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서)
작품감상
둘째의 감상 철학은 히타이트와 조금 달랐다.
즐기기만 할 뿐만 아니라 때론 온몸으로 느껴보려고 한다.
히타이트는 조명이 무슨 미술이냐고 입을 내밀지만 그의 딸은 '조명도 예술이다'라며 직수입하여 소화해버리는 것이었다.
세대차이일까? 아님, 나이를 먹는 연식의 폐해일까..
그런데 색을 뽑아낸 기술은 참 깔끔하고 세련되어보였다. 색을 뽑아내는 것은 일종의 '기술'에 속하는 영역이다. 독일인의 기술력이 미술에 투영된 것 같았다.
그때, 히타이트를 사로잡는 폰이 등장한다.
텔레폰 부스를 칠한 1966년도에 뽑아낸 색감인데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그 텔레폰 부스 앞으로 등장한 21세기의 동아시아 소녀가 새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작가 리처드 린드너(Richard Lindner)는 기계와 같은 요소에 인물을 융합시킴으로써 기괴하면서도 에로틱한 초상화를 창작하기로 이름난 독일-미국계 아티스트였다. 대담한 윤곽선과 그래디언트 색상의 뻗기로 묘사된 린드너(Lindner)의 인물은 프랑스 화가 Fernand Léger(페르낭 레제)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작가 이름을 보니 여성이다. 그녀는 이렇게 커다란 작품을, 저 길고 긴 선을 어떻게 그어댔을까.
평론가는 말한다. 그로스의 그림은 색채의 해체를 특징으로 한다고. 아, 저 그림이 색채를 해체하였다는 건가? 히타이트는 순간, 괜히 그림해설을 찾았다고 후회했다. 머리만 복잡해지니. 캔버스에서 반복적으로 분리되어 공간으로 확장되거나 조각적인 부피를 띠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더욱 머리가 아파온다. 그냥 카타리나 그로스에게 색상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더 나을 듯싶다.
이번 뮤지엄 순례에서 느끼게 된 일이지만, 독일인은 색깔 하나는 끝내주게 뽑아내는 듯하다.
히타이트의 눈에는 벽면이 마치 근사한 작품처럼 보였다.
'맨날 내려다보던 걸 올려다보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이런 카피라이트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다양하지만 무미건조하거나 흥미 없는 등걸을 쳐다보는 느낌에 매몰되었던 히타이트에게 한줄기 서광이 비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의자를 벽 위로 배치한 저 구석에서 비로소 그는 현대미술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을 움켜쥘 수 있었다. 쾰른 루드비히 뮤지엄에서는 팝아트 계열의 작품을 만나면서 기분 전환이 되더니...
이 작품의 제목은 <Hors d'Oeuvre d'Art로서의 플럭서스 아티스트의 초상화>이다.
여기서 오르뒤브르(hors d' oeuvre)는 식전에 나오는 모든 요리의 총칭을 말한다. hors는 앞이라는 뜻이고 oeuvre는 작업, 식사를 의미한다.
그리고 Fluxus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생성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 용어다. 플럭서스는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상, 초단기 현대 미술 스터디 끝!
처음엔 벽지 디자인인 줄 알았던 것.
히타이트는 이런 대형 설치작품을 볼 때, 칼 세이건 식으로 표현해서 '재료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이치로, 대형 추상화 작품들을 볼 땐 '물감의 낭비'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고인이 된 추상황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엉아가 들었다면 기겁을 할 얘기겠지만..
당신의 인생에는 반복되어야 할 순환이 있습니다.
작가 Tilo Schulz(틸로 슐츠)가 이 거대한 공간에 갖다 붙인 제목이었다.
히타이트는 속으로 말했다.
"아멘"
이 작품, 허접한 것이라 폄훼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이름이 꽤 알려진 화가 Gerhard Richter의 <Grau(2003)>였다.
히타이트는 미술관을 구경하느라 뉘른베르크 왼쪽으로 비껴간 루트를 다시 정 중앙으로 교정하기로 한다. 사실 미술관 순례만 하는 여행은 아니기에..ㅋㅋ
어떤 사람들은 인근의 도시, 뮌헨보다 뉘른베르크를 더 좋아한다. 사실 뮌헨은 거대도시라서 뉘른베르크와 비교 대상으로 언급하기에도 미안한 감이 있다. 만약 오래된 유럽풍의 도시를 만끽하고 싶다면 뉘른베르크나 드레스덴 같은 중소규모의 도시가 더 적합할 것이다. 독일은 지방분산적인 나라라서 각 도시마다 멋진 정경이 소박하게 스며있으니까..
뉘른베르크 구시가지에서 길을 걷다가 St. Clare Church(성 클레어 교회) 입구에서 히타이트는 어딘가 낯익어 보이는 조각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 얘는 슈테델 미술관에서 만났던 그 녀석인데..'
둘째는 녀석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긴, 그때 녀석이 미술관 관람실 한가운데 앉아서 쉬고 있었고 히타이트 혼자 이리저리 전시실을 돌아다녔으니,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지. 거기서 딸 뒤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던 청동 소년이 얘와 꼭 닮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네.. 그 사이에 많이 컸구나..'
히타이트는 하릴없이 녀석의 측면과 정면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히타이트식 애정 표현이었다.
사실.. 알고 보니..(귀국 후 인터넷 검색) 이 청동상은 슈테델에서 만난 청동 소년이 아니라 성서의 유명 인물 욥(Hiob, Ijob or Job)을 조각한 것이었다. 조각가도 Wilhelm Lehmbruck(빌헬름 렘브루크)가 아니라 Gerhard Marcks였다.
'음, 그랬었군..'
욥과의 짧은 조우를 마지막으로 히타이트는 뉘른베르크에서의 미술 순례 여정을 마감하기로 했다.
그는 눈앞으로는 뉘른베르크 구시가지의 모습이 싱그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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