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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카타 콜렉션 3

국립 서양미술관[NMWA] (4) / 크로아조니즘의 잔상을 담다

(전회에 이어서)작품감상   이제 1층으로 내려간다.1층에는 로댕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로비와 그외의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고갱의 작품도 만난다. 인상파 잔치가 벌어지는 형국이다.폴 고갱은 아를에서 반 고흐와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낸 후 1889년과 1890년에 다시 원래 활동했던 브르타뉴를 작품 창작의 장소로 낙점했다. 1889년 프랑스 북서부의 퐁타방에 머물렀던 이 시기에 고갱은 자기를 방문한 에밀 베르나르의 작품에 자극을 받았고 이내 명료한 윤곽선의 색면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타인으로부터 배우거나 흡수하는데 굉장히 열린 자세였던 것 같다. 즉, 틀루아조니즘은 고갱의 개발기법이 아니라 에밀 베르나르에게서 빌어..

국립 서양미술관[NMWA] (3) / 인상파화가 모네에 물들다

(전회에 이어서)작품감상   히타이트는 이제 중세회화 감상을 마무리하고 인상파 화가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본인들이 중세회화에서는 그리스도 테마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한듯 싶어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여 기독교 수입에 열을 내지 않았던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 내부에 뿌리깊게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은 잡다한 신을 섬기는 국민성에 기원을 둔 것은 아닐까? 히타이트가 직장생활에 한창일 때 일본 출장을 가면 동네 어귀마다 잡신을 모신 사당이 예쁘장하게 모셔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인은 불교와 유교로 이어져왔는데 이처럼 특정 종교가 전체를 지배하는 환경이 오히려 기독교 유입을 용이하게 하지 않았는가 추정되는 것이었다. 메인 종교 하나만 자리바꿈시키면 전체가 새로운 종교로..

국립 서양미술관[NMWA] (2) / 일본에서 중세 회화를 만나다

(전회에 이어서)   중세종교회화 2    국립서양미술관을 휘휘 둘러보던 히타이트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마츠카타 컬렉션은 인상파 화가들 작품이 메인이었는데 서양미술관측은 그 후 중세회화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여서 몸집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히타이트의 의문은 국립서양미술관을 일주하면서 어느 정도 풀리게 된다.그것은 인상파 이후 현대미술품의 경우에는 작품 기중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립서양미술관측은 중세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무지막지한 수집에 열을 올린 셈이다. 그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그네들은 스스로를 탈아시아국가로 명명하곤 한다. 그러한 주장에 근거를 삼기 위해서 구축해야 할 한 가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설전시 미술관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그들의 행동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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