로 실어 왔기 때문) 상하지 않도록 술통을 묶은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상표를 인쇄한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다른 술과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표를 술통에 표기하였다고 합니다.
독특한 일본 문화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저 술통을 공납한 업체는 아마도 커다란 광고효과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길 우측 편으로 일본 술통들이 진열되어 있다면 좌측 편으로는 오크통, 와인을 담았던 술통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메이지 진구 행사에 사용하라고 공납된 것 같은데 공납자가 일본인인지 서양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저걸 하나하나 읽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귀국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생전에 와인을 좋아했던 메이지 천황을 추모하기 위해 부르고뉴(프랑스 와이너리)에서 기증받은 와인통(ワイン樽)도 있다고 합니다.
메이지신궁 본전으로
남쪽 참배 길과 북쪽 참배 길이 교차하는 곳에는 높이 12m, 폭 17.1m, 지름 1.2m의 거대한 도리이가 서 있습니다. 이름까지 대도리이(大鳥居)입니다. 해발 3,300미터 산에 있던 수령 1,500년이 넘는 노송나무를 베어 만든 것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묘진 도리이(明神鳥居) 중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대도리이를 지나 걸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메이지신궁 어원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저곳만은 입장료를 받는데 당시 500엔.
당연히 돈을 쓰지 않습니다.
입구 근처까지 가보긴 했는데 사람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크기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도리이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손 씻는 장소도 마련된 것이 보입니다. 본전입구에 다가선 것입니다.
남신문 앞에 세워진 도리이인데 도리이 꼭대기 꽃문양은 국화꽃입니다.
저는 남신문 좌우에 서 있는 크고 우람한 나무가 탐났습니다.
도쿄를 대표하는 신사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메이지진구)"은 메이지(明治) 일왕과 왕비 쇼켄(昭憲)을 모시는 곳으로 오랫동안 일본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하츠모우데(初詣参, 새해 첫 참배) 참배객 수는 예년 일본 전국 1위를 기록한다고 합니다.
일본 놈들, 제국주의 영광스럽던 시대에 대한 강한 향수가 남아있는 거겠지요..
정식 명칭은 남신문(南神門)입니다. 이건 뭐 건축물 곳곳에 신(神)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실제로 외배전을 기준으로 좌측에 있는 문을 서신문(西神門), 우측에 있는 문을 동신문(東神門)이라 하고 보물전으로 향하는 곳, 본전 영역 뒤쪽으로는 북신문(北神門)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남신문이 단연 크고 웅장합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메이지신궁은 메이지천황(明治天皇)과 쇼켄황태후(昭憲皇太后)를 모시는 신궁입니다. 양옆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는 두 인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확인하니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우측에 있는 나무는 에마걸이 가운데에 위치한 것으로 부적이나 소원을 기원하는 구역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나무의 명칭이 '夫婦楠(めおとくす)'으로 메이지 부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의 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전(本殿)은 1920년(타이쇼/大正 9년)에 창건되어, 미마사 유조(三間社流造)라고 하는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넓고 휘어진 지붕을 특징으로 하는 궁전입니다. 약 5년에 걸쳐 조영된 창건 당시의 건물은 1945년(쇼와 20년)의 미군의 도쿄 대공습에 의해 대부분을 소실되었습니다. 전후, 일본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기금을 모아 1958년(쇼와 33년)에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마사유조 (三間社流造) 란 일본 건축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설계 방식으로, 주로 "세 간격(三間)"을 기준으로 한 건축구조를 말합니다. 이는 신사 건축 양식의 일종으로, 정면의 기둥이 4개, 기둥간의 간구가 3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본전(외배전) 좌측에 위치한 夫婦楠(めおとくす). 저 나무를 볼 땐 기둥의 모습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엔 기둥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아서 인터넷 사진을 검색하여 찾았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뚜렷하게 두 개의 나무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대부분 저 나무의 유래를 모르는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거나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길래 당시 저는 저 나무의 중요도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부부의 나무는 다이쇼 9년(1920), 신궁을 세울 때 헌목된 2개의 구(楠)로, <인연>, <부부 원만>, <가내 안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구(楠)는 녹나무를 뜻합니다.
에마란 일본 신사나 사원 등에서 소원을 담아 봉납하는, 그림을 그린 목판을 말합니다. 원래 말처럼 생긴 판 위에 소원을 적었는데, 신령에게 소원을 빌면서 마땅히 제물로 말을 바쳐야 할 형편이 되지 못하니 말의 형상만이라도 대신 바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란 저에게 있어서 점괘를 보는 것이나 부적이나 심지어 저런 애교로 보아줄 수 있는 에마까지도 절대 허용불가입니다. 작년 말 사주군인이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할 때에도 군산의 용한 무속인 여성에 대하여 저는 아무런 관심이나 호기심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기피 대상으로 여기거나 혹은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흥미나 호기심으로 한번 경험해 보는 일조차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장본인을 신격화하는 곳에 설치된 에마를 재미 삼아해 본다고요?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적(お守り)과 오미쿠지(おみくじ)는 가구라전(神楽殿) 건너편에 있는 장전(長殿)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뭐, 하는 사람은 하니까요..
구리기와로 시공된 본전 건물입니다. 외배전(外拝殿)에 해당하는 건물로 저곳이 일반인들이 참배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 Limt구역입니다.
저 안쪽으로는 다시 내배전, 폐전, 본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뭐, 별거 있겠느냐만...
메이지진구나 야스쿠니신사나 핵심이 되는 장소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네들이 신격화하는 성스러운 공간인데 저의 눈에 비치기로 <특별한 그 무엇>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변 경관이나 건축물에 혹하여 이곳저곳 둘러보았지만 그곳에 들어가는 일본인들은 무얼 보며 와서 참배를 하고 기리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한국의 궁월에 가도 임금이 국사를 보던 정전 안에 특별히 볼 것은 없고 임금이 앉았던 의자나 일월오봉도, 그리고 천장의 용그림정도나 있을 뿐이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 일본은 더 허당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섬긴다는 신(神)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을 신격화하였고 그 인간 종자라는 게 뻔히 아는 모습이니 근사하게 제작한 동상이나 초상화로 아무리 미화한들 그게 사실로 둔갑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쩌면 그들은 실재하는 형상이 모실만한 존재가 아님에도(못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신격화하여 참배하는 때문인지,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웃기는 행동으로 비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비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락전의 행렬
본전에서 나와 행랑을 건너 동신문(東神門)의 외측에 위치한 신락전에 당도합니다.
"가구라덴(神楽殿)"은 헤이세이 5년에 "헤이세이 즉위의 대전(平成の御大典)"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기원제 개최 시에만 사용되며 가구라 무용이나 무악을 공연합니다. 가구라마이(神楽舞)란 큰 북에 맞춰서 정화의 불제(액막이)를 지내는 제사라고 합니다. 기원제는 5000엔부터,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궁 내에서 御朱印(고슈인)을 받을 수 있는 장소인데 여행객들이 스탬프 받는 것처럼 일본인들 중에도 도장을 받아 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또한 이곳은 전통 결혼식을 치르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 마침 혼례행렬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당도하였을 때 이미 결혼식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지나간 듯, 마지막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저 행렬은 신락전 쪽에서 시작하여 장전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인데, 여기서 장전이란 오미쿠지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일본 전통 결혼식은 주요 가족 친지만 참석한다고 합니다. 행렬의 맨 앞에는 독특한 모자를 쓴 신관(or 신직(神職))처럼 보이는 이가 이끌고 그다음에 무녀(巫女)두 명이 서며 그 뒤를 빨간 우산을 쓴 신랑신부가 따르게 됩니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신부는 커다란 흰색 모자를 씁니다. 그리고 가족 친지가 뒤따라 걸어가는데 실제 진행되는 결혼식이지만 기쁘거나 축하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고 제례를 재현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행렬을 보고 있자니 남신문(南神門)을 통과하여 들어올 때 목격하였던 우측 행량에서 무슨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일군의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들은 결혼식 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암튼, 일본에서는 신사에서 결혼식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메이지진구(메이지 신궁)에서 식을 올리는 커플은 어쩌면 선택받은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겠지요. 신을 모시는 사람이 맨 앞에서 선도하는 신랑 신부의 행렬을 보면 그것을 보는 사람도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그건 좋은 전설이군요.
메이지 일왕
마지막으로 메이지 일왕의 면상을 공개합니다.
좀 더럽게 생겼고, 성깔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인간이 의외로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 한국 진보진영에서 이땡땡 같은 인간이 발호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시민이나 한동훈 같은 유형은
그냥 참모로 쓰일 뿐인 관상이라고 해야 하나?
아참, 제가 왜 관상이야기를..
기독교 세례신자이면서..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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