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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델베르크 / 2 -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hittite22 2025. 5. 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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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쿨라 캐슬 정거장에서
지상으로 GoGo
웜홀 출구가 보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굴속을 지나오면서 마치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하이델베르크 고성이라는 백인종의 별난 세계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동굴 하나를 잠깐 통과하여 또 다른 세계로 입문하는 느낌이라니. 어쩌면 그런 호기심과 그런 신천지에 대한 동경심이 여행을 꿈꾸게 하는 건 아닐까요?

 

또 다른 세상..

현대에서 중세로 떠나 보는 것이 또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맛이라 한다면,

한국 내에서 조선이나 고려로 여행하기는 글러 먹었습니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전통은 다 박살 나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런 박정희식 사회개조가 그가 획책하였던 장기 집권의 여파로 국민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었고 습성화되어 버려서 우리는 어느새 누가 통제하지 않아도 유신화된 사고방식, 군대 문화가 점령해 버린 세상에서 길들여진 여우 새끼처럼, 꾀를 부리는 흉내만 내었을 뿐 실상은 고삐에 물린 소처럼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든 한국은 이제 '민주괴물'이라는 묻지마 독재권력의 탄생을 목격할는지도 모를 일이니 역사가 돌고 도는 수레바퀴인 건 아는데 이런 수레바퀴는 정말 비호감입니다. 결국 보수도 똥통이고 진보도 똥통이었나요? 옛날 어느 선각자가 북조선은 공산주의 똥통이고, 남한은 민주주의 똥통이라고 일갈한 적이 있는데 똑같은 형국의 또 다른 버전이 민주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또 다른 세계의 맛을 느낄 수 없으니 해외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아, 이건 순전히 개취요, 독단적이고 편협한 사고의 일단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여기서 저는 자신에게 다시 한번 최면을 겁니다.

'잘난 체하지 말고..'

'튀려고 하지 말고..'

'알았지?'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이식시키는 것이 진정성 있는 조치라고 믿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기본하에서,

하이델베르크 여행의 추천 제2탄을 발사하려 합니다. 

 

광장의 성모마리아 상

 

푸니쿨라 정거장을 빠져나와 구시가지를 향해 걸어 내려오니 소광장(코른마르크트/Kornmarkt 광장)이 나타났습니다.

광장 한가운데에 범상치 않게 생긴 동상이 별처럼 반짝이는 모자를 쓰고 서 있습니다. 

 

동상의 정체는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1685년 이 지역을 다스리던 선제후가 가톨릭 군주로 바뀌면서 개신교를 가톨릭 신자로 개종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kornmarkt 광장 한가운데에 성모 마리아 동상을 세웠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 그럼 선제후란 뭐죠?

선제후란 황제 선출단(7명)을 가리키는 용어로 마인츠, 쾰른, 트리어 대주교와 보헤미아의 왕, 팔츠백, 작센 대공, 브란덴부르크의 변경백 등 4명의 제후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성령교회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성령교회

 

소로(小路)를 따라서 조금 더 내려가니 더 큰 광장이 나타났습니다. 사각형 광장..

그 광장의 한가운데 크고 아름다운 교회가 자태를 뽐내고 서 있습니다. 교회는 고풍스러운 색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며 고깔모자를 쓴 듯 한껏 멋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건 고깔모자 쓴 것이 아니라 등허리 모습을 보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케밥집

 

'성령교회'라는 구시가지 여행의 첫 단추를 잘 꿰어놓은 우리는 갑자기 허기를 느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지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있는 케밥집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네요.

 

케밥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독일은 코리아 광부와 간호사의 나라가 아니라 터키 이주민의 나라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움터 나옵니다.

케밥이 그 증거였습니다.

 

케밥시식

 

케밥은 성경에도 나오는 음식일까? 케밥의 주원료는 양일까, 염소일까.

그런 씰데없는 생각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이거, 비주얼을 보니 케밥샌드위치가 아니라 케밥버거라고 해야할 듯.

 

주문한 건 양고기 케밥이었습니다.

 

성령교회 측면 View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는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1398년에서 1515년에 걸쳐 지어졌습니다. 오늘날 주황색 지붕 위로 우뚝 솟은 탑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첨탑 위의 바로크식 지붕은 1709년에 올려졌으며 1978년에서 1985년까지 전체적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교회 내부는 후기 고딕양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성령교회는 남부 독일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부 건축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엔 가톨릭교회였으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교회 내부
근데 입구에 웬 종이학이? 무슨 소원수리라도 받고 있나?
교회의 기둥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천장에는 독수리가 한 마리 살고 있네요.
교회내부.. 그리고 여행객들
교회에 수집된 문장들. 프랑크푸르트 카이저 돔에서도 봤던...
스테인드글라스
쉿!
어느 선제후인듯한 석상.. 근데 발치의 동물들의 존재는 뭘까요?
교회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통하는 웜홀인가요?

 

그렇다면 이곳은 웜홀의 입구가 되겠군요.

뭐,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아직 천상으로 올라갈 때가 아니라며 성령님이 계시는 교회를 도망치듯 빠져나옵니다. 그랬더니 등 뒤로 미처 올라가지 못한 종탑이 우리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닙니까. 

 

성령교회 앞길..

 

중세의 도시는 교회의 종탑을 통해서 신민들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음의 잔치를 벌이곤 했겠습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그 종소리는 페로몬 향내처럼 꿀벌을 끌어들이며 속세에 미만해 있는 자신의 백성을 불러 모았으리라..

 

그런 그림이 눈앞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듯했는데 어느새 현대의 자동차가 거리를 내달리는 모습이 시야를 가로막습니다. 아, 이곳은 21세기 지구별이었죠..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cke)

 

네카르 강가의 카를 테오도르 다리

 

강가로 나서기로 합니다.

고성 위에서 구시가지를 조망하던 때부터 가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였던 정겨운 다리..

저 다리를 건너가면 산 중턱까지 철학자의 길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자매결연한 몇몇 외국 대학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 일본 교토대학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2007년 교토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은각사 인근에 있는 철학의 길(哲学の道)을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길을 걷지 않고 지나치기만 했었습니다.

 

그럼, 이곳 하이델베르크 네카르 강 건너편 철학자의 길은?

당근, 걸을 생각은 없습니다. 철학자의 길이 뚫려있는 산 이름은 하일리겐베르크(Heiligenberg)라고 합니다. 과거 이 산에는 블루베리가 지천으로 열려서 여름이면 인근의 만하임에서 블루베리 따러 오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하네요..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도 블루베리를 뜻하는 독일어 '하이델베레(Heidelbeere)'와 산을 뜻하는 '베르크(Berg)'의 합성어인 것을 보면 하이델베르크는 '블루베리 산'이라고 말해도 될 듯합니다.

 

암튼.. 철학자의 길 산책은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포기 잘하는 족속이라 그런 게 아니고, 그건 너무 무리한 욕망이니까요. 그래서 철학자의 마음을 가슴에 새겨보는 욕망은 하이델베르크가 다시 한번 나를 불러준다면 그땐 기꺼이 펼쳐 보이겠노라 다짐하면서 강변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중세의 흔적을 좇아서..

 

길쭉하게 솟은 하얀 탑이 보이고..
탑 옆에 모습을 드러내는 까만 애, 얘는 이 도시의 수호 원숭이입니다.
요술을 부리는 능력을 가진 원숭이의 포스..

 

탑 서쪽의 난간 위에는 원숭이 상이 있습니다.

약 15세기부터 옛 다리에 거울을 든 원숭이 석상이 존재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원숭이석상의 존재의미는 마을에 도착한 사람들이 옛 다리의 쌍둥이 탑의 위용에 두려움과 존경을 심어주는 장치였다고 합니다. 

 

지금 서 있는 원숭이 동상은 1977년에 게르노트 룸프(Gernot Rumpf)가 설계하여 1979년에 설치된 것입니다. 그는 콘스탄츠 시내의 분수대를 조각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원숭이의 오른손에는 청동거울이 들려있고, 또한 원숭이는 악마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동거울은 사람들이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원숭이의 모습과 비교해보라는 뜻이 담겨있다네요. 

 

쥐새끼 두 마리도 함께..
옆모습을 보니 원숭이의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원숭이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거울을 만진 사람은 부자가 되고, 뿔을 만지면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엄청 부자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얼마나 만져댔는지 거울이 반질반질 빛을 내고 있습니다. 또한 원숭이 옆에 있는 생쥐를 만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뭔, 이런 신박한 이야기가 널려 있는지...

 

쌍둥이 탑 브뤼켄토어(Brueckentor)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쌍둥이 탑 브뤼켄토어(Brueckentor)는 구시가지의 슈타인 거리로 통하는 문으로, 과거에는 마을을 지키는 방어용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관광용으로 쓰이는 거겠죠.

 

어떤 여인을 꼬드기는 원숭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원숭이

 

원숭이 동상의 유래에 대해서 세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어 소개합니다.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건져보시지요.

1) 옛날 네카르강변에 영리한 원숭이가 있었는데, 손에 거울을 가지고 다니며 나쁜 사람을 판별했었답니다.

2) 외적이 침략했을 때 원숭이들에게 거울을 나눠주고 성안을 돌아다니게 하여, 반사하는 빛으로 성안에 많은 병사가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 위장했다고 합니다. 

3) 키우던 귀족에게 버려진 늙은 원숭이가 거울을 들고 나타나 "너도 늙는다"란 뜻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었답니다.

ㅋㅋㅋ

 

빤간 옷을 입은 여성을 잡아먹나 봅니다..

 

원숭이가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쪽은 마인츠 방향입니다. 당시 대주교의 종교적 간섭이 심했기 때문에 그가 살고 있던 마인츠 방향으로 엉덩이를 들이내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인츠 대주교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스러운 민심을 대변한 것입니다. 

 

다리 중간에 서 있는 동상앞에서..

 

비록 철학자의 길을 걷지는 않지만 다리의 중간까지는 걸어보기로 합니다.

여행자의 예의라는 게 있으니까.. 

 

강 위엔 1인승 카약이 떠다닙니다. 카약 맞죠?
멀리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대학도시 골목길 풍경

 

아무 생각 없이 구시가지 안에 둥지를 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공기를 마셔보기로 합니다.

발길 닿는 데로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젊은이들 중 저 대학 학생을 분별해 내지 못했지만 분명 대학 속에 들어와 있는 건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의 하나이자 노벨상 수상자를 적잖이 배출해 낸 곳입니다.

도쿄대학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듯 도시 안에 스며들어가 있는 것이 떠오릅니다. 기억의 선 너머로 사라질락 말락 하는 일본 여행의 추억을 뜬금없이 소환해 보게 됩니다. 그런 저질 상상을 늘어놓으며 어느 골목길을 돌고 돌아 학생 감옥을 찾아 나섭니다.

 

캠퍼스 건물
대학 도서관인가요?
대학 뮤지엄
강의동인듯
짜잔.. 드디어 나타난 학생감옥

 

학생감옥

 

학생감옥. 이쪽으로 들어가시오!

 

'학생감옥'은?

감옥이라고 하지만 일반 대학 건물과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독일인의 실용성이란 그 뿌리를 더듬어 볼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질 정도로. 그때 시대를 앞서가던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켰던가요? 아니면 무슨 이념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라도 했던가요? 대학 당국은 학생들을 조그마한 방들이 차곡차곡 벌집처럼 들어서 있는 캠퍼스 내부 건물 안으로 집어넣고 그곳을 감옥화하였던 게 분명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낙서>로 저항했고 <캐리커처>로 시위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위로 보였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풍경을 연출한 것으로 인정되어 영원히 기념하는 순례의 장소로 보존하는 것 역시 온당한 처사로 보였습니다.

Fact Check!

글을 쓸 땐 팩트에 입각해야 할 때가 있고 감성이나 상상력을 발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표현은 순전히 개인의 상상력에 기반하여 기술한 소설 같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인터넷 검색하여 내용을 덧붙입니다.

1712~1914년까지의 대학은 치외 법권 지역이라 학생이 경범죄를 지어도 대학 당국에서 처리했고 경찰은 처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지역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생기자, 1778년 학생 감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죄를 지은 학생들은 저지른 죄에 따라 감옥에서 최소 2주일 동안 갇혀 지냈다.
처음 2주 동안에는 빵과 물만 먹으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후 사식을 들여오거나 수업을 받을 수 있었고, 밤에 몰래 술을 들여와 시끌벅적한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학생 감옥에 갇히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 일부러 죄를 짓고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학생 감옥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1914년에 폐쇄가 되었고, 지금은 예전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감옥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의 침대와 책상이 있고, 벽에는 학생들의 낙서가 가득하다. 낙서가 있다고 해서 관광객들이 이곳에 낙서를 더하면 안 된다.
[출처 : 다음 백과]

 

다양한 학생감옥 풍경들

 

낙서의 일부를 번역기로 돌려봤는데

특별히 의미 있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밝은 세상에서 포즈..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거리에서
신도심지역으로 이동..

 

웜홀을 빠져나오듯 중세도시를 나옵니다.

하이델베르크 여행은 이렇게 당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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