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작품 <사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의 초상>에서 모델이 된 사르팡티에 부인은 르누아르의 후원자였던 출판업자였습니다. 1870년 프러시아 전쟁에 참전하였던 르누아르는 파리로 돌아와 첫 번째 전시회를 열지만 비평가들의 냉담한 반응과 혹독한 평가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무렵 뒤랑-루엘을 통해 여러 화상을 만나면서 커다란 힘을 얻게 됩니다. 이후 살롱에 다시 작품을 전시하여 심사에 통과한 르누아르는 1879년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의 초상>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게 됩니다.
르누아르는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이 실내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부인과 아이들이 앉아 있는 호화로운 소파 뒤에는 꿩이 그려져 있는 황금빛 일제 병풍이 있고, 그림의 오른쪽에는 대나무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은 두 아이는 샤르팡티에의 딸인 조르제트와 아들 폴입니다. 폴은 당대의 풍습대로 여자옷을 입은 모습입니다.
살롱전을 통해 작품을 인정받은 이후 르누아르는 세계적인 부와 명성을 얻게 되며,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 말년에 프랑스 국가가 구입하여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에 오르게 됩니다. 현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전시 중에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센강가의 보트와 목욕 리조트 라 그르누이에르(La Grenouillere)의 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젊은 알퐁신 푸르네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 그르누이에르 주인의 딸인 알퐁신은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자 친구가 된 여성입니다. 배경에는 센 강둑을 가득 메운 푸른 잎사귀 사이로 다리 쪽으로 떠다니는 보트가 보입니다. 흰 옷을 입은 푸르네즈는 그림의 프레임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한 손은 관자놀이에 올려 머리를 받치고 있습니다. 그르누이에르는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그 풍경과 사교 모임을 그린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인해 1870년대에 르누아르가 완성한 인상주의 스타일을 잘 보여줍니다. 그림 속 남자는 르누아르의 절친 사뮈엘 프레데리크 코르데(Samuel Frédéric Cordey, 1854-1911)입니다. 그의 앞에 있는 젊은 여성은 르누아르가 1875년~1879년까지 즐겨 그렸던 모델인 마르고(Margot, 풀네임 마르그리트 르그랑/Marguerite Legrand)입니다. 이 그림은 1918년까지 파리의 미술상인 뒤랑-뤼엘(Durand-Ruel)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후 채권 담당자 C 피나에우스와 은행가 G A 킬버거의 재정 지원을 받아 스웨덴 국립박물관에서 인수했습니다.
테레즈 베라르는 르누아르의 주요 후원자 중 한 명인 외교관이자 은행가인 폴 베라르(Paul Berard)의 조카였습니다. 르누아르가 1870년대 후반에 선보였던 실험적인 작품에 비하여 붓놀림이 섬세하고 팔레트도 절제되어 있는데, 아마도 르누아르가 초상화에서는 "어머니가 딸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배우 잔 사마리(Jeanne Samary)는 파리의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의 쾌활하게 장식된 탈의실에서 포즈를 취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는 초상화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공식적인 주제는 르누아르가 구성을 실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물은 압축된 공간을 차지하고, 생동감 넘치는 꽃다발이 그녀의 특징과 경쟁합니다. 그녀는 우치와 부채(uchiwa fan)를 들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본열풍을 반영하는 사례입니다.
레스토랑의 식탁은 메인 디쉬가 지나간 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배우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는 식사 후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생각에 잠긴 그녀는 잔에 남아있는 마지막 맛을 붙잡으려는 걸까요? 대개 그런 한모금을 마시는 이유는 모임이 파하는 걸 아쉬워할 때입니다. ㅎㅎ 개인적인 경험이죠. 뭐.
르누아르의 모델 중 한 명이 벤치 뒤쪽에 앉아 르누아르의 남동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뛰어난 기술은 캔버스 위에다 덧없는 인상을 "스냅샷"처럼 자연스럽게 포착해서 관객에게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아, 르누아르가 서비스 해준 거구나..라구요.
데이트 중인 커플을 그린 작품일까요? 밝고 화사한 색상과 흘러가는 물살이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초록의 나뭇잎들은 싱그러운 젊음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행복한 모습을 일평생동안 일관되게 화폭에 담은 화가로 유명한데요, 그의 작품에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이 여러 개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경제여건이 좋아지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현상이라고 여길만 한 것일까요? 외로움을 해소해 주는 방편이 될 수도 있고 삶의 행복을 더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냥이의 존재감을 그림을 보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려캣을 보듬은 그림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위에 소개한 반려캣과 함께 잠든 여성과 매우 닮았습니다.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 포즈도 거의 같습니다.
둘 다 같은 해에 그린 작품인데, 전문용어로 표현해서 '1타 쌍피'인 걸까요?
르누아르는 극장이나 콘서트 관객을 담은 몇몇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작품을 통하여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두 가지 테마를 탐 구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위 작품의 경우, 르누아르는 특정 개인의 초상화로 그림을 시작했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정체성이나 관계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두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에는 은은한 조명과 명확하게 정의된 형태가 공존하는데 이는 르누아르가 더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면서 그가 이전에 시도하였던 실험적 기법을 수정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은행가이자 외무부 무관이었던 폴 앙투안 베라르(Paul-Antoine Bérard, 1833-1905)는 르누아르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1878년 또 다른 후원자였던 샤르팡티에 부인(Madame Charpentier)의 파리 살롱에서 공통의 지인인 샤를 드동(Charles Deudon)을 통해 만났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인 르누아르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베라르는 사회적 지위가 크게 달랐지만, 그들은 지속적인 우정을 쌓았습니다. 첫 번째 결실은 베라르가 1879년에 의뢰한 장녀 마르트(현재는 상파울루 미술관 소장)의 초상화였습니다.
바로 위의 작품인데요, 베라르와 그의 아내는 작품에 너무 매료되어 르누아르를 노르망디의 디에프 근처 바르주몽에 있는 자기 가족의 호화로운 영지로 초대하여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르누아르는 1880년대에 여러 번 바르주몽(Wargemont)에 초대되어 방해받지 않고 그림그릴 수 있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르누아르는 베라르 가문 구성원들의 유명한 초상화를 여러 개 완성하여 후원자를 기쁘게 했습니다. 이 작품들 중 하나가 1880년에 그린 47세의 베라르 초상화입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베라르의 포즈는 르누아르와 편안하고 캐주얼한 관계였음을 시사해 줍니다. 베라르는 1905년 사망할 때까지 르누아르의 친구로 재정에 대해 조언하고 잠재고객인 파리 엘리트 구성원을 소개해주었던 인물입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는 위에 소개한 Sleeping Girl with a Cat 외에도 Young Girl with Cat(1879), Geraniums and Cats(1881), Julie Manet with Cat(1887), The Boy and Cat(1868), Woman with a Cat(1875), Mother and Child(1895), 그리고 고양이 독모델로 그린 작품 Sleeping Cat 등이 있습니다.
선명하게 묘사한 주인공과 대조되는 배경이 화면을 장식합니다. 군중 장면이 흐릿하게 표현된 것은 사진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가파른 관점에서 볼 땐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시사해 줍니다.
이 그림은 1900년부터 <클리시 광장(Place Clichy)>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1880년경에 인근 생 조르주 광장(place Saint-Georges)에 있는 르누아르의 작업실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세자르 프랑크의 전 제자이자 자신감 넘치는 작곡가인 알베르 카헨 당베르(Albert Cahen d'Anvers)가 친구 집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수염은 남성의 성적 취향을 나타내는 강력한 지표로 여겨졌기에 르누아르는 카헨 당베르의 컬이 있는 콧수염이 벽지의 곡선을 반영하고, 헝클어진 붉은 머리카락은 화분의 깃털 같은 잎을 연상시키도록 그렸습니다. 카헨 당베르의 권위와 지위는 기민하고 지배적인 시선과 정교한 담배 홀더와 크라바트(cravat)와 같은 세부 사항을 통해 암시됩니다.
스위스 루체른에 볼만한 Art Museum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스위스 루체른에 갔을 때 뮤지엄을 찾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 대한 소개자료는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니 현지 방문하여 감상하고 설명자료를 얻어볼 필요가 있는데 그냥 지나친 게 실수였네요.
미술상 Siegfried Rosengart(지그문트 로젠가르트)가 그의 딸 Angela와 함께 설립한 Rosengart 컬렉션 박물관(Museum Sammlung Rosengart)은 스위스 루체른에 위치한 미술관입니다. 그곳에는 Paul Klee와 Pablo Picasso의 두 주요 예술가를 기반으로 한 현대 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뱃놀이 일행의 오찬>은 1881년 4월~7월에 완성한 작품으로, 야외에서 그의 친구들과 친구의 여자들이 뱃놀이를 하고 난 후 샤투(Chatou) 센 강변에 있는 알퐁소 푸르네즈(Fournaise) 식당에 모여 함께 즐겁게 식사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르누아르의 인상주의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맛과 분위기가 좋아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림을 보면 엷은 미소와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두 뺨 위로 일상의 잔잔한 행복감을 전해주는 르누아르 특유의 여인들이 있고, 이른 더위가 찾아온 듯 윗옷을 벗은 남자들도 보입니다. 발코니 위에 차려진 테이블 위에는 술병과 유리잔, 과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이날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넓은 차양 아래는 잘 차려 있는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담소를 즐기고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분명 하류층에 가까운 신분이었을 겁니다. 차양 사이로 멀리 철도교가 보이는데, 당시 프랑스 중산층들은 기차여행으로 파리를 떠나 전원 풍경이나 여가 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르누아르는 작업실에서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려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각 인물과 사물에 대한 빛의 표현, 중앙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멀어지는 구도는 잘 정돈되어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부드러운 붓질과 색채톤은 테이블 위의 술병과 유리잔, 과일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빛과 산뜻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살리기 위해 테이블보에 드러나는 하이라이트 부분에는 하얀색 물감을 매우 두껍게 칠하였으며 반면, 주변의 회색 톤은 매우 얇게 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색과 난색, 어둡고 밝은 톤들이 서로 나란히 나타남으로써 전반적으로 산뜻하면서도 풍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가 행복을 주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사치일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식사는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르누아르는 경제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서 작품을 시작하면서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르누아르가 누굽니까? 그는 무조건 행복표 그림을 그리는 자기 최면을 걸었던 화가가 아닙니까. 그림에서는 궁핍함을 앓았을 화가의 속내가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평론가 옥타브 미르보(Octave Mirbeau, 1848~1917)는 우울한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가 바로 르누아르라고 칭송했습니다. 소설가 모파상(Maupassant, 1850~1893)은 "르누아르는 장밋빛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다보았다"라며 인생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 눈감은 것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그림을 그리려 꾸준하게 노력한 보기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싶습니다.
르누아르의 이 작품은 스냅사진으로도 남아 있는데 사진 뒷면에 식사에 참석했던 인물들의 이름을 적혀 있어 등장하는 인물들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왼편 하단에서 개를 데리고 놀고 있는 여인은 르누아르의 아내가 될 알린느 샤리고이며, 뒤편에 밀짚모자를 쓰고 서 있는 턱수염 난 남자는 식당 주인인 푸르네즈입니다. (알린느 샤리고는 1880년 20살 연상의 르누아르를 만나 1885년 첫아들 피에르를 낳고 1890년 결혼합니다. 장남 피에르는 배우, 차남 장(Jean)은 유명 영화감독, 막내아들 클로드는 도예가가 되었습니다.) 테라스 난간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이 푸르네즈의 딸 알퐁신느이며,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라울 바르비에 경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작품 오른편 전면에 소매없는 상의차림을 한, 역시 밀짚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인물은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입니다. 바로 그 앞에서 카유보트를 응시하는 여인이 여배우 엘렌 앙드레입니다. 시선처리가 정확하게 되지 않은 건가요? 맨 아래 클로오즈 업한 부분도를 보면, 카유보트를 응시한다고 해석되는 이 여인의 게슴츠레하게 눈 뜬 모습이 술이 좀 과해보이기도 하네요. 그래서 그녀의 시선은 카유보트를 향하는 게 아니라 초점을 맞추지 않은 쪽으로 던지고 있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면으로도 보이네요.
그리고 여배우 엘렌 앙드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 쪽으로 몸을 숙이며 쳐다보는 남자는 이탈리아인 기자 안토니오 마지올로(마졸다)입니다. 르누아르는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관계나 혹은 그림 속 인물들을 스토리로 얽어매려 의도적으로 포즈나 시선처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뒤편으로 모여 있는 세 사람은 폴 로트 기자와 잔느 사마리 여배우 그리고 친구 위젠느-피에르 레스트링게즈입니다. 한편, 화면 중앙에서 음료를 마시며 푸르네즈의 딸 알퐁신느를 쳐다보는 라울 마르비에 경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는 여인은 르느와르의 모델인 앙젤르입니다. 그녀 옆의 남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앙젤르의 옆모습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시선들을 따라가며 어떤 인물인지 찾아보려니 머리에 쥐가 날 정도입니다.
차광막이 쳐진 테라스 전경 뒤편으로는 강 위를 지나는 배들이 보입니다.
(계속)
'화가들의 나라-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9 - 성인 인물화(6) (4) | 2025.03.27 |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8 - 성인 인물화(5) (2) | 2025.03.27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6 - 성인 인물화(3) (4) | 2025.03.27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5 - 성인 인물화(2) (1) | 2025.03.26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4 - 성인 인물화 (0) | 2025.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