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이 체코 프라하를 버킷 리스트의 한 곳으로 점찍기 시작한 때가 언제일까요?
제가 어렸을 때는 해외여행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으므로 체코 프라하라는 곳을 손가락으로 꼽을 일 자체가 없었고, 정말 인생 여행지로 소환되던 곳은 갈 수 없는 나라에 존재하는 '금강산'일뿐이었습니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장소는 오직 '그곳(금강산)' 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필 갈 수 없는 나라이다 보니 인생여행지로 '꿈'만 꾸어보는 그런 시절을 살았던 것이죠.
참, 격세지감을 느끼는 얘기인데 그건 바로 박정희시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살인마 전두환이 국민 마음을 얻으려고 교복 자율화, 두발 자유화와 함께 해외여행 자유화조치를 취하면서 신세계가 열린 거죠. 하지만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체코 프라하가 선호여행지로 떠오른 건 아니었어요. 알프스가 있었고, 로마가 또 파리가 있었으니.. 그럼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방영된 후에 체코 프라하가 '로망'으로 떠올랐나요?
그 시기가 언제였던지 간에
지금도 체코 프라하는 버킷리스트의 단골 메뉴로 떠오르고 있으며,
프라하 여행을 한다하면 바로 소환되는 장소가 카를교와 어깨동무하듯 등장하는 프라하 성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프라하 성은 프라하를 방문해 보지 않은 여행객들에게 언젠가 한 번은 가보아야 할 성채로 점 찍혀 있는 곳이지요. 그 프라하 성을 모십니다. 마치 진객처럼 귀하게 모십니다.
이리 오시지요, 프라하 성님..
관람일(성 비투스 대성당) :
하절기(4.1~10.31) 월~토 9시~17시 / 일 12시~17시
동절기(11.1~3.31) 월~토 9시~16시 / 일 12시~16시
요금 :
Prague Castle - Main Circuit 일반 450czk / 6~16세 & 65세이상 300czk
관람구역 (Old Royal Palace, St. Vitus Cathedral, St. George's Basilica, Golden Lane)
Prague Castle - Permanent Exhibitions 일반 300czk / 6~16세 & 65세 이상 200czk
관람구역 (The Story of Prague Castle, Castle uard Exhibition, Prague Castle Picture Gallery, Rosenberg Palace)
1)Archbishop's Palace 2)Matthias Gate 3)Chapel of the Holy Cross 4)Imperial Stable 5)Spanish Hall 6)St. Vitus's Cathderal 7)Old Collegiate Church 8)Old Royal Palace 9)Theresian Wing 10)Basilica of St. George 11)Convent of St. George 12)Lobkovice Palace 13)Supreme Burgraviate 14)Golden Lane 15)Daliborka Tower 16)Black Tower
위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프라하 성 제3정원에 위치한 성 비투스 대성당은 925년 벤체슬라우스 1세(바츨라프) 공작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1세로부터 받은 성 비투스의 팔을 보관하기 위하여 건설을 개시하였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성 비투스"라는 이름 역시 프라하의 수호 성인인 보헤미아 공작 성 바츨라프가 지은 것입니다. 황제가 성 비투스의 팔을 바츨라프 공작에게 준 것은 슬라브 사람들(체코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한 방편(완벽한 유물)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때문입니다.
973년 프라하 교구가 확립되었고 1060년 이후 성 비투스 대성당은 세 개의 중앙 회중석과 두 개의 첨탑을 가진 성당으로 발전했습니다. 1344년 카를 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건축가 마티아스가 고딕양식의 건물을 짓기 시작했죠. 그의 사후에 페트르 파를러가 성가대석과 바츨라프 예배당을 비롯한 본당 주변의 소예배당들과 황금 문과 주탑(종탑)의 하단부를 건축합니다. 16세기 중엽에는 종탑의 꼭대기를 르네상스식 투구 모양으로 완성하였고, 17세기에는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원래의 모습을 복구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네오고딕 양식을 갖추었습니다. 봉헌은 1929년 9월 28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신 고딕 양식의 외관은 Josef Mocker(요세프 모커)가 디자인했으며 전체 건설은 600 년이 소요되었습니다. 600년이라고는 하나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자금 문제로 건설 중단 상태에 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대성당은 체코에서 가장 큰 교회 (124 x 60m, 천정 33m, 주탑 102.8m)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많은 보헤미안 왕과 신성 로마 황제의 무덤을 품고 있습니다. 원래 성 Vitus(비투스), Wenceslaus(바츨라프) 및 Adalbert(아달베르트)의 대성당이었으나 1997 년까지 대성당은 오직 성 비투스에게만 헌신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성 비투스 대성당으로만 지칭되고 있습니다.
네오고딕 양식의 구조는 긴 회중석을 중심으로 측면의 좁은 복도에 스테인드글라스를 가진 고딕 예배당들이 빙 둘러서 이어지고 북쪽에 익랑(wing)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 비투스 대성당은 아주 많은 수의 소예배당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복잡하고 둘러볼 볼거리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방문하셔야 한다는 거죠.



이 청동문의 부조에는 바츨라프왕의 일대기가 순서대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들을 살펴보면 성 비투스의 팔을 모셔오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성당에 들어가서 파사드를 등진 상태로 내부 전경을 찍은 모습입니다. 좌우측 벽체에 돌기둥이 숲을 이루는 사이사이로 소예배당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딕양식으로 건축한 성당이라 천장이 높고도 높습니다.
대성당에 들어가면 아시겠지만 높고 웅장한 내부 건축물, 그리고 다양하게 제작된 기념물들이 배치된 공간은 고상한 기운을 성당 내부로 끌어들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한 내부 풍경은 기독교 신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관람객의 마음을 거룩하게 어루만지며 동시에 경건한 자세를 취하도록 압박해 오는 듯한 인상을 가지게 합니다. 이를 테면, 묘한 겪음이 시작되는 공간에 들어간 것이죠.
The Chapel of the Bartoň Family from Dobenín(Chapel of St. Agnes)[2]
소예배당 전체 모습을 힘들게 담아왔지만 다 소개하자면 너무 산만해질듯싶어 선별해서 포스팅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해주십시요.
성 아그네스 예배당은 Dobenín 출신 Bartoň 가족의 네오고딕 예배당으로 정문 초입에 위치해 있습니다. 1989 년까지, 이 예배당은 Bartoň-Dobenín(바르톤-도베닌) Chapel으로 알려졌습니다. Josef Barton(요세프 바르톤)은 1912 년 황제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귀족이었습니다. 직물 상인으로 축적한 그의 부는 대성당 건설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는데 이 때문인지 예배당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Barton 가족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체코가 공산 정권 치하에 있을 때는 기부자들의 이미지를 벽지로 덮어 놓았다는군요. 1989년 이 직물 상인의 예배당은 성 아그네스 (St. Agnes)로 이름이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대성당 내부의 소예배당 중에서 이곳 벽체에서만 채색 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창문, 벽화 및 모자이크는 1930 년대 초 F. Kysela(키셀라)가 디자인한 것입니다.
유럽의 숱한 성당 중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중세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와 건설된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성당을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직접 가 보았거나 사진으로 본 성당 중에서 평가하자면 단연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최곱니다. 그런데 이곳 성 비투스 대성당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성당에 들어가서 처음 들여다본 성 아그네스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합니다.
Chapel of St. Ludmila [18]
성 루드밀라의 네오고딕 예배당은 남쪽 첫 번째 구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성 루드밀라, 성령, 열두 사도들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요, 성령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중앙 2열 상부에서 붉은 옷의 예수님을 향해 날아가는 하얀 비둘기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비둘기로 표현되는 성령의 모습은 서유럽 성당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방식이죠. 스테인드글라스에 등장한 비둘기는 노란색, 흰색 및 빨간색 빛의 조명을 아래쪽으로 비추고 있으며 그 아래에서 열두 사도들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Spongolite(스폰지라이트 : 거의 전적으로 화석화된 스펀지로 만든 돌) 제단은 1849 년 J. Kranner(크래너)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제단 상단에는 E. Max (1845)가 만든 St. Ludmila 동상이 있습니다.
성 루드밀라 조각상인데 포즈가 특이합니다.
보헤미아의 성 루드 밀라(St. Ludmila)는 보헤미아 공작과 결혼했고, 아들인 Vratislav(브라티슬라프)를 낳았습니다. 그녀와 남편은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커플에 속했습니다. 루드밀라의 아들 Vratislav는 젊어서 결혼하였는데, 그에게는 아들(루드밀라의 손자)인 성자 Wenceslas(바츨라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Vratislav는 아들이 태어난 직후 사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Ludmila가 Wenceslas의 섭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츨라프(Wenceslas)의 어머니인 드라호미라(Drahomíra)는
루드밀라가 끼치는 영향력에 질투한 나머지 두 명의 귀족을 시켜 시어머니를 살해하기에 이르럽니다. 사망 후 루드밀라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고 하는군요. 한편 바츨라프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결코 잊지 않았고 기렸기 때문에, 오늘까지 루드밀라는 체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 동상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성 루드밀라의 목에 밧줄이 걸려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루드밀라는 목 졸려 살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The New Archbishop Chapel[4]
이곳 새로운 대주교 예배당은 1909 년부터 프라하 대주교의 장례식 예배당으로 사용되어 온 곳입니다.
예배당 뒤 윈도우엔 1930 년 Alphonse Mucha가 디자인한, 대성당에서 가장 인상적인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본 무하의 작품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고 거의 유일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리조각의 모자이크 형태로 제작된 것인데 비하여 무하는 유리에 그림을 그려 불에 구워가며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그림들 속에 섞여 있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고흐의 화풍처럼, 알폰소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선명하게 전달되는 느낌과 색상이 성당에 들어선 사람들의 눈을 바로 사로잡아버립니다. 일종의 시선강탈을 하는 작품인 거죠.
A. Mucha의 디자인에 기초하여 창을 제작한 사람은 J. Veselý였습니다.
무하(Mucha)는 모라비아(Ivančice, 현재 체코)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삶을 통하여 자국 국민에게 슬라브 역사에 관해 보존하고 가르치는데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모두 쏟아부었던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성 시릴과 성 메토디우스에 관한 것으로, 성 시릴과 성 메토디우스는 슬라브 국가 출신이자 Glagolitic Alphabet(글라골 문자)을 고안한 비잔틴 기독교인 형제였습니다. 그들은 체코에 기독교 세계를 창조하는 데 독창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 시릴(St Cyril)은 스테인드글라스 센터 패널의 좌측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센터 패널의 우측에는 거룩한 물로 이교도에게 세례를 주는 성 메토디우스(St. Cyril and Methodius)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 아래에는 St. Ludmila(성 루드밀라)와 손자 St. Wenceslas(바츨라프)가 있습니다. 좌우 측의 패널은 슬라브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전해지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The New Sacristy and Bílek’s Altar
네오고딕의 New Sacristy는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으며 외벽 옆에는 1927 년 조각가 Bílek(빌렉)이 만든 역시 네오고딕 양식의 큰 제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과 성모 마리아의 동상(확인 못함)은 1896~1899 년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제단은 양면에 르네상스 묘비로 둘러싸여 있고, New Sacristy 위에는 성 비투스 보물 방이 있습니다.
네오고딕 양식의 성 비투스 보물 방은 나선형 계단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앤티 챔버(ante-chamber)의 창은 1930 년 C. Bouda(부다)의 디자인에 기반한 St. Stephan의 삶의 장면으로 장식되었습니다.
The St. Vitus Treasure
New Sacristy 상부의 St. Vitus Treasure Chamber 안에 보관 중인 St. Vitus의 보물은 총 400여 점에 달합니다.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으므로 서핑하여 입수한 대표적인 보물을 소개합니다.
성 바츨라프의 왕관은 1346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4세 대관식을 위해 제작하여 봉헌한 것입니다. 국가의 첫 번째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에게 헌정되었으며 (미래의) 보헤미아 왕들의 대관식을 위한 국가 왕관으로 유증 되었습니다. 카를 4세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왕관이 성 비투스 대성당에 보관되었지만 나중에는 카를슈테인 성으로 옮겨졌으며 1836년 페르디난트 5세의 대관식에 마지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많은 유럽 왕실 보물과 달리 성 바츨라프의 왕관(St. Wenceslas Crown)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른 보헤미안 왕관 보석과 함께 성 바츨라프 예배당의 문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 안의 방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챔버의 정확한 위치는 일반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보석의 입구는 7개의 자물쇠로 잠겨 있으며, 그 열쇠는 체코 대통령, 하원의장, 상원의장, 수상, 프라하 시장 및 프라하 대주교,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메트로폴리탄 지부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보석은 약 5년에 한 번 정도 주목할 만한 행사에 며칠 동안 한시적으로 전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를 테면, 왕관은 2016년 5월 카를 4세 탄생 700주년을 기념하여 전시되었으며, 2013년 5월에는 새 체코 대통령의 취임식을 기념하여 전시된 바 있습니다.
The Southern Window[15]
대성당은 동서로 길게 늘어선 중심선에다 중앙부를 가로지르며 남북으로 돌출된 구조(익랑)를 이루고 있는데, 공중에서 보면 십자가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익랑의 북쪽에는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가, 남쪽 끝에는 The Southern Window라 명명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넓고 높은 공간적 여유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딸도 소예배당 순례를 강행하다 뜻밖의 작은 행운을 만난 듯한 표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넓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많은 빛이 들어오면서 색감마저 밝아졌기 때문에 기분이 전환되는 것입니다. 남쪽 익랑(Southern Transept)으로 걸어가면, The Southern Window 벽체 상부 높은 곳에 최후의 심판을 그린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모습을 드러내죠. 좀 올려다봐야 하는 그 광경은 마치 마터호른처럼 범접할 수 없는 품격을 드러내며 경외스럽게 서 있는 듯합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라하의 유명한 예술가 Max Švabinský(맥스 스바빈스키)가 1938년에 디자인한 것입니다.
The Southern Window의 높은 벽체 각 면 중상단에는 다양한 조각상이 걸려 있고 하단에는 금박을 입힌 배경에 묘사된 성모마리아의 그림도 걸려 있습니다. 그 건너편 쪽에는 원작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현대조각 작품도 걸려 있었는데 이러한 장면은 서유럽 성당투어에서 가끔가다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성당 작품들과 공존하는 현대미술을 접목시키려는 유럽인의 노력을 존중해주고 싶었습니다.
The Chapel of St. John of Nepomuk[12]
Nepomuk의 성 요한 예배당은 Arthas의 Matthias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성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창문은 1871 년 J. 크랜너(Kranner)가 디자인했으며, 바로크 양식의 그릴은 1731 년에 설치되었습니다.
The Tomb of St. John of Nepomuk
Nepomuk의 성 요한(St. John of Nepomuk) 무덤(바로크 양식)은 이 성자에게 헌정된 예배당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Nepomuk의 성 요한이 1396 년에 묻혔던 곳입니다. 은으로 치장된 무덤은 1729 년에 있었던 그의 시성식을 기리기 위해 1736~1771 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체코에서 가장 큰 작품입니다.
무덤의 핵심 부분은 Erlach(에를라흐, 스위스) 출신의 오지리 건축가 JE Fischer(피셔), 베네치아 조각가 A. Corradini(안토니오 코라디니)와 비엔나의 금세공인 JJ Würth(뷔르트)가 만들었습니다. 관위에는 성자가 무릎을 꿇고 있으며 작은 천사가 잘려나갔던 그의 혀를 쟁반에 받쳐 들고 있습니다. 하부에 있는 Justice, Strength, Silence 및 Wisdom 동상은 조각가 JA Quitainer(얀 안토닌 퀴타이너)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또 다른 조각가 F. Platzer(플라처)와 금세공인 J. Seitz(자이츠)가 만들었습니다. Nepomuk의 St. John의 무덤은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조각품 중 하나이며 이 성자를 향한 바로크 시대의 엄청난 존경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들고 있는 것이 네포무크의 관이며,
성 네포무크 뒤의 아기천사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 네포무크의 혀가 놓여 있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The Chapel of St. Wenceslas
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1362 ~ 1367 년 성 바츨라프 (St. Wenceslas)의 고대 무덤 위에 세워졌습니다. 익랑(Transept)으로 튀어나와 있는 사각형의 비대칭 방은 Peter Parler가 건축한 대담한 별 모양의 둥근 천장과 몰딩으로 수평 분할된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단순한 외관은 내부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성경 이야기와 바츨라프의 생애를 주제로 한 고딕 양식의 프레스코화가 벽체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소모품에 사용된 보석은 1372개에 달합니다.
성 바츨라프 (St. Wenceslas)의 무덤 바로 위에 있는 남쪽 벽 근처에는 1912-1913 년 힐버트 (Hilbert)가 디자인한 제대와 이 성자의 고딕 돌무덤이 있습니다. 무덤과 제대 모두 벽과 마찬가지로 금박을 입힌 모르타르 (V. Suchada)로 마감된 광택 있는 semi-precious stone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성 요한복음 전도자에게 헌정된 동부 제단은 1358 년 이전에 아라스의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에 의해 만들어진 Gothic relief panel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제단의 다른 모든 부분은 K. Hilbert(1912~13)가 새로 고안한 것입니다. 제단 왼쪽에는 1375 년 대장장이 Václav가 만든 고딕 양식의 금박 막대기가 부속된 성소가 있습니다. 예배당의 북동쪽 구석에는 성 바츨라프 동상이 조각되어 있는 커다란 르네상스 청동 촛대가 있는데, 이는 뉘른베르크의 주조업자 H. Viuscher(비우셔)가 1532 년에 제작한 것입니다. 촛대 옆에는 1543 년에 그려진 회화 <The Murder of St. Wenceslas>가 매달려 있습니다. 남동쪽 코너에는 Peter Parler(피터 파를러)가 디자인하고 대장장이 Václav(바츨라프)가 제작한 도금한 철제 성소가 있습니다. 아치형 천장에 매달려있는 대형 샹들리에는 K. Hilbert(힐버트)가 설계하여 1912~1913 년 K. Anýž(아니즈)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The Main Altar
대성당의 네오고딕 양식의 주(主) 제단은 고딕 건축 양식을 모방하고 있는데, 1868 년 J. Kranner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1873 년 J. Mocker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측면에는 L. Šimek이 만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제단 중간 부분의 아케이드형 벽장에는 체코의 후원자인 성 아델베르트(St. Adalbert), 성 시릴(St. Cyril), 성 비투스(St. Vitus), 성 바츨라프(St. Wenceslas), 성 루드밀라(St. Ludmila) 및 성 프로코피우스(St. Procopius)를 묘사한 법랑 판으로 장식된 상자 모양의 성전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J. Sequens에 의해 고안되었고 J. Chadt(채트)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장미의 창
장미의 창은 서쪽면(정면) 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10.5m 지름의 스테인드글라스 윈도우입니다. 안쪽에서 바라보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감이 은근하게 반영되어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멋집니다.
장미의 창은 대성당이 건설될 때 건축된 것이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온 1925 년 Frantisek Kysela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완성되기까지 2 년이 걸렸다고 전해집니다. 화려한 채색의 <장미의 창>은 지름이 10.5m에 이릅니다.
비투스 대성당에서 각 소예배당과 네포무크 무덤과 중앙제단,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구경하였다고 해서 비투스 대성당을 다 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보지 못한 것이 하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녀는 그것을 보러 대성당을 나와서 남측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프라하성의 제3정원에 해당하는 구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라하성 제3정원
프라하 성 제3 정원.(Hrad III. nádvoří.)
뒤에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제1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며, 앞에 있는 엿동적인 조각상은 그 유명한 용을 물리치는 성 이르지 동상입니다.
제3정원에서는 이 들 외에도 대성당 외벽에 붙어있는 작품 하나를 더 둘어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보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보고 올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다니엘> 서에 첨가된 그리스어로 된 외경 부록으로 '벨과 용의 멸망사(The History of the Destruction of Bel and the Dragon)'라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로마 가톨릭교회는 정경으로 인정하는 제2정전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동상과 예술작품이 많은데 그것을 모르고 방문하는 기독교 여행객은 낯선 광경에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외경 부록에 따르면,
유대인의 영웅 다니엘이 벨 신을 경배하지 않고 용을 죽여 사자굴 속에 갇히게 되었을 때 사자가 그를 해치지 않아 7일 만에 굴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반면, 그의 대적자인 우상숭배자들은 후일 사자굴에 던져져서 모두 잡아먹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이르지 동상이 그 외경부록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아,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영어로는 Saint George, ? ~ 303년)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오르지오, 이르지(체코) 혹은 조지라고도 불립니다. 게오르기우스는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라틴어입니다.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용을 물리치는 의인이자 순교자로서 추앙받고 있는 존재라는 거죠.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 스테판이 오지리나 또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과 유사한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그럼 순교자로서 가지고 있는 스토리는 뭘까요?
4세기 초에 참수된 게오르기우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그의 무덤이 있는 이스라엘의 리다에서 발굴한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5세기 즈음, 그의 생애에 대한 설명이 처음 등장합니다.
게오르기우스는 3세기 후반에 로마제국의 속주 팔레스티나의 리다에서 크리스트교를 믿는 그리스계 귀족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의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도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의 니코메데아에서 군인으로 복무하였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2년에 로마 군단 안에서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서 로마의 전통 신들을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정령을 내렸는데, 이때 게오르기우스도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받자 이를 거절하고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설명하는 김에 하나 더 '악룡 퇴치 전설'을 소개합니다.
게오르기우스가 악한 용과 싸우는 이미지는 11세기에서 12세기경 그루지야에서 처음 등장하여 유럽에 알려졌으며 <황금전설>에 매우 우화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용인즉슨,
카파도키아의 왕 세르비오스(Selbios)의 성이 있는 라시아(Lasia) 부근 호수에 독기를 뿜어내며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악룡이 있었습니다. 악룡은 시레나를 장악하고 매일 두 마리의 양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이 없으면 독기를 사방에 내뿜어댔습니다. 그런데 제물로 바치는 양이 다 떨어지자 사람을 산 제물로 바치게 되었는데, 작은 나라였던 시레나는 사람 수마저 금세 줄어들었고 마침내 왕의 외동딸을 용에게 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시레나를 지나가던 게오르기우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악룡과 마주합니다. 용은 독을 뿜어내며 게오르기우스를 죽이려 했지만, 게오르기우스는 용이 입을 벌린 순간 긴 창으로 일격을 가하여 악룡을 제압합니다. 게오르기우스는 공주의 허리띠로 악룡을 묶어 개나 말을 끌듯 도시로 데리고 왔으며, 도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앞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을 무찌르고 나면 개종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전설 따라 3 천리 같은 이야기입니다.
[출처 : 위키백과]
비투스 대성당을 남쪽에서 바라다보니 청록색 고깔모자를 쓴 성당의 전면은 금빛으로 빛을 발하고 그 옆 통로로 보이는 파사드 위엔 프레스코화 같은 벽화그림이 채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지나가야 할 것이 바로 저것들입니다.
Southern Tower의 상부에는 시계가 두 개 달려있는데 시청사에 있는 천문시계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두 개를 달아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밑으로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황금장식이 있고 황금장식 아래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국장과 신성로마제국의 국장이 부착된 것이 보였습니다. 장식 상부에도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문양이 제작되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황금장식의 우측 편에 붙어있는 건물, 즉 익랑(Transept)의 남쪽 끝에 있는 골든 포탈 (Golden Portal) 위쪽에는 대성당의 가장 큰 창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대성당 내부를 둘러볼 때, 한참 머물러 있다가 나왔던 공간입니다. 네오고딕 양식의 문구는 1908 년에 힐버트 (K. Hilbert)가 디자인한 것입니다. 1937~1939 년 이 창에 최후의 심판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M. Švabinský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모자이크가 있는 골든 포탈
성 비투스 대성당의 남쪽 입구인 골든 게이트 (Golden Gate)는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단부 철망에는 농촌 생활과 이교도를 묘사하는 앙증맞은 청동 조각들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1939 년 카렐 스볼린스키 (Karel Svolinský)가 제작한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 모자이크는 약 75m²크기로, 여러 가지 색조와 석재 (주로 석영과 옥수)로 이루어진 약 100만 개의 작은 유리 큐브로 제작된 것입니다. 배경과 그림의 세부 묘사에 사용된 큐브는 금 도금하여 얇은 유리 판을 보호하였습니다. 골든 포탈이 완성되었을 때, 빛나는 모자이크는 프라하 도시 전체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온도 변화에 시달려 대성당이 완공되었을 때 위험한 상태였고, 1890 년 폭풍우에 의해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모자이크는 20 세기 초반, 다시 1920 년대 중반, 그리고 마침내 1990 년대에 복원이 완료됩니다.
1992년 E. Fučíková가 이끄는 복원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의 Getty Conservation Institute와 협력, 최신 기술과 재료를 사용하여 모자이크를 청소하고 오랫동안 색상을 보존했습니다. 과거에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유리 부식의 문제는 특수 보호 코팅층을 적용하여 해결하였습니다. 도금된 호일(foil)은 필요한 경우 - 예를 들어 원래의 도금된 호일이 없는 곳 - 에만 첨가되었습니다.
모자이크는 유리 판의 색조와 크기로 구분되는 세 개의 수직 섹션으로 나뉩니다. 중앙 섹션의 붉은 유리는 금색에 따뜻한 느낌을 주며 오른쪽 및 왼쪽 섹션의 푸른 유리는 금색을 보다 시원하게 해 줍니다. 중앙 섹션은 작은 큐브로 구성되고 다른 섹션은 큰 큐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심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aureole로 둘러싸인 두 개의 무지개 안에 있고, aureole 주위에는 고문 도구를 들고 있는 천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는 성인으로 구성된 체코 후원자 그룹(St. Procopius, St. Sigismund, St. Vitus, St. Wenceslas, St. Ludmila and St. Adalbert)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좌우측에 기도하는 Charles IV와 네 번째 부인인 Anne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자이크의 측면 섹션에는 심판받는 인류를 위한 주요 중보기도자가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왼쪽)와 침례 요한 (오른쪽), 그리고 그 뒤로 사도들 모습이 보입니다. 왼쪽 섹션의 하단 장면은 현저한 해부학적 묘사로 죽은 자의 부활을 보여준다. 대천사 미카엘과 다른 두 천사가 돕고 있네요. 오른쪽 섹션의 아랫부분에는 대천사 미카엘에 의해 쫓겨나 지옥에 던져진 사슬로 묶인 죄인들이 있습니다. 모자이크의 배경에 금박을 입힌 것은 성서의 종말론 - 마지막 심판 후에 순금의 새 예루살렘이 천국에서 내려올 것 - 을 표현한 것입니다.
Golden Gate 그릴에는 메인 조각상 사이사이에 소품 조각이 배치되어 있어 하나하나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소품 조각에는 산양, 사람, 양, 코뿔소, 연인, 바닷가재, 사자, 인어, 저울, 가재, 활 쏘는 남자 등 다양한 형상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골든 포털은 이렇게 쬐그만 장식까지 찾아보아야 감상을 마무리한 것이라 한다면 엄청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도대체, 누가, 왜 그렇게까지 살펴보아야 제대로 된 감상이라 명명했단 말입니까?
푸하하하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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