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이 그림의 모델은 아마도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아내 카미유 모네였을 것입니다.
그럼 아기는 당연히 그의 아들 장이겠군요.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절친인 건축가 샤를 르 쾨르의 초상화입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있는 비문 "Ô Galand Jard"는 퐁테네오로즈에 있는 그의 정원에 그려진 르 쾨르에게 바치는 헌사입니다.
작품 <파리지앵(La Parisienne)>속에서 멋진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앞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하얀 얼굴에 푸른색 드레스와 푸른색 모자가 잘 어울리는 이 여인은 앙리에트 앙리오(Henriette Henriot)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입니다.
르누아르는 앙리에트 앙리오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앙리오만큼 아름다운 여성은 없다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극장의 화재 사고 때 그녀가 기르던 강아지를 찾으러 불이 난 극장 안으로 뛰어들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르누아르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집니다.
르누아르는 “만약 신이 여성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내가 화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할 만큼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피부와 옷, 모자 등을 섬세한 붓질과 조화로운 색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여인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별 관람석>은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던 르누아르 초기의 대표작입니다. 19세기 후반의 화가들은 당시 오페라극장의 관람석을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극장이라는 공간이 급격하게 ‘모던’해져 가던 1870년대 파리지앵들의 세련됨을 보여 주는데 알맞은 소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 속에 짙은 연지색의 배경 앞에 화사한 옷차림을 한 남녀가 화면에서 뛰쳐나올 듯이 클로즈업되어 있습니다. 발코니에 앉아 있는 여인의 인상은 당차고 자신만만한 듯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얼굴과 가슴은 새 하얀 데다 흰색과 까만색의 강렬한 스트라이프 드레스 무늬는 그녀의 피부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뒤에 있는 남자는 르누아르의 형이자 저널리스트(후에 <라 비 모데르느>지의 편집장이 됨)였던 에드몽인데, 오페라 글래스(opera glass, 공연장에서 작품과 배우를 자세히 보려고 사용하는 소형의 쌍안경)를 들고 어딘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공단장갑을 낀 여인의 손에도 오페라 글래스가 쥐어져 있습니다. 남자의 흰 셔츠와 검정색 수트는 여인의 드레스 무늬와 뒤섞여 있으며, 여인에게서 나는 광채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에드몽은 단지 배경으로 비칠 따름입니다.
이 여인은 몽마르트 출신의 모델 니니 로페즈(Nini Lopez)로, 작품이 공개된 후 ‘가오리입(창부라는 뜻)’이라는 별명을 선사(?) 받게 됩니다. 그녀가 받은 비난은 아마도 인상주의에 대한 평론가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시기에 인상파화가의 작품 모델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보다 십 년 전쯤에 마네가 누드화 <올랭피아>를 발표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모델을 가리켜 창녀라고 비난했습니다. 두 화가 모두 우리 주변에 실존하였을 듯한 여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마네가 복잡한 심연을 드러내는 여인을 묘사하였다면, 르누아르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지닌 여성들을 그려낸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는 여인들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면, 적어도 르누아르는 마네보다 따뜻한 시선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요?
당시 르누아르는 인상파 화가 중에서 검정색의 매력을 화폭에 즐겨 담아내었던 사람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여성 의상의 굵은 줄무늬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부채, 남성 상의, 손에 들고 있는 오페라 글래스 등의 검은 모티프를 써서 멋진 효과를 얻어내고 있군요. 역설적으로 검정색을 사용함으로써 색채 화가로서 르누아르의 진가가 뚜렷하게 발휘되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락의자에 앉은 여성>은 르누아르가 빠른 붓놀림으로 모델의 얼굴, 팔, 몸통을 가로지르는 빛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델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여성 모델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그는 종종 하층 계층의 젊은 여성을 모델로 사용했습니다.'라고 코멘트하고 있네요. 아, 저도 하층 계급에 속하는 인물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모델의 신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모델의 얼굴을 가까이 프레이밍하고 등을 향한 자세는 기존의 초상화 관습에 대한 도전이자 대담한 혁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르누아르의 모델로 선 니니 로페즈(Nini Lopez)의 몸짓과 위치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상징적인 신고전주의 초상화 <마담 무아테시에(Madame Moitessier, 1856)>의 배경에 있는 모델의 유명한 거울 반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4천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2천여 점이 여성 인물화입니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1875)은 르누아르의 여성인물화 중 특히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색채와 능숙한 붓질로 19세기말 근대도시 파리에서 살던 여인의 행복한 순간을 편안하게 담은 그림입니다.
그림 속의 고양이 종이 우리 집 둘째가 키우는 냥이와 비슷하군요.. 한국에서는 21세기에 들어와서 냥이와 댕댕이를 키우는 반려족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 같은데 프랑스는 100년 전에 이미 그런 시대였던 모양입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가 죽을 때까지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가 그린 모네의 초상화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요?
저는 대체적으로 르누아르가 절친 모네를 실물보다 더 멋지게 그린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작품도 그런 유형의 하나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의 보는 눈은 다르군요. 이 작품을 가리켜 화가로서 모네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실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이미지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팔레트와 페인트 붓을 들고, 작업복차림에 편안한 포즈를 취한 모네는 하던 일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봅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그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얼굴에 빛이 집중되어 옷의 어두운 덩어리 위에 밝기가 생깁니다. 길고 좁은 잎이 있는 나무, 분명히 협죽도나무가 공간을 침범하여 모네의 머리 위에 떠다닙니다. 르누아르는 모델에게 월계관을 씌우려는 의도였을까요, 이것은 머리 장식처럼 후광으로 비춰지는 작은 둥근 모자의 설명도 가능케 합니다.
1876년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서 여러 비평가들은 이 초상화를 가리켜 거장의 반열에 올려놨다는데(1,2회 인상파전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텐데 이건 뭐지?) 가장 인상적인 논평은 그해 6월 Messager de l'Europe에 실린 동시대 소설가 에밀 졸라의 펜에서 나왔습니다. 졸라는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찬란한 빛으로 밝혀진 렘브란트에 합당합니다."
아, 뭐 이렇게 난해한 요약을..,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이 작품의 모델 생김새와 포즈는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과 매우 유사해보입니다.
같은 인물이 아닐까요?
빅토르 쇼케와 그의 아내 초상화를 그렸군요.
부부의 초상화를 보니 서로 어울리는 느낌이 듭니다.
빅토르 쇼케(Victor Chocquet, 1821~1891)는 프랑스 미술 수집가이자 인상파 화가들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기울인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겸손한 세관원이었고 많은 수집품을 구매할 만큼 부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미망인은 컬렉션을 그대로 소유했었는데 1899년 그녀가 사망하자 거대한 컬렉션이 G. Petit에서 경매되었습니다. 그의 컬렉션 중 많은 부분이 현재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해야겠습니다.
위에 소개한 초상화의 오귀스틴 마리 캐롤라인 부이송(Augustine Marie Caroline Buisson)은 파리 세관의 하급 공무원인 빅터 쇼케의 아내였습니다. 쇼케는 처음에는 동시대 화가 들라크루아, 르누아르, 모네가 그린 특이한 작품에 끌려 매료되었고, 그것들이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박봉임에도 열렬히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가난하고 팔리지 않는 화가였던 젊은 르누아르는 감사의 마음으로 쇼케의 배우자에 대한 초상화를 그렸던 것입니다. 이는 인상파 예술의 진정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네요. 마담 쇼케 뒤의 벽에는 걸린 것은 남편의 컬렉션 중 하나로, 1863년에 사망한 들라크루아 작품 <Palais Bourbon>의 프레스코화 스케치입니다.
르누아르의 그룹 초상화는 몽마르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친구들끼리 나누는 비공식적인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활기찬 붓놀림과 남자들의 포즈, 표정을 통해 전달되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 중앙에서 페이퍼백을 들고 토론을 주도하는 인물은 미술 평론가이자 르누아르의 전기 작가인 조르주 리비에르(Georges Rivière)입니다. 그의 오른쪽에 반쯤 가려진 대머리 남자가 인상파 그룹의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입니다.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네요.
아, 여기서 왜 일본풍 우산이 나옵니까?
유럽 인상파 화가들이 껌벅했던 일본 우키요에의 흔적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유쾌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 작품은 르느와르가 젊은 시절에 그린 것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막 성인이 된 딸이 모친(동년배의 젊은 여성일 수도 있음, 오른쪽 얼굴이 반쯤 가려진 여인)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러 나온 첫나들이 장면입니다. 이처럼 처녀에서 여성으로 자라고 드디어 결혼할 무렵이 되면, 프랑스에서는 축하하는 의미로 나들이를 하는데 그것을 '첫 외출' 또는 '첫나들이'라고 합니다.
그림 속의 처녀도 축복을 받으며 새로 맞춘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모습으로 극장 특석에 앉아 있습니다. 처녀의 옆모습을 근경으로 삼고, 아래층 객석이나 무대를 슬쩍 보는 장면을 원경으로 삼은 점은 매우 교묘한 구도입니다. 이러한 감각적 표현은 무언가가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며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로 강렬하게 증폭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어쩌면 극장 나들이에서 청중 가운데 아는 사람을 발견했을 수도 있습니다. 처녀가 들고 있는 꽃다발의 화사한 빛깔, 특히 푸른 색조의 모자와 의상이 아름답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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