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이어서)
작품감상
전쟁미술에 이어서 근대화가들의 작품이 히타이트를 반겨준다.
일본을 알아야 할 이유 같은 의미는 부여하지 말자.
인간으로서 일본인들이 추구하였던
미술을 보고 느끼면 된다.
이 작품은 누구를 닮은 듯하다.
누구? 파울 클레?
이 그림을 그린 이토엔 와사부로(Itozono Wasaburo, 1911~2001)는,
쇼와로부터 헤세이에 걸쳐 활약한 일본의 서양화가였다.
야마시타 키쿠지의 대표작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이다.
작품은 1952년 야마나시현의 산촌 마을 아케보노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재구성한 것으로, 은행의 계획적인 도산에 의해 돈을 잃은 노파의 자살, 지주의 횡포에 맞선 좌파 운동가의 익사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속적인 이미지를 인용하여 처참한 사건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여, 전후 르포르타주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목을 맨 여인은 기모노를 입은 것으로 보아 일본인인 것 같다. 여인 오른쪽에 판자를 사각으로 도려낸 일본 전통 아궁이 이로리(いろり)가 는 것으로 보아 일본인이 틀림없다. 그 아궁이에 검게 그을린 주전자가 걸려있고 그 아래 절석(切石) 은행 발행 예금통장이 있다. 예금통장과 아궁이.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가까이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은 반백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파다. 그녀의 머리맡에 세 자루의 낫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농부의 아내인 듯하다. 여인의 어깨 위에 볏이 초라한 장닭이 올라앉아 곡을 하고, 노파의 얼굴에서는 눈물인지 콧물인지 액체가 흘러내려 고드름이 되었다. 가방을 멘 개가 그것을 핥아먹으려고 앞발을 곧추세우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이렇다. 1950년 대 초. 원자폭탄 2방에 '무조건 항복'한 일본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렸다. 식량난에 허덕였고 물자가 부족했으며, 정의가 실종된 사회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져 미래가 암담했던 일본에 기회가 왔다. 군수물자 제조창이 된 일본은 활발하게 돌아갔으나 그 과실은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보충설명
후지산 아래 아케보로라는 일본의 전통적인 농촌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 절석(切石ゾルソック)이라는 신용협동조합의 이사장이 고의로 부도를 냈다. 소액 예금자들의 돈을 떼어먹으려고 일부러 한 짓이었다.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대주주이면서 지역에 많은 땅을 갖고 있는 대지주였다. 믿었던 금융기관이 부도나자 예금통장만 믿고 살았던 순박한 농민들이 목을 매다는 일이 속출했다.
정부에서는 검찰을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정당과 사회단체에서는 실태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고위 정치인과 줄이 닿아 있던 이사장은 조직원을 동원하여 조사를 방해, 협박했다. 그때 사회단체에서 파견한 활동가가 저수지에서 익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림 왼쪽 시뻘건 물에 물고기를 가슴에 안고 떠오른 사내가 바로 그 활동가다. 사건이 있은 후 사회단체에서는 다른 활동가를 또 파견한다. 당시 조사요원으로 활동했던 야마시타 키쿠지는 그 사실을 황마(黃麻) 화폭에 기록했는데, 그 그림이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다.
출처 : 사회단체 활동가는 왜 익사체로 발견됐나 / 오마이뉴스
그리스 신화에서 3 주신(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중 하나로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 하데스(Hades)를 로마어로 표기하면 플루토(Pluto)가 된다. 평생 지하 세계에 살며 배우자를 찾지 못한 하데스는 데메테르 여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결혼한다. 상심한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에 의해 수확의 주기가 생긴다.
신화에 따르면 위 작품 <플루토의 딸>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까?
둘 사이에는 축복받은 죽음의 여신, 마카리아(Macaria)와 유령과 악몽의 여신, 멜리노에(Melinoe)가 있었다. 이 중에서 멜리노에는 페르세포네와 마찬가지로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존재로서 몸의 절반은 희고, 절반은 검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위 작품 속의 모델은 멜리노에를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모습을 올챙이같이 표현해 놓았군."
"올챙이? 그거 기발한 상상이다."
<Leisure Day(1974)>를 그린 도쿄 출신의 오쿠무라 도규(奥村 土牛, 1889~1990)는
일본식 수채화로 유명한 현대 화가이다.
"히타이트, 작품의 모델이 된 고양이는 페르시아 産인듯하네. 그치?"
"오, 노노. 람시스, 저건 벵갈 고양이일 가능성이 높아."
"벵갈 고양이?"
"그래, 벵갈고양이 종은 특유의 얼룩무늬와 호랑이 같은 외모로 유명하니까."
"낙원이라, 낙원을 그렸는데 인간은 보이지 않네."
"인간이 없는 곳이 낙원이라는 뜻일가?"
"설마, 그럴 리가. 실수였겠지."
요시오카 켄지는 1906년(메이지 39년) 도쿄도 분쿄구에서 태어난 일본 화가다.
<楽苑(A Paradise)>은 1950년(쇼와 25년) 제3회 창조 미술전에서 문부 대신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곰을 제외하면 먹이사슬의 최상위 레벨에 해당하는 동물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곰도 지상의 동물을 먹이로 삼지 않는 물고기를 잡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히타이트 생각으로 아마도 저 요시오카의 <낙원>은 지상 동물 만의 낙원이 아닐까 싶었다.
요코하마 미사오(横山操)가 1961년 4월,
40일간 미국 여행 중 뉴욕 월스트리트의 거리 풍경을 대형화면에 담은 작품이다.
이 그림은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1903-1963)의 공력이 담겨있다.
내용인즉, 오즈는 당시 세련된 현대 여성을 찾고 있던 하시모토에게 여배우 쓰카사 요코(1934년생)를 소개했다.
쓰카사는 몇 년 전 오즈를 처음 만났고 그의 영화 '아키히와' (1960)과 '코바야카와가의 가을' (1961)에 출연했었던 청순 여배우였다. 한편, 하시모토는 소품에 진짜 미술 작품을 즐겨 사용한 오즈 영화에 작품을 제공한 화가로 유명했다.
근대 일본화의 거장 다케우치 세이호(竹内 栖鳳, 1864~1942)의 작품이다.
그는 일본 메이지 시대부터 활동한 일본화 장르의 화가였다.
니혼가의 창시자 중 한 명인 그의 작품은 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으며 전쟁 전 교토 화단의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작품 <日稼(날품팔이, Day Labor)>는 잃어버렸다가 찾은 것으로 보이네"
"그래?"
"1917년의 제11회 문전(문부성 미술 전람회)에 출품한 후 행방을 모르고 있다가 2012년 미술 평론가 고카 히데아키 씨가 도쿄 도내의 고미술상에서 발견하였던 이력이 있어."
"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셈이네."
"일반적인 미인화와 달리 이마에 땀을 흘리며 따뜻한 차를 마시는 여성을 소재로 삼은 게 특이하군. 눈이 작은 걸 보니 일본여인인 것은 틀림없어 보이고.."
작품은 히가시 혼간지(東本願寺)에서 보았던 날품팔이 여성으로부터 착상을 얻어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여성의 푸른 기모노와 왼쪽 위의 걸쇠 축의 청색, 다기의 파랑과 악센트의 색을 억제하면서 그려져 있어 밸런스가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느 골목길 벽면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소녀의 복장을 보면 중국계 여아가 아닐까 싶다.
히타이트가 둘러본 바, 상설전시실 동선은 4층에서 시작하여 2층으로 내려오면서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4층은 메이지 말기에서 쇼와 초기까지의 Hightlights 작품들, 3층엔 쇼와 초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일본화들 그리고 2층에는 쇼와말기(197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中村一美는 일본의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方法を持つ者 IV>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와 세밀한 색채 표현을 통해 인간 존재와 자연의 본질을 탐구한 것이다.
1952년 이태리 나폴리 태생의 현대미술가 Silvio Merlino의 작품 <Flowers' Hunter>이다.
Silvio Merlino는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활용하여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붉은색 바탕에 선홍색 선으로 꽃을 그려놓았군."
"꽤 자극적으로 보이네"
"아름다운 게 아니라?"
"응, 아름답다기 보단 기이해."
"현대미술로 오니 추상화가 자주 등장하네."
"추상화를 배제할 수는 없겠어, 히타이트. 네가 아무리 싫어한다 한들."
"그러게. 서양 놈들이 먼저 시작했고 동양인도 따라 하기 시작한 추상미술, 꼭 태어나야 했는지.."
"이 작품의 작가 朝比奈逸人(Asahina Yasuto)은 1951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도쿄 예술 대학 대학원에서 동판화를 배웠다네."
"오, 람시스. 우리가 가보았던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 예술대학 출신이었군."
"맞아. 이 작가는 타원형이나 계란형의 변형 캔버스에다 부정형의 화면을 구성하는 걸로 유명했었어."
"이 작품도 타원형이네. 뭐."
"형태와 색채의 탐구노력은 인정해 주어야겠어. 그리하여 시각적인 표현영역을 넓히려고 했다는군."
"그래, 이 정도로 하고 자리를 옮기자."
시대별로 배치되어 있는 미술관 내 전시실을 섭렵하고 밖으로 나왔다. 근대에서 현대로 옮겨오면서 일본 화가들이 초현실주의와 추상화에 뛰어드는 것은 그들의 전통적인 흉내 내기 혹은 모방의 철학을 상기하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히타이트는 한국에서 그리하였듯이 일본에서도 추상과 초현실주의계 작품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시실 밖에서 히타이트는 그의 시선을 끌어당기고자 꿋꿋이 서 있는 듯한 조각 작품을 발견했다. 사람들, 특히 여성들-백인계 여행자마저-은 데면데면 그 조각상을 지나쳤지만 히타이트는 기어코 사진으로 담아왔다.
"野口勇 (Isamu Noguchi)라는 조각가의 작품이야."
"작품제목이 <門 (Gate)>이네?"
"그래,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그리고 조각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라네."
"그렇군. 노구치의 조각 특징이란 뭘까?"
"이걸 보면, 문을 가운데 두고 공간을 배치한 거겠지."
"히타이트, 이것과 비슷한 컨셉의 조각상을 서울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알아, 상암 미디어 단지말이지?"
"그래 그래, 어느 쪽이 먼저 제작된 걸까?"
"아무래도 이 작품이 먼저 제작된 것 같군. 1969년엔 마포 미디어 단지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 그렇구나."
"암튼, 이 작품은 문을 형상화한 조각인데, 형태와 공간을 동시에 고려한 디자인이 돋보인다고 평가받고 있어."
"아마 후대에 제작된 작품이 이전 아티스트에게 아이디어를 얻은 것일 듯.."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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