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르 시다네르의 그림과 파스텔화에 담긴 황혼 녘 정원과 조용한 거리 풍경은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내밀한 감성의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르 시다네르는 그의 뛰어난 작품 활동 내내 주로 대기의 빛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으며, 얼룩덜룩한 붓놀림으로 황혼의 은은한 광채를 표현했습니다. 종종 앙티파(Intimist)로 분류되는 르 시다네르의 작품들은 상징주의적 경향과 더불어 인상파와 후기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르 시다네르는 1862년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Port Louis, Mauritius)에서 태어났으며, 1872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 덩케르크(Dunkirk)에 정착했습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입니다. 그리고 덩케르크라면 도버해볍 쪽에 위치한 도시 아닌가요?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그는 프랑스에서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지도를 받으며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했지만, 당시의 학문적 환경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던 르 시다네르는 1885년 에타플 예술가 마을( Étaples artist colony)로 이주하여 인상주의와 접하게 됩니다. 인상주의 대표주자인 클로드 모네의 야외 풍경화에서 영감을 받은 르 시다네르는 이후 9년 동안 코트 도팔(Côte d’Opale)의 해안 풍경과 마을들을 연구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살롱 데 아티스트 프랑세즈(Salon des Artistes Française)에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고, 이후 국립 보자르 협회(Société National des Beaux-Arts)에도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1896년, 르 시다네르는 상징주의로 전환합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희미한 불빛 아래 정원에 모인 신비로운 흰 옷을 입은 여성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후, 르 시다네르는 인물 묘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베(Beauvais), 샤르트(Chartes), 그리고 제르베루아(Gerberoy)에 있는 자신의 집과 시골적인 풍경에 집중되었습니다.
1930년 르 시다네르는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émie des Beaux-Arts)에서 명예 교수직을 받았고, 1937년에는 아카데미 회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1939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물화
풍경화
앙리 르 시다네르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풍경화입니다.
클로드 모네를 모방하여 시골에 정착하며 인물이 없는 정물화(테이블)를 주로 그렸습니다.
표현기법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닮았는데
묘하게도 느껴지는 분위기는 클로드 모네에 더 닮아 있습니다.
여러 차례 영국을 방문한 르 시다네르는 1906-07년에 강에서 바라본 세인트 폴 대성당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작품명은 <겨울의 아침 햇살>입니다.
이 작품은 모네의 '루앙 대성당(Rouen Cathedral)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르 시다네르만의 독특한 표현법을 시도하였다고 합니다.
1910년경, 르 시다네르는 분할주의자들의 화풍을 따라 작품 <미디의 안개>를 그렸습니다.
분할주의자를 다른 말로 점묘화가라고 하죠, 아마..
점묘화의 대가 조르주 쇠라의 작품과는 다른 매력이 풍겨나옵니다.
유럽 인상파 회화의 대가들 중 일부 화가만 후배들이 줄 서서 기법을 따라 하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캐나다와 미국쪽에 그 추종자들 상당수가 서식하고 있었군요.
1910년경, 르 시다네르는 <캥페를레(Quimperlé)의 달빛 아래 강>을 묘사한 이 유령 같은 야상곡을 그리기 위해 프랑스 북서쪽 끝 브르타뉴(Brittany) 지방에 있는 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 그림은 강이 상당히 가파른 경사를 따라 흘러내리는 듯한 독특한 원근법을 사용했으며, 늘 그렇듯 인적이 드문 거리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무렵, 르 시다네르는 세심하게 구도화된 풍경 속에 있는
인적이 드문 탁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913년작 <봄의 테이블(The Table, Spring)>은 초기 작품입니다.
완만한 구릉진 시골의 봄 풍경을 배경으로 한 사람을 위한 다양한 음료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그렸습니다.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대칭적인 르푸수아르(repussoir)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테이블, 제르베루아>는 앙리 르 시다네르의 예술적 성숙도가 가장 높았던 시기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캔버스 전체에 빛과 색상의 상호 작용이 잘 묘사되었고, 전경에 있는 와인잔의 노란색은 집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 사이로 반짝이는 황금빛 햇살을 상징합니다. 이 부드러운 배경 속에는 르 시다네르의 상징주의적 뿌리에서 비롯된 미묘한 신비감이 살아 있습니다. 야외 공간에 배치된 정물은 당시 그의 작품을 대표합니다.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그려진 <가을 식탁>은 두 사람 분량으로 세팅된 식탁을 보여줍니다.
계절에 맞는 과일 그릇과 음료가 놓여 있고, 그 뒤에는 아마도 화가의 집일 것으로 추정되는 큰 주택 정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집 벽을 덮고 있는 덩굴식물의 잎들은 이미 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다른 여러 예술가들처럼 르 시다네르는 프랑스 지중해 연안을 방문했습니다. 1920년, 그는 그곳에서 빌프랑슈쉬르메르의 바다 풍경을 그릴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테이블은 한 사람을 위해 놓였으며, 발코니 너머에는 작은 만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흔적은 다소 거칠고, 일부는 꽤 두꺼운 물감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 이 그림이 그의 다른 테이블들보다 스케치에 가까웠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황혼의 작은 테이블>을 위해 르 시다네르는 파리에서 멀지 않은 루앵(Loing) 강변의 느무르(Nemours)에 있는 쁘띠 포세(Petits Fossés)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가 약 40년 전 풍경화를 많이 그렸던 곳 근처입니다. 이 테이블은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도록 맥주 한 병씩 놓여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의 초기 운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데,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에 있는 자신의 방을 그린 그림에서 가져온 듯한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제르베로이에 랜턴이 놓인 테이블>이라는 작품은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테이블, 와인 병, 잔, 과일, 주전자, 그리고 장미꽃이 꽂힌 꽃병.
배경에는 장미꽃이 무성하게 핀 창문이 있는 집이 보이고 천정에는 색색의 종이 등불이 걸려 있습니다. 의자 위엔 마치 누군가 방금 떠난 듯 옷가지가 놓여 있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르 시다네르의 작품에는 사람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구도는 작품에 매력인 신비로움과 몽환적인 느낌을 부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황혼의 하얀 정원>은 옛 마을인 제르베로이(Gerberoy)에 있는 예술가의 정원 한 구석처럼 보입니다.
1928년, 르 시다네르는 빌프랑슈쉬르메르 처치 로드의 가파른 골목길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림자의 각도는 그림의 제작시간을 태양이 하늘 중천에 떠 있을 때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도 몇 명 보이고 있습니다.
르 시다네르는 1900년, 평온함에 매료되어 처음 제르베루아(Gerberoy)를 방문했고, 이듬해 중세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르베루아에 머물렀습니다. 그의 집과 인근 마을의 정원과 테라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였습니다.
클로드 모네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르 시다네르는 자연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세심하게 연구한 후,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구도를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지베르니(Giverny)에 있는 정성껏 가꾸어진 정원에서 무한한 영감을 얻은 모네처럼, 르 시다네르는 정성스럽게 복원된 수도원인 자신의 집 주변 정원모습을 끊임없이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고르지 않고 얼룩덜룩한 붓놀림을 사용하는 르 시다네르는 그림 전체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있는 빛을 만들어내고, 파스텔 팔레트는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내밀한 감성의 세계를 불러일으킵니다.
비평가 자크 바셰(Jacques Bashet)는 르 시다네르를 "점묘화가이긴 하지만, 색조를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눈이 망막에 색을 재구성하도록 하는 그런 점묘화가는 아니다. 그의 팔레트는 매우 다채롭고 미묘하다. 유화는 매우 섬세한 하모니를 이루며 서로 결합하고 녹아든다… 윤곽은 빛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나는 듯하며, 이 점에서 그는 클로드 모네와 유사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말년에 르 시다네르는 평생 동안 간직해 온 황혼과 특유의 풍경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Gerberoy에 있는 자신의 집을 좀 더 전통적인 시각으로 그려냈습니다.
앙리 르 시다네르는 스무 살 무렵, 엄격한 학자였던 알렉산더 카바넬(Alexander Cabanel)의 지도를 받으며 회화를 배웠지만, 곧 스승의 엄격한 기법에서 벗어나 당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유럽과 미국을 두루 여행하던 르 시다네르는 1900년 마침내 작은 마을 제르베루아(Gerberoy)에 정착했습니다. 르 시다네르는 이 그림 같은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그의 가장 매력적인 풍경화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라벤더 빛에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과 간간이 반짝이는 따뜻한 노란색이 어우러진 모습은 황혼녘의 시적인 변화를 생생하게 포착합니다.
앙리 르 시다네르는 77세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1939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달 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세계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과 정원처럼,
제르베루아에 있는 르 시다네르의 집은 끝없는 영감과 자극적인 새로운 소재를 제공하기 위해 세심하게 건축되고 배치되었습니다. 그는 특히 안뜰의 꽃밭에 신경을 써 집과 정원, 즉 야외 공간이 실내로, 그리고 실내 공간이 야외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그의 상징주의적 뿌리에서 비롯된 절제된 신비로움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름답게 정돈된 테이블 정물화가 안뜰에 황혼이 내리고 집 안의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하며 등장합니다. 작가는 빛과 색에 대해 사색에 잠깁니다. 전경의 노란 컵들은 창문의 따스함을 비추고, 테이블 위의 장미들은 뒤편 나뭇잎 속 장미들과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후기인상파와 동시대 화가였던 앙리 외젠 오귀스탱 르 시다네르(Henri Eugène Augustin Le Sidaner).
그의 작품 스타일에는 에두아르 마네, 모네, 그리고 점묘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적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르 시다네르는 차분한 색채 사용을 선호했으며, 미묘한 회색과 오팔색(opals)을 불규칙하고 얼룩덜룩한 붓놀림으로 표현하여 분위기와 신비로움을 조성했습니다. 숙련된 야상곡 화가였던 그는 프랑스와 유럽 전역을 여행한 후 피카르디 지방의 제르베루아(Gerberoy in the Picardy countryside)에 정착하여 30년 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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