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미즈데라(Kiyomizudera, 清水寺) 란?
교토 히가시야마구(東山區)에 자리 잡은 <기요미즈데라(Kiyomizudera, 清水寺)>는 778 년에 창건된 교토 최고의 관광명소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세워진 <清水の舞台(기요미즈노부타이)>를 가진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清水の舞台>는 큰 결정을 하기 전에 사용하는 외치는 <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시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라는 속담이 유래한 곳입니다.
音羽山(오토와야마) 중턱에 펼쳐지는 기요미즈데라의 면적은 13만 ㎡에 달하며, 나라 시대의 명품 <십일면 천수관음보살 입상(十一面千手観音菩薩立像)>을 본존으로 안치한 국보 <본당>을 필두로 <仁王門>, <三重塔>, <鐘楼> 등 15 동의 건물이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부지 내에는 그 밖에도 <결연의 신사(縁結びの神社)>와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庭園> 등 30 여개의 견학 명소가 산재해 있습니다. 1994 년에는 고도 교토의 문화재로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지금은 세계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입장시간은 06시~18시입니다.(7,8월은 18시 30분까지)
가시는 길
교토역에서 버스편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100번 또는 206번 버스를 타고 고조자카나 기요미즈 미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정류장에서 사찰까지 도보로 10분 정도 걸립니다.
기요미즈데라는 音羽山(오토와야마) 중턱에 세워진 절인데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빼곡하게 기념품 판매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길목을 따라 올라갈 때, 좌우의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즐길 수 있어 비교적 힘들지 않게 기요미즈데라까지 당도할 수 있습니다. 절간 가까이 다가서면 눈에 확-들어오는 시뻘건 건물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너무 붉어서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듯한 커다란 대문입니다. 그곳에서부터 기요미즈데라가 시작한다고 보면 됩니다.
커다란 대문 이름은 인왕문(니오문)입니다.
기요미즈데라 지도
인왕문 앞에 馬駐(마주, 우마도메)라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사실은 이곳이 기요미즈데라에 들어서면서 처음 접하게 되는 건물입니다. 우마도메(馬駐)는 무사계급이나 귀족들이 청수사를 찾았을 때 말을 묶어두던 곳으로 오늘날로 치면 주차장 같은 곳이라 하겠습니다.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인왕문
인왕문을 도배하다시피 처바른 붉은색은 사실 불교에서 정진을 의미하는 거라고 합니다. 좀 경박한 표현을 쓰게 된 것은 불교도님들께 사과드립니다. 한국의 사찰에도 붉은 단청을 칠한 것이 많은데 어째서 이곳 교토의 청수사 인왕문 색채가 자극적으로 느껴진 걸까요? 일본인들의 페인트 제조실력이 뛰어나 채도와 명도를 극히 높인 탓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문 가운데에는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만들어진 목조 인왕상(仁王像) 2개가 모셔져 있고, 문 앞 좌우에는 크게 입을 열어젖힌 돌 사자 동상 2개가 서 있습니다. 원래는 금동제였는데, 일본제국주의가 태평양 전쟁 때 무기제작을 위해 압수하였다가 전쟁이 끝날무렵인 1944 년 현재의 돌 사자상을 배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서문과 삼중탑
인왕문 뒷편 계단 위에 서문이 있고 바로 뒤에 맞붙어 있다시피 한 것이 삼중탑입니다. 얘들도 붉은 단청으로 처발랐는데 인왕문보다 명도가 조금 떨어져서 눈에 전달되는 피로감은 줄어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삼중탑은 기요미즈데라 전경 사진을 찍으면 본당과 함께 멋진 View를 제공하는 스타 타워입니다.
기요미즈데라 공식 사이트의 소개에 따르면, 서문은 극락정토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문이며, 日想観 (にっそうかん)의 성소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상관>이란 서쪽 하늘에 물드는 황혼의 태양을 바라보며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에 극락정토를 생각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심플한 수행 방법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사찰에서도 같은 종류의 수행이 행하여지는 걸까요? 불교도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서문 바로 뒷편에 위치한 높이 31m의 산주노토(三重塔: 삼중탑)는 일본 최고 높이의 삼중탑으로 교토 도심에서도 잘 보여서 본당의 무대와 함께 청수사의 상징적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요미즈데라에는 본당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지 않았지만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 轟門(굉문, 도토로기몬)을 거치게 됩니다. 본당의 입구가 되는 <轟門>은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에 의해 1631 년 ~ 1633 년에 걸쳐 재건된 것으로, 중요 문화재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기요미즈데라 본당
본당은 일본의 국보이자, 도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불당입니다. 1633년 재건되었으며, 정면 36m 측면 30m 무대 높이 18m로 매우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열주로 외진, 내진, 내내진으로 나누어져 있고, 일반 관람객은 외진에서 청수사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본당은 지금까지 9번 소실되었으며 현 건물은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기부금으로 재건된 것입니다. 이 본당 무대를 포함한 청수사의 모든 건물들은 승려들이 직접 목재를 옮겨 지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목재를 짊어지고 먼 길을 옮기면서 정성을 다해 절을 짓는 것 자체가 수행이라 생각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한국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줄 아는데,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을 표하자면 교토 기요미즈데라가 경주 불국사보다 더 멋지게 지은 사찰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사시간에 배운 일본은 거의 모든 문물을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거쳐 전수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이 이룩한 기술 수준은 한국을 뛰어넘고 있으며 중국 뻬이징의 자금성을 둘러보고 나서 느낀 점으로는 중국보다 더 우수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팩트체크 한 번 해 봅니다. 오늘날 건축계의 노벨상이 불리는 Pritzker Architecture Prize(프리츠커 건축상)을 한국은 한 번도 받지 못했고, 중국은 겨우 두 번 받았는데 일본은 아마 세번 이상(9회, 15회, 17회, 35회, 36회, 41회) 받은 걸로 기억합니다. 세계로부터 그들은 더 높게 인정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전제하에서 일본을 가서 보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며,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점을 각성해야 진보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인식 자체를 안 하면 따라잡을 토양조차 마련하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일본식 우진각 지붕의 4면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경사진 寄棟造(よせむねづくり, 요세무네즈쿠리)가 특징인 본당에는 전체 172 개의 기둥이 사용되었습니다. 지붕 외부는 유약칠이 되어 있고, 본당의 날개는 정면(남쪽면)의 양옆으로 돌출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여기서 요세무네즈쿠리는 우진각 형식을 일컫는데, 지붕은 히와다부키(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발라 촘촘하게 붙여서 만듦) 방식으로 지었습니다. 히와다부키는 기와에 비해서 내구성은 좋지 않지만, 재료 조달이 쉽고, 독특한 질감과 곡선 표현에 유리해서 일본에서는 많이 적용되고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음.. 제가 외관에서 독특한 매력을 느꼈던 기요미즈데라 본당 건축의 비법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또한 본당의 건설에는 못이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인데 동아시아 건축에서는 일반적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당 벽화는 여느 불교화처럼 인간군을 빼곡하게 그려넣은 방식이었는데 표현방식에서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이 난다라고나 할까요? 한국 불교화에서 느끼는 천편일률적인 인물표현의 식상함이 상대적으로 많이 완화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본거 맞나요?
오토와 폭포
본당의 테라스 난간으로 내려다보이는 길쭉한 공간 안에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 오토와 폭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포라기보다 약수터 물에 더 가까워 보였지만 저곳은 청수사라는 절 이름이 유래된 꽤 유명하고 유서 깊은 샘물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샘물에서 흘러내리는 세 줄기의 물길 중 하나에 국자형 바가지를 내밀어 청수(淸水)를 떠 마시는 모습이 관찰되는데, 그렇게 하면 선택한 물줄기에 따라 좋은 일(지혜, 연애, 장수)이 생긴다는 전설을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믿거나 혹은 그렇지 아니하여도 여행자의 입장에서 재미 삼아 물 떠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저 샘물 앞에 사람들이 바글거린다고 하는군요.
유럽여행을 가면 전승되어오는 기복을 주는 동상의 특정부위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곳에는 예외 없이 사람들의 손길로 인하여 맨들맨들해진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딸아이들은 도통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저는 아예 그녀들을 데리고 오토와 약숫터에 내려가볼 엄두를 내지 않았습니다.
샘물터에 내려가지 않은 걸로 알았는데 근처까지 가긴 갔었군요.ㅋㅋㅋ
암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본당 내부를 배경으로 사진찍기 신공을 발휘하며 둘러본 본당의 외진, 무대, 회랑을 빠져나와 견학통로를 따라 걸어가면 阿弥陀堂(あみだどう)과 奥の院(오쿠노 인)을 만나게 됩니다.
아미타도와 오쿠노인
1633 년에 재건된 <奥の院(오쿠노 인)>은 본당과 마찬가지로 <檜皮葺>의 지붕과 <懸造(かけづくり)>의 토대를 가진 건물입니다. 오토와의 폭포 바로 위에 세워진 오쿠노인(奥の院)은 본당과 같은 가케즈쿠리로 만든 무대가 있습니다. 내진에는 오쿠노 인의 본존인 <三面千手観世菩薩坐像(삼면 천수 관세음보살 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보살 좌상의 높이는 64.3cm, 전면과 좌우에 총 3 개의 얼굴과 42 개의 손을 가지며 <慶派>의 仏師가 가마쿠라(鎌倉) 초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 저는 이 관세음보살상을 들여다보지 못했군요.
본당 뒤쪽 오쿠노인과 나린히 서 있는 중요 문화재 阿弥陀堂은 에도 시대 초기인 1631 년에 이에미쓰의 기부에 의해 재건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건물은 폭과 깊이가 약 10m 정도이며, <入母屋造>의 지붕은 노송나무(檜, ひのき) 껍질을 사용하여 시공하는 <檜皮葺>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阿弥陀堂의 원래 지붕은 오랫동안 가볍고 물결 모양이 특징인 <桟瓦葺>이었지만, 2000 년대에 복구하면서 창건 당시의 구조를 반영, 본당과 같은 현재의 <檜皮葺>로 변경되었습니다. 기요미즈데라 본당과 같은 기법으로 지붕을 올렸기 땜에 비슷한 느낌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암튼, 저는 내부 불상감상은 꿈도 꾸지 아니한 채 奥の院(오쿠노 인)의 懸造(かけづくり)에서 기요미즈데라 본당의 측면사진을 찍는데 열성을 다했습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사전에 접하였던 기요미즈데라의 뷰 포인트가 되는 지점에서 같은 구도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였죠. 저는 사진속에 가족을 담기 위해 한참 떨어진 오쿠노인까지 홀로 걸어와서 본당 무대의 난간에 서 있는 남은 가족(엄니, 두 딸)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기요미즈데라 원경 사진은 그렇게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고야스노토
본당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경내의 동쪽 끝에는, 청수사의 탑두인 다이산지(泰産寺)의 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고야스칸논(子安観音)(센쥬칸논: 천수관음)을 모시는 연유로 고야스노토(子安の塔)라 불려, 순산 기원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탑입니다. 기요미즈데라를 둘러보고 돌아서 내려우는 길에 보고 지나가는 탑인데 원래는 인왕문 앞에 세워져 있던 것이 1911 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야스노토(子安の塔)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 오토와 폭포) 못 미쳐서 쉬어갈 수 있는 카페길목을 지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였습니다. 기요미즈데라까지 올라가서 한 바퀴 둘러보느라 발품도 적잖이 팔았기 때문에 허기가 지더군요.. 둘째 딸이 면발을 앞에놓고 면치기를 준비 중인 장면입니다.
카페를 지나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 오토와 폭포)에 접근하는 길목이 나옵니다. 샘물에 가까이 가본 것은 나오는 길목에서였군요. 그곳을 지나가면 본당의 무대를 떠 받치는 높은 나무기둥을 볼 수 있습니다.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기요미즈데라를 나와서 시가지로 내려올 때는 기요미즈자카가 아닌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쪽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이곳에는 일본 전통 과자와 화장품, 기념품 판매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입니다. 모두 전통가옥에서 매장을 오픈하여 운영하는데 시의 정책에 따른 듯했습니다.
산넨자카는 기요미즈데라까지 걷는 참배로의 일부이며 산모들이 순산을 기원하며 걷는 길이라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옛날 초딩 교과서에서 배운 삼천갑자 동박삭이를 운운했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듯했습니다.
산넨자카 옆에 그것보다 경사도가 조금 약한 길이 맞닿듯 뚫려있는데 이곳이 이름하여 니넨자카입니다. 아마도 산넨자카보다 걸어다니기가 더 수월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듯.. 좌우의 상점은 산넨자카나 니넨자카나 구별 없이 같은 기념품점, 전통간식을 판매하는 상점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간간이 화장품 판매업소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딸들과 함께 여행했던 것이 벌써 18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오~ 벌써?
교토하면,
기요미즈데라이죠.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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