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현대미술가들이 자신의 난해하고 독단적인 해석을 창의성이라 포장하며 선전하는 유언비어를 접하며 피곤함에 쩔어있는 사람들, 중세 종교화의 천편일률적인 화풍에 진부함과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하셔야 합니다.
기괴하고 이해불가한 현대미술이 언제까지 미술시장을 지배할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피카소와 달리가, 앤디워홀과 키스해링이 어지럽혀 놓은 '미술의 원류'를 찾아가시려 한다면,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을 위무하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힐링의 미각을 느끼는 작품감상을 원하신다면 역시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셔야 합니다.
그의 그림이 세상 돌아가는 일과 동떨어져 있어 뜬금없다고 판단하시거나 비현실적이라 여겨지신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지러운 세상살이에서 돌아와 개인의 밀실에 풀어헤쳐진 지금, 내면의 평화와 아름다움에 마음 물들이고 싶으시다면 지금 소개하는 그림들을 감상하십시오.
실물이 전시되는 뮤지엄을 방문하여 진정한 기쁨을 맛보기 전에 이곳에 올려놓은 작품들을 찬찬이 살펴보면서 어느 나라 어느 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는지, 그림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한 다음 미술관 순례계획을 수립하십시오. 스케치북 크기의 그림은 실물 감상할 때 우표딱지처럼 여겨집니다. 작품이 50호~100호 정도의 크기는 되어야 마음껏 빠져들며 멍 때릴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구요~~
인물화(Adult)

에밀 앙리 라포르테 (Émile-Henri Laporte)는 프랑스 화가로 르누아르와 친구지간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살롱과 퐁텐블로 시대(Salon and Fontainebleau period) 초에 그린 것으로, 1799년 프랑스에서 영국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사업가인 시슬리의 아버지 윌리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손질한 흰 머리카락과 콧수염을 기른 노인을 보여줍니다.
작품에는 르누아르에게 미친 사실주의의 영향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같은 예술가로부터 받은 영향과 르누아르가 좋아했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신고전주의의 영향도 보여줍니다.


19세기의 유럽 여성들은 바느질하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삼은 듯합니다. 르누아르 외에도 바느질 하는 여성들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이 많습니다. 작품 <바느질하는 리즈>의 모델인 리즈 트레호(Rise Trehot)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르누아르의 연인으로 살았던 인물로, 1872년까지 20개 이상의 르누아르 작품 모델로 등장합니다.
1866년 리즈는 아들 피에르를 출산하지만 얼마 안 가 사망하고 다시 1870년 딸 잔느를 가집니다. 1871년 르누아르가 보불전쟁에 징집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르누아르는 딸 잔느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사망할 때까지 남몰래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르누아르와 결별한 리즈는 건축가와 재혼하여 2남 2녀를 낳습니다. 리즈가 1922년 73세로 사망할 때 자식들에게 남긴 유산은 <바느질하는 리즈, 1868>와 <흰색 숄을 걸친 리즈, 1872> 2점이었다고 합니다.

프레데릭 바지유가 그린 르누아르의 초상화입니다.
르누아르가 그린 자화상과 사뭇 느낌이 다르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프레데릭 바지유>는 자신의 초상화에 대한 대응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오르세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으며, 2006년에 바지유의 출생지인 몽펠리에의 파브르 미술관에 기탁했습니다. 바지유가 작업 중인 왜가리 정물화 역시 파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작품으로 르누아르의 동료화가들 관계를 추정해 보면 알프레드 시슬레는 거의 모네와 동급으로 여겨집니다. 함께 북아프리카로 미술여행을 다녀왔고 부부의 초상화를 그린 것 등이 그 증거입니다.
자연 속의 부부를 묘사한 이 작품은 야외 환경과 빛의 효과에 초점을 맞춘 전형적인 인상주의 그림입니다. 시슬리의 옷차림으로 보아 그들은 사교 모임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내를 향해 돌아서서 부드럽게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제스처는 이들 부부사이가 원만하고 친밀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내의 시선 역시 시슬리를 향해 위로 향하고 있어, 그들 사이의 소통이나 교류를 암시합니다.
배경은 다양한 녹색 음영과 다른 색상의 느슨한 붓질로 렌더링 되어 특정 세부 사항 없이 잎과 야외 공간의 흐릿한 인상을 만듭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시청자는 인물과 그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전달되는 분위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Alfred Sisley(알프레드 시슬리, 1839~1899)는 르누아르의 동료 인상파 화가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보냈지만 영국 시민권을 유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르누아르, 피사로와 달리 인물화에 거의 빠져들지 않았고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데 전념하였기 때문에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일관성 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스위스 쮸리히의 에밀 뷔를르 재단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시슬레의 또 다른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의 모델은 1868년 작품보다 좀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려진 듯합니다. 수염을 일부러 정돈한 흔적이 없는 듯 한데서 오는 착시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 작품에서 시슬레의 성격표현에 초점을 둔 듯합니다. 함께한 세월로 인하여 속 깊은 모습까지 그릴 수 있게 된 걸까요? 시슬레는 아마도 온화하고 우아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1877년 인상파 그룹 3회 전시회에 출품되었습니다.


당시의 살롱전은 미학적·도덕적으로 시대이념을 표출함과 동시에 화가와 수집가들 간의 거래 시장을 제공하는 기능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직업미술인이었던 르누아르는 살롱에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르누아르는 종종 “열정은 매우 좋은 것이나 그것이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한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74년 최초의 인상주의 전에서 르누아르의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객들은 인상파의 작품에 대하여 일개 실험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숙한 일상을 쉽게 묘사한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따라서 작품 <산책(La Promenade)>은 팔리는 그림을 추구했던 르누아르로 미루어 당시의 고객이 좋아하던 소재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마담 클레멘틴 발렌시 스토라(Madame Clémentine Valensi Stora (L'Algérienne))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1870년에 완성한 유화입니다. 알제리 의상을 입은 젊은 유대인 여성 레베카 클레멘틴 스토라를 묘사한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작품에서 흔하지 않은 작품으로, 그의 작품에서 이 그림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르누아르가 제작한 알제리 관련 작품 <Woman of Algiers("Odalisque")(1870)>와 <Parisian Women in Algerian Costume (The Harem)(1872)>는 모두 현존 인물의 초상화가 아닌 기존 작품에 대한 오마주였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앵그르의 <Grande Odalisque(1814, 루브르 박물관)>을, 두 번째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Women of Algiers in their Apartment(1834, 루브르 박물관)>를 기반으로 그린 것입니다.
알제리는 1830년에 프랑스가 식민지로 편입한 지역이었습니다. 르누아르가 알제리를 여행(첫 해외여행) 한 것은 1881년인데 그 이전 10년 전부터 알제리에 대한 관심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당시 알제리가 유럽 상류층과 예술가들에게 큰 매력을 발산하는 곳, 이를테면 이국적인 의상, 풍경, 사람들에 대한 미적 관심으로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Madame Stora in Algerian Dress(L'Algérienne)>의 넓은 붓놀림과 화려한 색상 사용은 르누아르가 귀스타브 쿠르베와 에두아르 마네의 사실주의를 일시적으로 거부하고 그가 영웅으로 받들었던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은 증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의 스타일이 바뀐 후, 르누아르는 이 작품을 거부하며 "항상 아마추어들이 고대의 매너를 요구한다"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럼 알제리 의상을 입은 젊은 세파르드 유대인 여성 레베카 클레멘틴 스토라(결혼 전 성씨는 발렌시)는 누구일까요?
클레멘틴 발렌시(Clémentine Valensi, 1851~1917)는 여행 용품 제조업자의 딸이었습니다. 1860년대 후반에 고국 알제리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커지면서 프랑스로 이주했고 1868년 파리에서 나단 스토라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상품을 전문으로 하는 골동품 상인이었습니다.
클레멘틴 발렌시가 입은 의상은 1870년대 파리에서 관습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제리 의상은 르누아르가 그녀의 민족적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스토라의 요구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클레멘틴의 움츠러든 표정은 그녀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르누아르와 스토라가 이 작품에서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오달리스크(odalisque)>는 19세기 미술에서 많은 화가들이 다루었던 주제였습니다. 동양적인 여성, 즉 하렘의 여성들을 묘사한 작품을 가리키는데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가 이 그림을 제작했을 때 그는 알제리를 여행했던 경험이 없던 상태였고 10년이 지난 후 그가 미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면서 시슬레와 알제리 여행을 도모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상상력의 산물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 외젠 들라클루아의 오마주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앵무새를 안은 여인>의 모델은 르누아르의 6년 친구였던 리즈 트레오(Lise Tréhot)입니다.
그녀의 모습을 담은 르누아르의 작품은 1867~1872년 사이에 그린 16개 이상의 캔버스로 남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럼, 르누아르와 리즈 트레오(Lise Tréhot)의 관계는요?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다가 한 번 이상 등장하는 여성모델에게는 반드시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모델 리즈 트레오는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 중 한 명이자, 그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르누아르의 예술적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더군다나 리즈는 르누아르의 선호 스타일의 외모를 가진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헤어지세 됩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서 리즈는 당시 인기 있고 이국적인 애완동물이었던 앵무새를 안고 있습니다. 흰색 커프스와 빨간색 띠가 달린 검은색 태피터 드레스는 리즈의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를 강조합니다. 짙은 녹색 벽과 식물은 다소 무겁고 공식적인 실내를 암시합니다. 깃털 같은 풍부한 질감의 붓놀림은 작가가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사랑스러운 젊은 부르주아 여성을 포착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강조된 음울한 색조, 여인의 모호한 표정, 그리고 그녀가 차지하는 폐쇄적인 공간은 이것이 단순히 경박한 오락을 엿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네와 모네 아내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Claude Monet reading A Newspaper)>는 담배 파이프를 문 채 신문을 읽고 있는 친구 모습을 블루계통의 색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모네가 물고 있는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이처럼 실감 나는 동작 묘사로 시간의 흐름과 생명체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었습니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교류와 소통을 이어갔던 과정의 하나로 르누아르는 친구 모네를 모델로 삼은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아르장퇴유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입니다. 이러한 두 인상파 화가의 우정은 미술을 애호하는 후대인들에게 명작이라는 열매를 맛보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로, 동양 문화 특히 일본 예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앞에서 르누아르가 알제르나 하렘에도 관심을 보인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뭔가 모색하려 발버둥을 많이 쳤었던 내력을 가진 듯합니다. 암튼, 이들은 우키요에 기법으로 만든 일본 목판화를 수집했으며, 그로부터 어떤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The Reader>에서 르누아르는 주로 갈색과 노란색 톤을 사용하여 따뜻하고 어두운 색상 팔레트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모네가 책을 읽는 동안 두 팔을 테이블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책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고 페이지가 끝까지 뒤집히지 않아 오른쪽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모네는 손에 파이프를 들고 집중된 듯한 표정입니다. 르누아르는 밝은 회색의 작고 빠른 획으로 담배 연기를 표현했습니다. 모네는 골초였을까요? 그가 파이프를 물고 담배연기를 뿜는 초상화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을 제작한 사례가 있으니 말입니다.
모네가 입은 재킷은 어두운 색이지만 르누아르는 주름을 사실적으로 칠할 만큼 주의 깊게 터치했습니다. 배경은 밝고 어두운 부분을 아름답게 대조하는데, 아마도 가스 랜턴으로 인해 분위기가 노란색으로 물들었을 것입니다. 르누아르가 어떻게 인상주의적인 방식으로 작업했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극장 박스 안의 장면을 통해서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동일한 남녀 모델이 등장하는 유사한 작품이 또 있습니다. 작품의 구성은 개인 박스 또는 칸막이인 극장 로지에 앉아 있는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염과 콧수염을 기른 정장차림의 남성은 바깥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여성을 향해 살짝 돌아앉은 자세인데, 이는 두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암시합니다. 정교한 헤어스타일과 우아한 옷차림을 한 여성 역시 얼굴을 돌려 극장내부 특정위치를 바라보는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계속)
'화가들의 나라-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6 - 성인 인물화(3) (5) | 2025.03.27 |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5 - 성인 인물화(2) (1) | 2025.03.26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3 - 다양한 풍경화들 (1) | 2025.03.25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2 - 인상주의 풍경화들 (1) | 2025.03.25 |
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1 - 자화상과 초기작품들 (2) | 2025.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