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전람회 후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4/10/15 -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1)

hittite22 2025. 6. 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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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미술관(AMPA)은 신용산역에서 내리면 바로 연결됩니다.

과거 국제그룹 빌딩이 서 있던 옆자리에 들어선 유명 건축가께서 설계한 대형 빌딩 안에 자리 잡은 미술관입니다. 설계자인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는 조선의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였다고 합니다.

미술관 입구 로비에 가면 흉상과 함께 아모레퍼시픽 회장 서성환님께서 대중을 위해 은총을 내린 공간(Space)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디지털 대자보(?)가 있습니다.

 

헐~ 과연, 그럴까요?

일단 퀘스천마크 한 개를 남기고 미술관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가느다란 흰 살로 빼곡히 채워진 듯한 사각건물입니다.

 

2017년 10월 준공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은 지하 7층에 지상 22층, 연면적 188,902m²(약 57,150평)의 규모를 자랑합니다. 과거 이 지역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랜드마크로, 멋진 건물로 명성이 자자했던 (구) 국제그룹 사옥 옆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구) 국제그룹 사옥은 '꼬마 빌딩'으로 전락당한 처지가 되어 있더군요.

 

인생무상, 뭐 건축무상이라고 해야하나..

세상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대자연이든 변하기 마련이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맞는 일입니다. 돌고 도는 세상 아닙니까. 순환의 법칙이란 대자연에서 인간이 보고 베낀 이론이고 아마도 그 연장선에서 태동한 것이 '윤회사상'이지 않을까 추정해 봅니다만 그래도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새로 들어선 덩치 큰 녀석을 마주하는 기분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들으면 코웃음 치겠지만..

 

이름하여 아모레퍼시픽 본사빌딩

 

이 빌딩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를 개방해 임직원과 지역 주민, 지역 사회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가장 큰 특징은 건물 내에 자리 잡은 세 개의 정원, ‘루프 가든’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날 미술관만 보고 왔을 뿐 건축물에 대한 은총의 혜택은 그리 맛보지 못했습니다. 발길 닿은 만큼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움직이지 않는 자, 게으른 자에게는 결코 '베풂'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눈으로 쳐다본 햇빛을 차단하는 나무 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물 외벽의 ‘파사드’는 자연 채광을 실내 공간에 골고루 확산시켜 최적의 업무환경을 조성한다는 '설계이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맞는 거쥬?

 

'꼬마빌딩'으로 전락한 (구) 국제그룹 사옥
건물이 멋지긴합니다..
빌딩 입구가 아닙니다. 1층 로비에서 미술관 입구로 향하는 문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1층 로비 오른쪽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Amorepacific Museum of Art라고 하네요. 미술관 입구에 남성 안내원이 정장 차림으로 서서 안내해주고 있었습니다. 꽤 친절합니다. 그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티켓팅과 우산 걸이에 우산을 보관하고 나서 미술관 전시실에 입장을 시도합니다.

 

18000원 지불하고 수령한 티켓

 

입장료를 18000원씩이나 받는 걸 보니,

서 회장이 사해대중의 문화적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서 하사하신 은총이라고 단정하긴 시기상조라 생각됩니다. 

 

미술관은 지하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대한 로비 안에 널찍한 '입구 공간(오늘 공간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까요?)'을 마련해 둔 것은 미술관을 지하에다 모셔놓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으려는 흑심(?) 혹은 야욕(?)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니겠는가! 뭐, 이런 까칠한 궁리질을 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예술을 감상하고 예술의 가치를 되새김하는 '공간'이니까요.

 

전시장 입구로 내려가려면, 로비 천장에 달려 있는 밧줄을 잡고 외줄 타기를 하거나 하는 도중인 청년조각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뭐 지하실로 내려가는 느낌을 희석시키려는 거겠지. 아, 이런 네거티브적인 생각!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암튼, 청년의 모습을 보며 전시장으로 들어갑니다. 

 

What's Left?(남은 것은 무엇인가?), 2011

 

전시 작가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상설 조각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상설 조각상이 아니라면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하며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퍼포먼스를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고 봐도 될 거 같습니다. 물론 작가가 그런 저차원적인 생각에서 이런 고공 작업 중인 서커스맨 조각상을 전시기간 동안 걸어 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검은 아가리를 열고 관람객을 맞이하는 지하 미술관

 

외줄 타기 선수의 모습에는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취약함과 탄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개를 들어 청년을 봅니다. 외줄에서 미끄러져 한 손으로 간신히 줄을 붙잡고 있는 위기의 순간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 외줄 타기 선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금 자신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추락과 평정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황입니다.

듀오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요. 불안과 시련이 계속되는 삶의 여정이지만 우리는 모두 이것을 극복해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니면 그냥 환기시키는 정도의 의도였겠죠.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

 

2015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NTNU)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는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은 국적을 달리하는 북유럽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듀오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두 사람의 30년 협업을 기념해 그들의 공간 작업을 한자리에서 조명한 것인데 규모 면에서 아시아 최대라고 하네요. 규모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볼만한 작품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인상입니다. 일상 잡화까지 작품으로 계량한다면 숫자가 많아지려나? 어찌 되었든 이 듀오 작가는 전시장 안에 대형 수영장, 집, 레스토랑을 배치하고 그 내부에 시설물과 사람을 설치 작품으로 전락시킨 채 자신이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란 실제 인물이 아니고 이른바 '밀랍인형'에 불과하겠지만요.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은 1994년 만나 이듬해부터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화이트 큐브 공간을 거침없이 해체하는 초기 퍼포먼스와 조각 작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건축적 요소를 작업에 도입하며 점차 영역을 확장한 두 사람은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운 영구 설치 작업 ‘프라다 마파(Prada Marfa, 2005)’와 전시장을 집, 지하철역, 공항 수하물 찾는 곳, 병원 병동, 대기실 등 익숙한 장소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독창적 시각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의 컨셉은 수영장, 집, 레스토랑, 주방, 작가 아틀리에 등 총 5곳의 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각 공간은 불특정 다수의 이미지를 스크롤하듯 불연속적으로 펼쳐 보입니다. 일상생활이 디지털과 물리 영역 사이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탐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좌측과 우측 인물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듀오 아티스트 사진인데,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두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에서 묘한 '다름'이 느껴집니다. 왼쪽 아저씨에 비해 오른쪽 아저씨 드라그셋은 마치 다소곳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눈치가 둔한 저는 전시물을 다 감상하고 나서야 그들 관계를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즉, 전시장 말미에.. 영상 관람실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2가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각기 1시간가량 분량인데 그중 한 영상, 방문 당시 아다리가 맞아 상연되던 그 필름을 보다가 관람 첫머리에서 퇴실해 버렸습니다. 듀오 아티스트가 동성애자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 21세기 서구 예술계엔 동성애자들이 너무 판을 치고 돌아다니는 느낌이 강합니다... 뉴욕 회화 시장도 그들이 점령해 버린 것 같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생존 최고 대우 작가로 군림하고 있고, 설치미술의 영역도 아니나 다를까 했더니 역시나 풍경이 펼쳐지고 있네요.

 

다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서 볼 때 현대미술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Elemgreen)과 드라그셋(Dragset)에겐 독특한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는 것. 작가로 활동하기 전 엘름그린은 시인, 드라그셋은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이유에서인지 이들은 자신들이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하는 주제를 위트 있게 풀어내면서 활동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내용이 있는데 그건 위에서 언급한 바 지금도 동성애자로서 같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연인이었지만, 현재는 비즈니스 관계로만 지낸다는 것입니다. 오, 서양인들에게서 보게 되는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다음 쿨하게 지내는 것이 동성애자 사이에도 동일하게 작동되고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입실

 

전시장은 굉장히 널찍합니다.

그림 구경한다고 많은 사설 갤러리를 돌아본 경험에 따르면 뮤지엄이 가지는 힘은 '공간'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미술관이란 부대시설이나 기술적인 뒷받침도 당연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가장 상징적으로 대비되는 것은 '공간'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곧 '돈'과 직결되는 이야기이죠. 대규모 뮤지엄은 그래서 일반인이 개인의 힘으로 지을 수 없는 것이고, 반대로 사설 갤러리를 방문하면 그 공간의 협소함에 실망하거나 우습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디지털 안내판

 

관람객은 첫 번째 전시실에서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을 갖춘 140제곱미터 규모의 집에 존재할 법한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놀이를 즐기는 사람에 한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미건조한 전시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대형 수영장을 만나게 됩니다. 물이 빠진 수영장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합니다.

레스토랑과 다름없는 설치 작품인 ‘더 클라우드(The Cloud)’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관람객은 홀에 앉아 영상 통화 중인 젊은 여성 모습의 작품처럼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실험실 같은 주방, 작품 제작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틀리에 공간이 이어집니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공간이 한 카테고리에 묶여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실 구성
1. Shadow House
2. The Amorepacific Pool
3. The Cloud
4. Untitled (the kitchen)
5. Untitled (the studio)

 

1. Shadow House

 

Shadow House,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과거에도 ‘집’, ‘가정’이라는 주제를 다뤄왔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을 집으로 전환한 전시 ‘수집가들(The Collectors, 2009)’,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 내부를 건축가의 집으로 재구성한 ‘내일(Tomorrow, 2012)’ 이 있습니다. 관람객은 거실, 주방, 침실, 서재, 화장실까지 갖춘 완전한 규모의 집 안에서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며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섀도 하우스의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고독하게 서 있습니다.
고독한 나무에게로 한 관람객이 등장합니다.
나무에 앉아 있는 녀석은 콘도르인 것 같습니다.
마당에서 통창으로 거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소년이 통창 앞에 서 있는데

 

소년은 마당을 내다보는 게 아닙니다.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뿌옇게 변한 영역에 글씨를 쓰는 장난(?)을 하는 듯합니다. 성질 급한 관람자는 창밖에서 소년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핍니다. 거실 안에 들어가서 봐도 되는데 말이죠.

 

성질급한 관람객은 정작 이런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출처 : 인터넷 W Feature]

 

소년의 시선을 따라가니 창에 고정시킨 상태입니다. 즉 마당 밖 풍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거실 내부엔 자기 혼자니까 당연히 거실 내의 특정 부위에 시선을 둘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소년이 쓴 글자는 'I'로 인식됩니다.

 

소년의 얼굴을 보니 '나(자아)'를 찾을 나이로 보이기는 합니다.

관람객과 소통이 없는 자기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형국으로 비칩니다.

 

통창을 통하여 거실 전체 풍경을 스캔합니다.

 

한국사회의 아프트 거실 같은 내부를 보면서 이제 마당에서 코너를 돌아 섀도 하우스로 들어갑니다.

입구에는 뭔가 별 의미 없는 일상 용품과 옷걸이가 있었고(그래서 별생각 없이 지나쳤고), 하우스 내부 통로가 나오는 곳에서 여성 안내원이 관람 동선을 알려줍니다. 그 동선을 따라 '방(침실 겸 개인)'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장(소년의 아버지)는 건축관련 종사자로 보입니다.
작업중인 도면이 있습니다.
close up 하니, 이번 전시에 출품된 레스토랑 'Cloud' 모습이 나왔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 르네 마그리트의 Kiss를 모방한. 작품이 있습니다.
화장실을 들여다 봅니다.
통욕조가 놓여 있고
Separated, 2021, mirrors, porcelain sinks, taps, stainless steel tubing, 178 x 150 x 150 cm

 

화장실 보여주기가 아닌 모양입니다. 두 개의 동일한 세면대와 거울,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길고 구불구불한 강철(스테인리스 혹은 주석) 배수관으로 구성된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2004년 시작된 ‘결혼’ 연작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작품 <헤어지다>는 감정적 연결이 해소되기 전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통찰력 있게 조명한 것이라는 해설이 뒤따릅니다. 배수관은 파트너 간의 친밀함과 감정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표현한다고 말하는데 그럼 긴장과 갈등을 표현한 부분은 배수관의 꼬인 모양이라는 걸까요? 

 

사람들은 작품 명칭에 공감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히려 연결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는데..

 

화장실과 room 사이에 놓여있던.. '작품'
둘이 마주보는 침대
앗! 수직이착륙 에어카
창밖에서 보았던 소년.
유리창 앞의 소년.. 전형적인 북유럽 인종.

 

섀도 하우스(Shadow House, 2024)에 들어가면 거실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은 거실 유리창에 입김을 불며 손가락으로 I자를 쓰고 있는 소년이 유일합니다. 나머지 공간에는 가구와 집기들이 세팅되어 있는 풍경인데 해설에 따르면 공간의 디테일을 통해서 이 집에 거주하는 가상 인물들의 삶을 관조할 수 있다나? 뭐, 현대 미술이란 ‘작품 + 해설가의 말주변’인 측면이 강하니까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는 그런 해설도 필요한 요소입니다.

 

인어아가씨가 보입니다. 덴마크인이 있죠, 이 듀오 중 한 사람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2. The Amorepacific Pool

 

 

바로 2 전시실로 들어갑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물이 빠진 수영장은 듀오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입니다. 명칭은 아모레퍼시픽 수영장이라 붙여져 있지만 듀오 아티스트가 이전에도 해왔던 모티브라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 수영장(Amorepacific Pool)에서 보여주는 물이 없는 수영장은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The Amorepacific Pool, 2024, lights, stainless steel, tiles, paint, Courtesy of the artists

 

수영장 안에는 ‘감시(2024)’, ‘로버트(2024), ‘우리는 이렇게 놀아요. Figure3(2023)’, ‘The Screen(2021).’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조각들이 세부사항으로 세팅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망루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안전 요원(정면 반대편),

우두커니 풀 사이드에 걸터앉아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는 소년(좌측),

VR고글을 쓰고 가상현실에 몰입해 있는 청년(수영장 내),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우측)가 넓은 공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4개의 조각상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는 형국인데, 이러한 장치는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 현대인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수영장 풍경을 찍어 놓고 보니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이 오버랩됩니다.

듀오 작가가 그걸 노리고 이런 발판을 설치한 것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구명튜브
Watching, 2024, bronze, lacquer, 290 X 105 X 85cm, Courtesy of Pace Gallery

 

망원경을 통해 무언가를 응시하는 젊은 남성(감시요원이겠지)을 묘사한 작품이다. 관람객은 남성의 위치에 올라갈 수 없으므로 그가 보고 있을 잠재적인 장면들을 상상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수영장을 감시 중인 안전요원이 쳐다볼 광경이란 너무 뻔합니다..

 

 

안전요원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립된 남성 인물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들은 현실적인 인물 이미지를 일상적인 물건과 융합하여, 사람과 사물 간의 위계를 지우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The Screen, 2021, bronze lacquer, light-box display, 225 X 145 X 40cm, Collection of Amorepacific Museum of Art

 

소년은 창 너머의 하늘을 들여다보며 바깥세상을 향한 갈망이 담은 눈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유년 시절 경험했을 만한 순간을 묘사한 이 작품은 관계의 고립과 단절로부터 느끼는 외로움, 슬픔, 또는 지루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한 것 같은 해설 기사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과 관람객은 ‘관람’이라는 행위를 통해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관람’이라는 행위는 반드시 응시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조각상들의 고립과 관객의 응시에 무관심한 태도는 바라보는 대상과 바라보이는 대상으로서 관객과 작품의 관계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게 한다."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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