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Choose Your Own Adventure (March 9, 2021)
from 노인과 바다
<소년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즉, 상어에게 청새치를 빼앗긴 노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젊은이가 상어를 잡아 배에 싣고 오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바스의 바다 연작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힙니다. 파도의 질감과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상어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상어와 사투를 벌였던 소년은 결연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타고 있는 작은 배에는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부모님의 반대로 배를 타지 못한 마놀린(Manolin)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실패했지만, 헤르난 바스의 소년 마놀린은 캔버스 안에서 기어코 성공했습니다. 마놀린은 노인이 잡은 청새치를 먹어치운 상어에 대한 복수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그가 포획해 온 상어가 전리품처럼 번득입니다. 그렇지만 비가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은 성공한 이들의 자부심이나 후련함보다는 어딘가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합니다. 왜일까요?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니 부모가 그렇게 반대했던 항해에 나섰고, 전리품도 획득했지만 '이것이 다 무슨 의미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것은 헤르난 바스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그림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어정쩡한 소년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즉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도상에 있으므로 그의 삶 자체가 바다에서 상어를 잡는 것 이상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회화작품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끝나고 난 뒤의 이야기에 해당합니다. 부모의 반대로 노인과 함께 떠나지 못했던 마놀린이 성장하여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배를 타고 고기잡이에 나선 상상력의 결과물을 바스는 그만의 감성과 색채로 덧입혀 창작해낸 것입니다.
Bas는 이 작품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향해 용감한 항해를 시작하는 소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단계를 보여줍니다.
겁없이 비행하는 갈매기와 내리퍼붓는 빗줄기의 묘사,
그 현실감이 기가 막힙니다.
<팝콘목걸이>는 영화감독 히치콕의 작품 <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입니다. 소년의 목에 걸린 팝콘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갈매기들의 기세가 장난이 아닙니다. 갈매기들은 평화로운 바다로부터 날아온 존재라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들은 히치콕의 <새>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그러나 소년은 표정은 무덤덤하게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from 또 다른 이야기
헤르난 바스(Hernan Bas)는 이른바 플로리다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입니다. 바스가 성장한 마이애미와 북부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초자연적이고 비주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라고 합니다. 쿠바와도 가까운 동네죠. 그리하여 헤르난 바스에게는 일찍이 UFO나 유령 같은 단어는 매우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력을 가진 탓인지 하디 보이즈, 네스호의 괴물,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처럼 미스터리 하고 오컬트 한 것에 대한 그의 탐닉은 캔버스 위에서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아.. 플로리다에 또 한 인물이 있었지.
저는 이 대목에서 '또람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괴물이자 기인이자 매드맨이니까요.
한국에서 세 번째, 가장 큰 규모로 열린 개인전 <모험, 나의 선택(Choose Your Own Adventure)>에서 선보인 신작 〈The Monster Hunter(or Desperately Seeking Nessie)〉에는 이른바 ‘호수 괴물’로 알려진 네스호의 괴물을 쫓는 사냥꾼 스티브 펠텀이 등장합니다. 작품에 그려진 책은 실제 펠텀이 소장하고 있는 오컬트 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 속의 인물, 집도 직업도 애인도 포기한 채 산기슭 캠핑카에 잠복하며 괴물의 그림자라도 목격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펠텀의 얼굴은 어쩌면 헤르난 바스의 자화상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추정하는 평론가도 있다고 하네요.
<지독한 가뭄 후의 시작>에 대하여 바스는 미국의 60년대 모텔을 배경으로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 주인공이 수영장에서 빗물을 받고 있는 풍경을 그렸다고 하였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책 시리즈 <낸시 드류 앤 하디 보이즈(The nancy Drew and Hardy Boys)>의 모험을 담은 삽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작품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작가는 물부족의 상황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작 <Gritti Bar(베니스)의 쌍둥이>는 베니스의 갤러리에서 열린 Bas의 전시회 'Venetian Blind'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그림 속 가면을 쓴 손님들은 카니발 방문객들과 함께 도시를 이동했습니다. 전시회는 그 시기에 생생하게 살아난 도시의 역사를 반영하여 과거 사건에 대한 언급을 반영하는 한편, 프라이버시와 가면무도회와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특징적으로 광범위한 탐구 라인을 엮었습니다.
<매튜 매닝 폴터가이스트(Matthew Manning Poltergeist)의 기이한 사건>은 크기 2.1 x 1.8m의 대작입니다. 화폭 속에는 침울하게 거리를 응시하는 거의 실물 크기의 10대 소년 두 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배경은 1970년대 초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경에는 작은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가 있고, 바닥에 앉은 소년은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습니다. 캔버스의 대부분은 방에 있는 나무 패널과 관련이 있으며, 전체가 약 500개 정도의 낙서로 덮여 있습니다.
저 서명이 바로 기이한 사건의 핵심입니다. 영국 남학생 매튜 매닝(Matthew Manning)의 침실 벽에 휘갈겨 쓰여져 있는 서명은 육체가 없는 존재인 폴터가이스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명은 600년이 넘었으며 그중에는 매닝이 자란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서명은 Vernon Harrison 박사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 초자연 현상 조사관이 촬영했습니다.

The conceptual artist
헤르난 바스는 '개념주의자 시리즈'에서 작가는 개념미술가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을 묘사하는 한편 오랜 시간 탐구해온 ‘기이함’에 대해 펼쳐보입니다. 따라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보류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지금도 Bas는 시리즈 연작을 계속 이어가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작업들에서 Bas가 에로틱한 습관에 빠진 ‘광인’의 모습을 묘사했다면, 2023년 개최한 여섯번째 개인전이자 '개념주의자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The Conceptualists: Vol. II》에서는 ‘부조리’와 ‘집착’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개념 예술가 #16(성능 기반, 창시자이자 현 챔피언의 주간 베개 싸움 토너먼트)>는 미국 현실주의 화가 조지 벨로우즈(George Bellows)가 그린 권투 장면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조지 벨로우즈의 작품을 보지 못했기에 일단 그런 설명이 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그림을 봅니다. 작품에서 Bas는 전통적인 남성스포츠인 권투 경기의 성격을 무너뜨리는 대신에 베개 싸움을 벌이는 두 명의 남성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개인의 밀실이 스포츠 경기장으로 둔갑하고 복싱 링 대신 빨간색 리본이 늘어선 매트리스와 침대 프레임을 그려넣었습니다.
Bas가 성취한 작품들의 스타일을 살펴보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며, 서양미술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전승되어온 남성적 미학, 혹은 비유를 재구성하여 기이한 재해석을 시도한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이치로 헤르난 바스는 '개념주의자' 시리즈 전반에 걸쳐 일상의 익숙한 문화를 비틀어 버리는 재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그가 마련한 공간에서 미학적 즐거움을 탐하면 됩니다.
작품 <Conceptual artist #17>은 마치 클로드 모네의 작품 '수련'을 소환시키는 인상입니다.
모네도 Bas에게 희생되어버린 걸까요?
모네의 수련이 보여주는 이미지 중에 애매하고 아스라한 풍경적 요소가 스며들어있음을 기억하십니까? 물론 말년으로 향하는 모네에게 있어서 시력의 훼손이 결부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암튼, 헤르난 바스는 모네의 수련을 차용하면서 이 작품에 자신만의 전매특허인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명하게 드러내보입니다.
<Conceptual artist #19(1980년대의 어린 시절, 그는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익숙한 장소에 폴라로이드 속 담긴 자화상을 놓고 본다.)>에는 앤디 워홀로 범벅이 되어있다시피 합니다.
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주목해봅니다. 실크스크린 처리한 수많은 우유팩은 마치 앤디 워홀이 그림공장에서 방금 찍어낸 대량 생산 제품(수프 캔 및 소다병)을 연상시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년 모델의 손에 들려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앤디 워홀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폴라로이드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오마주는 앤디 워홀의 초기 시리즈인 <죽음과 재난 (Death and Disaster)>과 관련된 소재입니다.
소년이 신고 있는 해골 패턴의 양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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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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