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전람회 후기

예당 한가람미술관 2024/06/21 - Beyond The Scream展(2)

hittite22 2025. 5. 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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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시대 3년(1889~1892) : 달빛, 키스, 생 클루의 밤까지

 

뭉크는 파리시대에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회화 기법을 탐구했으며

기존의 관심사였던 자연주의와 작별을 고합니다.

 

파리에 머물렀던 시기는 1889년에서 1892년까지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제작된 작품 중에서 파리시대에 경험했던 일, 감정, 풍경을 담은 작품은 파리시대 3년의 범주에 넣어 전시회 작품배치를 해 놓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특정 기간으로 끊어서 의미 부여하거나 정리한다는 게 너무 인위적인 일이죠. 그래서 저는 기획 전시회에서 섹션별로 구분하여 묶음으로 내놓는 작품들을 그 틀에 얽매여 관람해 본 일은 거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감상 스타일은 기분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이를테면 전시장 특정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려서 바글거리면 일단 사람이 적게 서 있는 그림부터 먼저 감상하고 나서 좀 한적해진다 싶으면 그 그림을 찾아 감상하는 불규칙한 관람자 유형에 속합니다.

 

The Girl at the Window(창가의 소녀), 1894, drypoint, 55.8 x 37.7 cm [John Szoke Gallery]
The Girl at the Window(창가의 소녀), 1894 [detail]

 

소녀는 커튼 뒤에 숨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요?

소녀의 모습 어딘가 의기소침해 있는 듯한 분위기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창가에 기대어서 외부 세계를 살피는 인물을 그린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한 남자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Night in Saint-Cloud(생 클루의 밤), 1893, oil on canvas, 70 x 56.7 cm [Christen Sveaas Art Collection]
가까이 갈수록 흐릿하고 티미해집니다..오 이런..

 

멀리서 찍은 <생 클루의 밤>이 너무 작게 보이는 듯해서 점점 가까이 다가서면서 작품을 담아보았습니다.

어떤 느낌일까?

 

애정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이처럼 한 걸음씩 다가서면서 찍으면 임파스토 기법이라 불리는, 물감을 날것으로 찍어 바른 듯한 붓질로 인하여 화폭에 입체감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건 또 다른 매력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었죠.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본 고흐의 그림은 '쓱쓱 싹싹' 붓을 막 질러댄 듯한 인상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도 독특하면서도 특이한 체험이 됩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뭉크의 작품 앞에서 똑 같이 해본 겁니다. 같은 감동을 얻게 될 거 같습니까?

 

노노, 노노노

뭉크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가면서 촬영하면 오히려 더 흐릿해져 보이는 듯합니다. 아니, 이건 또 뭔 조화죠?

색감도 선도 흐릿해지고 물감의 흔적이 바닥나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오는 겁니다. 이건 빈센트 반 고흐와 완전히 다른 현상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붓칠한 테크닉(기법)이 다른데.. 그래서 알아낸 노하우는요, 뭉크의 그림은 가까이 다가서서 감상하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더 좋은 느낌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와우~ 이것도 의미 있는 결론입니다.

 

이건 인터넷 서핑으로 잘 나온 사진 'get'한 거...

 

1889년부터 1891년까지 뭉크는 노르웨이 정부의 예술가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프랑스에서 살았습니다. 

1889년 12월 파리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뭉크는 도시 외곽 생클루로 이사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센 강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 위층을 빌렸습니다. 바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방입니다.

 

몽환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의 <생클루의 밤>에서 우리는 그의 어두운 방 안과 늦은 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창가에는 생각에 잠긴 한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창가 안쪽 천장에 걸려있는 전등은 불이 꺼진 것이겠지요?

처음에는 등에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창틀이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보고 해석하자면, 이는 달빛에 비친 때문이며 천장의 전등은 꺼져 있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 젊은 여성은 가까이서 감상하는데요?

 

아.. 어쩌라구요..

 

생 클루의 밤..

 

그럼 <생 클루의 밤>은 누굴 그린 작품일까요?

 

이 그림은 뭉크가 절망에 빠져 창가에 앉아 있는 시인 에마누엘 골드스타인(Emanuel Goldstein)을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  뭉크는 파리 교외 생 클루에 살고 있었고, 그의 친구이자 덴마크 시인인 에마누엘 골드스타인은 달빛에 실루엣이 그려진 수수께끼 같은 실크햇을 쓴 인물을 위해 포즈를 취했습니다.

 

우울한 분위기는 뭉크 아버지의 사망과 관련이 있지만,

이 장면은 뭉크에게 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1893년 버전은 베를린에서 그린 것입니다.

그는 친밀한 분위기와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빛 효과로 유명한 야간 창문 장면을 여러 개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작품 속에서 창틀은 공허한 방 안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모자를 쓴 남자는 깊고 푸른 밤으로 녹아들고 있는 듯합니다.

 

또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멋진 두 작품
왼쪽 작품을 먼저 봅니다.
Cypress in Moonlight(달빛 속 사이프러스), 1892, oil on canvas, 81 x 54 cm [Christen Sveaas Art Collection]

 

현장에서 작품 감상할 때, 멀리서 감상하는 게 더 멋진 그림감상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조명의 방해를 덜 받는 결과일는지도 모릅니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찍으면 그림이 온전한 본모습을 드러냅니다. 단지 거리가 있어 좀 더 자세한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단점입니다.

 

조명의 영향을 받은 사진

 

가까이 다가가니 좌측 편 중간에 아주 쪼끄맣게 두 사람을 그려 넣은 게 보입니다. 원근법상으로 비율이 안 맞는다고 생각되면 괜히 작품의 가치가 훼손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에 매몰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Cypress in Moonlight(달빛 속 사이프러스), 1892, oil on canvas, 81 x 54 cm [Christen Sveaas Art Collection]

 

인터넷 서핑하여 구한 사진입니다.

정말 멋진 그림인데 실물로 본 것과 색상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암튼, 이제 오른쪽 작품(The Kiss)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The Kiss(키스), 1892, oil on canvas, 72 x 59.3 cm [European Collector]
작품이 걸린 벽체의 진청색이 멋집니다.

 

 

작품 <The Kiss>는 남녀의 시각적 융합을 완전한 방황의 순간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해설이 있네요. 그런데, 이건 무슨 말인가요? 한국어인데 이해가 안 가니 이거 큰 일입니다.

 

뭉크에게서 '함께함'은 일시적이며 개인성을 잃는 대가로서만 얻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별, 질투, 우울, 깊은 절망,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이라는 주제가 항상 그를 뒤따랐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형성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작품 <The Kiss>와 관련하여 뭉크는 1880년대부터 사망직전까지 테마가 된 '키스'에 전념하였는데 이는 그가 남긴 수많은 스케치, 드로잉, 열 점의 판화, 그리고 열두 점 이상의 회화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다시 작품을 들여다 봅니다.

 

세로 형식의 화면으로 놓고 바라다볼 때,

오른쪽 구석에 치우친 방향으로 키스하는 주인공 2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서 있는 포지션은?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창문 앞에 서 있는 형국인데 창문밖으로는 같은 벽체의 왼편에 전시하였던 작품 '달빛 속 사이프러스'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얼굴이 구분되지 않네요. 뭉크의 후기 목판화를 보면 어떠한 공간적 관계도 드러내지 않으며 키스하는 커플을 '사랑의 상징'인 것처럼 묘사한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Kiss 하는 순간, 서로의 얼굴 형체는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남녀는 융합되어 버린 상태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두 연인의 얼굴이 합쳐진 것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과연 얼굴만 합일된 것일까요?

처음에는 얼굴이 융합되지만 이후 몸까지 합체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아니,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여겨집니다.

 

뭉크가 해석한 Kiss, 제가 감상한 Kiss

 

이것이 'Kiss의 전말'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저러나 뭉크는 Kiss의 해석에 의해 두 인물 묘사는 의외로 쉽게 그릴 수 있었겠습니다. 그냥 두 사람의 신체를 합친 듯이 쓱쓱 색칠하면 되었으니까요..

 

작품 Kiss를 열감하는 여성.
젊은 여성은 작품에 '몰입'한 상태입니다.

 

관람하는 단아한 차림새의 젊은 여성은 그 시선이 남녀가 엉켜있는 부분(그림의 오른쪽 면)에 꽂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보며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저 관람객은 무얼 생각하는 걸까?

혹시 저 관람객은 뭉크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키스하는 장면에 저렇게 리얼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혹시 뭉크는 연애에 도사 반열에 오를만한 자질을 타고난 인물은 아니었을까? 라구요...

 

Burning Desire, Ljan(Nordstrand)/불타는 욕망, 얀(노르드스트란드), 1892, oil on canvas, 98.5 x 67 cm [Christen Sveaas Art Collection]
제목을 보고 작품을 쳐다보니 호수 위에 뭔가 어른거립니다.
호수 위로 여인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혹시 불타는 욕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저 호수 표면으로 드러나는 여인인 걸까요?

<불타는 욕망>이라는 작품 제목이 탄생한 근거라도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거 너무 의미를 부여하며 그림을 감상하려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형국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호수밖 수풀림 사이로 드러나는 붉은 기운이 욕망의 본질일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저는 모름지기 그림이란 마음이 가는 대로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여인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혹시 불타는 장면일까요?
색감 좋고, 조명 좋고...
관람객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Vampire Mermaid(뱀파이어 인어), 1893~1896, gouache on cardboard, 47.4 x 60 cm [Private Collection]
뱃사람을 깊은 바다로 유인하여 익사당하게 하는 전설적인 존재, 인어.
그래서 '뱀파이어 인어'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구석이 있는 그림입니다.

상징주의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하더군요. 저는 뱀파이어와 인어를 결합시킨 뭉크의 생각이 묘하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북유럽 동화에 등장하는 인어는 착한 존재가 아니었나요? 인어노랫소리에 현혹된 뱃사람이 인어를 쫓아 정신없는 뱃질을 한 끝에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어슴푸레하게 떠오르긴 하는데.. 아, 그 기억에 따르면 인어가 착한 존재는 아닐 수 있겠네요. 그래서 뭉크가 인어에다 뱀파이어를 덧입혔던 건가요?

 

오~ 무셔.. 무셔라.

 

머리를 길게 풀어서 늘어뜨린 뱀파이어 인어,

어쩌면 저 그림은 그의 작품 속에 뱀파이어 성향의 존재가 탄생하는 장면을 담아낸 거라고 봐도 되겠네요..

 

이 작품은 얇은 붓터치가 특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뱀파이어 인어(Vampire Mermaid), 1893-1896, 판지에 구아슈, 47.4 x 60 cm, Private Collection, Norway. Loan Courtesy of Rossogranada Art Angels, Switzerland

 

작품 <뱀파이어 인어>에서 아트잡배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다 위로 떨어지는 햇살의 표현방식이었습니다.

뭉크 아자씨는 둥그런 태양이 바다 위에 떠 있고

마치 레이저 빔이 수직으로 조사되는 것처럼 태양의 에너지의 이동 장면을 묘사했는데

이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는 테크닉입니다. 화가들은 자연의 어떤 모습을 통해 직관적으로 깨달은 느낌이나 인상을 '자신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치환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더 큰 첨벙의 퍼지는 물살이 만드는 궤적, 풀장의 물살을 꼬불꼬불하게 표현한 데이비드 호크니 사례도 비슷합니다.

 

Moonlight Ⅰ(달빛 1), 1896, woodcut, 49.9 x 65.7 cm [Private Collection, Norway Courtesy of Peder Lund]

 

뭉크 아자씨,

이번에는 달빛이 만들어 내는 궤적에 필이 꽂혔습니다.

 

그런데 진짜 달빛에 포커스를 맞춘걸까?
긴가민가해서 멘트를 멈추고 지켜보기로 합니다.
MoonlightⅠ(달빛1) [detail]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궁리질해봅니다.

'모름지기 '대가'란,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묘사해 내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다음 섹션으로 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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