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출신의 자크 드 토낭쿠르는 미술 평론가, 작가, 화가, 교사, 사진작가,
그리고 곤충학자였습니다.
화가나 문인 들 중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 많습니다.
한국 소설가 중에서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서울대 법대 중퇴의 학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물론 법대에 가기 전부터 문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었겠죠. 그래서 문학가가 될 사람이 문학가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 '광장'을 발표한 이후 그의 작품활동은 거의 '사상가'에 가까운 궤적을 보였으며 말년에는 '희곡작가'로 이름을 높입니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업적이나 삶의 궤적을 보인 인물들
그들의 작품활동에서 다른 분야에 대하여 가지기 힘든 시각, 초점으로 비추어본 작품들을 감상하는 건 '덤'의 철학입니다.
어쩌면 자크 드 토낭쿠르도 그런 족속의 하나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필이 꽂힌 건 그가 표현해낸 독특한 캐나다적 풍광의 미학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관심사의 분야가 예술과 과학에 펼쳐져 있었던 자크는 20세에 몬트리올 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 de Montréal)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엄격한 학문적 접근 방식에 불만을 품고 3년 만에 중퇴했습니다. 이건 이전 새로운 사조를 열어젖힌 창조적 아티스트들에게서 종종 목격되었던 광경이기도 합니다.
학교를 중퇴한 드 토낭쿠르는 그룹 오브 세븐(Group of Seven)의 일원이었던 아서 리스머(Arthur Lismer)의 지도를 받으며 수업을 이어갔고, 현대 미술 협회(Contemporary Art Society)에 가입했습니다. 그는 윌리엄 굿리지 로버츠(William Goodridge Roberts)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후 리스머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1945년에서 1946년 사이 브라질에 체류한 후, 펠란(Pellan), 마티스(Matisse), 피카소(Picasso)의 영향을 받아 정물화와 초상화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미적 독단주의와 회화에서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제한적인 개념에 완강히 반대했던 그는 알프레드 펠란과 공동으로 《눈의 프리즘(Prisme d’yeux)》 선언문을 출판했습니다.
드 토낭쿠르는 4년간의 회화 활동 중단 후 1950년대 중반 풍경화로 복귀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콜라주가 그의 주요 표현 수단이 되면서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추상화되었습니다.
드 토낭쿠르는 1954년 몬트리올 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 de Montréal)에서, 그리고 1969년에는 몬트리올 퀘벡 대학교(Université du Québec à Montréal)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1982년 은퇴 후, 곤충학에 대한 열정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회화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드 토낭쿠르는 많은 영예를 안았는데, 그 중에서도 1979년에 캐나다 훈장 장교로 임명되었고, 1993년에는 퀘벡 국립 훈장 장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2002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 메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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