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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 금산 보리암

hittite22 2025. 5. 3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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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금산
남해금산의 비경
금산에서 내려다 본 상주 은모래비치 전경

 

남해금산 가시는 길

 

대중교통 이용기준

 


서울남부터미널 → 남해시외버스터미널 
첫차 07:10 막차 18:00 (1시간 ~ 1시간 10분 간격)
소요시간 : 4시간 30분 / 요금 : 23,700원

대전복합터미널 → 남해시외버스터미널
10:00 / 13:30 / 18:30
소요시간 : 2시간 30분 / 요금 15,600원

부산서부터미널 → 남해시외버스터미널
첫차 05:20 막차 19:20 (50분 ~ 30분 간격)
소요시간 : 2시간 30분 / 요금 : 1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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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시외버스터미널(공용터미널) → 금산 보리암
1)농어촌버스 : 상주-미조선 버스 500번 탑승하여 복곡(종점)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8시 출발, 17시 40분 복귀하므로 시간유의하셔야 합니다. 

2)뚜벅이버스 : 탑승 후 복곡1주차장 하차(지도참조)
  터미널 출발  : 8시 50분 / 12시 50분 / 15시 50분  
  복곡1주차장 출발(복귀) : 10시 7분 / 14시 7분 / 17시 7분

  버스요금 : 성인 1000원 / 청소년 & 어린이 500원

농어촌버스 노선도 [500번]
뚜벅이버스 노선도

 

금산의 유래

 

<남해 금산>은 지리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로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금산>이라 불리게 되었냐구요?

 

원효대사보다 더 쎈 놈이 얽히게 된 것이죠.

고려말 이성계가 백두산과 지리산에 들어가 왕이 되게 해 달라고 산신에게 빌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들어주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이곳에 와 빌 때에는 초강수를 씁니다. 산신령에게 약속하기를 만약 왕이 되면 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노라고 한 겁니다. 오~ 이룬...

 

결국 이성게는 왕좌를 차지하게 됩니다. 다 아시다시피..

그런데 왕이 된 이성계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온 나라의 비단을 다 모아도 산을 두를 수 없기에 고민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 모습을 본 이성계를 닮은 꼼수 잘 쓰는 신하 하나가 이르기를 "산의 이름을 '비단 금'자에 '뫼 산'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고치면 영원히 비단에 싸인 산이 되지 않겠느냐"라고 제안합니다. 오호라! 거 참 신묘한 수법이로다! 이렇게 크게 기뻐하며 이성계는 산의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하사했다는 거 아닙니까..

 

남해금산 등산지도

 

두모마을에서 출발하는 금산 등산로 중간쯤에 거북 형상 바위가 있는데, 여기 새겨진 석각이 서복이 남긴 글씨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는 서복의 석상이 서있는데요, 2014년 남해에서 서복을 주제로 한 한·중 학술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을 때 중국 학자들이 가져와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리암은 거의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절이라 과거에는 바닷가에 있는 미조항에서 산길로 꼭대기까지 등산을 해야 했으나 지금은 산자락 반대편에서 도로(보리암로)를 통하여 차량으로 산등성이에 있는 주차장까지 진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해금산을 오르는 방법은

1) 산 아래에서 도보로 오르거나 뚜벅이버스로 복곡1주차장에 하차하여 오르는 방법과 

2) 차량(자가용)으로 제2주차장까지 가서 산행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2주차장에서 산정까지는 25분 거리, 보리암까지는 20분 거리에 불과하니 편하게 다녀오실 수 있습니다. 

 

금산 보리암

 

남해 금산 보리암

 

금산은 영남에서 합천의 가야산, 방장산(지리산)과 자웅을 겨루는 명산입니다.

중국의 남악(南嶽)에 비견되기도 했으며, 바닷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 ‘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신라 고승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려 다녀갔었다는 서불(서복)의 이야기 등 신비스러운 전설이 많은 곳이 <남해금산>입니다. 또한 금산 정상 근처에 위치한 보리암은 전국의 3대 기도도량의 한 군데로 손꼽히고 있는 명승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귀한 '산'입니다. 제가 순천 철강단지에 근무할 당시 신년 일출을 보러 회사직원들과 함께 다녀간 추억이 어려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아주 오랜 교회친구가 상주 은모래비치에서 펜션 '남해 쁠라야'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 녀석 얼굴 보러 갈 때 짬을 내어 <남해금산>과 <보리암>까지 둘러볼 작정입니다.

 

남해금산의 명소(명승지)들

 

 

 

망대
정상석

 

금산 산정(정상)에 있습니다. 해발 704m.

망대에 근접하면 남해금산 정상석을 만날 수 있구요, 

망대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남해 바다의 풍광을 한눈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장엄한 남해의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오르면 금산 38 경과 금산을 에워싼 만경창파(萬頃蒼波)를 한 눈으로 굽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망대에 오를 때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인 '문장암'을 거치게 됩니다. 명필 바위라고도 하는 문장암에는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자연암에 새겨 넣은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이 남아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해석을 하면, "홍문으로 말미암아 금산에 오르다"란 의미입니다.

대관절, 홍문이 무엇이길래?

쌍홍문


홍문은 무지개 형상의 둥근 문을 일컫는 말입니다. 금산에는 두 개의 홍문이 있습니다. 일명 '쌍홍문'.

금산 산장을 왼편으로 돌아들어 늘어선 바위들을 지나면 거대한 암벽에 뚫린 두 개의 구멍, 즉 쌍홍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공원인 금산에는 무려 38 경이 전해 내려옵니다.

38경의 하나인 쌍홍문(15경)은 산 밑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보리암으로 올라갈 때 지나게 되는 일종의 관문과 같은 곳입니다. 암벽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나란히 나 있는데 사진을 보면 느끼겠듯이 두 눈에 구멍이 뚫린 해골바가지처럼 생겼습니다. 우리들 눈에 해골바가지로 보이는 것을 원효대사는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라고 표현했었답니다. 그래서 쌍홍문(雙虹門)이라 불리게 되었다네요.

 

만장대(萬丈臺)

 

쌍홍문 오른쪽에 솟구쳐 올라있는 바위 절벽입니다.

 

대장봉

 

금산 보리암 위에 우뚝 솟은 돌덩어리를 대장봉이라 합니다.

대장을 연상시킬 만큼 웅장하고 기세가 당당하기 그지없는 바위입니다.

2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경우, 금산 38경 중 처음 만나는 것이 3 경인 대장봉과 4 경인 형리암입니다. 보리암 뒤편에 창공을 찌르며 우뚝 솟은 거대한 장군암에 비하여 형리암은 조그마하고 허리를 굽힌 형상이라 마치 장군과 신하처럼 보입니다. 

 

형리암(좌측)

 

보리암 뒤편, 대장암을 향하여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으로 생겨 나온 바위가 '형리(刑吏)암'입니다. 여기서 '형리'란 지방 관아 형방의 아전을 뜻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인사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발기한?)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바위인 듯합니다. 

 

팔선대

 

금강산의 만물상을 닮은 형국인 팔선대는 상사바위 입구 오른쪽에 서 있는 바위군입니다.

8개의 바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마치 여덟 신선이 춤추는 모습이라고 하여 팔선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보리암에서 바라본 상사바위
신록에 파묻힌 상사바위

 

상사바위는 보리암에서 약 5~6백 m 정도의 거리로 서쪽 산기슭에 돌출된 바위입니다.

상사바위라는 이름에서 눈치 차렸겠지만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바위는 꽤 넓고 평평합니다. ㅎㅎㅎ

 

상사바위는 전망이 죽여줍니다.

 

옛날 돌산에 살던 최 씨란 사람이 금산 아래로 흘러들어 수절과붓집에 머슴을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던 최 씨가 어느 날인가부터 몸이 여위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구요? 최씨 마음속에 수절과부가 들어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사병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상사바위 전망대

 

수절과부가 최 씨를 볼 때 필시 얼마 못가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생각다 못한 수절과부는 생명이 먼저라 생각했는지 최씨를 불러 모월 모일 보름달이 뜨는 밤을 기해 산 정상에 있는 저 바위에서 만나자고 말합니다. 그날 밤 저 바위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바위만 알고 있겠죠. 암튼, 그 이후 최 씨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부부가 되었다는 설과 떠났다는 설이 함께 전해오고 있답니다.

 

향로봉

 

상사바위에서 조망한 보리암 원경
좌측 상단에 대장석과 향리암이 보입니다.
부소암(扶蘇庵)

 

부소암(扶蘇庵) 뒤편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역시 부소암(扶蘇巖)입니다.

한자어를 보면 구분이 되죠?

하나는 암자이고, 하나는 바위입니다.

부소암 (扶蘇巖)

 

두모계곡 등산로를 따라 금산에 오를 때 만나게 됩니다.

사람의 뇌를 닮은 커다란 바위입니다.

서복(or 서불이라함)한테 불로초 찾아오라고 명한 진시황의 큰아들 이름이 부소(扶蘇)인데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시황이 죽고 막내아들 호해가 황제를 차지하자 부소는 쫓겨나게 됩니다. 부소는 쫓겨나 살 곳을 찾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 찾으러 간 서복이었고 그의 행적을 뒤따라 이곳에 와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뇌를 닮은 저 바위가 '부소'란 이름을 가지고 되었다고 하네요.

 

금산 보리암 전경
보리암의 풍경들
해수관음상

 

1971년에 세워진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합니다.

보리암에서 기가 가장 쎈 곳이라 하고, 양양 낙산사, 강화 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3대 해수 관음기도 도량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동해, 서해, 남해의 관음도량을 대표합니다. 금산 보리암 해수관음상에서 정성 들여 기도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다녀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삼층석탑이 더 가치 있지만 지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곳은 바로 해수 관음상입니다.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

 

보리암 경내에는 남해를 내려다보는 해수 관음상과 작은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는데요, 삼층석탑이 있는 자리는 금산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과 남해에서 불어오는 기운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이곳에 나침반을 갖다 놓으면 바늘이 정북 쪽을 가리키지 못하고 계속 움직인다고 하네요. 

 

삼층석탑

 

보리암의 해수관음상 앞에는 높이 2.3m, 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683(신문왕 3)년 원효의 금산개산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수로왕비인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파사석을 이용하여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신라석탑이라 여겨왔지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감정되고 있으며, 1974년 2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탑 상륜부에는 보주(寶珠)가 놓여 있습니다.

 

단군성전
화엄봉
보리암
남해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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