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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에드워드 호퍼) / 3 - 도시 인물화 퍼레이드

hittite22 2025. 3. 24.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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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소외된 도시 인물화

 

 

Hotel Lobby, 1943, oil on canvas, 81.9 × 103.5 cm, Indianapolis Museum of Art

 

<호텔 로비>는 두 명의 여성과 남성을 묘사한 작품으로 간결함과 소외를 고전적 스타일로 나타냈습니다. 작품 속의 부부는 자신들을 반성하기 위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조명에 가혹한 색조를 사용하고, 불편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단단한 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극적인 느낌과 작품에 대한 억압적인 감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Summertime, 1943, 74 x 112 cm [Delaware Art Museum (United States)]

 

작품 <여름>은 부부 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문 앞에 나와 있는 여인은 몸의 윤곽과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원피스차림입니다. 차림새나 시간상으로 보아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은 아닌 듯합니다. 그럼 단순히 여름 햇살에 선탠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평론가들은 호퍼의 ‘탈선’에 방점을 찍으며 작품 속에 현대문명에 의한 인간의 상실감과 단절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상상에 맡긴 해석일 뿐입니다.

 

Summer Evening, 1947, Oil on canvas, 76 x 107cm [Collection of Mr. and Mrs. Gilbert H. Kinney]

 

작품 <Summer Evening> 속 두 사람은 주변의 베란다, 벽 및 잔디 분위기에 편승한 부부로 여겨집니다. 다소 소외된 고립 상태에 있는 개인의 모습, 이것은 호퍼가 즐겨 다루었던 주제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이 대도시의 풍경을 묘사한데 비하여 이 작품은 마치 어둠 속에서 위협적인 무언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부부는 취약해 보이며,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은 ​​어느 정도 여자를 향하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바닥을 주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서로 관심을 집중하여야 하는 사이임에도 연결의 부족함을 나타냅니다.

색상의 선택도 이러한 분리에 기여합니다. 집의 흰색 인테리어는 낮에 밝고 화사해보일지라도 밤의 어둠에 둘러싸여 있으면 섬뜩할 정도로 임상적입니다. 반면에 두 사람은 어린아이에 가까운 부드러운 색감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분홍색과 파란색은 이 사람들이 세상의 도전에 대해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지금은 고요한 순간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 위에는 '현실 세계'가 크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Pennsylvania coal town, 1947, oil on canvas, 71 x 101.6 cm

 

<Pennsylvania coal town>에 묘사된 남자는 손에 갈퀴 또는 유사한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녹색 잎사귀가 있는 식물을 심은 대형 꽃병이 있을 뿐, 남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Hopper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거리에서 알지 못하는 곳을 응시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호퍼의 많은 그림들처럼, 이 작품에서도 빛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햇빛은 사람과 집의 한쪽 면에 직접 비치고 있는데 이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호퍼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외로움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대상은 혼자이며, 주변에 생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커튼이 닫혀있어 집은 배경 자체일 뿐입니다. 평론가들은 <Pennsylvania Coal Town>을 가리켜 Hopper의 천재성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의 하나라고 평가하는데 저는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테마로 삼기 어려운 것을 작품 소재로 삼은 것은 분명합니다.

 

Conference at Night/야간회의, 1949 , 101.6 x 70.49 cm [Wichita Art Museum, Wichita, KS, US]

 

호퍼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현실의 작은 조각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제목 <야간 회의>에 기초하여 작품을 바라보면 남자 뒤에서 들어오는 빛은 태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명으로 여겨집니다. 장소는 사무실인데 사람들은 서류가 책상위에 닫힌 채 놓여있고 맨손으로 뭔가 소통하는 모습입니다. 한 남자는 소매를 감은 자세로 말하고 있고, 다른 남자는 방금 도착한 것 같은 옷차림입니다.

 

한 사람은 모자와 외투를 입은 차림새이고, 다른 한 명의 넥타이는 느슨한데다 소매는 팔꿈치 위로 감겨있습니다. 그럼 이들이 회의를 하는 주제는 뭘까요? 오히려 두 남자보다는 머리가 거의 정확하게 중심에 위치하며 뒤로 젖혀진 몸짓으로 서 있는 여성이 회의를 주관하는 건 아닐까요?

 

Cape Cod Morning, 1950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Morning Sun, 1952, oil on canvas, 101.9 x 71.5cm [Columbus Museum of Art, Ohio]

 

위 작품과 아래 작품 모두 같은 여성 모델이며, 같은 의상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작품 제작에는 2년의 시차가 있는데 말이죠. 그것은 모델이 그의 아내였기에 가능했던 일인 듯싶습니다. <아침 햇살>은 Hopper의 나이가 거의 70세가 되었을 때 제작되었습니다.

 

그림에서 여인(당시 68세였던 그의 아내 조세핀으로 추정됨)은 깔끔하게 만들어진 침대 위에 똑바로 앉아서 창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아침 해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와서 인물을 지난 뒤에 있는 벽면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화가가 그려낸 여인은 늙은 얼굴인 데다 세부 묘사도 뚜렷하지 않아 표정이 애매모호합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특정 인물의 초상화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분위기를 포착하거나 심리적인 효과를 묘사하기 위한 작품으로 판단됩니다. 그림에서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미세한 찡그림도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듯 차가움마저 드러나 보입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우리는 너무 외로운 나머지 타인도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남들도 나와 같이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사무치게 각인시켜줄 때 우리는 힐링이 됩니다. 호퍼 작품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Hotel by a Railroad, 1952, 101.9 x 79.4cm [Private Collection]

 

<Hotel by the Railroad(철도 옆 호텔)>는 색, 디테일 및 브러쉬 스트로크의 탁월한 사용을 보여주는 유화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호텔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한 쌍의 모습에 미치는 빛의 영향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호퍼는 색, 디테일 및 주제를 탁월하게 사용하여 평생 동안 많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도시와 농촌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미국 생활의 진정성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Office in a Small City, 1953, oil on canvas, 71.1 × 101.6 cm

 

작품 <Office in a Small City(소도시의 사무실)>는 1953년 10월 말에 완성된 직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The Metropolitan Museum)에 인수되었습니다. 여름에 케이프 코드(Cape Cod)에서 작품을 시작하여 뉴욕에서 완성된, 그해 호퍼가 제작한 유일한 유화였습니다. 그의 시그니처 주제 중 하나인 고독한 인물, 주변 환경 및 다른 사람들과 신체적,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 작품 속 남자를 가리켜 그의 아내는 "콘크리트 벽의 남자"로 코멘트하였습니다.

 

Sunlight on Brownstones, 1956 [Wichita Art Museum, Roland P. Murdock Collection]
Sunlights in cafeteria, 1958, 102 x 153cm [Yale University Art Gallery (Hartford, United States)]
Second Story Sunlight, 1960, 127 x 101.6cm [Private Collection]

 

아침 햇살을 마주한 한 쌍의 박공 가옥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Hopper가 어떻게 도시 경관을 심리적 초상화로 끌어올리고  의미를 부여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발코니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은 간신히 옷을 입은 여성이 난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한 명은 책을 읽고 있는 나이든 여성입니다. 호퍼의 후기 그림 거의 모두는 아내 조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두 인물 역시 조를 모델로 그린 것입니다.

 

Hopper가 말했습니다.

"나는 두 인물에는 상징주의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상징주의보다 건물과 인물에 대한 햇빛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위의 작품과 그 위에 소개한 세 작품이 모두 햇빛을 모티프로 삼아 그린 작품들입니다. 호퍼는 정말 햇빛에 많이 꽃혔던 모양입니다. 독특한 빛의 특성을 지닌 허드슨 강 유역을 따라 성장한 호퍼는 어릴 때부터 "집 꼭대기에 비치는 햇빛이 주는 어떤 고양감(환희)"에 민감했었다고 합니다. 그의 경력 말기에 그려진 <두 번째 이야기 햇빛(Sunlight)>은 이해하기 어렵고 변화하는 성격(햇빛의 특성)과 암시적인 품질 렌더링(표현)을 가시화시키려고 어떻게 노력했나요? 건물 정면의 새하얀 평면과 그림자에 드리워진 대조적인 평면의 묘사가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Woman in the sun, 1961, oil on linen, 101.9 × 152.9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햇빛 속의 여인> 역시 고독하기 그지없는 누드여성을 보여줍니다.

혹시 그의 아내를 모델로 그린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기엔 조금 젊어보이는데..

 

암튼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서 막 일어난 여인은 옆으로 포즈를 취한 채 창문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샤워를 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모습은 빛과 그림자, 밝은 빛 속의 우울한 분위기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고독을 초월한 불안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담배를 들고 있으되 불 붙이는 것을 잊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여인의 포즈보다 텅 빈 방 안에 새겨진 빛과 그림자를 통하여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New York Office, 1962, oil on canvas, 101.6 × 139.7cm [The Museum of fine arts, Montgomery, Alabama USA]

 

Hopper는 연극 용어로 "지연된 순간"으로 알려진 것을 즐겨 보여주었습니다. 큰 창 뒤에서 비서가 손에 든 편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벨이 그녀를 현실 세계로 소환할 때까지 생각에 잠겨있을 듯한 자세입니다.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는 사무실의 한 장면을 목격한 우리의 눈에 그녀는 혹시 메릴린 먼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가졌습니다.

아, 이건 작품 감상과 관계없는 얘기네요...

 

People in the Sun, 1963, oil on canvas, 102 x 153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태양에 있는 사람들>?

<선탠 중인 사람들>이란 제목이 더 어울리는 듯한데요?

 

이들 호텔 투숙객은 주변 경관을 전혀 즐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재킷이나 스웨터를 벗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얼어붙어 있습니다. 옷차림으로 보아 세련된 차림새를 갖추었지만,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한 사람 만이 나머지와 다르게 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차가운 햇빛은 책을 읽는 그마저 포박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Intermission, 1963, oil on canvas, 101.6 x 152.4cm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FMOMA)]

 

호퍼의 대표작 중 하나인 <Intermission(휴식)>은 조명 및 음조를 사용하여 차가운 동시에 친밀한 고립감을 전달합니다. 벽과 몰딩을 따라가는 그림자 아래, 그림은 떨어지는 빛에 의해 부분적으로 강조된 그녀의 얼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호퍼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그림을 얇게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강당의 녹색 안락의자가 밝은 초록에서 푸르스름한 회색으로 희미해져 스케치처럼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이 그림은 빛나는 색과 매우 추상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 추상적인 배경은 극도로 현대적인 스타일의 느낌을 얻게 해주는 느슨한 붓놀림에서 창출되었습니다.

 

Chair Car, 1965, Oil on canvas, 127 x 101.6cm [Private collection]

 

Edward Hopper는 추상과 초현실주의가 광풍처럼 휩쓸던 시기에도 꿋꿋하게 사실주의를 유지했던 작가입니다.(그래서 제가 애정합니다.) 그리고 사실주의 작품에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소외감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장면들이 보석처럼 담겨 있습니다.

 

호퍼의 작품 중에서도 여행자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길, 고속도로, 광고사인, 가스충전소, 호텔 등등.. 이런 소재들은 호퍼에 의해 여행자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Chair Car>도 이런 관점에서 제작된 것으로 그의 여타 작품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은 열차 객실의 뒤쪽에서 바라본 정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화폭에는 세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마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듯 얼마간의 간격으로 떨어져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호퍼는 이 작품에서 녹색, 황색, 청색, 흰색을 사용하여 쓸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현실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Two Comedians, 1966, 73 x 101cm [Private Collection]

 

83세에 그린 <Two Comedians>는 에드워드 호퍼의 경력 정점을 찍는 실존적 역작입니다.

호퍼는 그의 마지막 그림인 <Two Comedians>에서 자신과 아내 Jo가 무대에서 일종의 작별 인사를 하고 미지의 세계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가 Jo는 호퍼의 경력 전반에 걸쳐 남편의 뮤즈이자 모델이었으며 그의 여러 그림에 등장했습니다. 이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남편과 아내는 호퍼의 삶과 예술에서 조가 맡은 중요한 역할을 미묘하게 인정하면서 서로 다정하게 손 잡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두 사람 모두 80세가 되고 아팠습니다. 호퍼는 2년도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나고 아내 조 역시 이듬해에 사망합니다.

호퍼의 아내  Jo는 커플 모습을 담은 <Two Comedians>를 가리켜

"어두운 무대와 무언극에서 나온 두 명의 작은 인물"

로 코멘트 한 바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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