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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 - 성모성지 (2) / 성지 內 기도길

hittite22 2025. 3. 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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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서)

 

 

 

대성당 입구 광장에서 조망한 성지전경

 

남양성모성지 내부의 길은 걸어가는 곳마다 상당히 아름다워 힐링명소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을 듯 싶었습니다. 진짜 개신교도의 입장에서 바라다보는 가톨릭의 성당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런 점은 많이 부러운 요소이죠. 솔직히 말해서 개신교는 세속적인 때가 많이 끼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종교집단입니다.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느낀 점 중 하나로, 교회라는 건물을 아름답고 귀하게 설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와서 일부 교회는 멋지게 건축하려 용쓰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개신교 세례교인 입장에서 참 아이러니한 얘기인데... 과거 중세 가톨릭이 그렇게 부패하고 난장이었다면 오늘날 개신교는 그것을 분연히 떨치고 파생되어 나온 혁신 종교임에 비하여 오히려 가톨릭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부패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개신교보다 가톨릭이 더 성스럽고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가톨릭에 귀의할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니지만..

 

묵주기도의 길에 조성된 잔디밭

 

언제 기회가 되면 카톨릭 신자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을 다녀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외롭게 서 있는 마리아 대성당종탑

 

외경스러운 굵은 타워 두 개가 당당하게 서 있는 마리아 대성당은 매우 독특한 디자인의 파사드를 가졌습니다. 이곳에는 높이 세운 십자가도, 예수 그리스도 상도, 성모님 상도, 성인들의 상도 없고 프레스코화나 모자이크화나 기타 성화가 그려진 서양 대성당 파사드와는 다르게 건축되었습니다. 단지 타워의 벽체에 음각 형태로 파인 십자가 형상만이 심플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의 길

 

일단 개신교 세례 신자의 입장에서 말해봅니다. 개신교는 신부나 성모 마리아의 도움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도 자신의 신앙심에 따라 자신의 열성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과 힘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가톨릭은 죄 사함을 받는 절차에 꼭 신부나 성모 마리아의 도움이 개입되며, 기도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는 것을 따라서 읽거나 암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신교는주기도문 하나뿐이죠. 가톨릭은 기도문이 엄청 많습니다.

 

지금 이곳 묵주기도의 길을 걸으면 어떤 자세로 기도에 임할 건지 지침을 내려주는 명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개신교도 입장에서 보면 가톨릭 신자는 신앙생활하는 게 쉬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해진 기준이나 원칙에 얽매이는 면이 있기 때문에, 보다 큰 은혜를 받거나 또 보다 큰 능력을 얻는데 불리한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길에는 14개의 기도처가 있습니다.

 

처음 대성당 설계를 의뢰하려 했던 스위스의 건축가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는 묵주기도 길의 한켠에 자리 잡을 티 채플 설계를 맡았습니다. 애초에 이상각 신부가 작은 경당을 지으려고 했던 부지였지만, 가장 종교적인 체험이 반드시 종교적인 장소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피터 줌토르의 뜻이 관철되어 그곳은 '다도 공간'으로 바뀌어 설계되고 있습니다. 위치는 십자가의 길 시작점 바로 뒤편 동산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대성당 좌측 편 오솔길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집니다. 이 길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길 끝에서 자비로운 동산으로 오르는 통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운 동산은 꼭 가야하는 곳인가요?

글쎄요. 개인의 자유이죠..

 

자비로운 하나님 동산

 

하나님 동산 안에는 예수 성심상이 있고, 

그 앞에 요한 바오로 2세 흉상과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Sancta Maria Faustina Kowalska, 1905~1938)는 폴란드의 로마 가톨릭교회 수녀이자 신비가, 시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시성 되었으며, ‘하나님 자비의 사도’라고 불립니다. 아, '자비'와 연결되는 성인이라서 이곳에 흉상을 세웠군요.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복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머린 디건의 치유 사례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1981년 3월 머린 디건은 파우스티나 수녀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다가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된 일을 교회 당국에 보고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볼까요?

당시, 머린 디건은 림프부종으로 수년간 고통에 시달렸으며,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총 열 차례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 머린 디건이 파우스티나 수녀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자

“제게 도움을 청하세요. 그러면 제가 당신을 도와드리겠어요.”

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자신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전구를 청하자 오랫동안 지속되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이틀 후에 머린 디건의 크게 부었던 팔다리는 다시 수축되어 갔으며, 어느새 림프부종을 앓던 시절에 신던 신발이 맞지 않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섯 명의 내과 의사는 모두 예외 없이 그녀의 병이 완치되었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머린 디건의 사례 외에도 20명의 추가 사례가 더 보고됨에 따라,

바티칸에서는 조사를 명령한 후 1992년에 이 모두를 기적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1993년 4월 18일에 시복되었으며, 2000년 4월 30일 시성 되었습니다.

이로써 파우스티나 수녀는 21세기에 시성 된 첫 번째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197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1년 전인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 시절에 바티칸에 하나님의 자비 신심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인가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978년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어 요한 바오로 2세로 명명되었습니다. 

 

김세중 作, 피에타 상
자비로운 예수님 상
자비로운 예수님의언덕에서 내려다본 마리아 대성당이 아름답습니다.

 

동산 이름은 '자비로운 하나님의 동산'인데 동산 안에 주인은 안 보이고 자비로운 예수님이 오뚝하니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자비로운 예수님의 동산'이 맞는 표현 아닌가요?

 

아닙니다. '자비로운 하나님의 동산'이 맞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곧 하나님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만들 수도 없는 일이죠. 아하, 그렇군요. 그럼 하나님은 형상이 없는 존재, 영적인 존재라고 보아야 하는 건가요? 아, 그건 본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렇게 세례교인 히타이트 씨가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코스는 낙태아의 묘입니다.
생명 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이름하여 '생명 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이라 명명하였는데

길이라기보다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낙태아의 묘'가 있고, 낙태아의 묘를 보러 가기 전에 '과달루페의 성모상'을 만나야 합니다.

 

과달루페의 성모상

 

멕시코 시 인근의 테페야크 언덕에서 효성이 극진했던 후안 디에고에게 1531년 12월 9일 만삭의 모습으로 처음 발현했다는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신앙을 상징하는 어머니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는 인디언 언어인 나후아틀어로 후안 디에고에게 말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다.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다. 나는 그들의 비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사흘 후 후안 디에고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다시 만나 성모 발현의 징표인 장미 꽃다발을 받아서 그 지역의 주교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장미를 보이려는 순간 그의 외투 위에 그가 만났던 성모의 모습이 새겨져 나타났습니다. 성화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는 만삭의 모습으로 키는 1m 45cm이고 피부색은 인디언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며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은 스페인의 아즈텍(Aztec) 인디언 대학살이 발생한 지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성모의 발현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아즈텍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또한 정복자인 스페인과 정복당한 인디언의 피를 함께 나누어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종족 메스티조(mestizo)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집니다. 인디언 여성의 얼굴로 나타난 과달루페의 성모는 곧 해산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눈을 아래고 내려 뜨고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7월 31일, 로마에서 후안 디에고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낙태아의 묘
아기천사상

 

이곳에 세워진 성모상은 복중 태아의 수호성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뜻으로 건립한 듯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 발현한 의미를 이곳 동북아시아 분단국가에서 찾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성모상 옆에는 낙태아의 묘까지 조성해 놓은 것을 보면 의미하는 바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무명순교지를 위한 십자가상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주욱 걸어내려가면 무명순교자의 상이 나옵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십자가상을 따라 계단까지 올라가서 비문을 보니 십자고상 하단에는 4명의 순교자에 대한 이력만 기술되어 있고, 무명 순교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자료를 보니 무명 순교자를 위한 성모마리아 상이 세워진 곳이 있던데.. 약수가 나오는 곳. 그렇다면 이곳은 4인 순교자의 묘비명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묵주기도길 성모상
묵주기도 길
성 요셉 상

 

성요셉상은 잔디광장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표정 묘사를 보니 문득 묵주기도의 길 성모상과 성요셉상은 같은 아티스트가 조각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문

 

이곳 남양성모성지에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흔적과 그를 기리는 조형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을 다녀간 것도 있거니와 남양성모성지의 탄생에 기여한 바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워있는 청동 십자가상
가시면류관을 쓰심

 

묵주 기도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 누워있는 십자가상이 누워있었습니다. 이런 십자가상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워있는 십자가 상에 대한 현실성 있는 추론은

1)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장사 지내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릴 때의 장면, 혹은

2) 처음 십자가에 못을 밖은 후 십자가를 세우려고 할 때의 2가지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전혀 불가능한 장면은 아닌 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close up]

 

라틴 십자가인데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깔끔했습니다.

그리고 미남으로 조각되었습니다.

십자가 두 군데가 시멘트에 박혀 있어 기울어지거나 주저앉을 일은 없을 듯싶습니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 친구 봉근이를 닮았습니다. 봉근이는 남해 상주 해수욕장 앞에서 펜션 ' 남해 쁠라야(Playa)'를 운영하는 중고딩 시절 교회친구입니다. 진짜 봉근이를 닮았습니다. 혹시 남해 쁠라야에 가게 되면 확인해보십쇼..

 

묵주기도 길에 나타난 블라디미르 성모 이콘

 

약수터 앞에 세워진 저 팻말들은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 모습이 발현했다는 사진들입니다. 처음 이곳을 건립할 때 어는 한 시점의 남양성모성지 구획이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성모님의 은총인 듯 사진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뭐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사안인 듯.

그런데 왜 방치해 놓은 것처럼 낡아빠진 상태의 사진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 건지...

 

남양순교성지 비문
성체조배실

 

경당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성체조배실입니다. 남양성모성지는 성지 건설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성체조배실을 만들었습니다. 성모님이 계신 곳에 성체가 있으며, 예수님이 더욱더 사랑받으신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장소로 순례자들이 기도하는 처소로 마련한 것입니다.

비오 신부

 

강복 그리스도 상 배치 구역에는 마더 테레사, 콜베 신부, 비오 신부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묵주기도의 길이 시작되고 시작점에 누워있는 청동 십자가상이 있습니다.

 

‘오상(五傷)의 비오’ 혹은 ‘파드레 비오’로 잘 알려진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는 이탈리아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도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입으신 오상을 지녀 유명해졌지만,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는 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열정적으로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었습니다. 1971년 카푸친 작은 형제회 장상과의 만남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비오 신부가 명성을 얻고 신자들이 주위로 몰려든 이유는 겸손하게 미사를 봉헌하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해소에 머물며 고해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생을 예수님 오상의 고통을 견디며 기도했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의 삶을 묵상하며 지나가볼 장소인듯합니다.

 

마더 테레사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1910~1997)는 주로 인도에서 활동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녀입니다. 1950년에 인도의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라는 천주교 계통 수녀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본명은 아네저 곤제 보야지우(Anjezë Gonxhe Bojaxhiu)이며, 2016년 9월 5일 성인으로 모셔졌습니다.

 

초봉헌대

 

나가는 길목에 올라갈 때 보았던 초봉헌소 안의 알록달록한 초봉헌대를 다시 둘러보았습니다.

 

넓은 성모성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남양에 가시면 부족했던 점을 충분히 채우고 돌아오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국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지가 힐링과 치유의 성지로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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