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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uin(폴 고갱) / 6 - 타히티 시대 (1차: 1891~1893) 원색의 잔치

(전회에 이어서)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빈센트 반 고흐와의 갈등, 그리고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1874~1965)의 소설 입니다.​고갱은 파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치열하게 자신의 입지와 싸웠고, 결국 지상의 낙원이라고 생각한 문명의 오지 타히티를 선택하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식민지 지역 관리 차원에서 자국 화가를 파견, 섬사람들과 주변 환경을 그리게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언제나 인위적인 도시 문명을 벗어나 원초적 생명력이 가득한 이국적인 지역으로의 여행을 꿈꿨던 그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지만 막상 섬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프랑스인이 넘쳐나고 있었고 ..

Paul Gauguin(폴 고갱) / 5 - 풍경화(2)

(전회에 이어서)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산등성이와 같은 배경이 보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그린 걸까요? 아래 그림은 생 마르그리트 산 아래의 아벤 강을 그린 것인데.. 위의 것도 아벤강변에서 그린 것이고.. 아마도 같은 장소에서 그렸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이 작품은 동경 아티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군요.일본 동경 긴자선의 교바시역과 니혼바시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은 프랑스 퐁타방 지역의 목가적인 풍경과 소박한 생활상을 담은 작품입니다.작품의 중심인물은 돼지 치는 사람인듯한데 그는 돼지 치는 사람답지 않게(?) 생각에 잠긴 표정입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아니면 개인의 애정전선에 이상이라도 발생한 건지.. 암튼, 이 캐릭터는 황금색 톤으로 표현된 돼..

Paul Gauguin(폴 고갱) / 4 - 풍경화(1)

(전회에 이어서)   고갱의 풍경화를 감상하다 보면 고흐와 결이 다르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타히티 시대는 타히티 시대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브르타뉴 지방의 풍경화들은 또 그것대로 다른 매력을 풍깁니다. 그리하여 도시생활에 지친 내 마음을 잔잔하게 힐링시켜 주었습니다. 고흐가 강하고 삐죽삐죽 덧칠한 듯한 붓터치로 영혼을 울리는 마력을 발산한다면 고갱은 부드럽고 평평하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을 미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듯합니다.   풍경화 - 파리시대   Paul Gauguin의 이 초기 인상파 그림 은 1870년대 후반 고갱이 가족과 함께 살았던 파리 좌안 지구인 Vaugirard의 정원과 건축물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1880년 다섯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하여 인상파 화..

Paul Gauguin(폴 고갱) / 3 - 종교화 & 정물화

(전회에 이어서)    종교화 전체적으로 볼때,고갱이 남긴 기독교문화를 배경으로 한 종교화는 5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그런데 저는 그 작품들만 좋아했습니다.타히티의 원시종교를 그린 작품은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네요.기독교 종교화 4편을 소개합니다.   1888년 여름, 인상주의를 뒤집을 이론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 젊은 에밀 베르나르가 고갱이 일하던 퐁타방에 도착합니다. 에밀 베르나르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기억해둬야 할 이름입니다. 중요한 인물이니까요.암튼, 에밀과 폴 그들의 만남에서 "종합주의"가 생겨났고, 당시 고갱이 그렸던 아름다운 작품 은 그 만남으로 이뤄낸 최초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작품 은 바로 브르타뉴의 퐁타방에서 그렸던 것입니다. 이는 작품 속에 브르타뉴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유이기..

Paul Gauguin(폴 고갱) / 2 - 파리, 브르타뉴 시대

(전회에 이어서)   타이틀은 파리시대라 명명하였지만 프랑스에 머물렀던 시기의 작품을 망라해서 소개합니다.고갱이라는 남자가 가족을 내팽개치고 자기 좋다고 그림 그리는 일에 뛰어든 후에 파리, 브르타뉴 퐁타방, 르 폴뒤 지방을 전전긍긍했고 테오의 소개로 아를까지 갑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타히티로 숨어버리는데 그 과정에 또 다른 이국지역인 마르티니크에서 1년(1887) 머무르는 기간이 꼽사리 끼어 있습니다. 좀 정신이 없는데요일단 여기서는 파리시대와 브르타뉴 시대로 구분해서 소개하겠습니다.브르타뉴 시대는 다시 퐁타방에서 작품활동한 것과 르 폴뒤에서 작품한 것이 포함됩니다.    파리시대   화가의 아내인 메테 소피 고갱(Mette Sophie Gauguin)은 1873년에 결혼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

Paul Gauguin(폴 고갱) / 1 - 자화상

고갱은 누구인가?  폴 고갱(Paul Gauguin)은 프랑스 파리 태생의 탈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생전에는 그리 평가받지 못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인상주의를 벗어나 종합주의 색채론에 입각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 유명합니다.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생활하였고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고갱의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나 앙리 마티스와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고갱 사후 아트딜러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두 번의 유작전을 파리에서 개최하였고 그때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갱은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예, 저술 등의 다방면에서 족적을 남겼습니다. 고갱의 화풍은 클루아조니즘으로부터 ..

김환기(金煥基) / 2 - 뉴욕 시대

(전회에 이어서)     서울시대(1960~1962)    는 개인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그림으로 김환기가 당시 즐겨 다루던 소재인 여인, 항아리(도자기), 사슴, 새(학)를 망라한 대작입니다.인물과 소재가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어 장식적인 느낌이 납니다. 비엔나의 클림트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한 것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은 유화로 제작된 것이지만 파스텔톤을 띄고 있어 밝은 느낌이 강합니다. 이건희 컬렉션에 들어가 있다가 국가에 기증된 작품입니다.      뉴욕시대(1963~1974)   이 작품은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첫 작품으로 이전의 서울에서 타구했던 반추상과 70년대 뉴욕시대의 특징인 점화 사이를 이어주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작품 중에 점화의 point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김환기(金煥基) / 1 - 동경, 파리 시대

김환기는 누구인가?  김환기는 한국의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서울과 동경 유학을 하였고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미술인생을 개척하고 마감한 한국 현대화단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1913년 2월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섬이 있는 지역은 최근 관광명소로 떠오르는 보라섬(퍼플섬)과 섬티아고가 인접해 있는 중요한 곳입니다. 김환기는 어려서부터 섬아이지만 부모의 뒷배가 든든하여 미술을 전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환경에서 자란 셈입니다. 하지만 섬은 섬인가 봅니다. 김환기는 육지가 그리워 그쪽을 향하여 목을 빼내다 보니 키가 커졌다고 농담을 할 정도 큰 키가 컸는데 거의 190cm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지주 집안 자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그는 중..

Gustave Caillebotte(구스타프 카유보트) / 2 - 풍경, 정물, 누드

(전회에 이어서)    인물화   는 실내 배경으로 편안하게 앉아 있는 정장차림의 쥘 리슈몽을 그린 작품입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손목 사이로 흰색 셔츠 커프스가 보이는 짙은 정장을 입고 있어 세련미를 풍기는 이 인물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암튼 화가 앞에서 모델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조명은 피사체의 얼굴과 손의 윤곽을 강조하여 초상화에 부드러운 사실감을 더합니다. 작품은 인상주의의 전형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빛과 색상의 일시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붓터치로 우아한 일상을 포착하여 작품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입니다.  은 음악을 만드는 행위에 몰두한 두 여성의 친밀한 순간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두 인물 중 한 명은 피아노에 ..

Gustave Caillebotte(구스타프 카유보트) / 1 - 인상파의 숨은 실력자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등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인이었으며 그들의 후원자였던 인물,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화가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이지만 살아생전에는 화가라기보다 후원자요 수집가로 일(?)했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호구지책으로 그림에 매달려야 했던 반면 카유보트는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행적의 일단을 살펴볼까요? 카유보트는 재능 있는 작가였던 클로드 모네에게 비싼 작업실을 저렴하게 임대해 줬고,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구매해 작가들의 생활고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카유보트는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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