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미국 뉴욕 태생인 호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뉴욕예술학교에서 로버트 헨리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1906년(24세) 파리로 유학을 떠났으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1910년까지 유럽여행을 하였습니다. 1913년 아모리 쇼에 그림들을 전시했고 1915년 에칭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전향하였으며, 1924년까지는 주로 광고미술과 삽화용 에칭 판화들을 제작했습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작품에서 주로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리되 도시인의 소외감이나 고독감을 표현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산업화와 제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모습을 잘 나타냈기 때문에 미국의 리얼리즘 화가로 불립니다. 호퍼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팝아트, 신사실주의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화상
에드워드 호퍼는 초기 시절에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지만, 이것은 경력의 성숙기에 완성시킨 몇 안 되는 자화상 중 하나입니다. 1918년경 Hopper는 모자를 쓰고 있는 자신을 묘사한 에칭을 만들었습니다. 자화상에서 그는 이전 이미지의 포즈를 유지하는 반면 성숙하고 사려 깊어진 그의 모습은 세월의 영향을 암시합니다. 양복과 넥타이를 입은 호퍼는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않습니다. Hopper가 위치한 내부 공간이 어떤 곳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그의 모자는 그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초기 인물화
여름 실내에 한 여성이 낙담한 듯 앉아 있습니다. 혹은 익명의 외로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머리를 아래로 수그려 가려진 얼굴, 바닥에 앉아 그녀는 하얀 민소매 셔츠만 입고 생식기를 노출시킨 자세입니다. 그녀의 왼쪽 팔은 양 허벅지 사이로 뻗어 음부를 가리는 듯합니다. 그녀의 오른팔은 팔꿈치에서 구부러지게 함으로써 침대에 몸을 기대어 앉았습니다. 흰색 벽난로는 침대 발판 옆에 거의 숨겨져 있는 듯 서 있습니다. 창은 그림의 오른쪽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일광의 패치가 방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호퍼는 1906~1909년에 3차례에 걸쳐 유럽 여행을 했고 이 중 한번은 1년간 파리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어에 유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줍음이 많았던 호퍼는 파리에서 홀로 보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미술 평론 혹은 연구자들은 인적이 거의 없는 파리 모습을 화폭에 담고 와인잔을 기울이는 커플을 등장시킴으로써 작품 <Wine Shop>의 배경이 프랑스임을 암시했다고 해설합니다.
그런가요? 잘 수긍되지 않는 해설이군요.
실제로 이 그림은 파리에서 돌아온 후 여행의 기억을 되살려 상상으로 그린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가 예술의 중심도시이자 새로운 미술 사조로 요란했던 시기였음을 상기하면 호퍼가 그린 작품의 배경이 프랑스 파리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파리라는 도시가 원래 이렇게 한적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호퍼의 초기작 <푸른 밤>은 피카소가 청색 시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 속에는 소음이 가득한 카페 안의 저녁을 즐기는 파리지앵들이 가득합니다. 왼편부터 차례로 살펴보면 담배를 문 노동자, 담배를 피우는 또 다른 남자와 군 장교, 서 있는 매춘부, 흰옷차림의 광대 그리고 오른쪽 끝의 부르주아 커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성인물과 함께 작품에 등장하는 담배, 압생트 술, 파티, 오페라, 매춘 등은 당시 파리지앵들이 즐긴 오락거리를 대변하는 장치입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하얀 분칠의 광대입니다. 광대의 흰 분칠은 17세기 후반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이후 광대들은 내면의 외로움을 감추고 입은 웃고 있지만 슬픈 눈을 가진 인물로 패턴화 되었습니다. <푸른 밤>에서 등장하는 이질적인 존재인 광대는 파리지앵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보냈던 에드워드 호퍼 자신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광대가 느낀 소외, 고독은 이후 펼쳐지며 천착해가는 호퍼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으므로 어찌 보면 광대는 호퍼 자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몇 년 동안 잡지 삽화가로 일하고 여러 차례 파리를 여행한 후 1921년 <재봉틀 돌리는 소녀>를 그렸을 때, Hopper는 그의 스타일을 완전 마스트한 듯합니다. 작품을 보면 도심 속 한가운데 있는 건물 안, 얼굴을 가리다시피 하는 긴 머리의 젊은 여성이 창가에서 재봉틀 작업에 몰두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네덜란드 화파의 17세기 예술가들이 그린 실내 설정과 유사한 방식이라 합니다. 아, 에드워드 호퍼가 네덜란드 출신이지요. 이유가 있었군요.
Hopper가 그린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실내에 들어온 빛의 궤적입니다. 이 작품에서 빛은 내부를 관통하여 먼 벽에 투영된 사각형 모양의 창틀이 기하학적 효과를 만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작품 <여름 인테리어>에서도 일광의 궤적이 방 안에 드리워져 있는 장면을 감상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빛은 또한 어두운 실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의 모습을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하여 단순한 일상의 풍경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하고, 그녀는 작업에 몰두하는 고독한 여성, 인간 소외의 상징으로 등극합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지나가는 El Train(Elevated railway, 고가열차)의 밝게 빛나는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도시사람들 모습을 자주 화폭에 담았습니다. 호퍼가 실내 장면에 대하여 가졌던 초기 관심사를 드러낸 <New York Interior>는 바느질하는 젊은 여성의 뒷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호퍼가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관점은 창문을 통해 관음적으로 엿볼 수 있는 현대 도시 생활의 비인격적이면서도 친밀한 감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작품 속에 등장한 여성의 옷차림과 몸짓은 호퍼가 가장 존경했다는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발레 댄서를 연상시킵니다. 왼쪽의 부분적으로 가려진 액자 초상화는 이전 작품인 <Artist's Bedroom, Nyack>(1903~1906)에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호퍼는 자신의 과거 그림에 대하여 언급함으로써 우리가 익명의 장면을 잠깐 보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Hopper의 작품에서 빛은 그림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자연광과 인공광은 선명도 또는 압도적인 밀도의 경계를 만들어 냅니다. 호퍼의 초기작품 중 일부는 빛의 묘사가 표현해 내는 분위기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New York Restaurant>, <Automat> 및 <Chop Suey> 등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연극이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하는 사회적 상황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작품 중 어느 것도 등장인물이 실제 스토리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무엇을 보는지는 주변 장치를 통해 해석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호퍼는 인간이 포괄적으로 드러내 보인 순간을 포착하여 특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능력을 지닌 화가입니다.
Hopper는 1913년 Armoury Show에서 첫 그림을 판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 10년 동안 자신의 그림을 판매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로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습니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20년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에서 열렸으나 판매에는 실패했습니다. 1923년은 Hopper가 10년 만에 첫 작품인 수채화 <Mansard Roof>를 Brooklyn Museum에 판매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해였습니다. 같은 해에 제작된 <아파트 주택(Apartment Houses)>은 유화로 첫 박물관 판매된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서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 사이의 유희를 연출하는 "아파트"는 도시 주거의 혼잡함을 암시합니다. 관람객은 코너 침실의 열린 창을 통해 아파트 내부의 한 구석에서 가사에 종사하는 고독한 인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시실을 거니는 관객은 관음종자처럼 금발 머리와 홍조를 띤 볼을 가진 여성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됩니다. 관객들은 거울 스탠드, 벽에 걸린 그림 등 화가가 설정한 장치(가구)를 보고 그림 주인공이 집주인인지, 시트를 갈아주는 하녀인지 추정할 수 있으며, 그녀의 얼굴 표정이 무엇을 암시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방의 나머지 부분이 볼 수만 있다면 어떤 단서가 드러날지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림에서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아파트 생활에 대한 진술입니다.
<Apartment Houses>에서도 Hopper는 놀라운 빛의 사용방법을 보여줍니다. 관객은 그녀가 작업하는 동안 아파트 벽을 비추는 햇빛을 느낄 수 있으며, 그녀의 뺨은 비치는 햇빛에 붉어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은 그 해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의 연례 전시회에서 박물관에 팔렸습니다.
Jo라는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Hopper는 글로스터(Gloucester)에서 섬머 그림 여행을 하던 중 미래의 아내 조세핀 니비슨(Josephine Nivison)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키가 작고 개방적, 사교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반면 호퍼는 키가 크고 비밀스럽고 수줍음이 많고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1년 후에 결혼합니다. 그녀는 '때때로 에디와 대화하는 것은 우물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다만 바닥에 닿았을 때 쿵쾅거리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호퍼의 경력과 인터뷰를 관리했고 그의 주요 모델은 물론 삶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Nivison의 도움으로 Hopper의 Gloucester 수채화 그림 6점이 1923년 Brooklyn Museum의 전시회에 등록됩니다. 그중 하나인 <The Mansard Roof>는 박물관측에서 영구 컬렉션으로 $100에 구입합니다.
1926년 일요일, 도시는 버려진(또는 잠들어 있는) 영원한 일요일이고, 인도에서 셔츠소매를 입고 앉아 있는 노인에게 이 일요일의 공허함은 분명히 평일의 공허함보다 더 견디기 힘들고 더 무의미할 것입니다. 이것은 막다른 골목이자 미래가 없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호퍼의 인물 대부분은 거의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Edward Hopper와 Edvard Munch를 비교해 볼까요? 뭉크도 정신적인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묘사했지만, 그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기타 방법으로 자신의 짐을 풀어놓는 제스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호퍼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출구가 없습니다.
작품 <일요일>은 20 세기 미국을 특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이 전시된 1926 년, 미국은 대공황의 초입에 접어들었으며 이 작품은 지난 십 년간 구성원이 겪은 불안과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들춰낸 것입니다. 호퍼의 특징적인 스타일은 개인의 근본적인 고립, 내부 문제와의 관계 및 긴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일요일>에서 중년 대머리 남성은 여송연을 피우면서 햇볕을 쬐는 연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 뒤에는 오래된 나무로 된 건물이 줄 지어 있으며 어둡고 그늘진 창문이 있어 주말임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Duncan Phillips는 이 작품에 대해
"그 끔찍한 장면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고, 빛은 즐거움과 우울함을 혼합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라고 극찬했습니다.
작품 <오전 11시>에서는 벌거벗은 여자가 창 근처 안락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머리카락에 부분적으로 덮인 얼굴은 불안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녀는 바깥에 있는 것을 관찰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편안한 자세입니다. 그녀 피부의 창백함이 그림의 다른 색상들(의자의 파란색, 램프의 진한 빨간색과 왼쪽 배경의 녹색 커튼?)과 너무 강하게 대비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 인물이 구도를 지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Automat>는 어두운 저녁, 식당인지 카페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테이블에 혼자 앉아 커피잔을 응시하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바쁜 도시 현장에서 벗어나 현지 식당이 제공하는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요? 그림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현대 도시사회에서 고립화되어가는 개인'이라는 호퍼의 탐구 주제를 완벽히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조명 설비에서 발생하는 열은 반사(복사)되어 검은색 창을 통해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장갑 하나만 착용하고 다른 장갑을 벗은 자세인데 이는 곧 다른 목적지로 이동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Automat(음식과 음료를 자동판매기로 사 먹을 수 있는 셀프서비스 레스토랑)는 어찌 보면 고립된 경험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약간 반사회적인 호퍼의 성향에 잘 부합됩니다.
외롭고 낙담한 여성에 대한 훔쳐보기는 Edouard Manet의 <The Plum(c.1877)>과 Edgar Degas의 <L'Absinthe(1876)>와 같은 인상파 걸작에서도 관찰됩니다. 그러나 Hopper는 설정을 통하여 바쁜 익명의 다수에게 일상의 소비재로 기능하는 자동판매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가장자리에 테이블이 드러나는 것은 이 장소가 끊임없이 붐비는 곳일 수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퍼는 나 홀로 휴식을 취하는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외로움에 빠진 여성의 내면을 조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에는 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3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작품은 비어있는 극장의 박스에 홀로 앉아있는 여인과 객석의 한 부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퍼가 제작한 작품에서 화려한 그림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 대중의 삶, 그 속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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