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나라-유럽

Marc Chagall(마르크 샤갈) / 16 - 전쟁테마

hittite22 2025. 3. 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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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에 이어서)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는 차 세계대전과 같은 시기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우구스트 마케는 1차 세계대전으로 전사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견뎌내었을 뿐 아니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던 마르크 샤갈의 삶을 관통한 전쟁. 

전쟁이 샤갈의 그림에 투영된 모습을 살펴봅니다.

 

 

 

The Poet Reclining, 1915 , Oil paint on cardboard, 77 x 77 cm, Tate, London

 

<The Poet Reclining>은 1915년 신혼 여행 중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샤갈이 러시아 시골집 앞에서 꿈결같이 기대고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마르크 샤갈과 그의 아내 벨라의 삶에서 가슴 아픈 순간을 포착합니다. 맨 아래 풀밭에 누워 있는 그의 몸은 비현실적으로 길쭉해진 모습이고 대부분의 화면은 소박한 농가와 푸르른 소나무 숲 풍경 그리고 보랏빛 황혼이 지는 하늘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목가적인 장면이면서 묘하게 고립된 정경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제목을 화가가 아닌 시인이라고 밝히는 것은 아마도 당시 샤갈이 우정을 나누었던 기욤 아폴리네르, 블레즈 상드라를 비롯한 파리의 다른 시인 및 비평가들과의 관계에 기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의 샤갈은 미술보다 문학적 세계에 대한 선호가 더 강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고요함은 어딘가 불확실성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입니다. 샤갈의 모습은 창백한 잿빛으로 자신의 가슴 위에 팔을 얹고 있는데 거의 시체와 비슷합니다.

이 장면의 배경에는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러시아 땅에서는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샤갈은 정신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The Revolution, 1937, oil on canvas, 50 x 100 cm, Private Collection

 

<The Revolution>은 Surrealism(초현실주의) Style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전쟁을 고발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은 파블로 피카소를 기억합니다. 그의 파쇼주의에 대항하여 제작한 작품 <게르니카>는 대중들이 정치적 냉소주의에 직면했을 목소리를 내어 항의의 깊이를 표현한 대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파블로 피카소만이  저항의식을 표현한 유일한 화가인 건 아니었습니다. 위 작품 <The Revolution> 역시 <게르니카>가 발표된 1937년에 샤갈에 의해 제작된 것입니다.

 

샤갈의 그림은 특정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 불안을 자신의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왼쪽에 무리를 이루고 있는 혁명가들은 공산주의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붉은 깃발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돌진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평등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표방하는 이미지입니다. 이들은 인간 상상력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의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음악가, 광대, 동물들이 노는 모습, 나무 오두막 지붕 위에서 뒹굴거리는 부부 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두 영역을 연결하는 인물(가운데 물구나무서기 한 인물?)은 레닌입니다. 그는 곡예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왼쪽의 혁명가들에게 개성의 세계(오른쪽)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갈은 러시아의 경험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습니다.

"혁명이 다른 것과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을 유지한다면 위대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창조적 힘은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의 원동력입니다. 중앙에 배치된 늙은 유태인은 여전히 ​​자신과 동족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했던 탓일까요? 

이 그림은 의미 전달에 실패한 듯이 보입니다. 샤갈은 피카소의 위대한 걸작(게르니카)에 비교하여 이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1943년 샤갈은 삼부작 형태로 정치적, 종교적 상징주의를 혼합하여 3개의 패널로 된 '혁명'의 대형 버전을 다시 계획한 바 있습니다.

 

The Three Candles, 1938~1939, oil on canvas, 96.5 x 127.5cm, Private Collection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1년 뒤(1940년), 프랑스로 진격한 독일 탱크는 몇 주 만에 프랑스 북부를 점령했습니다. 샤갈에게 있어서 전쟁은 프랑스 동료들처럼 계속 정상적으로 일하고 생활하면서 나치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샤갈은 생각 없이 점령지에 머물다가는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 전, 샤갈은 가족과 함께 남부 프로방스의 고르드(Gordes) 마을로 도피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꼭두각시 정부가 독일인들에게 더 큰 협력을 제공하기 시작하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샤갈은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가까스로 풀려났으며, 1941년 6월 가족과 함께 뉴욕 피난을 도모하여야 했습니다. 

샤갈은 미국 땅에서 5년간 살았습니다. 그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느꼈던 불안은 침울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작품에 반영되었다. 붉은 색이 풍부하게 칠해진 작품 <세 개의 촛대>는 이 시기에 느꼈던 샤갈의 심정을 잘 드러낸 걸작입니다.

 

Time is a River without Banks, 1939, oil on canvas, 31.8 x 39.4 cm

 

<Time is a River without Banks>는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유태인이었던 샤갈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비극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 그의 대표작입니다. 피를 흘리는 새는 바이올린으로 슬픈 운명을 연주하고 있으며, 어둡고 우울한 세상 속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한 듯합니다.

 

"시간은 강둑이 없는 강과 같다."
그가 만들어낸 이 표현은 시간의 끊임없는 흐름과 경계를 초월한 개념을 상징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강은 강둑(Bank)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있으므로 강물이 일정한 흐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둑이 없는 강"은 제한 없이 흘러가며 멈출 수 없는 흐름을 유지하는 뜻을 내포합니다.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이란, 기억의 영역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개념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The Village on Fire, 1940, gouache on paper, 67.6 x 51.4cm, Private Collection
Fire in the Snow, 1940~1943, pencil, gouache and pastel on paper, 62 x 49.2cm, Private Collection
La Chevauchee de la Discorde ou la Guerre(불화 또는 전쟁의 기승), c1942, oil on canvas
The Juggler, 1943, 78.7 x 110.5 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The Juggler>는 진지하고 신비로운 그림으로 개인적인 신화로 채워져 있습니다. 난해하고 모호한 현실을 암시하고 비현실로 옮겨가는 것 같지만, 개인적인 고백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림을 지배하는 인물은 1913년 샤갈의 그림(지금은 없어짐)에 처음 등장한 곡예사를 보여줍니다. 이 상징적인 인물은 남성적인 수탉 모양의 새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꽃이 만발한 흰색의 날개가 이상하게 생겨먹은 자웅동체 악마를 다른 세계로 데려갑니다. 따라서 그 형상은 여자, 남자, 동물, 악마 및 천사를 동시에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색상이 제시하는 것은 참고사항입니다. 댄서 스타킹의 어두운 코발트 블루는 여성의 영역이자 달의 영역에 속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연녹색 상의 위에 모습을 드러낸 수탉의 머리, 팔의 금색은 수탉이 나타내는 남성적 요소를 보여줍니다. 어깨에 달린  흰 날개는 활짝 펼쳐져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려는 형국입니다. 오른팔 위에 있는 걸레처럼 늘어진 구식 벽시계는 이 존재가 영원불변함을 상징합니다. 샤갈이 해석한 인간계의 전말입니다.

 

War, 1964, oil on canvas, 163 x 231cm, Kuunsthaus, Zürich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나치의 위협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1941년 샤갈은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했야 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했던 고향마을, 또 그가 화가로서 정착했던 파리로부터 떠밀려나가는 일종의 도피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같은 종교적 이미지는 이 당시 샤갈의 내면 모습과 일치하는 고통의 감정이입된 형태였을 것입니다.

 

도피와 망명에 대한 생각은 작품 <전쟁>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극도로 과부하된 수레가 불타는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수레 뒤에서 자루를 어깨에 메고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혼란스러운 절망 속에서 서로에게 매달리지만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과 동물들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지옥의 횡포에 무력할 뿐입니다.

 

샤갈은 전쟁 중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감정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폭력의 시나리오에 덧붙여서 오른쪽 상단에 십자가 장면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 희생자를 순교자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샤갈의 헌사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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