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서)
작품감상
쿠프카가 지나가니 얀 플레이슬러가 나타났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 그러면 이 사람도 체코인이겠군."
"네, 맞아요."
"그런데 이 작가의 그림은 낯설지가 않아."
"아마 그럴껄요. 1905년 프라하에서 열린 에드바르트 뭉크 전시회 포스터 디자인에 참여한 이력이 있구요, 1906년에는 파리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폴 고갱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이력이 있으니까요."
"아, 역시. 많이 보아온 화가들과 교류가 있었으니 그 흔적이 그림에 남은 듯해."

"이 그림도, 전시중인 다른 그림도 고갱의 평면주의 향기가 나는 느낌이야."
히타이트는 체코 국립미술관에서 인상주의 시대의 파리 화가들 기법이 어떻게 유럽 타 지역으로 전파되어 갔는지 흔적을 보는 것 같아서 살짝 흥분되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니 기분이 좋은걸.."


"그런데 고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다른 내음도 나는 것 같아. 어떻게 화가가 단 한 사람의 영향만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했겠어. 동시대의 여러 화가들로부터 조금씩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다가 종국에 가서 자신만의 기법을 확립하는 길을 걷는 거지. 물론 모든 화가가 그렇게 바람직한 과정을 거친다는 건 아니고, 고흐나 고갱처럼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얘기야. 이건.."
"그렇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긴 힘들죠."
"아마, 내가 너에게 그런 강요를 하였다면 너는 미술을 완전히 때려치웠을 수도 있을거야."
"ㅋㅋ, 잘 아시네요."
히타이트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다가, 화가가 되겠다고 했다가, 결국 디자인을 전공했던 딸의 청소년기 방황을 떠올렸다. 만약 딸이 ADHD 증상으로 치료를 받는 일이 없었다면, 히타이트는 딸에게 고난 속에서도 굽히지 아니하고 미술에 정진하여 위대한 화가 반열에 오른 고흐를 본받으라고 엄청 닦달했을 것이다.


히타이트는 이들이 뭘 하는 작당인지 관련 태그를 읽어 보았다. 알고 보니 체코 조각가 조셉 마라트카가 작품에 붙인 제목은 <블타바 강의 아이스맨>이다. 블타바강에 얼려진 얼음을 직사각형 판때기처럼 깨어서 석빙고(아마도)로 나르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마라트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체코 예술가들이 인터넷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코도 유럽의 일원이니 문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꽤 활발한 존재감을 보이리라 예상했는데.. 인터넷 포털을 뒤졌으나 체코 아티스트 관련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유럽도 다 같은 유럽이 아닌 모양인가? 신기한 경험이라 여겨졌다.

"이 작품은 조셉 마라트카의 조각이 아니구나. 비슷한 컨셉이라 동일 작가의 것인 줄 알았는데."
"..."
딸은 이런 스타일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실, 그의 딸 한나는 조각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자"
히타이트는 과감하게 Franta Úprka(프란타 우프르카)를 pass 하기로 결심한다. 고향 슬로바츠코와 연관된 민속 작품을 주로 다루었던 조각가 우프르카는 그렇게 히타이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포즈는 팜므파탈 여성을 묘사하는 작품에 자주 등장하지.."
히타이트가 다시 아는 체한다.
"팜므파탈이요?"
"그래,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 뭐 이런 뜻을 가진 말이야"
"저 포즈에서 그런 뉘앙스가 풍긴단 말이죠, 저건 에드바르 뭉크가 작품에서 즐겨 쓰던 포즈인데."
히타이트가 맞장구쳤다.
"맞아. 팜므파탈의 묘사로 인생을 바친 화가라고 말하면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확실히 뭉크의 작품에 팜므파탈적 요소가 많이 등장하긴 해... 숙명적인 여자, 치명적인 여자.. 프랑스어인데 어감조차 강열한 단어. 팜므파탈!"
그런데 팜므파탈이 에드바르 뭉크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막스밀리안 슈바빈스키(Maxmilian Švabinský)도 남자를 유혹하는 팜므파탈 유형을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니까.

"그럼, 이 포즈를 취한 여자는 뭘 나타내는 것이죠?"
윽, 히타이트가 딸의 공격에 무너져버린다.
"글쎄다. 역시 막스밀리안 슈바빈스키(Maxmilian Švabinský)의 작품인데 제목을 봐도 뭘 표현하고자 했는지 모르겠네."
아는 체하다가 한 방 먹은 꼴이 되었다.

박쥐를 조각한 화병이다.
화병이라고? 진짜 꽃을 꽂는 화병으로 사용하였을까? 어울리지 않는 컨셉의 화병 아닌가.
히타이트는 지나가며 잽싸게 생각을 정리했다. 뭐, 그래봤자 화병인데..

"오.. 이 그림을 보니 에드바르 뭉크의 달빛그림이 떠오르네."
"아, 뭉크의 달빛이요. 그러고 보니 달빛이 레이저처럼 쏟아져 내리는 뭉크의 그림은 저런 경치를 보고 창작한 모양이네요. 작품이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에요."
역시 미술에 대한 센스가 있는 딸이라 척 알아차린다.

"안토닌 후데체크라.. 이 작가는 풍경화를 즐겨 그린 것으로 보이네."
"그렇죠, 물멍 할 때 사용하면 좋겠어요."
"물멍? 그래, 그런 용도에 적합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히타이트는 내심으로
'그럼, 갤러리 전시실에서 물멍에 빠지기라도 한다는 건가?'라는 물음이 움터 나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갤러리에 가면 간혹 가다가 특정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감상 삼매경에 빠진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바다그림을 보고 있다면 영락없이 물멍 때리는 형국이 되겠지.

딸은 알포소 무하의 작품을 좋아했다. 이곳에서도 무하의 작품을 발견하고는 바로 달려가서 인증샷을 요청한다.
반면 히타이트는 무하의 작품 스타일에 큰 감흥을 못 느끼는 편이었다.
알폰소 무하가 누구인가?
과거 한국의 대본소 만화방에서 여자애들이 즐겨 보던 로맨스 만화 주인공의 전범을 만들어낸 작가가 아닌가. 비록 그림은 예쁘지만 식상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유년기 대본소 만화방의 추억이 히타이트의 뇌리에 소환되었다.

"알폰소 무하구나.."
"이쁘죠?"
"그래, 하지만 나는 비투스 대성당에서 본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훨씬 더 좋더라."
히타이트도 무하의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Josephine Crane-Bradley(조세핀 크레인-브래들리, 1886-1952)의 초상화>는 Alfons Mucha(1860~1939)가 미국에 머무를 때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Charles R. Crane(찰스 R. 크레인)의 의뢰로 그린 작품이다. 무하는 브래들리의 의뢰를 받고 그의 딸이었던 조세핀을 슬라브주의의 의인화로 묘사한 초상화를 제작했다. 무하는 슬라브 민족성을 강조하였던 화가인 때문인지 체코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체코는 슬라브족의 나라였구나..

"안토닌 슬라비체크의 버치 무드라.. 버치무드가 뭐지?"
"글쎄요, 버치는 자작나무인데.."
"자작나무 숲을 표현한 말일까.. 그림은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럴지도 모르죠. 아, 안토닌 슬라비체크는 체코의 인상주의 화가였대요."
"그래? 인상파 화가를 또 한 사람 알게 됐군. 땡큐!"


전원 모습을 그린 풍경화나 도시의 번창해 가는 모습을 담은 풍경화도 보였다.
풍경화는 언제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장르였다.


보후밀 쿠비슈타(1884~1918)는 체코의 화가이자 미술 평론가로, 체코 현대 회화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처음에 그는 인상파 계열의 빈센트 반 고흐와 폴 세잔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히타이트에게 익숙한 용어 '인상파'가 나오니 왠지 반가웠다.
'으음.. 대체적으로 체코화가들은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지속적인 영감을 제공받은 모양이네.'
히타이트의 생각이 맞았던 것일까?
쿠비슈타는 동시대의 체코 예술가들처럼 1905년 프라하에서 열린 에드바르트 뭉크 전시회에서 또 한번 영양분을 흡수했다. 그리고 그는 세잔의 작품에서 배운 시각적 아이디어를 개발했으며 후기에 접어들어서는 표현주의와 입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아, 위 작품도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군.'
색채이론을 연구하던 쿠비슈타는 종국에 가서 엘 그레코, 외젠 들라크루아,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등 화가들이 성취해 낸 조화와 구성 원리를 분석했다고 하니 유럽에 거주한 이점을 잘 활용한 모양이다. 고전 화가로부터 당시의 최첨단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회화작법을 받아들인 셈이다.
히타이트는 현장에서 실물작품을 감상하면서 미술사를 검색하니 작품제작의 분위기와 시대적 환경이 직수입되듯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동행한 딸과 합작으로 수입업자 노릇을 한 것이지만.


체코화가들의 작품이 밀림 속을 헤쳐나갈 때 앞길을 가로막는 수풀처럼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그 수풀을 헤쳐 나오느라 딸은 힘들었나 보다. 전시실 내 어느 공간에 이르러서 쉼표를 찍듯 핸펀신공을 발휘한다. 그러는 동안 히타이트는 딸의 뒤편에 모습을 드러내는 분홍기단 위의 조각상에 주목한다.

"오, 조각상의 블랙과 엷은 핑크색 기단이 잘 어울리네.."
히타이트는 변죽을 울린다.
"술 마시는 여자를 조각한 건가요?"
딸이 물어서 제목에 집중하던 히타이트가 대꾸한다.
"압생트를 마시는 중이야. 보헤미안인가? 아니면 화류계 여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히타이트의 말마따나 실제로 20세기초 파리의 보헤미안들 사이에 압생트가 인기 있었다고 한다.
20세기초라면 압생트광이었던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직후쯤 되겠군..

Otto Gutfreund(오토 구트프로인트, 1889~1927)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조각가였다. 프라하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그는 1910년대에 입체파 스타일의 조각작품으로 유명해졌다.
'그럼 파리 유학하는 동안에 피카소의 물이 들었던 모양이군.'
히타이트는 괜히 피카소에 시비를 걸어본다. 그런데 오토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현실적인 스타일로 화풍을 변화시켰으며 후기에는 건축 장식뿐만 아니라 작은 다색 세라믹 인물도 많이 조각했다고 한다. 그럼 저 세라믹 조각상은 후기작품에 해당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오토의 아내인데 한국의 개그우먼을 닮았어."
"개그우먼 누구요?"
"응, 있어. 조혜련이라고.."
"ㅋㅋ.. 그렇네요. 좀 닮은 거 같아요."
한나는 히타이트가 작품을 보며 소환하는 인물들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히타이트 씨가 눈썰미가 좋은가?

"그럼 오토 씨는 누구 닮았어요?"
딸이 장난기가 발동했나. 히타이트가 정색을 하며 대꾸한다.
"응, 있는데 누군지 이름이 안 떠오르네."
"에이, 엉터리 같아요.."
1910년대에 입체파 조각으로 명성을 얻었던 오토 구트프로인트의 작풍은 1919년에 이르러 입체주의와 작별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그거 잘된 일이네.' 히타이트가 혼잣말로 중얼댄다. 한편 구트프로인트의 조각은 자신의 "시민주의" 시대의 전환점과 시작을 나타내는 자화상을 모델로 삼았다. 즉, 시민주의적인 자화상에서 Gutfreund는 세련된 낮은 모자를 쓴 남자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는 자기 아이러니의 수단으로 과장법을 사용했으며 캐리커처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신의 얼굴 특징을 강조했다.

'이 조각도 뭔가 느낌이 오네'
조각상에 대한 감상은 히타이트 홀로 하다시피 했다. 딸의 성향을 존중해 주는 차원이다.
20세기 전반의 체코 조각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인 그는 탁월한 기법과 극적인 전달 능력으로 역사적 주제를 현대 청중에게 잘 전달하였던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아, 물론 체코 국내에서겠지. 한국에서는 아무도 모르는데...

얀 라우다. 체코의 조각가이다.
히타이트는 체코 판 wikipedia에서 그에 관한 자료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신그룹의 공동 창립자로 1921년부터 Otto Gutfreund와 스튜디오를 공유했다고 한다. Otto Gurfreund, 앞에서 만났던 아티스트였다. '이렇게 체코 아티스트가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는군.' 히타이트는 체코 미술사를 공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미술관이란 그런 역할도 하는 것일까?

블라스타 보스트레발로바-피셰로바의 <1922년 여름>이라는 작품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보는 듯한 그림.
피셰로바는 모라비아의 화가이자 페미니스트 지식인이자 제1공화국의 사회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모라비아란 체코 동쪽에 위치해 있는 지역을 말한다. 즉 피셰로바도 체코 아티스트이다.

계속해서 체코 화가들의 작품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히타이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살짝 고민스러워졌다. 그러다가 이내 입장 정리를 했다.
'그래, 평소 접근하기 어려웠고 관심 기울이기 힘들었던 미술세계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는 거야. 일종의 프론티어 확장인 셈이지. 존 F 케네디가 설파한 것처럼 뉴프론티어로 여행하는 거!'
히타이트는 스스로 정의 내린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돌이켜 보면 머나먼 동아시아 끝자락 코레아의 선조들이 남긴 금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그래, 'Trade Fair Palace를 선택한 건 아주 잘한 일이다'라고 우겨보자.'
남은 전시실 안에서 어떤 작품이 히타이트 부녀를 기다리고 있을는지 모른다...
과연 히타이트의 '우기기'는 성공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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