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나라-유럽

Edgar Degas(에드가 드가) / 2 - 파스텔화의 장인

hittite22 2025. 4. 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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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Portrait of Mlle. Hortense Valpinçon, 1871 [Minneapolis Institute of Arts, Minneapolis]
Count Lepic and His Daughters, c.1871, oil on canvas, 65 x 81cm

 

1871년경에 완성된 Edgar Degas의 이 작품은 Ludovic-Napoléon Lepic(레픽 자작)과 그의 어린 딸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Degas는 1875년 작품 <Place de la Concorde>에서 Ludovic Lepic과 두 딸들을 그렸습니다.

2008년 2월 10일, 그림은 Foundation E.G.(Bührle, 취리히)에서 도난당했으며 경미한 손상을 입은 그림은 2012년 4월에 복구되었습니다.

 

Jeantaud, Linet and Laine, 1871, oil on canavs, 38 x 46cm [Musée d'Orsay]
Woman with the Oriental Vase, 1872, oil on canvas, 65 x 54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Madame Rene De Gas, 1872~1873, oil on canvas
Portrait of Mme. Rene De Gas, 1872, oil on canvas [New Orleans Museum of Art (US)]
뉴올리온즈의 면화 교역소, 1873

 

1870년에 발생하였던 프랑스-독일 간의 전쟁이 끝났을 때 드가는 형과 함께 친척이 거주하는 미국 뉴올리언스로 잠시 건너갑니다. 이때 그린 <뉴올리언스의 면화 교역소>는 <사무실 안의 초상화>라고 알려진 작품이기도 한데 그의 생전 유일하게 미술관으로 팔려나갔던 작품입니다. 친척집안의 초상화인 <벨렐리 가족>처럼 이 작품도 평범하고 전형적인 포즈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귀국한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형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면서 드가는 집과 유산으로 받은 예술품들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드가는 생계를 위하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드가는 살롱의 그림에 환멸을 느껴 인상파화가들과 어울립니다. 그러나 드가의 그림은 인상파화가의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야외에서 데생을 하고 채색은 실내에서 하였습니다. 풍경화 보다 모델, 특히 발레리나를 즐겨 그렸습니다.

 

Eugene Manet, 1874, Style : Impressionism, 65 x 86 cm [Private Collection]
Melancholy, 1874, Style : Impressionism, [Phi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US]
Portrait of Elena Carafa, c.1875,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London, United Kingdom)]
Place de la Concorde, 1875, Oil on Canvas, 78.4 x 117.5 cm [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Russia]

 

드가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작품 <콩코드 광장>은 레픽 자작과 그의 딸들을 그린 것으로 역시 사진을 찍은 것을 보며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 속에 사진의 특성이 잘 담겨 있습니다. 맨 왼쪽에 있는 남자는 몸이 반 잘려 있는 구도를 선보였는데 드가는 이런 구도를 화폭으로 옮김으로써 좀 더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남자는 행인의 눈에 들어온 대상이기도 하고 그런 눈으로 다른 대상을 보는 산책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구경꾼인 산책자는 드가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The Absinthe Drinker(L'Absinthe), 1876, oil on canvas, 92 x 68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에드가 드가(Edgar Degas·1834 ~1917)는 1876년, 파리에서 카페처럼 꾸며 놓은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그림인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을 발표했습니다. 여성은 여배우이자 에드가 드가의 모델 엘렌 앙드레(Ellen Andree)이고, 남자는 자유분방한 화가 마르셀랭 데부탱(Marcellin Desboutin)입니다. 드가는 이 두 사람에게 “알코올중독자인 것처럼 연출해 달라”라고 요청해서 그림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근대적인 삶을 보여주는 명작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대낮부터 카페에 앉아 독주(毒酒)인 압생트를 마셔대는 남녀를 그린,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이 그림을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드가는 대단히 당황했는데, 원래 부유했던 그의 집안이 이즈음부터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켜야 했던 그는 다급히 그림을 런던의 뒤랑-뤼엘 갤러리에 보냅니다.

뒤랑-뤼엘은 파리의 유명한 화상(畵商)이었습니다. 그는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지금도 런던의 최고급 쇼핑가로 성황인 본드가(街)에 갤러리를 열고, 프랑스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은 바로 거기서 헨리 힐에게 팔려나갔습니다.

헨리 힐은 브라이턴시(市)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재단사였습니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품목을 군복으로 특화하여 사업이 번창하자 본드가에 진출해서 매장을 열고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미 1874년 이웃인 뒤랑-뤼엘 갤러리에서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을 구입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헨리 힐이 발레리나에게 끌렸던 이유는 비쩍 마른 몸으로 발레라는 고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여인들에 대한 동정심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에 등장하는 남녀 또한 힐에게는 술에 심신을 맡길 수밖에 없는 가련한 도시 노동자들로 비쳤을 것입니다.

이 그림은 1893년, 힐이 죽고 그의 소장품이 경매에 부쳐지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습니다. 영국의 평론가들은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이 추악하고 천박한 한 쌍’에 대해 악평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전쟁 통에도 갑부가 되고, 또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를 싼 술로 시작하는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Mademoiselle Malot, c. 1877, oil on canvas, 81.1 x 65.1 cm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Diego Martelli, 1879, oil on canvas, 110.4 × 99.8 cm [The MET]
At the Stock Exchange, c.1878, oil on canvs, 100 x 82cm [Musée d'Orsay, Paris]
Friends at the Theatre, Ludovic Halevy and Albert Cave, 1879, 79 x 55 cm [Musée d'Orsay, Paris]
Miss La La at the Cirque Fernando, 1879 [The National Gallery, London]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는 한 여성이 서커스 공연 중인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지만 구도는 사진처럼 잡혀있습니다. 시선이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있으며, 그 시선 끝에는 줄을 잡고 있는 주인공 라라의 순간적인 동작이 포착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그가 어울렸던 여타 인상파 화가들과 차별적인 특징을 가진 화가 드가의 화풍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Mary Cassatt at the Louvre, c.1880, pastel [Private Collection]
At the Milliner's (Chez la modiste), c.1882, Pastel on paper on board, 70.2 x 70.5 cm [MoMA]

 

모자 가게에서 친밀한 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깃털로 장식된 갈색 모자를 쓴 여성 손님이 턱 주위의 넥타이를 만지고 있습니다. 그녀 뒤에서 가게 직원은 츠가로 두 가지 대안을 더 내밀고 있는데, 하나는 노란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생생한 주홍색 테두리가 있습니다. 드가는 파스텔을 사용하여 깃털, 리본, 벨벳, 레이스를 포함하여 가게의 원단과 장신구의 질감을 표현해 냈습니다.

 

이 풍경은 친밀하지만 덧없는 만남의 느낌도 포착합니다. 드가는 손님을 부드럽고 섬세한 디테일로 묘사한 반면, 나머지 실내는 단지 암시적으로 표현했고 점원의 몸과 노란색 의자는 가장자리로 잘려 있습니다.

그의 동료 인상파(드가는 인상파 용어를 싫어했고 "사실주의"라는 단어를 선호했습니다)와 마찬가지로 드가는 현대 도시 생활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으며, 일상적인 경험을 표현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의 모자 그림도 이러한 과정의 하나로 제작된 것입니다. 당시 파리에는 모자 가게가 약 1,000개 있었고, 모자는 모든 계층의 여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액세서리였습니다. (작품 속 여성 손님은 드가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메리 카사트입니다.) 

 

At the Milliner's, 1883, pastel, 76 x 85 cm [Thyssen-Bornemisza Museum, Madrid, Spain]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에게 왜 그렇게 발레리나들을 자주 그리냐고 질문하였을 때, 그는

“왜냐하면 발레리나들만이 고대 그리스인의 움직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드가는 인체의 다양한 자세를 그리고 싶어 했고, 야외에 말들이 있는 공간을 즐겨 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스텔처럼 빨리 그릴 수 있으면서도 풍부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자주 선택하였습니다. 유화는 주로 캔버스 천 위에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파스텔은 종이 위에 빠르게 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드가의 작품 중에는 파스텔화가 많습니다. 하지만 파스텔 재료는 가루가 날리고 표면에 달라붙지 않는 성질 때문에 보존이 어려운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유화는 별다른 보호막 없이 미술관의 액자에 걸려 있지만, 파스텔로 그린 작품들은 유리판을 댄 액자에 걸려 있고 파스텔화가 있는 방은 조명도 더 어둡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오~ 이런 문제가 있었군요.

하지만 드가의 파스텔 선호이유를 생각하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Mary Cassatt Seated, Holding Cards, c.1880~1884, oil on canvas

 

드가는 주역이 아닌 군무 무용수들의 연습장면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가 그려낸 그림 속의 발레리나들은 마치 삶의 현장에 있는 여공이나 카페 여급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즉, 하류계층 여성이 일에 시달리는 고단한 모습을 날카로운 묘사력으로 실감나게 담아낸 것이 드가의 발레리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에 반영되었던 날카롭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인하여 드가는 동료 화가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미국 출신 여류화가 메리 커셋은 드가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 카드를 든 채 의자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 - 에 대해 “나를 그렇게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그려놓은 사실을 견딜 수 없다. 내 가족이 그 초상을 보지 않길 바란다”라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Conversation at the Racetrack, 1882~1885, Pastel on paper, 69.5 x 70 cm [Milwaukee Art Museum]
Women Ironing, c.1884, oil on canvas, 76 x 81.4 cm [Musée d'Orsay]

 

드가는 가족과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모자 작업장이나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 세탁부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도미에(Daumier)뿐이었는데, 세탁부는 1869년에서 1895년 사이에 드가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흰색 린넨에 선명하게 강조된 채 빛을 배경으로 한 단일 인물을 그렸습니다. 그런 다음 1884년에서 1886년경에는 주제에 더 집중하여 세탁소에 있는 두 여성을 묘사했습니다.

 

두 여성을 묘사한 시리즈에는 동일한 구성의 네 가지 버전이 있는데, 한 인물은 하품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인물은 다리미에 무겁게 기대고 있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은 세 번째 버전에 해당합니다.

 

드가는 1869년부터 1887년 사이에 총 14점의 다림질하는 여인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근대화되어가던 시대에 고단한 삶을 이겨내야 했던 여공들이었습니다. 신분상승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든 댄스 교습을 받아내야 했던 발레리나의 현실을 담은 드가의 작품들과 비슷한 시각으로 조망한 작품입니다. 위의 그림 중 왼편의 여성은 와인병을 손에 쥔 채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하는 모습이고 오른편에 있는 여성은 온몸에 힘을 주면서 다리미를 내리누르는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왼쪽은 휴식이며 오른쪽은 노동으로 상징됩니다. 이는 19세기 프랑스인의 삶을 지배하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의 동작은 피카소에 의해 재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Three Women at the Races, c.1885, pastel on paper [Denver Art Museum (DAM)]
The Millinery Shop, 1885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Millinery Shop은 직장(모자 공장)에서 모자를 자르는 Miller를 묘사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그림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화가에 의해 관찰되고 있음을 모르는 듯하며, 화려한 리본과 꽃 화환으로 장식된 모자는 작업대 위에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는데 마치 세련된 현대 정물화의 외관처럼 보여집니다.

 

At the Cafe des Ambassadeurs, 1885, Style : Impressionism, pastel [Private Collection]
At the Cafe des Ambassadeurs, 1885, pastel [Musée d'Orsay, Paris, France]

 

<카페 데 앰배서더에서>는 활기차지만 다소 신비로운 카페 모습을 그린 파스텔 작품입니다. 파스텔을 사용하면 부드럽고 질감 있는 외관이 만들어지는데 이 경우 정확한 세부 사항보다는 빛과 색상의 효과에 중점을 두어 제작합니다.

전경의 인물은 공연장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중앙에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성은 공연자인것으로 여겨집니다. 풍부한 색상이 연상적으로 칠해져있고, 그림자와 빛의 상호작용이 깊이와 분위기를 더합니다. 파스텔은 생생한 톤과 차분한 톤을 모두 구사할 수 있어 인상주의 효과를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듯합니다.

 

Six Friends at Dieppe, 1885, Pastel on wove paper laid down on canvas, 114.9 × 71.1 cm [RISD Museum]
Conversation, 1895, pastel on paper, 65 × 50 cm
La Coiffure (Combing the Hair) by Edgar Degas, c. 1896.

 

마티스가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었던 <붉은 방>과 같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머리빗기>는 이 머리카락이, 추상적인 느낌까지 주는 감각적인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드가가 비범한 심점과 구도로 화면에 구축한 아름다움은, 산문적인 리얼리티에서 드가가 끌어낼 수 있는 시적인 요소였습니다. 이 작품과 같은 그의 1890년대 이후의 회화는, 그 선과 색채가 사실주의적이라기보다는 표현주의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이런 회화는 특히 고갱 등 후배 세대 화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김진희 미술평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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