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Wyeth의 예술 인생에는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아내 베치와 아내의 친구였던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의 대체자로서 시리(Siri) 그리고 독일계 이민자 헬가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와이어스는 1948년에 발표한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로 대대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크리스티나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내에게 조차 숨긴 채 한 여성을 모델로 삼아 15년간 은밀하게 누드화와 초상화로 구성된 <'헬가'시리즈(1970~85)>를 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논란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볼 때 앤드류 와이어스의 작품은 풍경화와 초상화가 많습니다.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종국에 가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주로 시골 풍경을 담은 추상과 사실주의 작품을 지역주의적 스타일로 묘사해 냈습니다.
그의 아버지 N.C. Wyeth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였으며 Andrew에게 빛과 그림자의 미묘함을 가르쳤습니다. 앤드류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시골의 고요함, 고립감, 침울한 분위기를 그려내기 때문에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문명의 利器(이를 테면 자동차..)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Wyeth가 좋아했던 주제는 고향 펜실베니아의 Chadds Ford와 메인 주 Cushing의 풍경 및 소박한 주변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재 뉴욕시 근대 미술관 컬렉션으로 소장되어 있는 그의 대표작이자 20 세기 미국 미술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인 <크리스티나의 세계> 역시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었습니다. Olson House는 <Christina's World>가 제작된 곳이자 그 배경으로 인정받아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최초의 건물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의 후반기 작품활동의 핵심을 구성하는 <Helga 시리즈>가 대중에게 오픈되었을 때,
한 여성을 모델로 지속적으로 그려진 누드화로 인하여 미국전역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Helga 그림은 1987년 살아있는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의 첫 번째 전시인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전시되었습니다.
Wyeth는 많은 공식 영예를 받았습니다.
1963년 그는 타임지의 표지 기사가 되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시각 예술가 최초로 대통령 자유 메달 후보에 올랐습니다.
1990년 Wyeth는 예술가로서는 최초로 의회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누구인가?
Andrew Wyeth는 1917년 펜실베니아 델라웨어 카운티의 Chadds Ford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Wilmington에서 온 Carolyn Brenneman Wyeth(née Bockius)이고, 독일 이민자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미국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Newell Convers (N.C.) Wyeth였습니다. N.C. Wyeth는 청년 시절에 채드 포드(Chadds Ford)에서 삽화가인 Howard Pyle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매사추세츠로부터 이사해 왔으며 1908년 이곳에서 그는 Carolyn과 결혼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세 딸과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앤드류가 막내였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장녀인 헨리에타(Henritte Wyeth)는 20세기의 위대한 여성 화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둘째 딸인 캐롤린 와이어스(Carolyn Wyeth)도 예술가였고, 막내딸인 앤(Ann)은 재능 있는 음악가였습니다. Andrew Wyeth의 형인 Nathaniel은 기계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였습니다.
Andrew Wyeth의 아버지는 재정적인 이유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고 가족은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앤드류는 어렸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가정 과외를 시켰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연약하고 섬세한 아들과 대조되는 덩치 크고 에너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Andrew Wyeth가 십대가 되기 전에 그의 아버지는 Robert Louis Stevenson의 유명한 책인 보물섬(Treasure Island) 삽화를 그렸습니다. 이 성공에 이어 그는 James Fenimore Cooper의 Last of the Mohicans와 Daniel Defoe의 Robinson Crusoe와 같은 다른 유명한 소설에 삽화를 그렸습니다. Andrew Wyeth는 시골 풍경에 대한 사랑, 로맨스 감각에 영감을 주었던 아버지에게 예술을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지도 아래 인물 연구와 수채화 기법을 빠르게 익혔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그에게 순수미술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을 때 학장이 앤드류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은 어디서 다니셨습니까?"
"나는 학교란 곳을 다닌 적이 없습니다."
앤드류의 답변을 들은 학장은 졸도할 지경으로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는 무학이었습니다. 분석적 사고를 강요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졌던 그의 아버지는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미술을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1937년, 20살이던 앤드류는 뉴욕의 맥베스 갤러리에서 첫 수채화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대성공이었고 전시된 모든 작품이 팔렸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경력이 그가 원하는 전부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939년, Andrew Wyeth의 22번째 생일날 메인에서 여름을 보낼 때 17세의 Betsy James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앤드류는 메인에서 베치를 만나면서 동시에 그녀의 친구인 크리스티나를 소개받습니다.
처음에 앤드류는 수채화를 그렸으나 이후 사실화법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템페라(tempera)와 드라이브러시(Drybrush) 기법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그가 생활하던 미국 시골을 무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 고독을 광활한 배경 속에서 절절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30대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크리스티나의 세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헬가 시리즈>를 발표한 후 살아생전에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던 화가였습니다. 젊어서는 병약했으나 91세의 나이로 자택의 침대에서 잠든 상태로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면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Self Portrait
와이어스는 이 초상화를 계란 템페라로 그렸습니다.
템페라는 고풍스러울 뿐만 아니라(다른 매체가 발명되기 전인 16세기까지 사용되었음),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선호했던 유화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와이어스는 이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템페라는 손으로 섞어야 하고, 균형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물, 안료, 접착제의 비율을 끊임없이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어스는 포기하지 않고 평생 템페라로 작업했습니다.
템페라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이 작품은 템페라화인데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레버넌트(The Revenant)" 판화입니다. 이 자화상은 올슨 가에서 그려졌습니다. 앤디는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후 먼지 쌓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올슨 하우스에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형체가 서 있었습니다. 먼지 쌓인 거울 속의 저였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그린 이유는 그곳의 건조함을,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에 남겨진 죽은 파리들의 특별한 건조함을 담은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헨리에트 와이어스 허드(Henriette Wyeth Hurd)는 초상화와 정물화로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N.C. 와이어스의 장녀였던 그녀는 펜실베이니아주 채즈포드에 있는 아버지와 오빠 앤드류 와이어스의 집과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는 Pyle의 밀리터리 코트와 벨벳 슬리퍼를 신고 등대 꼭대기 방의 스툴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해골로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오른쪽에는 대포가 벽의 구멍을 통해 바다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Wyeth는 Dr. Syn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임의의 골격을 모델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엑스레이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그의 골격의 다양하고 수많은 부분, 심지어 옷 아래에 숨겨진 부분까지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인물화
<찰리 어빈>은 앤드류 와이어스가 그린 초상화로 개인과 풍경, 그리고 둘의 상호 연결성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또한 이 그림은 지역주의 운동의 특징인 감정적 깊이와 환경적 맥락을 묘사한 것입니다.
전경에 진지한 표정을 띤 한 남성이 검은색 재킷과 짙은 색 모자, 그리고 작업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배경에 묘사된 풍경은 초상화가 그려진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 벗겨진 페인트와 낡은 지붕이 드러나 있으며 집의 위치가 시골 혹은 해안 지역임을 암시해줍니다. 목조 건축과 눈에 띄는 굴뚝이 있는 집의 건축 양식은 당시의 전형적인 미국 지역 건축형태를 드러냅니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들어와서 뒷문 계단에서 Christina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부엌에서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녀가 뼈가 있는 팔, 약간 긴 머리를 어깨너머로 뒤로 넘기고, 이 백자 손잡이가 달린 낡은 문 옆에 드리운 그녀의 이상한 그림자가 있는 상처 입은 갈매기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는 아내 Betsy의 오랜 친구였던 Christina Olson을 만났고 1947년에 처음 그녀를 그렸습니다. 크리스티나 올슨은 선천성 근육마비 환자였고 자폐증을 앓는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와이어스는 1968년 1월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메인주 쿠싱(Cushing, Maine)에서 매년 여름에 Christina를 그렸습니다.
무엇에 이끌렸던 것일까요?
뉴잉글랜드 태생인 크리스티나 올슨은 다리를 사용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평생 휠체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녀는 상체를 사용하여 자신이 살고 일하는 들판과 집을 다녔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끈기와 의지가 인간의 원초적 굴레에 시선을 두었던 Andrew Wyeth를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Wyeth는 지난 세기의 가장 인기 있는 미국 화가 중 한 명입니다.
독일 이민자 농부의 초상화 <Karl>은 관객으로 하여금 남자의 얼굴에 있는 마지막 색과 주름에 집중하게 하는 동시에 천장의 고기 갈고리에 필연적으로 주목하게 합니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섬뜩함과 깊이에 대한 감상으로 이끕니다.
Wyeth의 친구이자 모델인 독일 이민자 Karl Koerner은 1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였습니다. 그가살던 곳엔 독일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모양입니다. 농장 센터 펀치스(Punches)를 처음 방문했을 때 와이어트는 놀랐습니다. 독일군에서 사수로 복무했던 과거의 칼과 대조되는 편안함과 평온함이 그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방아쇠를 당겼어야 했던 캐릭터는 오늘 창문의 커튼 색상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이 이미지는 Wyeth를 매료시켰습니다.
이 작품은 앤드류 자신이 최고의 초상화라고 여겼던 그림입니다. Charles Koerner의 다른 초상화와 달리 여기에서는 헬멧, 외투 및 무기 없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나먼 천둥처럼 기관총의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Andrew Wyeth는 Charles에게 매우 애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잔인한 입술."
앤드류는 그렇게 회상했습니다.
Wyeth는 펜실베니아와 메인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 근처에 살았던 지인과 친구들을 자주 그렸습니다.
<A Crow Flew By>에서 와이어스는 그늘진 공간에 앉아 보이지 않는 창으로 비치는 빛을 받기 위해 몸을 기대고 있는 이웃을 묘사하였습니다. Wyeth는 면밀한 관찰을 통해 장면을 음소거된 팔레트에서 렌더링 하기 전에 수많은 스케치를 만들었습니다. 차분한 색감, 희박한 설정, 나이 든 사람의 뻣뻣한 포즈, 흐릿한 그림자는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며, 한 줄기 빛은 희망적인 결과를 암시합니다. 작품의 제목은 미스터리를 더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남자를 그의 딱딱하고 발톱 같은 손과 구부정한 자세를 가진 이름 있는 까마귀로 식별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다른 예술가들이 추상화에 끌렸을 때 Andrew Wyeth는 국내 리얼리즘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여 펜실베니아 시골의 농장과 산업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모두 그리고 여름에는 물막이 판자 집과 황량한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의 아버지 N.C. Wyeth가 1945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그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그의 그림에 통합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유명한 이웃으로 Helga Testorf가 있었습니다.
와이어스는 타임지의 표지에 등장한 최초의 시각 예술가이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된 최초의 살아있는 미국 태생 예술가였습니다.
화가의 아내인 Betsy James Wyeth가 거대한 미국 너도밤나무 아래에 앉아 있습니다. Wyeth가 태어나고 메인에서 보낸 여름을 제외하고 평생을 살았던 펜실베이니아 주 Chadds Ford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앨버트의 아들이었던 소년이 성장해서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옛날 일본 애니매이션으로 한국 TV에 인기방영되었던 요괴인간이 떠올랐습니다. 삼 형제 벰-베라-베로로 구성된 요괴인간 중에서 막내 베로를 쏙 빼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댓 젠틀맨>은 와이어스 씨의 이웃이었던 톰 클라크(Tom Clark)라는 나이든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얼굴은 가려져 있지만, 저는 그의 개성을 드러내는 단서를 찾아 새로운 시각으로 이 작품을 더 깊이 있게 탐
구하고 싶어집니다. 와이어스 씨는 클라크 씨에 대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재치는 예리하며, 지혜는 엄청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 초상화는 우리가 때때로 우리 삶 속의 조용하고 숨겨진 영웅들을 잠시 멈춰서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줍니다.
댈러스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국 그림 중 하나인 이 초상화는 앤드류 와이어스의 이웃이었던 톰 클라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가는 그의 모델에 대해 이렇게 감탄하며 썼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재치는 예리하며, 지혜는 엄청납니다. 그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매우 품위 있는 신사입니다."
<Day of the Fair>는 사실적이며 그녀의 눈꺼풀 라인의 작은 붓놀림, 의상의 체크, 손바닥의 주름과 같은 세부 사항이 결합되어 그림을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Wyeth는 창턱을 제외한 그림에서 직선을 피하고 벽 중앙의 균열이 불연속적이며 의자의 등받이가 구부러져 있게 그렸는데 이는 여성의 불행한 감정이 균열과 벽에 의해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한 것을 나타냅니다. 빛에서 등을 돌린 자세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Wyeth가 사용한 색상은 차분하며 구별할 수 없는 회색, 녹색 및 갈색으로 제한됩니다. 묘사된 빛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며 침울한 색조를 발산합니다. 아마도 노란색을 매우 적절하게 사용하여 기쁨과 관련된 황금빛이 아니라 흐린 날을 연상시키는 흰색을 띤 회색 빛을 묘사해 낸 것 같습니다.
빈 방은 마치 그녀가 그림의 유일한 구성 요소인 것을 의미합니다. 초점을 이루는 그녀의 얼굴과 손에서 가장 밝고 따뜻한 색상을 볼 수 있고 그녀의 주변은 비교적 무미건조합니다.
이 그림은 아마도 <박람회의 날>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흑인 여성을 묘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날이 그런 이름을 붙일 만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그날이 꽤 중요하고 즐거운 사건일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주인공은 홀로, 실내에 있고, 비참할 따름입니다. 그녀는 외모로 보아 이벤트를 위해 옷을 입고 있으며, 빛을 피하는 것처럼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감정이 무겁기 때문에 추측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Wyeth가 우리에게 미스터리를 남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모호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마가의 딸>은 와이어스의 아내 베치(Betsy)를 그린 작품입니다. Andrew Wyeth가 Betsy Merle James를 만난 것은 1939년이었습니다.
Betsy James는 1922년 뉴욕주 이스트 오로라(East Aurora)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술가인 그녀의 아버지 멀 제임스(Merle James)는 Buffalo Courier-Express라는 신문의 인쇄업자로 일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마가" 브라우닝(Elizabeth “Maga” Browning, 그림의 제목)이었습니다. Betsy는 세 소녀 중 막내로 자랐습니다. 1930년대에 가족은 메인 주 쿠싱 시에서 가까운 대서양으로 돌출된 곶인 버드 포인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여름을 보냈습니다. 옆집 이웃은 블루베리 농부인 Alvaro Olson과 그의 여동생 Christina가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뒷날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어린 소녀 Betsy는 Christina와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1939년, 22세의 Andrew Wyeth가 메인에서 여름을 보내던 중 17세의 Betsy James를 만납니다. 이 첫 만남에서 Betsy James는 Andrew를 Cushing으로 데려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그녀의 오랜 친구 Christina를 소개했습니다.
화가 Andrew Wyeth의 근면한 사실주의는 그를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만들었습니다. 1970년에 제작된 초상화 <My Young Friend>는 평평한 배경을 배경으로 구도의 약간 왼쪽에 위치한 소녀가 두꺼운 케이블 니트 스웨터와 너구리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앉아있는 모델(The sitter)은 펜실베이니아 브랜디와인(Brandywine, Pennsylvania)에 있는 화가의 집 근처 목장에서 일하던 20세의 마구간 소녀인 시시 스프루언스(Sissy Spruance)입니다.
초상화는 석조석 패널에 전통적인 템페라 매체를 사용하여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 범위인 밝고 흙빛 색조로 칠해져 있습니다. 연속적인 미세한 층에 페인트를 적용함으로써 그는 세부 사항과 질감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자신의 특정 브랜드에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공기를 불어넣는 생생한 분위기와 시대를 초월한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평생 동안 Andrew Wyeth는 세 사람의 여성모델과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앤드류의 모델이었던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습니다. <Christina's World>의 주인공 Christina Olson은 병으로 불구가 되었지만 그녀의 비범한 여성성과 건강하지 못한 허약함이 예술가인 앤드류를 매료시켰습니다. 한편 250개의 드로잉 및 회화의 비밀스러운 주인공이었던 Helga Testorf는 어떤 면에서 Christina의 반대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강한 의지가 서려있는 마스크를 가진 위풍당당한 여성이었습니다.
Siri Erickson은 그들 중 어느 누구와도 관련이 없었습니다. 메인 주 Cushing의 핀란드 커뮤니티에서 온 아주 어린 소녀 Siri가 앤드류를 만났을 때 겨우 13살이었습니다. 1967년 가을 Wyeth는 아내 Betsy와 함께 Siri의 아버지 George Erickson의 농장으로 와서 그의 영지에 있는 건물을 조사했습니다. George와 Betsy가 헛간을 탐험하는 동안 Wyeth는 금발 농부의 딸이 고양이와 함께 문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즉시 그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후인 1968년 1월, 앤드류는 친구 크리스티나 올슨의 장례식을 위해 쿠싱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올슨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방이 거대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에릭슨의 저택을 보고 시리를 떠올렸습니다. "나머지 시간 내내 나는 그 어린 소녀가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라고 Wyeth는 회고했습니다. 1968년 늦봄에 메인으로 돌아온 그는 Siri에게 연락하여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후 Siri는 10년 동안 그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Wyeth의 전기 작가 Richard Merima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Olson 가족과 맺었던 관계의 종말은 Wyeth의 영혼에 불안한 공허함을 남겼습니다. 그때 Siri가 Christina의 진정한 연장선으로 출현했습니다. 메인주의 무너져가는 집에 몸이 불편한 여자가 숨어 있던 대신, 그는 이제 또 다른 낡은 집에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소녀를 숨겼습니다. ".
앤드류는 이제 막 성숙기에 접어든 소녀의 건강한 몸에 매료되어 그녀를 수영복으로 그리고 심지어는 알몸까지 그렸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새 모델을 이전 모델과 비교했습니다. Olsons와의 작업의 연속이며 동시에 무언가의 퇴색과 퇴색을 상징하는 Christina의 초상화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폭발입니다."
위에 소개한 만난 지 13년 만에 그린 시리의 초상화는 얼굴에 밝은 홍조를 띤 어린 소녀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잘 익은 밀 색 머리는 그녀의 어깨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으며 깨끗한 흰색 벽의 엄격한 라인은 Wyeth에게 순수함의 상징으로 다가온 Siri의 명확하고 단순한 모습을 강조합니다.
결혼이란 한 침대를 쓰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정의를 제시하는 그림처럼 보여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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