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종교화 일반
담배를 피우는 유대교 성직자라는 추측으로 종교화로 분류했습니다.
내용을 찾다보니 고향마을의 논네가 담배피우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종교적 색채를 부여한 것으로 보기에 무리함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보기엔 아래속 펼쳐놓은 책이 아무래도 성경처럼 보이는데 말이죠..
성경에 기록된 유명한 이야기 '삼손과 데릴라'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런데 데릴라가 삼손을 꼬드기는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너무 억세고 추한 모습으로 묘사한 거 아닐까 싶습니다. 샤갈의 마음에는 데릴라가 아주 싫었던 모양입니다.
<Jew at Prayer>는 토라의 푸른 두루마리를 등에 지고, 짙은 어둠 속에서 한 개의 기호처럼 몸을 구부린 채 기도하는 유대계 노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샤갈은 1912년 파리에 있으면서 신을 두려워하는 노인의 그림을 여러 점 그렸습니다. 다른 작품 <토라를 가진 사나이>는 상체를 직각으로 젖혀서 하늘을 처다보고, <성 보아튈리에>는 S자 형의 아크로바틱 포옴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굴절하는 것에 대한 오브세셩(강박관념)은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인 듯싶습니다.
초막절(Sukkot)은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과 함께 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가을절기의 대표 절기이자 1년 중 마지막에 당하는 절기로, 풀로 집(장막)을 짓는 것을 기념하기 때문에 장막절, 수장절로 불리기도 합니다. 땅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땅을 있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의미하며, '추수 감사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샤갈이 자서전 'My Life'에서 이 작품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기도하는 유대인>의 모델은 화가가 아버지의 기도복을 입히고 그림에 앉도록 한 늙은 거지였다고...
샤갈 아버지의 기도복은 탈리스(검은 띠가 있는 드리워진 숄)와 경전 구절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작은 정사각형 가죽 상자인 성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대인 남성의 머리와 왼팔은 가죽 끈으로 묶여있습니다. 그림 주위에 소용돌이치는 추상적인 모양은 이 초상화가 전 세계 유대인을 위한 아이콘으로 변형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1933년 나치는 공개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지지하고 독일에서 그들의 탄압과 추방을 요구하는 강령을 기반으로 집권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그러한 변화를 겪은 유일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 인구가 많았던 동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수십 년마다 심화되었다가 다시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세계의 그 지역에서 또 다른 그러한 순환을 보았고, 동유럽 유대인으로서 샤갈은 그 나라에서 많은 친구와 가족과 함께 이러한 반유대주의의 성향이 부상하는 현상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193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동안 샤갈은 친구 중 한 명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1937년 나치는 독일 영토에서 샤갈의 그림 59점을 압수하여 Degenerate Art(Entartete Kunst)라는 제목의 전시회의 일부로 전시했습니다. 샤갈의 대답은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상반된 두 종교를 예술을 통해 화해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작품 <고독(1933)>에서 그는 끓어오르는 폭풍 속에서 유대인들이 느끼는 깊은 슬픔과 고통을 묘사하였습니다..
<수탉의 목록(Listing to the Cock)>은 Cubism Style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작품에서는 그가 다루어왔던 친숙한 요소들인 사랑하는 커플, 오두막, 동물, 그리고 종교적 이미지까지 그림의 성격을 결정하기 위해 새로운 조합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의 붓놀림과 색채 조합은 샤갈 회화의 구체적인 내용과 개성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입니다. <수탉의 목록>이 이를 증명합니다. 윤곽선과 화려한 머리로만 빨간색 배경과 구별되는 수평아리의 모습인데 알을 낳을 준비가 된 상태로 그려졌습니다. 수컷닭 + 암컷 자궁의 결합인가요? 하늘에 떠 있는 동물(돼지로 추정)은 남성과 여성 머리를 한 존재입니다.
뭐, 화가가 표현하려한 정확한 의도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붉게 물든 새벽은 밤의 연인들 영역을 점차 없애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는 작품 제작된 1944년이라는 시기적으로 꿰어 맞추어 해석하면 나치즘의 몰락이 다가오며 새로운 희망을 꿈구는 것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습니다.
마르크 샤갈은 1946년에 미국에서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1947년에 그는 거의 25년 동안 작업한 <Falling Angel(1923-1947)>을 완성했습니다. 샤갈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된 이 작품은 그가 1922년 작품을 시작했을 때 러시아 혁명에 대한 기억으로 그림에는 유대인과 천사의 인물만 포함되었고 의도하는 바는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구약의 증거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47년 그림이 완성될 때 샤갈은 마돈나와 십자가 위의 기독교 이미지를 추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48년 여름 프랑스로의 마지막 귀환으로 행복하게 마무리된 자신의 오디세이는 월든의 베를린 전시회 이후로 아주 초기 단계부터 그의 작업의 오디세이이기도 했습니다.
그림이 전시된 후 인생의 대부분을 대도시에서 보내며 진보적인 집단에서 사교 생활을 했던 샤갈은 공적 생활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소망을 표명했습니다. 1950년에 그는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조용한 마을인 Saint-Jean-Cap-Ferrat로 이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은둔시키려던 순간, 샤갈은 그의 명성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구약시대
모세의 출애굽
미국으로 이주하기 얼마 전에 마르크 샤갈은 <엑소더스>에 대한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이 제목은 구약에 기록된 대로 B.C 1200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암시합니다.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후 지도자 모세는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림에서 샤갈은 오른쪽 아래에 서서 그가 방금 신의 손에서 받은 계명이 적힌 판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너머에는 사진의 저 깊은 곳에서 엄청난 군중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성경에 비유로 전해지는 이야기이자 1948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샤갈은 익숙한 방식으로 다양한 역사적 수준과 문학적 출처를 뒤섞었습니다..
작품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이에 구아슈와 오일로 그린 나이브 아트Naïve Art(원시주의Primitivism) 운동에 속하는 종교화입니다.
내용은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묘사된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가 이집트 파라오의 박해를 피하여 이스라엘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홍해를 건너는 믿음의 여정을 담은 것입니다.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이 모세이며 샤갈은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민중을 이끄는 장면을 삽입하여 홍해도하의 기적을 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두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단부는 천사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가는 것이 이스라엘 국민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며
그 아랫부분은 애굽군사들이 이스라엘국민들을 제압하려 달려들어 함께 홍해로 뛰어들다가 수장되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오오.. 미학적 관점으로 바라만 보기에는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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