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얇은 사각형 금속판들이 나일론 실에 매달려 있는데 아래에서 빛이 비치는 표면 위로 그림자를 투사해 항상 다른 시각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설치미술이라고 봐야 하나..
알루미늄 인서트는 서로 다른 깊이의 그리드 내에 설정된다.
그 결과 마리에게 영감을 준 자연 입자의 움직임과 유사한 생생한 표면이 만들어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대부분의 경우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작가의 설명이나 평론가의 해설에 의해 비로소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된다. 그런 미술작품이란 관람객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는 가치를 가진다고 할 것인가?
순례자는 모름지기 의심하거나 따지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
히타이트와 그의 딸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불량한 순례자라고 할 수 있었다.
고흐작품의 알현
그렇게 불량끼 다분한 순례자임에도 불구하고
히타이트 부녀는 위대한 인상파 화가 '고흐'의 작품을 알현하는 은총을 입게 된다..
히타이트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 계신 그분의 사랑이란 너무나 크고도 그 끝을 알 수 없도다.'
작품 L'Arlesiana(Ginoux 부인의 초상화)는 반 고흐가 노란 집을 임대한 Arles의 Café de la Gare(카페 드 라 가르) 주인의 아내인 Marie Ginoux(마리 지누)를 묘사한 그림이다. 1888년 11월 고갱은 나이트 카페(Night Café)와 함께 이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반 고흐가 고갱과의 갈등으로 그의 귀를 난폭하게 자르는 동안 Marie Ginoux는 그에게 도움을 베풀었던 인물이었다.
마리 지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신경적인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 소식은 반 고흐가 고갱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매우 유사한 새로운 초상화 시리즈를 개발한 감정적 핵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마리 지누는 우울하지만 입가에 슬픈 미소를 머금고 있다.
탁자 위의 두 권의 책, Harriet Beecher Stowe의 Uncle's Tom Cabin과 Charles Dickens의 Contes de Noël은 그가 묘사한 여성에게 부여한 인도주의적이고 자비로운 가치를 암시한다.
Farmer 또는 Provencal Peasant(프로방스 농민)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The Gardener는 1908년 이후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반 고흐의 유일한 작품으로 피렌체의 Sforni 컬렉션에 속한다.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생레미의 생폴 드 모솔(Saint-Paul de Mausole a Saint-Rémy)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1889년 9월 중순 경에 제작된 것이다.
유난히 길고 심각한 신경 위기를 겪은 반 고흐는 9월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요양원 울타리 안에서 보이는 것과 초상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정원사는 웃는 농부를 통해 햇살 가득한 조화의 느낌을 표현한 듯이 보인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공공 컬렉션에 있는 그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으로, 반 고흐의 프로방스 시기 걸작에 해당한다. 작품 <정원사>는 자연과의 관계, 기본색과 보색의 조합 등 그의 그림의 근본적인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쓱쓱 싹싹, 고흐 아저씨가 그어내려간 붓질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모습,
고흐작품의 특징은 임파스토기법으로 칠하여 입체감을 주는 것과 함께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이리저리 선을 그은 것 같은 모습이 드러나는데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면 신기하게도 섬세한 인상묘사가 도드라져 보인다는 것이다.
지누부인이나 정원사나 사진, 인터넷을 통해 접하였을 땐 평범해보이는 작품으로 여겼는데,
현장에서 실물을 접하니 대단한 감흥이 몰려온다.
오오~
이런 맛이 있으니 실물작품을 현장에서 감상하려 무더위와 발바닥 열기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지..
다시 현대미술 속으로
발도 디오다토는 1938년 나폴리에서 태어났으며,
196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1992년까지 거주하며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 이태리 아티스트이다.
로마 국립 현대 미술관에는 평소 접하지 못한 이태리 화가들 작품이 많았고, 특히 Giacomo Balla(자코모 발라, 1871~1958)의 작품이 많았다. 그는 미래주의의 주요 지지자로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 화가, 미술 교사, 시인이었다. 작품에서 빛, 움직임, 속도를 묘사했다.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지만 그는 다른 주요 미래주의자들과 달리 기계나 폭력에는 관심이 없었고 재치 있고 기발한 쪽으로 묘사하는데 관심을 보였다.
Giacomo Balla 작품감상
<실내의 가족 모임>은 각 가족 구성원이 비아 오슬라비아(Via Oslavia)에 있는 미래주의 주택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발라의 딸들인 엘리카(Elica)와 루체(Luce)는 둘 다 화가였다.
발라가 생전에 그린 마지막 풍경화 중 하나인 이 그림은 햇빛에 잠긴 도시의 푸른 공간을 묘사하고 있지만,
고립되어 있고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 느껴진다.
자코모 발라는 분할주의와 미래주의 시기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 일부를 어머니를 묘사하는 데 바쳤다.
각 캔버스에서 특별하고 강렬한 유대감이 드러나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희생과 고집 덕분에 발라는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발라는 자신의 가족, 아내 엘리사와 두 딸 루체, 엘리카에게도 부드럽고 독특한 시선을 보였는데, 이것이 1910년에 제작된 '아페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앙 패널의 스케치는 50 x 40cm 크기의 패널에 그린 유화이다
발라는 사진에 큰 관심이 있었다. 톤 다운된 색상과 3부작 장면이 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여러 스냅샷처럼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 한 듯하다. 그의 아내 엘리사(Elisa)가 딸 루체(Luce)와 함께 로마 비아 포르포라(Via Porpora)의 집에 있는 모습을 담았다.
이 단체 초상화는 수염을 기르고 "헝클어진" 발라가 예술가 친구들인 조반니 프리니(Giovanni Prini)와 그의 아내 오르텐시아(Ortensia), 그리고 막스 반치(Max Vanzi)에게 둘러싸인 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음악가 푸치니(Puccini)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 사고 싶어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딸 루체(Luce)의 초상화이다.
이 작품은 발라가 미래주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미묘한 페인트 층을 사용하여 비유적 언어를 유지하면서도 빛을 부드럽게 하고 색칠하는 수단을 발견한 일련의 그림 중 하나이다.
Giacomo Manzu 작품감상
오, 작품 제목이 '피에타'였네?
이 작품은 피에타(Pieta)의 색다른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성모님도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모(Madonna)의 무릎에 누워 있지 않고, 대신 성직자의 부축을 받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구상된 이 작품은 십자가 처형(Crucifixion)과 강위(Deposition) 같은 항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토리노의 예술 후원자인 리카르도 괄리노(Riccardo Gualino)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Renato Guttuso의 작품감상
이것은 팔레르모(Palermo)의 다채롭고 활기찬 야외 시장을 표현한 유명한 구투소(Guttuso) 작품인 부치리아(Vucciria)를 위한 준비 스케치 중 하나이다.
알도 레나토 구투소(Aldo Renato Guttuso, 1912~1987)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지며 이탈리아 표현주의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예술은 사회적, 정치적 논평이 특징이며,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일원으로서 엔리코 베를린구에르의 비서실 시절인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두 차례의 의회 상원의원을 지낸 바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에트나에서의 탈출(1938~39)', '십자가형(1941)', '라 부치리아(1974)'가 있다. 구투소는 또한 극장을 위해 디자인했고(1940년 로마의 Histoire du Soldat 세트와 의상 포함) 책의 삽화를 그렸다. 엘리자베스 데이비드의 이탈리아 음식(1954)의 삽화는 그를 영어권의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강렬한 반파시스트였던 그는 "표현주의와 고국의 혹독한 빛을 바탕으로 풍경과 사회적 논평을 그리는 작가로 성장했다."
Giorgio de Chirico 작품감상
마네킹으로 변형된 고전 조각품은 페라라(Ferrara)의 에스테 성(Este Castle)과 산업적 풍경을 결합한 배경에 돋보인다. 1918년경에 제작된 이 그림의 첫 번째 버전은 작가가 여러 번 재현했다.
이 작품에서 기수의 삐죽삐죽한 그림자는 인물의 신체성을 부정하고 동시에 극적이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부여하는데,
이는 키리코가 정의한 "인생의 무의미함의 깊은 의미"를 잘 보여준다.
밝은 황적색 태양과 검은색 태양을 그림자로 연결하고 긴 끈으로 이어서 폐쇄적인 공간에 배치한 방식은 1930년대 초에 키리코가 아폴리네르(Apollinaire)의 '칼리그램(Calligrammes)'을 삽화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고립되고 우뚝 솟은 이 탑은 데 키리코가 가장 자주 반복하는 고독과 암흑의 상징 중 하나이다. 아무 데도 없는 곳에 있는 그 존재의 명백한 쓸모없음은 무한한 질문을 던지고 그 유일한 답은 침묵이다.
2024년에 태어난 딸의 자식, 나에게는 손녀인 '이여름' 아가는 표정이 풍부하다.
아마도 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겠지...
바울성당역이다..
히타이트 부녀는 로마 현대미술관 순례를 무사히 마친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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