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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1 - 자화상과 초기작품들

hittite22 2025. 3. 2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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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Auguste Renoir(1841~1919)

 

 

 

 

이름이 오귀스트(Auguste)라는 유명인으로 세 사람을 기억합니다.

로댕과 꽁트와 르누아르..

오늘 소개하는 인물은 그 오귀스트 중 하나인데 풀 네임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입니다. 그럼 엄밀하게 말해서 로댕, 꽁트와 동일한 이름이라 하면 안 되는가요?

 

제가 아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근대 이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화가입니다. 평생 동안 여성그림을 그려대었는데 하나같이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분위기였음을 고려하면 꽉 막힌 인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는 1841년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리모주에서 7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양복점을 운영하며 어머니가 재단사로 일하였던 집안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르누아르는 13세 때부터 학교가 아닌 파리의 도자기 공방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도자기에 그리는 일을 거쳐 부채 위에 그림 그리는 일, 상점의 벽면을 장식하는 일 등을 하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1862년 미술학교에서 정식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합니다. 이즈음 글레르(Gleyre)의 화실에도 나가는데, 르누아르는 이곳에서 미래의 인상주의 화가들인 모네, 시슬리 등과 친분을 맺습니다.

 

모네, 시슬레등과 교류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을 습득한 르누아르는 1874년에 제1회 인상주의 화가 전시전에 작품을 출품합니다. 그때 독특한 색과 빛으로 넘쳐나는 행복한 일상의 그림을 선보였으며 1881년까지 인상주의 계열 작품제작을 계속 이어갑니다. 주목해야 할 사안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성장했던 르누아르가 여타 화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밝고 행복한 스타일을 자신의 화가 인생 전체에 투영시켰다는 것입니다.

 

1880년대 중반 이후 르누아르는 인상파와 결별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관능미를 표현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말년의 르누아르는 루벤스부터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거장 장 앙투안 와토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회화 양식을 근대적으로 계승한 대표적인 화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또 다른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르누아르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색깔을 선명하게 칠하여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색채 화가라 불렸고, 특히 적색 표현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생애는 비교적 평온했으나 늘그막에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였으며, 그로 인해 1899년부터는 남프랑스 해안에서 살았습니다. 나이 일흔을 넘긴 후에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이 마비되어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런 탓인지 말련의 작품들은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르누아르는 60년 동안의 화가 인생에서 6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인생이 끊임없는 유희와 같다"라고 할 만큼 즐거운 작품세계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화가로서 화사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작품을 인류에게 선물한 귀인이라고 평가받을만 합니다.

 

자화상

 

 

Self Portrait, 1875, oil on canvas, 39.1 x 31.6 cm

 

르누아르가 1875년에 이 자화상을 그렸을 때, 그림 수입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자화상에서 작가는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을 하고 있지만, 줄무늬 셔츠와 짙은 파란색 넥타이를 멋지게 차려입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거의 투명하고 다른 부분은 두껍게 칠해진 질감 있는 페인트는 그가 기법을 실험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런 탓인지 이 작품은 그 이듬해 그린 자화상보다 더 늙어보입니다.

 

이 작품은 1876년 파리의 두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걸렸고,

수집가인 조르주 드 벨리오 박사(Dr. Georges de Bellio)에게 팔렸습니다.

 

Self-Portrait, 1876, oil on canvas, 73.3 x 57.3 cm

 

1876년까지 르누아르는 1회 및 2회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르누아르는 자신의 걸작 중 하나가 될 그림 <Dance at the Moulin de la Galette>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화상은 1875년에 그린 작품에 비해 훨씬 더 젊어 보입니다.

캔버스의 대부분을 큰 붓놀림으로 덮은 르누아르는 구성의 일부를 대충 그려서 팔의 위치 및 팔레트와 붓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남겼습니다. 반면 얼굴은 친밀한 인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였는데 이 그림의 첫 번째 소유자는 유명한 딜러이자 절친인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였습니다. 그 후 1946년, 베르트하임(Wertheim)은 이 갤러리에 걸려 있는 르누아르의 <앉아 있는 목욕하는 사람>을 인수한 지 불과 한 달 후에 이 그림을 구입했습니다.

 

Self-Portrait, 1879, oil on canvas, 19 x 14 cm [Musée d'Orsay, Paris]

 

으앗!

이 책받침 만한 그림의 하단부에 드러나 보이는 여성얼굴은 뭐죠?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인데..

한번 가면 설명을 자세히 읽어봐야겠군요.

아마도 자화상 그리기 전 밑그림으로 그렸던 다른 장면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Self-Portrait, 1899, oil on canvas, 41.4 x 33.7cm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Williamstown, MA]
Self-Portrait, 1910, oil on canvas,
Self-portrait, 1910, oil on canvas, 1910

 

<흰 모자를 쓴 자화상>은 아무것도 없는 녹색 배경에, 헐렁한 모자를 쓴 69세 노화가의 옆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르누아르의 예쁘고 아름다운 작품과 자화상의 초라한 인상이 연결되지 않아 당혹스러웠습니다. 나이를 먹은 모습은 젊은 날의 인상보다 더욱 초췌하고 볼품없어 보이지 않나요?

 

이 자화상을 그릴 당시 르누아르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해외 뮤지엄에서 잇따라 그림을 사들이는 등 부와 명성을 얻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캔버스 안에 존재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초라한 노인으로 비치고 있으며, 옆으로 돌아앉은 모습에서는 내성적이고 겸손한 내면까지 읽힙니다.

그런 선입견은 그의 건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때 류머티즘으로 팔과 다리가 마비된 상태였기에 그림을 그렸으되 휠체어에 앉아 뒤틀어진 손 사이에 붓을 끼우고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그를 만난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렇게 썼습니다.

"르누아르는 계속 위대해지고 있다. 최근작들이 가장 아름답다. 또한 가장 젊기도 하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아폴리네르가 말년의 르누아르가 보여준 창작열에 감동받아 과장법을 사용하여 칭송해 준 수사에 불과합니다. 정말 말년의 작품이 더 위대한 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팔다리에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더 위대한 작품이 탄생될 수 있겠습니까.

 

Self-Portrait

 

 

 

초기작품들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섬세하고 고전주의적인 느낌도 스며 있습니다. 붓터치 실력으로 치면 회화의 극치라고 불릴 만큼 정교했습니다. 화풍은 로코코 시대와 인상주의를 오가는 형태를 보였는데 1867년경의 그림에서는 이미 완숙한 인상주의 화풍을 볼 수 있습니다. 1870년대부터는 인상주의에 점점 더 경도되는 특징을 나타냅니다. 당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인상주의 화가가 미술의 한 사조로서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의 등장과 함께 르누아르가 태어나던 해인 1841년에 발명된 물감튜브의 공이 컸습니다.

 

 

Clearing in the Woods, 1865, oil on canvas, 75.3 x 101.9cm [Detroit Institute of the Arts, Michigan]
La Mare aux Fees, 186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이때까지의 작품만 해도 고전주의 화풍을 답습, 혹은 스터디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자신만의 작품 특색이 아직 발현되기 전입니다.

 

In St Cloud Park(세인트 클라우드 파크에서), 1866, Oil on canvas, 50 x 61cm [Private collection]

 

붓질과 색을 선택하는 방법, 또 햇빛을 도입하여 인상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테크닉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네요.

 

The Painter Jules Le Coeur Walking his Dogs in the Forest of Fontainebleau, 1866, oil on canvas [Museu de Arte de São Paulo Assis Chateaubriand, Brazil]
The Champs-Elysees during the Paris Fair of 186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Pont des Arts, Paris, 1867~1868, oil on canvas, 60.9 x 100.3cm [Norton Simon Museum, Pasadena, CA]
Skaters in the Bois de Boulogne, 1868,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andscape, Snow Effect, c1868, oil on canvas, 48.5 x 64.8cm [Private Collection]
La Grenouillère, 1869, oil on canvas, 88 x 66cm [Nationalmuseum, Stockholm]
La Grenouillère(개구리 연못), 1869, Claude Monet 作

 

르누아르는 모네와 함께 <확산반사> 현상(그림자가 반사된 빛의 영향으로 주변 사물의 색채를 띠는 현상)을 처음 발견하였으며, <타시(tache, 반점 or 얼룩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색면이나 색반으로 번역됨)>라고 하는, 색깔이 다른 짧은 스크로크들을 캔버스 위에 병치시키는 방법도 처음 도입하였습니다. 오~ 이런 것을 보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거의 모두가 한 가지씩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거나 창안해 낸 것 같습니다. 대단한 시대입니다. 인상주의가 태동한 시기는 거의 서양미술의 신천지가 열렸던 시대로 여겨집니다. 물론 사견입니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이젤을 나란히 세워놓고 같은 대상을 즐겨 그렸기 때문에 완성된 두 그림은 종종 누가 그린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르누아르는 1869년 이 휴양지에 먼저 와서 그림에 열중이던 모네와 여름 한나절을 같이 보냅니다. 두 사람이 그린 <라 그르누예르>를 비교해 보면, 모네가 강물의 흔들림을 좀 더 리얼하게 묘사해 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작품을 살펴보면, 이미 이 시기에 인상주의 화풍을 거의 완성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La Grenouillère(라 그르누예르, 개구리 연못이라는 뜻)>는 세느 강변의 유명 휴양지로서 모파상의 소설 무대로도 등장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르누아르의 작품이 더 매력 있어 보입니다. 모네는 조금 더 노릇노릇한 느낌이 나는 녹색을 선택했음인지 개인적인 감상으로 친밀도가 살짝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 사람의 그림에서 화면 오른쪽 구조물은 Bougival(부지발) 근처 Croissy-sur-Seine에 있는 보트대여소(Boat-Hire)입니다. 이곳에서 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나무 한그루가 자리 잡은 인공섬(Camembert, 카망베르 치즈)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네(Monet)와 두 명의 가난한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들인데, 르누아르는 화폭에 빛을 반사하는 수면과 그늘의 인상이 드러낸 것에 더하여 지인들의 모습을 포착해 냈습니다. 특히 리듬감 있는 재빠른 붓질을 통하여 드러낸 물의 흔들림과 사람의 움직임에서 여름휴일의 낭만이 진하게 전달되어 옵니다. 

 

이들 작품을 비교하면 인상주의 두 거장의 스타일 차이도 드러납니다. 전체적으로 르누아르는 둥근 치즈 모양의 섬 위에서 연출되는 ‘장면’과 '풍속'을 그렸다면, 모네는 섬을 더 작게 배치하여 ‘풍경’을 강조한 것이 보입니다. 

La Grenouillere, 1869, oil on canvas, 65.1 x 92cm [Oskar Reinhart Collection, Winterhur, Switzerland]
Snowy Landscape, 1870~1875. oil on canvas, 51 x 66cm [Musée de l'Orangerie, Paris]
A Road in Louveciennes, c1870, oil on canvas, 38.1 x 46.4 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ont-Neuf(퐁네프), 1872, 75.3 x 93.7cm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Art]

 

19세기 도시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퐁네프는 프랑스 파리의 센 강에 놓인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1607년 앙리 4세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1867년, 클로드 모네와 르누아르는 강둑 그림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이 다리를 묘사했고, 1872년에 다시 이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파리 코뮌 봉기의 격동적인 여파를 묘사한 것이라 합니다. 평화롭고 느긋한 거리 풍경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르누아르와 모네는 둘 다 카페 2층 창문에서 다리의 오른쪽 강둑을 묘사하기 위해 동일한 관점을 사용하여 작품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동생인 에드몽 르누아르(Edmond Renoir)는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을 늦추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장면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를 통해 르누아르가 그들의 모습을 스케치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에드먼드Edmond Renoir는 이 그림에서 지팡이와 밀짚 모자를 쓴 모습으로 두 번 등장합니다.

 

음, 어디요?

제일 앞쪽에 지팡이 짚은 자세로 한 번 나온 것 같고.. 밀짚모자는 어디있는지 잘 안보입니다. ㅎㅎ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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