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분류 전체보기 352

Edward Hopper(에드워드 호퍼) / 3 - 도시 인물화 퍼레이드

(전회에 이어서)    소외된 도시 인물화   는 두 명의 여성과 남성을 묘사한 작품으로 간결함과 소외를 고전적 스타일로 나타냈습니다. 작품 속의 부부는 자신들을 반성하기 위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조명에 가혹한 색조를 사용하고, 불편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단단한 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극적인 느낌과 작품에 대한 억압적인 감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 은 부부 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문 앞에 나와 있는 여인은 몸의 윤곽과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원피스차림입니다. 차림새나 시간상으로 보아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은 아닌 듯합니다. 그럼 단순히 여름 햇살에 선탠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평론가들은 호퍼의 ‘탈선’에 방점을 찍으며 작품 속에 현대문명에 의한 인간의 상실감과 단절이 담..

Edward Hopper(에드워드 호퍼) / 2 - 찹 수이, 밤을 지새는 사람들 外

(전회에 이어서)   도시의 외로운 사람들    호퍼의 여타 작품에서 관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현대인이 가지는 도시인의 삶에 대한 관음증적인 면을 드러냅니다. 낯선 사람이 낯선 곳에 거주하는 동종 인간의 삶에 대한 친근한 관심과 다른 한편으로 존재하는 현대인의 도시생활에서 겪는 외로움(고립)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의 감정, 느낌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도시의 밤은 에드워드 호퍼가 1920 년대 후반에서 30 년대 초반 사이 제작한 작품에 자주 테마로 삼았던 것입니다. 도시의 밤은 어둡지만 작품 속에 그려진 창문 안쪽은 대비되는 밝은 조명으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전폭으로 세 개의 창을 그려넣은 것은 호퍼가 "공통적인 시각적 감각"으로 식별하는 병렬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

Edward Hopper(에드워드 호퍼) / 1 - 고독과 소외의 탄생

1882년 미국 뉴욕 태생인 호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뉴욕예술학교에서 로버트 헨리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1906년(24세) 파리로 유학을 떠났으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1910년까지 유럽여행을 하였습니다. 1913년 아모리 쇼에 그림들을 전시했고 1915년 에칭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전향하였으며, 1924년까지는 주로 광고미술과 삽화용 에칭 판화들을 제작했습니다.​1920년대 중반부터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작품에서 주로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리되 도시인의 소외감이나 고독감을 표현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산업화와 제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모습을 잘 나타냈기 때문에 미국의 리얼리즘 화가로 불립니다. 호퍼는 1960년대와 1970년..

부산 송도 - 용궁구름다리

송도 암남공원으로 여행동지 큰딸과 함께 한 부산여행의 숙소는 영도다리 건너 다리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었죠. 그곳에서 출발하여 송도 용궁구름다리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용궁구름다리를 찍고 대중교통을 탑승하였더니 암남공원에서 내려줍니다. 암남공원이라고?부산에 이런 곳도 있었나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에 당도하여 무작정 아래로 내려갑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섬에 꽃게들이 어떤 시기(발정기?)에 바닷가로 무작정 내달려가는 것처럼 아래로 향했습니다. 사실, 송도 주변에 둘러볼 곳이 많습니다. 산책길도 잘 닦여있어 좋은 계절에 가시면 트래킹 명소로 여행을 만족시켜 줄 것입니다. 케이블카 미션도 있고, 구름다리(스카이워크) 미션도 있으며 암남공원 안에는 야외 조각품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암남공원 위로..

부산 해운대 - 청사포

2024년 추석연휴 때큰딸과 함께 부산-남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부산 해운대 청사포 인근 볼만한 곳을 안 가보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청사포 정거장  2023년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흥행 하자 청사포가 인생샷 명소가 떠올랐던 곳입니다.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속 배경과 유사한 열차를 찍으러 온 관광객으로 인하여 생겨난 일입니다. 그게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더군요. 젊은이들 인생샷 건지느라 차도를 왔다리갔다리하는게 흔하게 목격되고 있었습니다.  청사포역으로 나오면 건널목이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사진명소입니다.저와 여행동지 큰딸은 구태여 그곳을 고집하지 않았기에 사진으로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반세오는 베트남식 부침개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  콩나물과 육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어 한..

일본 동경 - 메이지 신궁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곳은 동경 메이지 신궁입니다.메이지 신궁이란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국가기념물인데요, 굳이 비교하자면 단군사당과 등치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살아있던 인간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장소이기 때문에(음, 단군도 실존인물 아닌가? 암튼요..)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공간이라 한 번쯤 돌아보며 우리와 다른 길을 걸었던 그들의 내밀한 속내에 대해서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가시는 길  동경 시내에서 JR을 이용하신다면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에서 하차하시면 바로 뒷편이 신궁입구로 연결됩니다. 지하철을 탑승하신다면 치요다선을 이용하여 메이지진구마에역에서 하차하시면 신궁으로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입장료 : 무료(메이지신궁 정원은 유..

Gustav Klimt(구스타프 클림트) / 5 - 장식 풍경화

(전회에 이어서)      1900년 직전, 클림트는 풍경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게 됩니다. 그는 여름마다 에밀리 프뢰게 및 그녀 가족과 함께 시골에 정기적으로 체류하였는데 이때 중요한 영감을 얻었던 같습니다. 1898년 그는 에밀리 프뢰게 가족과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에 위치한 할슈테터 호수의 장크트 아가타에서 첫여름을 보냈는데, 이곳에서 과일나무가 있고 먹이를 찾는 닭 떼를 묘사한 작품 을 제작합니다. 높고 좁은 사이즈롤 제작된 작품에서 과일나무들이 엇갈리게 배열되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하얀 새들과 초원 위에는 중구난방으로 날뛰는 하얀 닭들이 그려져 묘한 깊이감을 느끼게 합니다. 클림트는 풍경화를 그리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파스텔 같은 화법을 사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윤곽이 흐려져서 마치 안개..

Gustav Klimt(구스타프 클림트) / 4 - 벽화 작품들

Beethoven Frieze  클림트가 참여하였던 빈 분리파 예술가들은 제체시온 전시관에 자신들의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위대한 음악가의 기념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1902년, 제14회 분리파 전시회에 초대된 작품인 독일 조각가 클링거(Max Klinger)의 베토벤 상과 함께 동일 주제를 구현하는 대형벽화를 의뢰하여 제작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입니다. 세 개의 벽을 휘돌아가면서 그려진, 길이 34m, 높이 2m에 이르는 클림트의 프레스코 벽화는 오늘날 베토벤 상보다 더 유명해져 빈 분리파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현재  Beethoven Frieze는 Vienna Secession Building의 지하실에서 영구 전시되고 있습니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빛이..

Gustav Klimt(구스타프 클림트) / 3 - The Kiss 外

클림트가 1892년 아버지와 동생이 사망한 후 3년간 창작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린 작품이 입니다. 클림트는 이 작품에서 한 쌍의 연인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사랑을 우의적이면서 장식적인 배경을 더하여 그림이 포함하는 맥락을 넓혔습니다. 무대 위의 두 주인공은 삶과 사랑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젊음, 늙음, 죽음을 형상화한 여성 머리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후의 많은 그림에서 클림트는 이러한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이 그림에서 Klimt의 눈에 띄는 발전, 즉 프레임의 사용이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림의 거의 절반이 양쪽에 금색으로 칠해진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클림트는 그림의 서곡 역할을 하는 장미를 그 위에 그렸는데, 이는 인물의 사실적인 처리와 프레..

Gustav Klimt(구스타프 클림트) / 2 - 인물화와 여성편력

지금은 세상을 하직한 한국의 유명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정통 영화공부를 하여 주류에 진입한 감독이 아니라서 아웃사이더로 떠돌았고 해외 영화제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죠. 홍상수 감독과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길을 걸었던, 그쪽 방면의 선구자쯤 되는 인물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말년이 안 좋았습니다. 리투아니아쪽인가 러시아인근 북유럽과 동유럽의 경계지점에 있는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로 도망가다시피 잠입하였다가 코로나19로 객사를 하고 말았죠. 왜 그가 그곳으로 잠입해 들어갔었나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성편력 아니 여배우 성폭행 + 진짜 폭행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해외를 낭인처럼 떠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영화를 찍는 여배우와 잠자리 가지는 걸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