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골 때리는 이야기 하나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일본의 제지회사 다이쇼와(大昭和)의 명예회장 료에이 사리토는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1966년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이 구입했던 두 점의 그림을 함께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합니다. 두 점의 그림이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세 박사의 초상(Portrait of Dr.Gachet), 1890>과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 1876>입니다. 고흐 그림은 1990.5.15 크리스티 경매에서 943억에 매입했고 르누아르 그림은 1990.5.17 쇼더비 경매에서 890억에 매입했다고 하네요. 1966년 료에이 사망후 이 그림들의 행방은 공개되지 않은 것(묘연해진 상태)으로 알려졌었는데 이후의 보도에 따르면 매장되지는 않았고 익명의 수집가에게 팔려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참나, 일본놈이 미친 짓을 했는데 실행은 막았군요.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가세 박사의 초상>이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화가들이 2점씩 그렸던 그림이기 때문에 이 작품들이 일본 놈에 의해 절단 나는 일이 일어났어도 실물작품 1점씩은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1877년 인상파 3차 전시회에 출품할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배경이 되는 '물랭 드 갈레트'는 오늘날의 클럽과 유사한 레스토랑이었는데 갈색 빵과 갈레트(팬케이크 형태) 디저트를 제공하며 공공 무도회장을 열었기 땜에 파리지앵들에게 인기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작품은 인상파의 후원가이자 동료화가인 귀스타브 카유보트에게 판매되었는데 그는 20년 후 작품을 국립미술재단에 기부합니다.
르누아르는 1876년 5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작업을 시작했으며 이 과정을 그의 공무원 친구였던 조르주 리비에르(Georges Riviere)가 회고록에 남겼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르누아르는 작품 제작을 위하여 방앗간 근처에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그는 몽마르트르 인근 코르토(Cortot) 거리의 버려진 작은 집을 발견했는데 그곳에는 정원까지 있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곳에서 <그네(The Swing)>를 포함한 주요 작품 다수를 탄생시킵니다.
리비에르는 회고록에서 작품 속 인물들의 설명도 남겼습니다. 예를 들면 위 작품에 <그네>의 모델인 당시 16세의 잔느 사마리(Jeanne Samary)를 등장시키려 했으나 섭외가 불발됩니다. 하필이면 사마리가 시골 소년과 사랑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의 여동생인 에스텔(Estelle)이 파랑과 핑크 줄무늬 드레스를 입고 작품에 등장합니다. 이 자매는 가족들과 함께 르 물랑 드 라 갈레트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작품에서 신속하고 자유로운 붓터치로 그가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전통적인 소재나 원근법을 적용하여 표현하는 대신 생동감 넘치는 현실 그대로를 묘사했습니다. 캔버스 전면에서 뒤로 가면서 무수히 많은 춤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여유롭고 행복한 무도회장 전체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작품 속 사람들은 스냅사진에 찍힌 것처럼 자신들이 그림의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네요.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뿐인데 이는 작품 제작 시 사진과 다양한 스케치를 이용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런 보조 수단을 사용하였기에 간결하면서도 화사한 순색의 붓터치로 빛의 움직임을 생동감있게 살려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압권인 것은 나뭇잎 사이로 일렁거리듯 스며드는 햇빛의 궤적을 기막힌 현실감으로 재현해 낸 점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나치게 밝은 물감을 사용했다는 점과 마무리 되지 않은 듯한 선처리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1m 이상의 대작그림에 대해서도 '이런 류의 사이즈는 역사화가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냐'라고 비하하는 평도 있었다는 걸 보면, 그 시대 파리지앵들은 불평불만과 트집 잡기의 달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르누아르의 작품 <계단에서>는 파리의 출판업자인 조르주 샤르팡티에(Georges Charpentier)의 저택 대계단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샤르팡티에 부인 덕분에 이 저택은 파리의 예술계 엘리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던 곳인데 르누아르는 샤르팡티에의 살롱에서 여러 가지 의뢰를 받기도 했습니다.
작품 <계단에서>는 아마도 집주인과 여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계단 위의 남자가 조르주 샤르팡티에를 닮았듯이, 여성은 아내인 마르그리트(Marguerite)와 비슷합니다. 키가 작고 통통한 체형을 가진 샤르팡티에 부인은 매력적이면서도 때로는 오만함에 가까운 품위를 지녔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출판 사업과 당시 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매우 지적이고 교육받은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샤르팡티에 부인을 묘사할 때 자신의 수석 모델 마르고(Margot)의 모습을 그렸다고 믿어집니다. 또한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성이 일본 부채를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책읽는 여인>은 창 밖에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양쪽 볼은 볼그스레하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져 있는데, 밝은 햇살로 인하여 황금색의 머리와 하얀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책 읽는 여인>의 모델이었던 마르고(Margot)는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친구인 화류계(성매매) 여인으로, 르누아르의 다른 작품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모델 마르고가 1881년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장례식 비용을 부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르누아르는 빛이 비쳤을 때 변화되는 색을 보고, 빠른 붓질로 순간의 느낌들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 거친 붓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고 형태도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부드럽게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르누아르의 18세 모델, 마리-앙리에트 그로생(Marie-Henriette Grossin)입니다. 붉은 벨벳 커튼 앞에 서 있는데 그녀 뒤로 극장이 살짝 보입니다. 의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소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앙에 단추를 단단히 채운 긴팔 더블릿을 입고 있습니다. 저는 모델을 보는 순간, 한국여자 탤런트 김희애가 연상되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앙리오 부인의 초상화>은 흰색과 화이트블루로 여인의 청순함을 잘 살려낸 작품입니다. 볼살이 살아있어 청순함이 약간 반감되긴 하였지만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미인의 정형으로 여기는 인상을 그려낸 것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젊은 여성이 잘 관리된 공원의 길을 따라 똑같은 옷을 입은 두 자매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세 인물 모두 추위에 대비해 옷을 입은 차림새입니다. 여성은 붉은 여우로 장식된 넓은 소매가 달린 파란색 벨벳 재킷을 입고 있고, 어린 소녀들은 백조털이나 흰색 밍크로 장식된 소형 청록색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1876년 파리의 풍경을 한 컷으로 잡아낸 듯한 이 작품에는 그네의 움직임,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내면과 함께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내려앉은 햇빛의 일렁거림을 기가 막히게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877년 세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돼 대상을 윤곽선으로 표현하는 그림에 익숙한 미술 평론가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설가 에밀 졸라를 매료시켜 몇 달 뒤 그의 작품 <사랑의 한 페이지>에 세 문장으로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이 작품을 코르토 거리에 있는 정원에서 잔(Jeanne Samary)이라는 아가씨를 모델로 그렸습니다. 잔은 몽마르트르에 거주했으며, 화가인 노르베르 괴뇌트(Norbert Goeneutte)가 모델로 기용했던 아가씨였습니다. 그림 속의 잔은 그네보다 딴생각에 집중한 듯이 보입니다. 바로 곁에서 두 남자가 서로 이야기 나누는 듯 서 있고 바로 옆에 꼬마 아가씨가 이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습니다. 떨리는 빛은 특히 옷과 땅에 옅은 색의 패치로 표현되어 있어 르누아르의 사람들은 꽃이 만발한 숲 바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밝고 어두운 점들이 바닥과 인물을 표현하는 데 쓰였는데, 이 점들로 인하여 숲 속 나뭇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햇빛의 효과가 탁월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효과는 비평가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1877년에 열렸던 전시에서 이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 비평가는 <레벤느망(L’Evénement)>이라는 잡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습니다.
"태양광의 효과가 르누아르의 손에 의해 매우 기이한 방법으로 나타난 작품이다. 점으로 표현된 빛의 효과들은 정확히 인물의 옷 위에 묻은 기름 얼룩처럼 보인다."
니니 로페즈는 1874년작 <La Loge(극장 상자)>에서 처음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이후 1875년~1879년 사이에 가장 선호하는 모델로 14개의 이상의 작품제작에 참여했습니다.
1877년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르누아르가 부르주아지로부터 권위 있는 의뢰를 받았을 때, 니니는 몽마르트 극장에서 3류 배우와 결혼한 후 그의 그림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포즈를 취한 6년 동안 젊은 니니는 행복과 삶의 기쁨으로 가득 찬 르누아르의 이상적인 인물상을 구현했습니다.
피아노가 가정용으로 인기 있었던 것은 19세기 중반이었습니다. 이 무렵 업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는 부르주아 가정에서 거의 없어서는 안 될 장식품이었습니다. 여기서 업라이트 피아노란 수직으로 현을 치기 때문에 악기가 작아 제한된 공간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type으로 가정용, 연습용으로 많이 판매되었습니다.
푸른 속옷 위에 흰색 투명한 천을 덧댄 캐주얼한 robe d’intérieur(실내복)를 보면, 젊은 여성은 공식적인 청중을 위해 연주하기보다는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델인 니나 로페즈는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하는 전문 모델 중 한 명인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은 의뢰받은 초상화가 아닙니다. 부드러운 오렌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은 당시 인상파 팔레트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색상 대비는 일부 작품만큼 대담하지 않아 보입니다.
카유보트가 푸른색, 고흐가 노란색의 아름다움을 잘 그려낸 화가였다면 르누아르는 붉은색의 미적표현을 완성한 화가라 할 수 있습니다. 몽상이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잔 사마리의 초상화>가 그런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잔 사마리의 초상화>는 적은 개수의 색감으로도 화사함과 다양한 매력을 느끼게 한 ‘색채화가’의 전형을 보여준 그림입니다.
몽상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잔 사마리는 르누아르의 그림에 자주 모델이 되었는데 아마 르누아르와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당시 주연배우가 아닌 엑스트라 역을 맡았던 배우였는데 르누아르의 작품 4편에 모델로 서면서 유명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영화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잔은 연극배우로 유명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여인들의 그림을 주로 그린 화가로 르누아르와 에드가 드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은 차별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귀족보다는 노동자 계층이나 평범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았는데요, 드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생활에 찌들은 직업인으로서 고단함 삶의 무게를 전달해 주는 반면, 르누아르의 여인들은 풍만(볼이 통통하죠)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도 그런 유형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 외진 뮈레(본명, Hyacinthe-Eugène Meunier/이아신트-외젠 뫼니에)는 독학 화가이자 유명한 페이스트리 요리사, 음식점 주인, 소설가, 시인이며 인상파 그림의 열렬한 수집가였습니다. 그는 10년 후인 1887년까지 인상파 화가 친구들의 작품 약 122점을 모았는데, 그중에는 그가 "우리 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불렀던 르누아르의 작품 15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상화의 포즈가 어딘지 낯익지 않나요?
외진 뮈레의 포즈와 시선은 반 고흐의 명작 <폴 페르디낭 가셰 박사(개인 소장)의 초상화>와 매우 닮은 느낌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셰 박사와 뮈레는 오베르에서 이웃지간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1906년 4월 22일 가셰의 이웃이었던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사망했습니다. 아마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이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모자장수가 이렇게 예뻐도 됩니까?
드가와 마찬가지로 르누아르는 1870년대 후반에 파리의 모자 장수를 그렸습니다.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하면 드가는 모자를 사는 활동을 묘사한 반면, 르누아르는 젊은 세일즈걸의 매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역시 여성인물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능력은 르누아르가 세계 최고입니다.
<The Ingenue(천진난만한 여인)>은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이 파란색과 녹색 톤의 야외 배경에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모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군요. 르누아르의 다른 여성인물화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매력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마르고, 잔 사마리와 니니 로페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인물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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