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의 표정을 뜯어봅니다.
이 사람들, 표정이 심각하네요..






물론, '이별'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일반화할 수 있겠습니까?
케바케인걸..
남자라고 다 이별의 순간 괴로워하는 건 아닙니다. 속 시원해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그러니 저 작품 속의 남자는 모든 남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뭉크 자신으로 보아야 맞겠습니다. 그쵸?




작품 속 분위기가 꾸리구리합니다.
북유럽의 저녁, 거리의 풍경은 보통 이런 건가요?.. 안 가봤으니 추정만 해봅니다.




The Scream
드디어 <스크림>을 알현하게 됩니다.



뭉크는 자신 대표작들을 색채와 모양을 바꿔가며 반복해서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작품이 팔리고 나면 자신을 떠나가버린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으로 다시 그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여러 버전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다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뭉크는 다양한 재료와 표현 방식을 통해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불세출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은 원화 작품이 다섯 개가 넘을 정도입니다.
이런 뭉크의 기질과 특성은 판화작업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뭉크는 석판화에 색을 덧칠하는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채색 석판화’는 당연히 일반 판화보다 높게 취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뭉크는 대단한 비즈니스감각을 가진 인물인지도 모르겠군요.
이번 전시회에 가지고 온 판화작품 <스크림> 역시
이러한 채색 석판화였습니다.




당연히 쫓겨나겠지만..
그런 거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 해보면 수용되는 사회가 있고 수용 안 되는 사회가 있을까 싶네요.
서구에서도 미술관에서 소리 지르면 모든 관람객들의 눈총을 받는 분위기고 문화이니까...
대한민국은 거리의 담벼락이나 기차 객차에 그래피티를 그려놓는 걸 절대 허용 안 하는 나라이고, 당연히 똘기 충만한 미술덕후도 수용할 만큼 사회적 댐핑 캐퍼시티가 크지 않은 국가일 테니...
아, 그럼 저곳에서 미친척하고 '절규'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이었습니다.
Vampire Ⅱ(뱀파이어 2)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사이에 걸려있던 뱀파이어였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뱀파이어가 완전 퍼레이드 벌이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와우~

뭉크는 1893년부터 1895년 사이에 같은 주제로 여섯 가지 다른 버전의 뱀파이어를 그렸습니다. 뱀파이어 마니아같이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세 가지 버전은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하나는 예테보리 미술관이 소장, 하나는 개인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마지막 작품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뱀파이어들은 모두 석판화였습니다.
뭉크의 주요 작품이자, 1890~1900년에 걸친 유럽 상징주의의 아이콘이 된 이 그림은
충동의 세계를 폭로합니다.
뭉크가 보여 주는 것은 인상주의와는 전혀 다른 세계,
내적인 풍경이자 영혼에 대한 것입니다.


머리카락 일부에 색깔이 스며든 게 보입니다.
채색석판화가 맞습니다.











유리 액자로 보호막을 쳐 놓지 않은 작품, 이런 전시 작품이 좋습니다.
만약 미술품 전시를 기획할 기회가 온다면 이런 사안을 매우 중요하게 감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뱀파이어> 작품은 여성이 남자의 목덜미에 입술을 접선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고 합니다.
오~ 그런 말을 한 인물은 천리안, 아니 투시안을 가진 사람이었나 봅니다.
제 눈에는 여성의 입술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코가 보이지 않는데 여성은 코가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건가?
ㅎㅎㅎ

파스텔과 크레용으로 그린 뱀파이어 작품입니다.
그래서 느낌이 다르게 와닿습니다.
부드럽고 은은한 색조를 띄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뱀파이어의 흡혈성이 약해지는 건 아닐 겁니다.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일 뿐...


The Sick ChildⅠ(병든 아이)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병든 아이>는 어린 시절 죽은 누나 소피에를 떠올리며 그린 작품입니다.
그러나 <병든 아이>의 실제 모델은 누나 요한 소피에(1862~1877)가 아닌 베치 닐슨(Betzy Nilsen)이라는 영양실조에 걸린 동네 아이라고 합니다. 뭉크가 화가로서 성공했을 때 그림 한 점을 팔면 집 한 채를 살 정도였는데, 이때 베치 닐슨이 찾아와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뭉크는 누나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으로 이 아이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게 됩니다.
뭉크는 1885년 처음으로 <병든 아이>를 노르웨이에서 전시했다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자신이 없어 ‘습작’이라는 제목으로 그렸지만 이후 다양한 색감으로 여러 개의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판화버전 <병든 아이> 6점이 전시되었습니다.



채색 석판화로 제작된 <병든 아이>입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므로 존재 가치가 그만큼 더 올라가는 작품입니다.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
특별한 사물이나 장소가 아니며 그냥 맥없는 표정으로 멍 때리는 것일 뿐입니다.

이 작품은 채색 석판화는 아닌 그냥 석판화인데 유리액자로 보호막을 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 개인소장품이군요. 개인이 그렇게 보관 중인 걸 가져왔을 수 있겠네요.
빛의 영향을 많아 받았는지 색이 바래진 느낌입니다.

Ashes




뭉크의 첫 경험은 1885년 여름, 그가 21세였을 때 유부녀(먼 사촌의 아내)인 Millie Thaulow와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Aasgaardstrand의 매력적인 어촌 마을 근처의 숲에서 만났고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뭉크는 미칠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Millie가 2년 만에 관계를 끝냈을 때 뭉크의 내면은 고통스러웠고 황량해졌습니다. 그 후 버림받은 남자와 지배적인 여자라는 주제가 뭉크를 휘어잡습니다.
그의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인 <Vampire(1893-94)>는 빨간 머리의 여성이 우울해 보이는 연인의 목에 입을 파묻고 있는 모습인데, 이 캔버스에서 그녀의 머릿단은 유독한 덩굴손처럼 그 위로 흘러내립니다.
또 다른 주요 이미지를 형성한 <Ashes>에서는 Millie를 연상시키는 여성이 관객과 마주하는 자세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하얀 드레스 단추가 풀려 빨간 슬립이 드러나 있는 채로 손을 머리 옆으로 치켜들고 서 있는데
정신이 나간 듯한 뭉크는 절망에 빠진 모습,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아있는 형국입니다.
보통사람은 자전적 이야기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흑역사를 까발리는 쪽팔림도 감수해야 하니까..
그러면 뭉크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어쩌면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그렇게 창작된 작품을 통하여 위무를 받고 힐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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