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트럼프의 작태로 인하여 환율이 뛰면서 일본과 미국이 회피여행지로 전락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1400원 아래로 원위치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미쿡으로도 날아가고 일본국으로도 들어가겠군요. 항상 한발 늦은 이 잡놈은 서유럽 여행지를 이제서야 소개합니다. 음.. 그래도 지금 소개해 놓아야 다시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이 미쿡과 일본국을 제껴놓는 비정상적인 환경이 상정되면 이 글을 유용하게 이용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번뜩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곳은 독일 하고도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입니다.
하이델베르크란 '대학도시'라는 타이틀과 '관광도시'라는 2개의 타이틀로 알려져 있는 소도시입니다.
왜 소도시라 표현하였냐구요?
쏘리.. 쏘리.. 절대 하이델베르크를 얕봐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닙니다. 단 하루면 도시 전체를 섭렵하기에 충분하다고 느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무려 인근 도시에서 당일치기 근교여행으로 다녀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말 다했지 뭡니까. 저는 프랑크푸르트에 둥지를 틀고 하루는 하이델베르크를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또 하루는 쾰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비효율적이지만 속 편한 여행굿거리를 치른 바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 서유럽 여행 가시는 분은 이 허접한 추천글을 읽으시면 정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성 가시는 길
하이델베르크 성은 하이델베르크의 구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르 강(Neckar River, 위 사진에 보이는 강)과 하이델베르크 성(Schloss Heidelberg)을 두 축으로 하여 그 사이에 조성된 구시가지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도시 밖에서 진입하고자 할 때(저의 경우), 중앙역(Hauptbahnhof)에서 하차한다면 구시가지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도보로 이동이 어렵습니다. 만약 유레일패스를 사용한다면 인근 도시(프랑크푸르트, 쾰른, 파리 등지)에서 하이델베르크 중앙역까지 이동한 다음, 다시 구시가지 역(Altstadt Bahnhof)으로 환승하는 루트를 선택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전날부터 기차 배차시간, 특히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서 구시가지 역까지 가는 루트를 독일기차앱으로 시간대 확인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나서 일정을 개시하였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성 여행루트는
중앙역(27번 인근) → 구시가지역(3번 인근) → 카를의 문(3번) → 푸니쿨라 Kornmarkt 정거장 → Lower funicular → 하이델베르크 성(4번)
의 경로를 따르도록 합니다.
카를문
구시가지 역에서 내려서 중앙으로 외길을 따라 걸어가면 바로 카를문(Karlstor)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치형태의 문 하나 뎅그라니 놓여있는 형국입니다.
카를스토어는 원래 하이델베르크 시민들이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Karl Theodor)에게 뭔 감사인지 모르지만 암튼 감사의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시민들은 공사 중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평했다는군요.
문을 통과하여 직진하여 걸어가면 마르크트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곳에 소광장이 하나 나오고 그 소광장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다음 기착지인 케이블카 승차장이 나옵니다.
푸니쿨라 탑승
하이델베르크 케이블카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입니다. 케이블카 자체의 인기라기보다는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얻는 인기일 것입니다. 상행선과 하행선(역시 타고 오릅니다. 헷갈리지 말기)이 있는데, 하행선은 구시가지의 코른마르크트(Kornmarkt) 역에서 출발하여 하이델베르크 성(슐로스/Schloss) 역을 거쳐 몰켄쿠어(Molkenkur)까지 운행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가장 오래된 전기 케이블카를 타면 550m가 넘는 지점에 위치한 쾨니히슈툴(Königstuhl)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푸니쿨라 승차장에서는 2가지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성까지 왕복하는 'Lower funicular(하행선)' 티켓이 있고,
몰켄쿠어(Molkenkur) 역에서 전망대인 쾨니히슈툴(Königstuhl)까지 오르는 'Upper funicular' 티켓이 있습니다.
저는 하이델베르크 성 관람이 목적이므로 당연히 Lower funicular 왕복티켓을 발권받고 올라갑니다.
Lower funicular 티켓에는 하이델베르크 성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티켓의 가격과 운행시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입장료
Upper funicular(Königstuhl ticket: Molkenkur-Königstuhl)
Single : 7유로, Return : 10유로
Lower funicular(Kornmarkt-Castle-Molkenkur : 왕복티켓) / Castle ticket
Adult : 11유로(Castle grounds, the wine cellar and the German Pharmacy Museum포함)
운행시간
Upper funicular : 첫차[09시 08분(from Molkenkur)], 막차[19시 48분(from Konigstuhl)]
Lower funicular: 첫차[09시(from Kornmarkt)], 막차[ 20시 03분(from Castle)]
하이델베르크 성(Schloss Heidelberg)
02) Stuckgarten(대포정원)
03) Elisabethentor(엘리자베스 문)
15) Dicker Turm mit ehemaligem Theatersaal(옛 극장홀이 있던 두꺼운 탑)
19) Glockenturm(Bell tower, 종탑)
20) Ehemaliges Zeughaus(Former Armory, 이전 무기고)
21) Ehemalige Karlsschanze und Karlsturm
푸니쿨라 Castle 정거장의 위치는 지도의 왼쪽 바닥에 있는 [46]입니다.
이곳 Castle 정거장에서 하차하면 바로 5분 거리 내에 하이델베르크 성의 입구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 산책
[46] → [1] → [3] → [2] → [15] → [2] → [3]
푸니쿨라 정거장[46]에서 하차하여 입구[1]를 통해 걸어 들어가면 엘리자베스 문(Elisabethentor)[3]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가면 대포정원(Stückgarten, 스튀크가르텐)[2]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스튀크가르텐에서는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문(Elisabethentor)은 1615년 프리드리히 5세가 동갑내기 왕비 엘리자베스의 20세 생일을 기념하며 세운 것입니다. 왜 세운 것이냐구요? 17세의 어린 나이에 독일로 시집온 영국 왕족 엘리자베스 왕비가 향수를 달래려 자주 눈물을 짓는 것을 본 프리드리히 5세는 거의 매일 파티를 열어 그녀를 웃게 해 주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음, 진정 사랑했나요? 그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5세는 "단 하룻밤 만에 성문을 축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문 꼭대기에는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위하여'라는 생일 축하카드를 돌에 새겨 넣었다고..
그러자 왕비도 크게 기뻐했다네요.
아, 그리고 이 엘리자베스의 문은 60대의 괴테가 30대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문호 괴테 씨가 60이 넘어 30년 연하의 여인에게 애정을 품었었군요. 성문에는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라는 시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찾아보지는 않았네요. 그나저나 푸르디푸르렀던 나의 청춘(젊음)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불현듯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성문탑은 높이 52m로 루트비히 5세 때 지어진 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건물입니다.
1528년에 건축되었습니다.
두 번째 산책
[3] → [4] → [9] → [10] → [11] → [16] → [18] → [25]
단체 관광을 나선 짱개 수놈들이 잔뜩 출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틈바구니에서 인증샷을 날립니다.
Gate Tower는 1531~1541년에 건축됐습니다. 정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계가 설치된 40m 높이의 탑인데, 지하에는 성 지하감옥이 있고, 상층에는 굴뚝문을 당기는 장치와 방어를 위한 방이 있으며 탑 경비병의 아파트도 있습니다.
원래 지붕은 1689년에 불타 없어졌고,
1718년 선제후 카를 필리프(Karl Philipp, 1716-42)의 통치 기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입구 바로 왼쪽으로 얼굴을 내민 건물이 바로 Ruprechtsbau mit Haus der Schlossgeschichte(성의 역사가 있는 루프레히츠바우)입니다.
루프레히츠바우는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궁전입니다. 뚜렷한 구분이 없는 정면과 고딕 양식의 입구를 갖춘 이 성은 중세 후기 성의 마지막 남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루프레히츠바우의 고딕식 현관문 정수리에는 장미화환을 들고 있는 두 천사 부조가 있습니다. 건축 당시에 비계에서 떨어져 죽은 건축가의 두 자녀가 자꾸 건축가의 꿈에 나타나서 추모상을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안뜰 좌측 편 약간 안쪽으로 들어간 공간에 서 있는 특이한 외형을 가진 건물이 있습니다.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보인 구조는 베이 윈도인 걸까요?
맞습니다. 독일어 "Erker"는 건축에서 벽면이 튀어나온 부분, 즉 벽에서 튀어나온 방이나 창문을 의미합니다.
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도서관 건물은 루프레히츠바우(Ruprechtsbau)와 프라우엔치머바우(Frauenzimmerbau)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1520년부터 1544년 사이에 선제후 루트비히 5세(Ludwig V)의 통치 하에 지어졌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위층 안뜰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베이 윈도우입니다. 이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성 건물 중 위층까지 돌로 아치형 천장을 갖춘 유일한 건물이었습니다. 이는 이곳에 선거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하실에) 주화 조폐국도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탑문을 통과하여 성 내부(안뜰)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정면으로 시야를 사로잡으며 달려오는 건물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프리드리히 궁(프리드리히스바우, 프리드리히의 날개)입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Friedrich IV)는 그의 수석 건축가 요하네스 쇼흐(Johannes Schoch)에게 1601년에서 1607년 사이에 중세 건물의 기초 위에 웅장한 주거 궁전을 짓도록 했습니다. 선거인 가족은 위층 2개 층에 살았습니다. 다락방은 하인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1693년에 프리드리히스바우는 심하게 파손되었고 1764년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궁전 건물 정면에는 프리드리히 4세의 선조들과 비텔스바흐 왕가 출신 선제후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당연히 프리드리히 4세의 동상도 서 있습니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손에 왕관을 들고 있는 자가 프리드리히 4세입니다. 위 사진 속 인물은 누군지 확인 못했습니다.
1850년경, 샤를 드 그라임베르크(Charles de Graimberg)는 지붕이 형편없는 프리드리히스바우에 작은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1893년, 바덴 정부는 건축가 카를 셰퍼(Carl Schäfer, 1844~1908)에게 옛 국가실을 복원하도록 의뢰했습니다. 건물에는 박공지붕이 새로 설치되었습니다. 지역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화려하게 장식된 나무 천장, 문틀,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성 투어에서는 개조된 객실을 볼 수 있습니다. 아.. 성 투어라는 게 있는 모양이네요. 개별 관람객들은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았는데...
이 아이의 높이는 8m이며,
자그마치 22만 리터의 와인을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일반 와인 30만 병 분량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와인통에 페르케오(Perkeo)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와인통을 지키던 이탈리아 출신 난쟁이의 이름입니다. 이 아자씨는 15년간 매일 18리터의 와인을 마셔댔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취해있어서 비상시에는 술통 앞에 있는 종을 흔들어 깨웠야 했습니다. 아, 저 오른쪽에 종이 있네요.
사람들이 그에게 와인을 권하면 이 난쟁이 아자씨는
“왜 안 마시겠어” 란 뜻의 이탈리아 방언 ‘페르케노’라는 말을 하며 술을 마다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페르케오'란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저곳에선 와인 시음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거대한 술통을 보면서 느낀 감정 혹은 생각이라 하면, '하이델베르크인들은 술을 엄청 마셨나 보다..'
끝머리에 시음장이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렸으나 저는 Pass! 하고 그냥 지나쳐 나왔습니다.
프리드리히관 지하에서 술통의 크기를 느껴보고 전망을 감상하기 위한 장소를 찾아갑니다.
오토 하인리히관과 약국박물관
르네상스 건축인 오토 하인리히관은 고성 내에 있는 가장 큰 건물입니다. 선제후 오토(오토 하인리히)가 1556~1560년 사이에 지은 건축물로 내부에 계단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건물 전면에 있는 조각상들은 알렉산더 콜린의 작품으로, 인문주의 교양과 기독교적 미덕을 표현한 동상들입니다.
동상들 중에는 투구를 쓴 여호수아, 오른손에 나귀의 턱 조각을 가진 삼손, 몽둥이를 들고 있는 헤라클레스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걸 하나씩 찾아보는 여행자는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코레아에서 간 예수 덕후가 있었다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기독교 성서에 등장하는 위인들 외에도 3층에는 로마의 여신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약국 박물관은 오트 하인리히 궁 지하층에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입장권 구매 시 저 약국 박물관 관람료도 포함되어 있어 내려가 보았습니다. 약학대 출신이나 지원자들은 흥미를 끌만한 곳인데 일반인들의 관람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약국박물관은 1957년 10월부터 입주하였다고 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의약품과 조제 및 실험시설이 가득합니다. 원래 1937년에 만들어져서 1년 뒤에 뮌헨에서 문을 열었으나 1944년에 거의 파괴되어 버렸는데 남은 것을 밤베르크로 가져갔다가 1957년 하이델베르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독일여행을 해 본 사람은 독일인의 과학 DNA에 대해 의심을 품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박물관의 전시가 잘 되어 있습니다. 이곳 하이델베르크의 약국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교한 그림, 병, 캔, 희귀한 가축이나 약초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깔끔하게 배치된 선반마다 약품이 가득하니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감상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될 장소입니다. 독일 화학 산업의 뿌리를 목격하게 된다고 할까...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에서 발발한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교회 간의 종교 전쟁(30년 전쟁) 당시,
하이델베르크성은 양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점령당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30년 전쟁이 끝난 후에 재건축 작업에 착수하지만,
1689년과 1693년 프랑스와의 전쟁이 일어나 제대로 된 복원 작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성은 더욱더 황폐해졌고 1764년 번개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성의 일부가 또다시 훼손되었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은 폐허가 된 성에서 필요한 돌이나 자재들을 빼내갔다고 합니다.
성베드로 대성당도 다른 곳에서 빼내간 벽돌을 사용하여지었다고 하더니만 유럽인들은 다 이 모양이었나요?
이러한 하이델베르크 성의 훼손에 대해 작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성은 유럽을 뒤흔든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왔으며, 지금은 그 무게로 무너져 내렸다."
라며 일갈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역사의 무게와 인간사의 덧없음을 느끼며 다시 푸니쿨라 정거장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푸니쿨라는 우리를 중세의 고상에서 현대의 땅에 뿌리를 내린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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